1. 들어가며
2.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맑스주의 입장
3.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지위에 대한 레닌의 언급을 중도주의자들은 어떻게 오용하는가
4. 레닌은 실제로 뭐라고 했는가?
5. 세르비아와의 유추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떻게 올바르게 적용할 것인가?
6. 제국주의 원조의 역할
* * * *
1. 들어가며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래 지금까지도 다수의 개량주의 · 중도주의 조직들이 이 분쟁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반식민지이고 러시아가 제국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들은 “서방의 대리전” 운운하며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했다. 그러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조직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지위와 이 문제에 관한 레닌의 언급을 예로 들며 인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수많은 문서를 통해 논해 왔으므로 간략한 정리로 국한하고[1], 여기서는 이 쟁점, 즉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 방어에 대한 레닌의 실제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세르비아 사례를 오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입하는 것이 왜 오류인지에 집중해서 논의할 것이다.
2.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맑스주의 입장
RCIT는 2년 6개월 전 침공 시작 이래로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전쟁의 반동적 성격을 강조해 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대(大)러시아 배외주의에 의한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적 억압의 오랜 역사가 있어왔다. 나아가 러시아 측에서 이 전쟁은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러시아가 2000년대 초 이래로 제국주의 강대국이기 때문이다.[2]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1991년 자본주의 복고 이래로 반식민지였다.[3]
따라서 푸틴의 침공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그 시작 시점부터 민족방위 정의전(正義戰)이다. 한편, 이 분쟁이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전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제국주의 열강 간의 (즉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가속화되고 있는 세력권쟁탈전/패권경쟁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분쟁의 이중적 성격을 강조한다.[4]
그래서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은 이중적 전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반식민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방어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방어한다고 해서 러시아의 경쟁자 (즉 서방)에게 지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경쟁국을 겨냥한 강대국의 배외주의·군사주의 정책에 어떠한 지지도 주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의 경제제재 같은 (여기서는 서방의 대러 제재 같은) 조치들을 지지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RCIT는 전쟁 시작 바로 다음날 발표한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은 슬로건으로 조직의 입장을 총화했다. "우크라이나를 방어하자!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전을 위해 투쟁하자! 우크라이나 민족 저항에 국제적 민중연대를! 일체의 제국주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된 국제 민중연대를! 러시아뿐만 아니라 나토와 EU를 포함하여 모든 제국주의 열강을 타도하자! 이들 열강 간의 모든 충돌에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은 양 진영 모두에 맞서 싸운다!"[5]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의 민족방위 정의전을 편 들지만, 친 나토 부르주아 젤렌스키 정부에 정치적 지지를 주기를 일절 거부한다.[6]
RCIT가 러시아의 사회주의동맹 동지들 (2022년 여름) 및 우크라이나의 불꽃그룹 동지들 (2024년 봄)과 하나로 융합하는 토대가 된 것이 바로 이러한 평가분석과 이러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강령이다.[8]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이래 지금까지도 다수의 개량주의 · 중도주의 조직들이 이 분쟁에서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반식민지이고 러시아가 제국주의임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들은 “서방의 대리전” 운운하며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했다. 그러한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 조직들은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지위와 이 문제에 관한 레닌의 언급을 예로 들며 인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자체에 대해서는 우리가 이미 수많은 문서를 통해 논해 왔으므로 간략한 정리로 국한하고[1], 여기서는 이 쟁점, 즉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 방어에 대한 레닌의 실제 입장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세르비아 사례를 오늘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입하는 것이 왜 오류인지에 집중해서 논의할 것이다.
2.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맑스주의 입장
RCIT는 2년 6개월 전 침공 시작 이래로 러시아의 대(對)우크라이나 전쟁의 반동적 성격을 강조해 왔다. 잘 알려져 있듯이, 대(大)러시아 배외주의에 의한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적 억압의 오랜 역사가 있어왔다. 나아가 러시아 측에서 이 전쟁은 제국주의적 성격을 가진다. 러시아가 2000년대 초 이래로 제국주의 강대국이기 때문이다.[2] 이에 반해 우크라이나는 1991년 자본주의 복고 이래로 반식민지였다.[3]
따라서 푸틴의 침공에 대한 우크라이나의 항전은 그 시작 시점부터 민족방위 정의전(正義戰)이다. 한편, 이 분쟁이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전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제국주의 열강 간의 (즉 서방과 러시아 간의) 가속화되고 있는 세력권쟁탈전/패권경쟁과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분쟁의 이중적 성격을 강조한다.[4]
그래서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은 이중적 전술을 요구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반식민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방어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를 방어한다고 해서 러시아의 경쟁자 (즉 서방)에게 지지를 주어서는 안 된다. 경쟁국을 겨냥한 강대국의 배외주의·군사주의 정책에 어떠한 지지도 주어서는 안 된다. 강대국의 경제제재 같은 (여기서는 서방의 대러 제재 같은) 조치들을 지지하는 것이 용납될 수 없는 이유다.
