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렛] 우크라이나 사회성격: 자본주의 반식민지 사회구성체

PDF 파일 내려받기

우크라이나 사회성격: 자본주의 반식민지 사회구성체 

-1991년 자본주의 복고 이래 제국주의 독점체와 과두재벌에 의한 우크라이나 경제의 착취와 기형화에 대하여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국제서기 (RCIT), 20231, www.thecommunists.net
 
 
 차례
 
서론
 
1. 맑스주의 제국주의 이론과 반식민지 개념
 
2. 막장에 이른 관료제 스탈린주의
 
3. 자본주의 복고의 파괴적인 사회적·경제적 결과

4. 1991년 이래 우크라이나 자본주의의 반식민지적 기형화
1) 올리가르히: 매판 부르주아지의 형성
2) 자본주의 세계시장을 위한 반식민지 원료 공급자
3) 외채의 덫에 깊이 빠진 경제
4) 외국인투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 약탈
5) 이주: 우크라이나가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다
 
5. 우크라이나: 동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찢겨진 종속국
 
6. 20222월 이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식민지화 몰이와 나토의 영향력 확대 시도
 
7. 전진하는 길:
민족해방에서 사회혁명으로
 
 
                   * * * *
 
 서론
 
2022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시작과 함께 이 동유럽 나라는 세계정치의 중심으로 급부상했다. 이로써 개개의 모든 정치 조류는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을 취해야 할 의무가 부과됐다. 나아가 이 또는 저 제국주의 강대국에 영합 내지 투항하는 조류와, 피억압 인민을 지지하는 원칙 있는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을 취하는 조류 사이에 핵심 경계선이 그어졌다.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RCIT 러시아 지부 (사회주의동맹)는 그 시작 시점부터 푸틴의 침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민족방위 전쟁을 편 들었다. 우리는 부르주아 젤렌스키 정부에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주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 인민의 해방투쟁을 지지해왔고 이에 대한 물질적 지원 (군사 원조를 포함하여)을 촉구해왔다. 피억압 인민의 편을 드는 이러한 접근태도를 바탕으로, 우리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세 차례의 호송대를 비롯한 그 밖의 연대 활동들을 (공동)조직했다.[1]
 
동시에, 우리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정의의 전쟁이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가속화하는 패권경쟁과 결합되었다는 점에서 분쟁의 이중적 성격을 강조해왔다. 이 러시아와 나토 간 충돌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 즉 양 진영 모두에 대한, 그리고 모든 형태의 대국 배외주의·군국주의에 대한 비타협적 반대 입장을 취해야 한다. RCIT가 다음과 같은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을 줄곧 제창해온 이유다. “푸틴의 침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를 방어하라! 러시아 제국주의와 나토 제국주의 모두에 맞서자!”[2]
 
우리의 입장에서 핵심 논거는 이 분쟁에 관련된 제 세력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평가 분석에 있다. 대다수의 자칭 사회주의 조직들과는 달리, 우리는 20여 년 전부터 러시아가 제국주의 국가임을 제기해왔다. 러시아 경제는 내국 독점체들이 지배하며, 이 러시아의 다국적 기업들은 자본을 수출하여 반식민지 나라들 (일차적으로 중앙아시아와 동유럽 나라들, 그리고 그밖에 라틴아메리카, 아프리카 나라들)로부터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있다. 또 러시아의 경제는 값싼 노동력으로 초과착취 당하는 대규모 이주자 층으로부터도 초과이윤을 짜낸다. 동시에, 러시아는 정치·군사 강대국이자 세계 최대 핵 강국으로서 지난 15년 동안 여러 나라에 (영웅적인 체첸 인민을 상대로 한 두 차례 유혈 전쟁 외에도 여러 나라에) 군사적으로 개입해왔다.[4]
 
이 팜플렛의 초점이 우크라이나의 계급적 성격이므로 여기서는 러시아 제국주의 문제를 논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더욱이 이미 몇몇 팜플렛을 통해 그 문제를 다룬 바 있으므로 독자들은 그것들을 참고하면 될 것이다.[5] 같은 이유로, 서방 열강과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에 대한 우리의 평가분석을 여기서 되풀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독자들에게는 우리의 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를 비롯해 그 밖의 문서들을 참조할 것을 권한다.[6]
 
언제나 RCIT는 우크라이나가 제국주의 강대국들 (미국, 러시아, 중국, 서유럽, 일본)과는 계급적 성격에서 다른 사회구성체임을, 즉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임을 강조해왔다. 무엇보다도 이것은 우크라이나가 타 민족을 착취·억압하는 나라가 아니라 반대로 제국주의의 희생자, 제국주의에 의해 착취·억압 받는 나라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가 1991년 이래로 형식적으로는 독립 국가지만, 본질에서는 강대국들에 의해 억압받고 있다. 우크라이나 경제는 외국 독점체들에 의한 초과착취를 겪고 있다. 정치적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우크라이나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평가분석이 우크라이나의 종별적인 계급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며, 따라서 현 전쟁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팜플렛에서는 우크라이나를 종속적인 공업화가 상당히 진척되었음에도 자본주의 반식민지로 보는 우리의 평가 분석을 보다 상세하게 개진할 것이다.
 
끝으로, 우크라이나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우리의 평가는 (이하에서 독자들이 보게 되겠지만) 1991년 이래 이 나라의 사회적·경제적 발전 동향에 대한 조사연구에 기초한 것이다. 이 글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의 반식민지적 기형화와 종속이 시작된 것은 형식적으로 독립 국가가 된 직후부터임을 밝히고 있다. , 2014년 사태나 현 전쟁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2014년 사태나 현 전쟁 등, 이 최근의 사태발전들이 의심할 바 없이 우크라이나 인민의 종속·피억압 처지를 가속화시켰지만 그것들이 근본 원인은 아니다.
 
진정한 독립·해방을 얻기 위해, 우크라이나 노동자·피억압자는 러시아의 침략을 패퇴시키고 나토 제국주의에 의한 종속을 털어내고 국내의 적 과두재벌 올리가르히와 그들의 부패한 정치권 시종들 을 몰수 수탈하는 큰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다시 말해, 자유로 가는 길은 자본주의 착취와 제국주의 지배를 철폐하고 사회주의 미래의 문을 여는 우크라이나 노동자들의 정치·사회 혁명의 성공에 달려 있다!
 
 
1. 맑스주의 제국주의 이론과 반식민지 개념
 
우리는 맑스주의 제국주의 이론과 그 이론의 필수 구성부분으로서의 반식민지 개념에 대한 간략한 소개로 시작할 것이다. 우리의 책 <<남반구에 대한 대 강탈>>을 비롯한 여러 출판물에서 이 문제들에 대해 광범위하게 설명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짧게 설명하고 넘어가겠다.[7]
 
맑스주의 제국주의 이론의 가장 중요한 공헌자인 레닌은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징을 경제를 지배하는 독점의 형성이라고 기술했다. 이와 관련하여, 레닌은 은행자본과 산업자본의 융합으로서의 금융자본, 상품수출과 함께 자본수출의 증가, 세력권 (특히 식민지) 쟁탈전을 주요 특징으로 꼽았다.[8]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은 분리 고립시켜서는 이해할 수 없다. 실제로 모든 국가들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제국주의 글로벌 체제의 일부라는 점에서 서로 연관되어 있다. 한 나라의 계급적 성격을 타 국가, 타 민족과의 관계 속에서 보아야만 하는 이유다. 계급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해당 계급의 성격은 타 계급과의 관계를 평가 분석함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핵심 특징은 독점체들과 강대국들의 형성으로 전 세계가 경쟁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세력권들로 분할되고 이 몇 안 되는 강대국들 아래 대부분의 나라들이 예속된다는 점에 있다. 이로부터 레닌 제국주의 분석의 핵심 포인트가 나온다. 한편으로는 제국주의 국가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가 덜 발달한 나라들에 살고 있는 대다수 인민이 있다. 이 양자 간의 연관관계를 억압 관계로 성격규정 하는 것, 그것이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분석의 요체다.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구분제국주의의 본질에 해당한다며 다음과 같이 혁명적 사회주의 민족 강령에 대해 설명한다.
 
사회민주주의 [레닌 당시에 혁명적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표현] 강령에서의 초점은, 모든 민족을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구분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에 바로 제국주의의 본질이 있는데,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카우츠키는 이것을 기만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 구분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시각에서나, 자본주의 하에서 독립 민족들 간의 평화적 경쟁이라는 속물적 유토피아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의미 없는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투쟁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극히 유의미한 것이다. 바로 이 구분으로부터 민족자결권에 대한 우리의 규정이 도출되어야 하는데, 그 규정은 철저하게 민주주의적이고 혁명적이며, 사회주의를 위한 당면 투쟁의 일반 임무와 부합하는 규정이어야 한다, 바로 이 권리를 위해서, 그리고 이 권리에 대한 진실 된 인정을 끌어내기 위한 투쟁 속에서, 억압 민족의 사회민주주의자는 피억압 민족의 분리의 자유를 요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민족들의 동등한 권리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연대를 인정한다는 것이 실제로는 공문구에, 위선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9]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자결권>)
 