RCIT는 전쟁 시작 바로 다음날 발표한 선언문에서 다음과 같은 슬로건으로 조직의 입장을 총화했다. "우크라이나를 방어하자! 러시아 제국주의의 패전을 위해 투쟁하자! 우크라이나 민족 저항에 국제적 민중연대를! 일체의 제국주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된 국제 민중연대를! 러시아뿐만 아니라 나토와 EU를 포함하여 모든 제국주의 열강을 타도하자! 이들 열강 간의 모든 충돌에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은 양 진영 모두에 맞서 싸운다!"[5]
우리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의 민족방위 정의전을 편 들지만, 친 나토 부르주아 젤렌스키 정부에 정치적 지지를 주기를 일절 거부한다.[6]
RCIT가 러시아의 사회주의동맹 동지들 (2022년 여름) 및 우크라이나의 불꽃그룹 동지들 (2024년 봄)과 하나로 융합하는 토대가 된 것이 바로 이러한 평가분석과 이러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강령이다.[8]
3.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지위에 대한 레닌의 언급을 중도주의자들은 어떻게 오용하는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는 수많은 자칭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거부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레닌이 언급한 내용들을 인용한다. 당시 세르비아는 1914년 7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격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다. 레닌은 세르비아의 항전이 그 자체로는 민족자결을 위한 정의전이라고 인정했지만, 제국주의적 전쟁인 세계대전 속에서는 종속적 부차적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세르비아의 경우에 민족적 요소가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볼셰비키는 세르비아 방어를 제창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로부터 중도주의자들은 마찬가지로 오늘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방어 거부 입장이 정당하다고 결론 짓는다. 나토와 러시아 간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에서 우크라이나는 종속적 부차적 요소에 불과하다며.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대표적인 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자신의 조직 입장을 설명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제국주의 상호간의 투쟁과 민족방위 전쟁은 종종 뒤섞인다. 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지하면서 군사 동원이 확대 고조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끔찍한 전면전을 가져왔다. 독일 맑스주의자 칼 카우츠키는 세르비아의 민족자결 투쟁이 수행한 역할은 이 전쟁이 단지 제국주의적 전쟁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세르비아에게, 즉 현 전쟁에 참가한 전체 인원 중 아마 1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세르비아에게 이 전쟁은 부르주아 해방운동의 ‘정치의 계속’이다. 나머지 99퍼센트에게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정치의 계속이다.” 물론 현재의 경우에는 세력균형이 다른데, 직접적인 싸움에는 단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9]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을 주도 세력으로 하는 국제 조직 트로즈키주의분파(FT)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1차 세계대전도 맑스주의 좌파에 역사적인 논쟁을 가져왔다. 1914년, 이유 없는 독일의 공격과 점령에 맞서 벨기에 인민의 정당한 민족해방전쟁이 있었다. 세르비아도 제국주의 열강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격에 대항하여 민족방위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만약 레닌을 비롯한 맑스주의자들이 이 충돌들을 전체 전쟁과는 별개의 단독 분쟁으로 보려고 시도했다면, 벨기에인과 세르비아인에게 전면적인 지지를 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을 비롯한 맑스주의자들은 그렇게 할 경우 자신들이 제국주의 연합국 측에 서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동의하듯이, 1차 세계대전은 일련의 개별적 민족해방전쟁들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세계적인 충돌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를 위해 싸우는 것이 필요했다.... 오늘, 나토 나라들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독립적인 입장을 위해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10]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관한 국제볼셰비키경향(IBT)의 주장도 같은 사례로 다룰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이 정세의 규정적 특징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경우, 비제국주의 나라의 독립과 자결권은 그 나라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상호간의 투쟁의 맥락에서는 비현실의 망상이 된다. 그 나라가 어느 측을 택하든, 어느 측에 동맹군으로 강제되고 있든 간에 말이다. 오늘, 이 점은 제국주의 러시아와 신식민지 우크라이나 ㅡ 러시아와 경쟁하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거대 연합을 뒷배로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 ㅡ 간의 전쟁에도 적용된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1915년)에서 이러한 유형의 정세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하는 세르비아의 전쟁과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다. 민족자결을 위한 세르비아의 투쟁은 제국주의 상호 충돌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 포섭되어버렸다고 레닌은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러시아를 물리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투쟁도 러시아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려는 나토의 캠페인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캠페인의 승리는 우크라이나를 독일·미국 제국주의에 더 한층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11]
이상과 같이, 이 조직들은 ㅡ 그들 각자의 전통과 관계없이 모두 ㅡ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볼셰비키의 입장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왜 오류인지 지금부터 보자.
4. 레닌은 실제로 뭐라고 했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레닌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해 그 첫날부터 ‘제국주의적’ 전쟁임을 분명히 했다. 볼셰비키가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 ㅡ 즉 영·프·러 등 ‘연합국’뿐만 아니라 독일 · 오스트리아-항가리 등 ‘동맹국’도 ㅡ 에 반대했고, 따라서 이들 교전국 모두에 대해 “혁명적 패전주의”를 내건 이유다. 이 혁명적 패전주의 정책은 "주적은 국내에 있다" (칼 리프크네히트), “‘자’국 제국주의 지배계급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하라!” 같은 슬로건들로 총화되어 왔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쟁취 투쟁을 전쟁 조건 하에서 밀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강대국들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전쟁이 전체적으로 제국주의전쟁이었지만 민족방위 전쟁의 요소도 ㅡ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격을 받은 세르비아의 경우에서처럼 ㅡ 있다는 것을 볼셰비키는 십분 인식하고 있었다. 1914년 10월 첫 번째 (중앙위원회) 선언문에서 그 점을 밝히고 있다.
“독일 부르주아지는 또 세르비아를 복속시키고 남슬라브인의 민족혁명을 압살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대한 강도적인 공세에 착수했다. 그와 동시에 군 병력의 대부분을 보다 자유로운 나라인 벨기에와 프랑스 침략에 투입하여 부유한 경쟁국들을 약탈하려고 했다.”[12]
그러나 볼셰비키는 (세르비아의 경우에) 이 민족전쟁의 요소가 세계대전의 전반적인 제국주의적 성격에 종속되어 있음을 또한 분명히 했다.
"이 전쟁의 본질은 영국 · 프랑스 · 독일 간의 식민지 분할과 경쟁국 약탈을 위한 투쟁이다. 차리즘과 러시아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페르시아, 몽골, 아시아령 터키, 콘스탄티노플,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등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 민족적 요소는 완전히 부차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 전쟁의 전반적 성격, 즉 제국주의적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13]
레닌이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의 민족적 요소"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 이유가 오직 한 가지 점, 즉 세르비아가 모든 강대국들과 수억 명의 사람이 연루된 세계대전에서 비할 바 없이 매우 작고 종속적인 요소였다는 점, 단지 그 점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강대국이 식민제국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와 인민이 이 거대한 대결에 어떤 식으로든 참가했다는 의미다.[14]
“세르비아-오스트리아 전쟁에서의 민족적 요소는 전 유럽 전쟁 속에서 그 어떤 중요한 의의도 가지지 않으며, 가질 수도 없다. 만일 독일이 승리하면, 독일은 벨기에를, 폴란드 영토의 또 다른 일부를, 그리고 아마 프랑스의 일부를 압살할 것이다. 만일 러시아가 승리하면, 러시아는 갈리치아를, 폴란드 영토의 또 다른 일부를, 그리고 아르메니아 등등을 압살할 것이다. 만일 전쟁이 ‘승패 없이’ 끝나면, 기존의 민족적 억압이 계속될 것이다. 세르비아에게, 즉 현 전쟁에 참가한 전체 인원 중 아마 1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세르비아에게 이 전쟁은 부르주아 해방운동의 ‘정치의 계속’이다. 나머지 99퍼센트에게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정치의 계속이다. 즉 제 민족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유린하는 것만이 가능한 노쇠한 부르주아지의 정치의 계속이다. 세르비아를 ‘해방시키고’ 있는 3국협상 (Triple Entente); ‘연합국’)은 오스트리아를 약탈하는 데 이탈리아 제국주의가 원조해 준 대가로 세르비아 자유의 이익을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팔아넘기고 있다.”[15]
그러나 레닌은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의 전쟁이 단독으로 ㅡ 즉 세계대전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ㅡ 벌어졌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이 발칸 나라 [세르비아]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는 수많은 자칭 맑스주의자들은 이러한 거부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지위와 역할에 대해 레닌이 언급한 내용들을 인용한다. 당시 세르비아는 1914년 7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공격을 받고 있는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다. 레닌은 세르비아의 항전이 그 자체로는 민족자결을 위한 정의전이라고 인정했지만, 제국주의적 전쟁인 세계대전 속에서는 종속적 부차적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런 상황에서는, 세르비아의 경우에 민족적 요소가 독립적인 역할을 할 수 없었다. 따라서 볼셰비키는 세르비아 방어를 제창하는 것에 반대했다.
이로부터 중도주의자들은 마찬가지로 오늘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도 방어 거부 입장이 정당하다고 결론 짓는다. 나토와 러시아 간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에서 우크라이나는 종속적 부차적 요소에 불과하다며.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과 국제사회주의경향(IST)의 대표적인 이론가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자신의 조직 입장을 설명하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제국주의 상호간의 투쟁과 민족방위 전쟁은 종종 뒤섞인다. 1차 세계대전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암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세르비아를 공격하면서 시작됐다. 그러자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지하면서 군사 동원이 확대 고조되는 과정으로 이어지며 마침내 끔찍한 전면전을 가져왔다. 독일 맑스주의자 칼 카우츠키는 세르비아의 민족자결 투쟁이 수행한 역할은 이 전쟁이 단지 제국주의적 전쟁에 그치는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세르비아에게, 즉 현 전쟁에 참가한 전체 인원 중 아마 1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세르비아에게 이 전쟁은 부르주아 해방운동의 ‘정치의 계속’이다. 나머지 99퍼센트에게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정치의 계속이다.” 물론 현재의 경우에는 세력균형이 다른데, 직접적인 싸움에는 단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만 연루되어 있기 때문이다."[9]
아르헨티나 사회주의노동자당(PTS)을 주도 세력으로 하는 국제 조직 트로즈키주의분파(FT)도 비슷한 주장을 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1차 세계대전도 맑스주의 좌파에 역사적인 논쟁을 가져왔다. 1914년, 이유 없는 독일의 공격과 점령에 맞서 벨기에 인민의 정당한 민족해방전쟁이 있었다. 세르비아도 제국주의 열강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격에 대항하여 민족방위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만약 레닌을 비롯한 맑스주의자들이 이 충돌들을 전체 전쟁과는 별개의 단독 분쟁으로 보려고 시도했다면, 벨기에인과 세르비아인에게 전면적인 지지를 주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레닌을 비롯한 맑스주의자들은 그렇게 할 경우 자신들이 제국주의 연합국 측에 서는 것이 된다는 것을 인식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회주의자들이 동의하듯이, 1차 세계대전은 일련의 개별적 민족해방전쟁들이 아니었다.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세계적인 충돌이었다.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를 위해 싸우는 것이 필요했다.... 오늘, 나토 나라들의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독립적인 입장을 위해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10]
마지막으로, 이 문제에 관한 국제볼셰비키경향(IBT)의 주장도 같은 사례로 다룰 필요가 있겠다.