제국주의 국가들과 반식민지 국가들 간 관계의 경제적 기초는 레닌이 초과착취라고 불렀던 것, 즉 제국주의 독점체들이 평균 이윤율을 상회하는 추가 이윤을 이들 피억압국에서 뽑아내는 것에 있다. 이러한 초과이윤은 부유한 나라에서 독점자본이 이미 노동자들로부터 짜낸 이윤에 더해져 전체 이윤에서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 이 초과이윤은 제국주의 나라 노동자계급의 상층, 귀족층 및 특히 노동관료를 매수하는 핵심 재원이기도 하다. 독점자본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하는 제국주의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위에서 언급한 책 <<남반구에 대한 대 강탈>>에서 우리는 독점자본이 ()식민지 나라들로부터 추가 특별이윤을 획득하는 기본적으로 네 가지 형태의 초과착취에 대해 설명했다.
 
i) 생산적 투자로서의 자본수출
ii) 화폐자본으로서의 자본수출 (차관·대출, 외환보유고, 투기 등)
iii) 부등가 교환을 통한 가치 이전
iv) 이주를 통한 가치 이전 (노동자계급 내 피억압 소민족 노동자층인 이주자에 대한 초과착취에 기초하여)
 
언제나 국가들 간의 관계는 경제적·정치적·군사적 특징들의 총체 다양한 관계들의 총체” (레닌) 속에서 보아야 한다.[10]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국가 간의 관계에서 반드시 모든 형태의 억압과 초과착취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특징들은 다양한 조합으로 존재할 수 있다.
 
우리 팜플렛의 주제가 자본주의 반식민지로서의 우크라이나 분석이므로 먼저 그러한 유형의 나라에 대한 우리의 정의를 제시하겠다. 반식민지 나라는 형식상 (식민지와는 달리) 독립 국가다. 그러나 본질적인 특징 즉 제국주의에 의한 지배와 초과착취 을 식민지와 공유한다.
 
이 점은 특히 강조되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남반구 나라들의 형식적으로 독립적인 지위가 자아내는 착시 현상으로 혼동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그들은 이 나라들이 식민지들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을 가진다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형식 외관 뒤에 있는 관계의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다. <<자본론>> 3권에서 맑스가 말한 내용으로 표현하자면, “눈에 보이는 단지 외적인 운동을 진정한 내재적 운동으로 풀어내는 것이 과학의 일이다.”[11]
 
결론적으로, 우리는 맑스주의 고전의 인식[12]에 발맞춰 다음과 같이 반식민지에 대한 정의를 총괄 정리해왔다. 반식민지 국가란 무엇보다도 그들의 경제와 국가기구가 세계질서 속에서 타 국가·민족에 의해 지배당하는 지위를 가지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다. 그 결과, 반식민지 국가는 초과착취와 억압에 기초한 그러한 관계를 통해 제국주의 독점체 및 국가에 초과이윤을 비롯한 그 밖의 경제적·정치적·군사적 이점을 제공한다.
 
나아가 나라들을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국가라는 두 범주로 나누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각각의 범주 내에 서로 다른 많은 색조들이 존재한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에도, 반식민지 나라들 간에도 그렇다. 반식민지 나라들의 경우에 우리는 "한편으로 아르헨티나, 브라질, 이집트, 터키, 이란, 태국과 같은 앞서가는 또는 공업화된 반식민지와 다른 한편으로 볼리비아, 페루,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나라들 (남아공 제외),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네시아와 같은 보다 가난한 또는 반()공업화된 반식민지"를 구분할 수 있다.[13]
 
끝으로, 우리의 접근법이 도식적이라는 반론에 대해 답하겠다. 우리는 그러한 비판이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명확한 범주들 없이는 세계의 주요 사태발전들 및 이 발전들 사이의 관계 을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 그것은 유물론적 변증법의 근본적인 진리다. 레닌은 헤겔을 인용하며 "이해한다는 것은 개념의 형태로 표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을 때 절대적으로 옳았다.[14] 위대한 독일 철학자의 훨씬 더 단정적 정식화로 표현하자면, "어떤 것이든 방법(method)에 완전히 복속될 때만 그것의 진실이 파악되고 인식된다."[15]
 
제국주의 일반, 특수하게는 반식민지에 대한 우리의 이론적 접근방식을 정리해 놓았으니 이제 스탈린주의 지배에 대해 몇 가지 언급하고 이어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평가분석으로 이동할 것이다.
 