"그러나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이 정세의 규정적 특징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그러한 경우, 비제국주의 나라의 독립과 자결권은 그 나라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제국주의 상호간의 투쟁의 맥락에서는 비현실의 망상이 된다. 그 나라가 어느 측을 택하든, 어느 측에 동맹군으로 강제되고 있든 간에 말이다. 오늘, 이 점은 제국주의 러시아와 신식민지 우크라이나 ㅡ 러시아와 경쟁하는 다른 제국주의 국가들의 거대 연합을 뒷배로 두고 있는 우크라이나 ㅡ 간의 전쟁에도 적용된다. 레닌은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1915년)에서 이러한 유형의 정세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 대항하는 세르비아의 전쟁과 관련하여 언급한 바 있다. 민족자결을 위한 세르비아의 투쟁은 제국주의 상호 충돌이라는 더 큰 맥락 속에 포섭되어버렸다고 레닌은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현재 러시아를 물리치기 위한 우크라이나의 투쟁도 러시아 제국주의를 약화시키려는 나토의 캠페인과 분리될 수 없다. 이 캠페인의 승리는 우크라이나를 독일·미국 제국주의에 더 한층 종속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11]
이상과 같이, 이 조직들은 ㅡ 그들 각자의 전통과 관계없이 모두 ㅡ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에 대한 레닌의 입장을 인용하는 것으로,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볼셰비키의 입장을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것이 왜 오류인지 지금부터 보자.
4. 레닌은 실제로 뭐라고 했는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레닌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해 그 첫날부터 ‘제국주의적’ 전쟁임을 분명히 했다. 볼셰비키가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 ㅡ 즉 영·프·러 등 ‘연합국’뿐만 아니라 독일 · 오스트리아-항가리 등 ‘동맹국’도 ㅡ 에 반대했고, 따라서 이들 교전국 모두에 대해 “혁명적 패전주의”를 내건 이유다. 이 혁명적 패전주의 정책은 "주적은 국내에 있다" (칼 리프크네히트), “‘자’국 제국주의 지배계급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하라!” 같은 슬로건들로 총화되어 왔다.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쟁취 투쟁을 전쟁 조건 하에서 밀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강대국들 간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전쟁이 전체적으로 제국주의전쟁이었지만 민족방위 전쟁의 요소도 ㅡ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격을 받은 세르비아의 경우에서처럼 ㅡ 있다는 것을 볼셰비키는 십분 인식하고 있었다. 1914년 10월 첫 번째 (중앙위원회) 선언문에서 그 점을 밝히고 있다.
“독일 부르주아지는 또 세르비아를 복속시키고 남슬라브인의 민족혁명을 압살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대한 강도적인 공세에 착수했다. 그와 동시에 군 병력의 대부분을 보다 자유로운 나라인 벨기에와 프랑스 침략에 투입하여 부유한 경쟁국들을 약탈하려고 했다.”[12]
그러나 볼셰비키는 (세르비아의 경우에) 이 민족전쟁의 요소가 세계대전의 전반적인 제국주의적 성격에 종속되어 있음을 또한 분명히 했다.
"이 전쟁의 본질은 영국 · 프랑스 · 독일 간의 식민지 분할과 경쟁국 약탈을 위한 투쟁이다. 차리즘과 러시아 지배계급의 입장에서는 페르시아, 몽골, 아시아령 터키, 콘스탄티노플, 우크라이나 갈리치아 등을 손아귀에 넣으려는 시도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 민족적 요소는 완전히 부차적인 의미만을 지닐 뿐, 전쟁의 전반적 성격, 즉 제국주의적 성격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13]
레닌이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의 민족적 요소"를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한 이유가 오직 한 가지 점, 즉 세르비아가 모든 강대국들과 수억 명의 사람이 연루된 세계대전에서 비할 바 없이 매우 작고 종속적인 요소였다는 점, 단지 그 점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의 강대국이 식민제국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이는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와 인민이 이 거대한 대결에 어떤 식으로든 참가했다는 의미다.[14]
“세르비아-오스트리아 전쟁에서의 민족적 요소는 전 유럽 전쟁 속에서 그 어떤 중요한 의의도 가지지 않으며, 가질 수도 없다. 만일 독일이 승리하면, 독일은 벨기에를, 폴란드 영토의 또 다른 일부를, 그리고 아마 프랑스의 일부를 압살할 것이다. 만일 러시아가 승리하면, 러시아는 갈리치아를, 폴란드 영토의 또 다른 일부를, 그리고 아르메니아 등등을 압살할 것이다. 만일 전쟁이 ‘승패 없이’ 끝나면, 기존의 민족적 억압이 계속될 것이다. 세르비아에게, 즉 현 전쟁에 참가한 전체 인원 중 아마 1퍼센트 정도에 해당하는 세르비아에게 이 전쟁은 부르주아 해방운동의 ‘정치의 계속’이다. 나머지 99퍼센트에게 이 전쟁은 제국주의의 정치의 계속이다. 즉 제 민족을 해방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유린하는 것만이 가능한 노쇠한 부르주아지의 정치의 계속이다. 세르비아를 ‘해방시키고’ 있는 3국협상 (Triple Entente); ‘연합국’)은 오스트리아를 약탈하는 데 이탈리아 제국주의가 원조해 준 대가로 세르비아 자유의 이익을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팔아넘기고 있다.”[15]
그러나 레닌은 세르비아와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의 전쟁이 단독으로 ㅡ 즉 세계대전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ㅡ 벌어졌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이 발칸 나라 [세르비아]를 지지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현 전쟁에서 민족적 요소는 오직 세르비아의 대(對) 오스트리아 전에서만 존재한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 당의 베른 회의 결의에 적시되어 있다). 오직 세르비아에서만, 그리고 세르비아인들 사이에서만 우리는 수백만 ‘인민 대중’을 포괄하고 있는 다년간에 걸친 민족해방운동을 발견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에 대항하는 세르비아의 현 전쟁이 이 운동의 ‘계속’이다. 이 전쟁이 고립된 단독 전쟁이라면, 즉 전 유럽 전쟁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영국, 러시아 등의 이기적이고 약탈적인 목적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면, 세르비아 부르주아지의 승리를 바라는 것이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의무일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현 전쟁에서의 민족적 요소로부터 끌어낼 단 하나의 올바른, 그리고 절대적으로 필연적인 결론이다.”[16]
레닌은 이러한 접근법을 여러 문서에서 되풀이해서 역설했는데 이는 그가 민족 문제를 제국주의시대에 결정적 중요성을 가지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물론, 지금도 현실의 살아있는 그림 속에는 오래된 색조의 얼룩들이 있다. 그래서 모든 교전국 중에서 세르비아인들 홀로 여전히 민족적 생존을 위해 싸우고 있다. 인도와 중국에서도 계급적으로 자각한 프롤레타리아들은 민족적 길 외에는 다른 길을 갈 수 없었다. 자신의 나라가 아직 민족국가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이 목적을 위해 공세적인 전쟁을 감행해야 한다면, 객관적으로 진보적 전쟁이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중국에 동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1848년의 맑스도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러시아에 대항하는 공세적인 전쟁을 촉구할 수 있었다."[17]
"전쟁의 유형을 구별하지 않는 것은 이론에서 오류고 실천에서 유해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민족해방 전쟁들에 반대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세르비아의 예를 인용합니다. 그러나 만약 세르비아인들이 오스트리아에 대항하여 혼자였다면, 우리가 세르비아인들을 편 들지 않았을까요?"[18]
여기서 볼 수 있듯이, 혼란된 중도주의자들이 제시하고 있는 그림과는 반대로, 레닌은 '민족적 요소'와 '제국주의적 요소'의 관계에 대해 매우 분명했다. 레닌은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 '민족적 요소'를 인정했지만, 이 충돌을 철저히 제국주의적인 성격을 가진 전체 세계대전 내 하나의 작은 요인일 뿐으로 보았다. 사회주의자들이 세르비아를 방어할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런 조건에서 세르비아를 방어한다는 것은 객관적으로 한 제국주의 진영에 대항하여 다른 제국주의 진영을 편 든다는 뜻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르비아는 ‘연합국’의 일부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이 단독으로 벌어졌다면 볼셰비키는 세르비아를 지지했을 것이고 제국주의 오스트리아의 패배를 제창했을 것이다.
5. 세르비아와의 유추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떻게 올바르게 적용할 것인가?
여기서 우리는 세르비아와의 유추를 현 우크라이나 전쟁에 어떻게 올바르게 적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이른다. 위에서 인용한 중도주의자들은 1914-18년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과 현 우크라이나 전쟁 간의 거대한 차이를 모두 "무시"하거나 모르는 체 한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의 경우는, 모든 강대국이 연루됐고 1,500만-2,200만 명의 죽음을 가져온 세계대전의 일부인 반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독 전쟁, 즉 세계대전 없는 개별 전쟁이다!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의 종속적 지위에 대한 레닌의 언급을 중도주의자들이 인용한 것이 적절하려면 현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직 3차 세계대전의 일부일 경우에 만이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그러한 세계대전은 아직 시작된 바 없다.
일부 중도주의자들은 수년래 서방 제국주의와 중·러 제국주의 사이에 냉전이 존재하지 않느냐, 그리고 그러한 대립·갈등은 일종의 세계대전과 다를 바 없지 않냐며 자신들의 입장을 방어하려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 같은 반론은 넌센스다.
첫째, 세계대전은 냉전과 같은 것이 아니다. 세계대전은 수백만 명의 사람을 죽이고 계급 간, 국가 간 모순을 극도로 고조시킨다. 냉전은 그렇지 않다. 그보다는 그러한 종말론적 시나리오를 향한 한 걸음인데, 이러한 냉전이 반드시 아마겟돈 열전으로, 세계대전으로 결과하는 것도 아니다. 냉전→열전/ 패권경쟁→세계대전이 무슨 피할 수 없는 필연 같은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냉전은 사회주의 세계혁명에 의해서든, 아니면 냉전 대치 양 진영 중 한 진영의 내파 (예를 들어 스탈린주의의 붕괴로 끝난 지난 1948-91년의 냉전의 경우처럼)에 의해서든 세계대전 이전에 종식될 수 있다. 이 두 시나리오를 혼동하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범죄적 어리석음이다.