 
  2. 막장에 이른 관료제 스탈린주의
 
애초 대부분의 남반구 나라들은 형식상 독립한 반식민지가 되기 전에 유럽 제국들의 식민지였다. 그리하여 이들 나라의 경제는 그 시작부터 지배 열강의 자본주의적 소유관계에 의해 그 틀이 주조되었다. (다른 많은 동유럽 및 아시아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는 그와는 상황이 다르다. 여기서는 자본주의가 1989-91년 스탈린주의 붕괴의 결과로 도입되었다.
 
당시까지 소련은 퇴보·타락한 노동자 국가였다. 즉 탈자본주의 계획 경제에, 정치적으로 스탈린주의 관료가 지배하는 나라였다. 이러한 소유관계에 기초하여 소련은 수십 년에 걸쳐 공업화와 복지, 과학, 군사, 우주 탐사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룰 수 있었다. 선도적 열강으로서 소련의 글로벌 지위는 이러한 역사적인 대도약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경제적 잉여가 한줌의 자본가들의 사적 이익으로 전유되지 않고 어느 정도 사회 발전을 위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탈자본주의 소유관계의 이점은 특권 관료층의 반동 독재에 의해 점점 더 훼손되었고, 마침내 파괴되었다. 이 관료층은 1923/24년 레닌의 와병 및 사망 이후 역사상 최초의 노동자 국가가 고립되고 1927년에는 레온 트로츠키가 이끄는 좌익반대파가 패배하는 그러한 배경 속에서 권력에 오른 사회계층이었다. 스탈린이 이끄는 이 관료 집단은 10월 혁명의 정치적 성과물을 폐지하고 노동자계급과 소 민족들을 억압했다. 트로츠키주의자 수만 명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굴라그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
 
스탈린주의 관료 정책은 또한 일련의 경제 파탄 (예를 들어 신 NEP와 이후의 강제 집단화)을 야기했고 1930년대 초의 대 기근과 같은 사회적 재앙을 불러일으켰다. 그 본성상 관료들은 늘어가는 특권의 수를 쌓아올리는 데 일차적으로 관심이 있었다. 따라서 관료들은 트로츠키와 그의 지지자들이 연속혁명 이론에 입각하여 제창했던 바와 같은, 혁명 과정을 다른 나라로 확대하는 방침을 폐기하고 현상 유지를 원했다. (이를 위해 스탈린은 일국 사회주의라는 보수적 이론을 발명해냈다.)[17]
 
집권 관료층은 정치적으로 지배 통제했지만도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계급이 아니라 특권층 (카스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지배 통제는 관료들에게 수많은 특권을 전유(專有)할 수 있는 기생적 생존을 허용해주었다. 따라서 관료들은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 소유관계를 허물어갔고, 나아가 사회의 생산 토대를 그 밑둥에서부터 무너뜨려갔다.[18]
 
세계정치의 장에서 스탈린주의 독재는 보수적 요소로 작용했다. 모스크바가 (그리고 1972년 닉슨 방중 전까지 베이징도) 때때로 제국주의와 충돌했고 미국에 저항하는 피억압 인민들을 원조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세계 계급투쟁에서 진압자 역할을 더 많이 했다. 현상 유지를 원하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지배 관료층은 냉전기에조차도 항상 제국주의 열강과의 협정을 모색했고, 서방 나라의 스탈린주의 당들에게 지배계급 분파와 계급협조 정책을 취하도록 종용, 장려했다.
 
국내에서는 수십 년간 스탈린주의 지배가 일체의 비판적 목소리를 억누르고 사회에 공동묘지의 침묵을 강요했다. 이러한 노동자 민주주의의 결여는 노동자들을 생산수단으로부터 소외시켰고, 주도성과 참여의 결여를 유발했으며, 관료주의적 부실관리와 경제 정체를 초래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에 대한 평가분석에서 스탈린주의 독재하의 소련을 "과도기 사회"로 규정했다. 그는 이러한 국가들이 국내적, 국제적으로 사회주의혁명의 진전을 가로막는 반혁명 관료층의 지배로 인해 사회주의로 완전히 이행하지 못하고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가는 그 중간의 과도기 체제에 갇혀버렸다고 설명했다. 트로츠키가 그의 저술에서 예측했듯이, 이러한 국가들은 과도기적 현상이며, 그 외 다른 것일 수가 없었다. 관료층을 타도하는 정치혁명을 통해 전진하거나, 아니면 사회반혁명과 자본주의 복고를 통해 후진하거나 둘 중 하나로서, 다른 길이 있을 수 없었다.[19]
 