둘째, 1차 세계대전이 마른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럽의 제국주의 열강들, 특히 프랑스, 독일,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간의 오랜 (패권/세력권) 경쟁의 결과라는 것을 역사가들 누구나 알고 있다. 1914년 이전 몇 년, 유럽 열강들이 첨예한 위기의 단계에 있던, 심지어는 군사적 충돌에 근접했던 사건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독일, 프랑스, 영국 간의 1,2차 모로코 위기 (1905-06년 아가디르 위기와 1911년 탕헤르 위기), 1908-09년 보스니아 위기, 1912-13년 발칸 전쟁 등이 그것이다. 이 모든 위기는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경쟁을 폭발 직전 지점으로까지 가져갔다.[19]
세르비아도 1914년 이전 몇 년 동안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ㅡ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ㅡ 분쟁 속에 있었다. (2022년 이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분쟁과 비슷하게). 동시에 세르비아는 프랑스에 금융적으로 종속됐다. 세르비아 부채의 4분의 3이 프랑스가 쥔 채권이다. 나아가 세르비아는 다년간 러시아 제국주의의 정치적·군사적 동맹군에 속해왔고 러시아를 "보호자"로 여겼다. 실제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7월 28일 세르비아를 향해 전쟁을 개시하자 러시아가 동맹국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동원하면서 전체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20]
제2인터내셔널은 당시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냉전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1907년 슈투트가르트 대회를 비롯한 인터내셔널 대회들에서, 그리고 1912년에는 특별히 바젤 회의를 열어 이 같은 전쟁몰이에 어떻게 저항할 것인지 논의했다. 알려진 바와 같이, 이 회의들에서 채택된 결의안들은 강대국들 간의 이러한 반동적 전쟁에 반대하는 기본적으로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1914년 여름 실제로 전쟁이 시작되자 제2인터내셔널은 기회주의 노동관료와 노동귀족층의 영향에 의해 갈가리 찢겨 말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실패했다.
유일한 예외는 통칭 치머발트 운동을 창건한 소수파, 특히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이끄는 제2인터내셔널의 좌파였다. 치머발트 좌파는 제국주의전쟁에 맞서 활기차고 일관된 투쟁을 전개하며, 1919년 3월에 창설되는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의 기초를 놓았다.[21]
제2인터내셔널이 이러한 실패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 다가오는 대전에 대해 경고했고 1914년 이전 대회들에서 이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논의했다는 바로 그 사실이 이 시기가 군비경쟁과 가속화된 제국주의 상호경쟁의 시기, 즉 강대국들 간의 냉전의 시기였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이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이 단독으로, 즉 1차 세계대전을 맥락으로 하지 않고 개별로 벌어지는 가능성을 거론했을 때, 그는 명백히 1914년 이전에 존재했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때문에 레닌은 이 1914년 이전 시점에 존재했던 바의 세르비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즉 러시아 제국주의의 동맹군으로 속한 자본주의 반식민지로서 강대국들 간 냉전 정세 속에 놓여 있던 1914년 이전 세르비아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6. 제국주의 원조의 역할
우리의 논적들 중 일부는 반식민지 나라가 이 또는 저 제국주의 열강의 원조를 받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반식민지 나라를 지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 논리에 대해 이미 여러 계기에서 논의했다. 여기서는, 비슷한 반대에 직면하여 그러한 논리를 배격한 레닌을 인용하는 것으로 국한하고 넘어갈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를 둘러싸고 7년 전쟁을 벌였다. 즉, 제국주의 전쟁을 벌인 것이다.(제국주의 전쟁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해서만큼이나 노예제 또는 시초 단계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해서도 가능하다.) 프랑스는 패배하여 식민지 일부를 잃었다. 몇 년 뒤 북아메리카의 여러 주들이 영국 혼자를 상대로 민족해방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의 미국의 일부를 당시 식민지로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주들과 우호조약을 맺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에 대한 적개심에서, 즉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프랑스 군대는 아메리카 인들의 편에 서서 영국과 싸웠다. 이 경우는 제국주의적 상호경쟁이 별로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는 보조적 요소로서 작용한 민족해방 전쟁으로서, 1914-16년의 전쟁에서 우리가 보는 것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 민족적 요소는 제국주의적 상호경쟁이라는 결정적인 요소에 비해 큰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과는 매우 상반된다. 이것은 제국주의 개념을 판에 박힌 방식으로 적용하여 그로부터 민족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준다. 민족해방 전쟁, 예를 들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여 페르시아와 인도와 중국이 동맹하여 벌이는 민족해방 전쟁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민족해방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것은 이들 나라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족해방 운동으로부터 나오는 논리적 귀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쟁이 현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될 것인가 여부는 대단히 많은 구체적인 요인들에 달려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틀림없이 등장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23]
“현 전쟁에서 교전국 총참모부들은 적 진영의 어떠한 민족 혁명적 운동이라도 이용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아일랜드의 반란을 이용하고 프랑스인들은 체코의 운동을 이용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관점에서 완전히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적의 가장 사소한 약점까지도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굴러 들어오는 모든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면, 심각한 전쟁이 심각하게 취급되지 않고 말 것인데, 이는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서, 어떠한 힘으로 화약고가 ‘폭발’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해방 전쟁에서, 제국주의가 위기를 심화 확대시키기 위해 불러오는 단 하나의 재앙에 대해서도 그것에 대항하는 모든 인민 운동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매우 가련한 혁명가일 것이다.” [24]
끝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이 향후 질적 변화를 겪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민족해방전쟁에서 대리전으로, 즉 우크라이나가 서방 제국주의의 대리인 (프록시)으로 복무하는 전쟁으로 전화할 가능성 말이다. 이 경우 양측 모두에서, 즉 우크라이나 측에서도 반동적인 전쟁이 된다. 우리가 여러 문서에서 분석했듯이 이러한 질적 전화가 일어나는 경우는 나토 군대가 전쟁에 직접 개입하거나, 우크라이나가 나토 또는 EU의 회원국이 되거나 하는 경우다. 그러나 현재 서방 제국주의 나라들의 정치·군사 엘리트층 일각에서 이런 방향을 줄곧 제창하고 있지만 지금까지는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 같은 질적 변화, 즉 전쟁의 성격의 전화가 있지 않은 이유다.[25]