그러나 스탈린주의 관료가 경제를 운영하는 데는 무능했지만, 노동자들을 억압하는 데는 꽤나 유능했다. 1989-91년 관료층의 지배적 분파가 국유화 경제에 대한 방어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소유관계를 복원하기 시작했을 때, 노동자계급이 정치적 경험과 (가장 중요한 것으로) 혁명적 지도력을 결여한 어려운 상황에 있었던 이유다.[20] 위기를 승리의 정치혁명으로 전화시킬 결정적인 전제조건이 바로 이러한 정치적 경험과 혁명적 지도력이었음에도 말이다. 그러한 정치 혁명은 인민을 해방시키고 국유화 경제를 되살리고 세계 혁명 과정에 재차 기운을 불어넣는 길을 열 수 있었다. 그러나 필요한 전제조건이 결여되어, 퇴보·타락한 노동자국가는 내파했다. 그리고 정치 혁명의 과정은 패배로 끝나고 사회 반혁명으로 전화됐다.
 
 
 3. 자본주의 복고의 파괴적인 사회적·경제적 결과
 
1991년 프롤레타리아 소유관계의 붕괴와 자본주의 복고는 소련, 동유럽 나라들에 파멸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경제가 파괴되고 인민대중 생활조건이 끔찍하게 악화되는 과정을 열었다.
 
소련·동구권의 일원으로서 우크라이나에서도 같은 과정이 시작됐다. 아래 표 1에서 우리는 첫 5년 동안에만 국내총생산(GDP)과 산업생산이 50% 가까이 붕락한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재앙이다. 그 이래로 우크라이나 경제는 고도로 취약한 기복 과정을 반복했다. (그림 1 참조)
 
1. 1991-1995년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 및 산업생산의 붕락 [21]
             1991년   1992   1993  1994   1995   누계
GDP        -11.9%  -17.0   +4.2   -2.5   -11.8   -49.7
산업생산   +4.8%    -6.4     -8   -27.8   -11.5   -48.3
 

그림 1. 1996-2018년 우크라이나 GDP의 변화, 연 성장률 [22]

우크라이나 경제의 급락 사이클은 1999년까지 지속되었다. 어느 시점에서 중단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 경제는 1991년 수준을 오늘까지 회복한 적이 없다. 2에서 보듯이 1999GDP1991년 수준의 44.7%에 불과했다. 또 다른 경제학자는 2000년까지 우크라이나의 실질 GDP1990년 수준의 43%로 감소했음을 나타내는 데이터를 제공한다.[23] 이 수치는 200673%, 201376.2%로 다소 회복되었다가 201869.6%로 다시 붕괴됐다.[24] , 우크라이나 경제는 자본주의 복고 시작 이래로 30년 동안 생산량이 1991년 이전 수준의 3/4을 넘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극적인 방식으로 축소된 것이다!
 
2. 1991년 자본주의 복고 이래 우크라이나 경제의 만성적 위기: 불변가격 국내총생산[25]
연도                   1999년  2006   2013   2018
1991=100%        44.7%   73     76.2    69.6
 
이에 동반하여 투자도 대폭 감소했다. 특히 중공업과 원자재 추출 부문에서 크게 감소했다. 그 결과, 자본스톡 비중이 커진 것도 쓸모없게 되었다. 한 우크라이나 경제학자는 1991-99년 기간에 공업총생산액이 -49.1%, 자본 투자가 77.9% 감소한 것으로 계산했다.[26]
 
자본주의 복고 이후 우크라이나의 구조적 위기로 인해 대규모 탈공업화 과정이 초래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광업과 철강 생산에서 발달된 기반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방위산업, 자동차, 항공기, 항공우주, 조선 등의 부문에서도 고도 산업의 본거지였다. 그러나 1991년 이후 이들 산업의 상당 부분이 폐업하거나 대폭 축소됐다. 1991년과 1998년 사이에 산업 가동률은 계속 감소하여 50-51%로까지 떨어졌다.[27]
 
그 한 결과로, 국내총생산에서 제조업을 비롯한 전체 공업 부문의 비중이 크게 감소했다.[28] 우크라이나 GDP에서 공업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252.6% (제조업: 44.6%)였지만, 이 비중은 200030.8% (제조업: 16.3%), 201322.7% (제조업: 11.3%), 201922.6% (제조업: 10.8%)로 감소했다. , 나라의 총생산량에서 공업 및 제조업 비중이 불과 20년 만에 각각 5분의 34분의 3으로 감소한 것이다! (3 참조)
 
3. 1992-2019년 우크라이나 GDP에서 공업 및 제조업 비중 [29]
                  1992년  2000년  2013년  2019
공업 비중       52.6%  30.8%    22.7%   22.6%
제조업 비중    44.6%  16.3%   11.3%   10.8%
 
논리적으로 당연히, 이러한 경제적·사회적 퇴보 역진 과정은 주민에게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1991년 이전의 계획경제 조건 하에서는 존재하지 않았던 실업률이 극적으로 증가했다. 19994,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의 실질 실업률을 30%로 추정했다.[30] 공식적으로, 2009년에 실업률은 9.6%였는데 그 뒤에 다시 증가했다.[31] 2000년 주민의 26.4%가 국가 빈곤선 이하로 살았는데, 이 비율은 2013(24.5%)까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32]
 
자본주의 소유관계의 확립에 동반하여, 소득 불평등이 우크라이나 사회의 주요 특징이 되었다. 2010년 우크라이나 인구의 가장 부유한 10분위가 전체 소득의 21%를 차지한 데 반해 가장 가난한 1분위 층은 단 4.4%를 점했다.
 
이 파괴적인 과정의 결과로, 우울증, 건강 문제, 알코올 중독과 약물 중독, 자살, 전염병 등이 주민 속에 급격히 번졌다. 남녀 일반 기대수명이 1991-1995년 사이에 70.5세에서 67세로, 남성만으로는 198966세에서 62.8세로 줄었다. 동시에 유아 사망률은 13.0 (1990)에서 15.0 (1995)으로 증가했다.[34]
 
상황이 나중에 개선되었어도, 기대수명은 2020년에도 여전히 1991(71)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었다. 이것은 유럽의 다른 어느 나라들보다도 낮은 수준이다.[35] 사망률 (인구 1,000명당)11(1989)에서 17(2005), 16(2020)으로 증가했다.[36] 동시에 출산율 (여성 1인당 출생 수)2(1988)에서 1.1(2001), 1.2(2020)으로 감소했다.[37]
 
이러한 전례 없는 사회적 쇠퇴·부후화 과정의 필연적인 결과는, 우크라이나 인구가 19915200만 명에서 2020년 약 4200만 명으로 20% 가까이 감소한 것이다.[38] 자유시장의 이점을 전파하는 데 싫증날 일이 없는 핵심 제국주의 경제기관인 OECD조차도 다음과 같이 밝힐 수밖에 없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독립 이래로 인구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었다. 2000-2016년 동안, 생산가능인구 (, 15-64)7.8% 감소했고 전체 인구는 8.1% 감소했다. 우크라이나 인구는 이미 대부분의 OECD 나라들보다 고령이다. 65세 이상의 연령층이 2016년에 인구의 21%를 점했다."[39]
 
요약하자면, 우크라이나 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 중 하나 에서 자본주의 복고의 대차대조표는 파괴적이다. 물론, 이 과정은 현 러시아 침략 전쟁에 의해 지금 훨씬 더 악화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위에서 보여주었듯이, 자본주의 복고 후 20년이 넘은, 그리고 러시아와의 적대관계가 시작되기 전인 2013년에도 우크라이나 경제가 1991년 수준의 76%밖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2014년 국내 갈등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우크라이나는 대규모 후퇴를 맞았다.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라는 사악한 힘들에 의해 파괴되면서 사회적·경제적 퇴보·역진의 과정을 겪은 것이다.
 
 
  4. 1991년 이래 우크라이나 자본주의의 반식민지적 기형화
 
스탈린주의와 관료 계획경제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에 자본주의 소유관계가 확립됐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유기적"으로 성장하지 않았고, 성장할 수도 없었다. 그러하기 보다는 자본주의 가치법칙이 외국 제국주의 기관 (서방 정부/은행/기업)과 국내 올리가르히 (과두재벌)의 결합된 힘에 의해 실행됐다. 결과는 제국주의 열강과 독점체들에 의한 파렴치한 강탈이며 이들이 지배하는 종속적 자본주의 경제의 성립이었다.
 
1) 올리가르히: 매판 부르주아지의 형성
 
동유럽의 다른 전() 스탈린주의 나라들과 비슷하게 우크라이나에서도 1991년 이후 친자본주의 정부들이 신자유주의 사유화 정책을 실시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1999년 말 사유화된 기업들이 산업생산의 약 71%와 고용의 50% 이상을 담당했다.[40]
 
사유화 과정은 독점화 과정으로 이어졌다. 즉 주요 경제 부문/ 기간산업을 장악한 소수의 기업들이 창출된 것이다. 19982월까지 200대 기업이 우크라이나 산업생산의 90%를 담당했다.[41]
 