결론적으로, 중도주의자들은 레닌이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역할을 예로 든 것을 완전히 잘못 해석하고 있다. 그들은 그 같은 거대한 인민 살육 전쟁의 일부로서의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이 현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들 간 냉전이라는 맥락 내에서 반식민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제국주의 간의 모순의 결과로 전개되어 온 이 전쟁과 말이다. 이와는 달리 레닌은 오스트리아와 세르비아 간의 전쟁이 세계대전의 맥락 없이 벌어진 경우라면 사회주의자들은 이 발칸 나라의 편에 서서 그 제국주의 열강의 패배를 제창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적으로 주장했다.
이 사례는 전쟁과 그 전쟁이 놓여 있는 세계정세에 대한 구체적이고 변증법적인 분석 없이는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
[1] 우크라이나 전쟁과 나토-러시아 분쟁에 관한 RCIT 문서 일체를 다음 링크에 들어가서 볼 수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compilation-of-documents-on-nato-russia-conflict/.
[2] 우리는 러시아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제국주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Peculiar Features of Russian Imperialism. A Study of Russia’s Monopolies, Capital Export and Super-Exploitation in the Light of Marxist Theory, 10 August 2021,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peculiar-features-of-russian-imperialism/; 노동자혁명당(준),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2021년 10월,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Michael Pröbsting: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d the Rise of Russia as a Great Power. On the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of Today’s Inter-Imperialist Rivalry in the Light of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other Reply to Our Critics Who Deny Russia’s Imperialist Character, August 2014,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m-theory-and-russia/; Russia as a Great Imperialist Power. The formation of Russian Monopoly Capital and its Empire – A Reply to our Critics, 18 March 2014 (이 팜플렛에는 우리의 러시아 제국주의 성격규정을 처음으로 정립한 2001년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t-russia/; 같은 저자의 다음 논문들도 보라. 'Empire-ism' vs a Marxist analysis of imperialism: Continuing the debate with Argentinian economist Claudio Katz on Great Power rivalry, Russian imperialism and the Ukraine War, 3 March 2023, https://links.org.au/empire-ism-vs-marxist-analysis-imperialism-continuing-debate-argentinian-economist-claudio-katz; <러시아: 제국주의 열강인가, 반주변부 국가인가?
-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카츠 클라우디오 논문에 대한 답변>, 2022년 8월 11일, https://blog.wrpkorea.org/2022/12/blog-post_11.html; Russian Imperialism and Its Monopolies, in: New Politics Vol. XVIII No. 4, Whole Number 72, Winter 2022, https://newpol.org/issue_post/russian-imperialism-and-its-monopolies/; Once Again on Russian Imperialism (Reply to Critics). A rebuttal of a theory which claims that Russia is not an imperialist state but would be rather “comparable to Brazil and Iran”, 30 March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once-again-on-russian-imperialism-reply-to-critics/. 이 문제에 관한 여러 다른 RCIT 문서들이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별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3] 우크라이나 사회성격에 대한 상세한 평가분석으로는 다음 팜플렛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우크라이나 사회성격: 자본주의 반식민지 사회구성체 - 1991년 자본주의 복고 이래 제국주의 독점체와 과두재벌에 의한 우크라이나 경제의 착취와 기형화에 대하여>, 2023년 1월, https://blog.wrpkorea.org/2023/02/blog-post_22.html
[4] 현 역사적 시기의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에 대한 우리의 가장 종합적인 평가분석으로는 다음 책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2019년,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5] RCIT 선언: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전환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 2022년 3월 1일, https://blog.wrpkorea.org/2022/05/rcit.html;
[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성명: <나토 편입: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제국주의 덫이다>, 2023년 6월 19일, https://blog.wrpkorea.org/2023/06/blog-post_22.html
[7]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혁명적 통일단결에서 중요한 전진! - 사회주의동맹 (러시아)과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통합 공동성명>, 2022년 8월 6일, https://blog.wrpkorea.org/2022/08/rcit.html
[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불꽃 그룹 (우크라이나), RCIT 합류!>, 2024년 4월 4일, https://blog.wrpkorea.org/2024/04/rcit.html
[9] Alex Callinicos: The great power grab—imperialism and the war in Ukraine. The war in Ukraine is an ongoing battle between imperialist rivals, driven forward by capitalist competition, 27 March 2022, Socialist Worker, Issue 2798, https://socialistworker.co.uk/features/the-great-power-grab-imperialism-and-war-in-ukraine/
[10] Nathaniel Flakin: Ukraine Is Not Vietnam, Left Voice (Trotskyist Faction), 1 July 2023, https://www.leftvoice.org/ukraine-is-not-vietnam/
[11] IBT: Ukraine & the Left. Revolutionary defeatism & workers’ internationalism, 7 March 2022, https://bolshevik.org/statements/ibt_20220307_ukraine_left.html
[12] 레닌,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아고라판 레닌전집 58권. 30쪽.