20222월 전쟁 시작 이전 시기에 젤렌스키 정부는 사유화 과정을 지속, 확장하려 했다. 20213월 우크라이나 의회는 국유기업 민영화 금지 조치를 철회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는 "전략" 기업으로 간주되어 매각 대상에서 제외되는 기업들의 수를 줄여놓은 이전 법 (2019년 법)을 따른 것이었다. 2020년 우크라이나의 최대 파이프라인 회사 나프타가스와 우크르 트란스가스 등 에너지 부문 관련 회사들을 포함하여 국유기업의 부분 민영화를 허용하는 프로세스가 착수됐다. 여기에 의회가 나서서 2021년에 민영화 제외 대상 659개 기업 (주로 에너지, 방산, 항공우주 부문, 국영 철도, 우편) 목록을 작성함으로써 이 프로세스를 법적으로 한 층 더 확실하게 했다.[42]
 
이 사유화 과정의 결과는 소수의 슈퍼리치 자본가 집단 이른바 올리가르히 이 가장 값나가는 기업들을 틀어쥔 것이다. 결코 사회주의에 친하다는 혐의를 받을 일 없는 미국의 한 신자유주의 싱크탱크가 최근 발표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상위 100명의 부자들이 전쟁 전 우크라이나 경제의 25% 가까이를 지배했다. 많은 올리가르히가 에너지, 광업, 금속, 미디어를 포함하는 문어발식의 다각화된 지주회사들을 거머쥐고 있다. 과거에 이러한 경제적 지배를 통해 올리가르히가 일부 정당에 상당한 자금을 지원함으로써 거대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43]
 
소수의 새로운 자본가 집단에 의한 이 같은 축재 과정은 대규모 자본 도피 및 국유 재산 도둑질과 동반 진행됐다. 경제학자들은 1996년 우크라이나의 국외 자본 규모를 250억 달러에서 500억 달러 사이로 추정했다.[44] 이 과정은 우크라이나 자본가들의 소위 국외 "투자" 목적지의 특수한 성격에서도 나타나는데, 공식 통계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로부터 유출되는 전체 외국인투자 (해외투자)90% 이상이 조세 피난처이자 자본 도피 목적지로 잘 알려진 키프로스에 등록되어 있다.[45]
 
물론, 그러한 국외 "투자" 중 일부는 다시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인투자 (우리가 러시아에서도 관찰한 현상인 이른바 자본 라운드트리핑”[우회투자])로 돌아왔다.[46] 그러나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잔고가 우크라이나의 국외 FDI에 비해 액수가 훨씬 더 크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 자본가들이 자국에 대한 그러한 "외국인" 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은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명백하다.
 
자본 도피의 또 다른 형태는 수출에 있다. 사회노동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일단의 우크라이나 진보 경제학자 그룹은 한 흥미로운 연구보고서를 통해 내국 자본가들이 소위 "상품 수출"을 통해 나라 밖으로 밀반출한 화폐의 양을 계산했다. "자료를 종합하면 2012~14년 및 20151-9월 동안에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키프로스, UAE, 스위스, 레바논 등 무역 중계국들에 한해 우크라이나가 수출한 물량은 전체 상품 수출의 50%에 달하는 액수인 831억 흐리브냐 [우크라이나 통화 인용자], 이 중 257000만 흐리브냐 (1,5%)만이 이들 나라에서 소비되었다. 우크라이나 수출이 이들 중계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감안할 때 우크라이나 상품 수출의 절반 이상이 세금 적은 나라들을 거쳐 가며, 우크라이나 수출기업들 이윤 대부분은 그들이 이 나라들 은행에 개설한 계좌에 쌓이고 있는 반면, 나라 예산은 상당 액수의 법인세를 잃고 있다고 우리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47]
 
이와 같이, 이 소수 과두재벌은 그들의 부를 일차적으로 국내 경제에서 자본축적을 위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외국 조세 피난처에서 기생적 축재를 위해 활용한다. 동시에, 과두재벌은 우크라이나 경제를 글로벌 자본의 필요에 맞춰 종속적 경제로 전화시키는 데서도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과두재벌 올리가르히는 다른 많은 반식민지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익숙한 현상인 매판 부르주아지의 우크라이나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우크라이나판 매판 부르주아지는 국가 경제를 약탈하여 국외 조세 피난처에 맡겨둔 이 훔친 부를 통해 기생적으로 살아가는 자본가계급이다.
 
그 본성상 올리가르히는 제국주의 독점체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관계망에서 올리가르히는 종속적 부분으로 제국주의 독점체들과 강대국들에 완전하게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는 주되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올리가르히는 (대부분 서방 열강들이 통제하는) 국제 금융기관에 맡겨둔 그들의 부를 보호하고 비밀을 유지하는 데 있어 전적으로 제국주의 독점체들과 강대국들에 의존한다. 둘째, 그들의 이윤은 그들이 독점체들과 맺을 수 있는 사업 거래에 크게 의존한다.
 