[13]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 아고라판 레닌전집 59권, 110-1쪽.
[14] 당연히, 1차 세계대전에 관한 방대한 양의 문헌이 존재한다. 맑스주의적 또는 진보적 관점에서 유용한 역사 저작으로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 Eric Hobsbawm: The Age of Extremes: The Short Twentieth Century, 1914–1991, Michael Joseph, London 1994, pp. 21-53; Gerd Hardach: The First World War 1914–1918, Pelican Books, 1977; Alexander Anievas (Ed.): Cataclysm 1914. The First World War and the Making of Modern World Politics, Brill, Leiden 2015; 1차 세계대전의 세계적 범위를 시각화 해주고 있는 지도로는 다음을 보라. Wikipedia: Allies of World War I, https://en.wikipedia.org/wiki/Allies_of_World_War_I.
[15] 레닌,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아고라판 레닌전집 59권, 259쪽.
[16] 레닌,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아고라판 레닌전집 59권, 258쪽.
[17] V.I. Lenin: Lecture on “The Proletariat and the War” (October 1914), in: LCW 36, p. 299
[18] V.I. Lenin: Letter to A. M. Kollontai (Summer 1915), in: LCW 35, p. 249; 다음도 보라. 레닌, <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정리>, 아고라판 레닌전집 64권, 58쪽.
[19] 1차 세계대전 전사(前史)에 관해서도 방대한 양의 문헌이 존재한다. 맑스주의적 또는 진보적 관점에서 유용한 역사 저작으로 다음과 같은 책들이 있다. James Joll: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Longman, London 1984; Eric Hobsbawm: The Age of Empire, Vintage Books, New York 1989, pp. 302-327; M. N. Pokrovsky: Aus den Geheim-Archiven des Zaren. Ein Beitrag zur Frage nach den Urhebern des Weltkrieges, August Scherl G.m.b.H, Berlin 1919; Imanuel Geiss: Der lange Weg in die Katastrophe. Die Vorgeschichte des Ersten Weltkriegs 1815-1914, Piper, München 1990
[2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Christopher Clark: The Sleepwal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Allen Lane, London 2012, pp. 242-313; John Paul Newman: Civil and military relations in Serbia during 1903–1914, in: Dominik Geppert, William Mulligan and Andreas Rose (Eds.): The Wars before the Great War. Conflict and International Politics before the Outbreak of the First World War,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2015, pp. 114-128
[21] 치머발트 운동에 대해, 특히 레닌이 이끈 치머발트 좌파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John Riddell,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New York: Pathfinder, 1984; R. Craig Nation, War on War, Duke University Press, Durham 1989; Olga Hess Fisher, H.H. Gankin: The Bolsheviks and the World War; the Origin of the Third International, Stanford University Press, Stanford 1940; Ian D. Thatcher: Leon Trotsky and World War One August 1914–February 1917, Macmillan Press Ltd, London 2000 (Chapter 4); Alfred Erich Senn: The Russian Revolution in Switzerland, 1914-1917,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London 1971; Akito Yamanouchi: "Internationalized Bolshevism": The Bolsheviks and the International, 1914-1917, in: Acta Slavica Iaponica Vol.7 (1989), pp. 17-32; Horst Lademacher: Die Zimmerwalder Bewegung. Vol. 1 and 2, Den Haag 1967; Jules Humbert-Droz: Der Krieg und die Internationale. Die Konferenzen von Zimmerwald und Kienthal, Wien 1964; Angelica Balabanova: Die Zimmerwalder Bewegung 1914–1919. Hirschfeld, Leipzig 1928; Arnold Reisberg: Lenin und die Zimmerwalder Bewegung. Berlin 1966.
[22]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주적은 국내에 있다!”: 맑스주의 슬로건과 그것의 희화>, 2022년 8월 17일, https://blog.wrpkorea.org/2022/08/blog-post_29.html; 같은 저자, <“대리전” 테제/ 무기 전달 반대론: ‘자’국 중심주의와 단절해야 한다! - 미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의 논쟁에 붙여>, 2023년 1월 7일, https://blog.wrpkorea.org/2023/01/blog-post_82.html
[23] 레닌, <유니우스 팜플렛에 대하여>, 아고라판 레닌전집 64권, 19-20쪽.
[24] 레닌, <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정리>, 아고라판 레닌전집 64권, 99쪽.
[2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European Imperialism: A Shift towards Armament and Militarisation, 4 May 2024,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europe/european-imperialism-a-shift-towards-armament-and-militarisation/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