끝으로, 올리가르히가 러시아를 비롯한 전() 쏘연방 나라들과는 달리 우크라이나 국내정치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직접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2014~19년 젤렌스키의 전임 대통령인 페트로 포로셴코는 억만장자이자 제과회사의 오너로서 초콜릿 킹이라는 별명을 보유했다. 2002450명의 국회의원 중 300명이 백만장자 [달러 기준]인 것으로 추계되고 있다. 입법에 직접 관여하는 역할 뿐만 아니라 기소 면책권에서 오는 특권은 탈세와 자금 국외 밀반출에 신경 쓰는 사업가들에게 절대로 과소평가될 수 없는 국회의원직의 이점이다.[48]
 
요약하자면, 우크라이나 자본가계급의 최상위층인 올리가르히는 우크라이나 자본주의의 반식민지적 기형화를 밀어가는 데 핵심 역할을 했다.
 
2) 자본주의 세계시장을 위한 반식민지 원료 공급자
 
우크라이나에서 자본주의 복고의 주요 특징은 제국주의 지배 세계시장에 우크라이나 경제가 급속히 통합됐다는 점에 있다. 이미 1990년대 후반에 GDP 대비 무역 비율 (연간 총생산에서 수출입 물량이 차지하는 비중을 반영하는)90%에서 110% 사이였다. 이후, 이 수치는 약 75-80% 수준으로 안정화되었다.[49] 이는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보다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훨씬 더 고도로 통합되었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GDP 대비 수출 비중은 1993년과 1998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하여 40%를 넘었고 2000년에는 약 60%로 늘었다.[50] 전체 세계 무역에서 우크라이나의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19950.3%에서 20050.35%, 20110.45%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동시에, 세계 GDP에서 우크라이나가 차지하는 비중은 0.22% 수준에 불과했다. , 우크라이나가 세계 수출 물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세계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비중보다 두 배나 높았던 셈이다.[51]
 
캐나다 경제학자 안톤 올레니크는 다음과 같이 평한다. "1990년대 중반 쿠치마 대통령이 '충격요법' 정책을 시행한 이래로 우크라이나는 대외무역 (수출과 수입을 합친) 비중이 GDP 규모를 줄곧 초과하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인 경제국 중 하나였다. 쿠치마의 충격요법은 1990년대 초 러시아에서 보리스 옐친과 예고르 가이다르 정부가 실행한 개혁보다도 더 급진적이고 더 신자유주의의 기준에 가까웠다."[52]
 
그러나 그 시작부터 우크라이나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경제를 위한 1·반제품 공급자로서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진입했다. 지난 30년은 그러한 종속적 지위가 심화되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 기간에는 공업 원료가 우크라이나의 수출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수출물량에서 철 금속과 비철 금속의 비중이 1996년 초 약 30%에서 200140%로 증가했다.[53] 구소련 이외의 나라들로 가는 우크라이나 수출물량에서 이 비중은 무려 50%를 넘었다.[54]
 
그러나 그 뒤에는 철강 비중이 줄고 대신 농산물 비중이 늘었다. 2008년과 2015년 사이에 우크라이나 수출물량에서 비()금속 비중은 42%에서 26%로 감소했다. 공산품 비중도 2008~2013년 사이에 73.6%에서 57.4%로 줄었다. 동시에 밀, 보리, 유채씨, 옥수수와 같은 1차 농산물 비중은 200812%에서 201532%3배 증가했다. (아래 그림 2 참조).[55] 지난 몇 년 농산물 수출은 훨씬 더 늘어 2021년 우크라이나 전체 수출물량에서 약 41%를 차지했다.[56]
 
그림 2. 우크라이나 수출구조, 1996-2015 [57]

이와 같이
, 대부분의 제조업 수출품은 주로 비()금속류다. OECD2018"첨단 제조업 제품 수출은 미미한 수준으로 철도 차량, 항공기 부품 등이 대부분이다"라고 평가했다.[58] 이는 앞서 언급한 국내 제조업이 사유화와 세계화 과정으로 인해 붕괴된 결과다. "2017년 철도 차량 수출은 2013년에 비해 91% 감소했고 기계공업 제품의 경우 54% 감소했다."[59] 유명한 항공기 제조기업 안토노프 사는 2015년 이후 단 한 대의 비행기도 만들지 못했다.[60]
 
잔존 산업들은 국내 시장보다는 수출용으로 상당 정도의 생산을 한다. 키이우에 본부를 둔 사회노동연구소의 위 연구보고에 따르면 2014년 전체 산업생산의 41.9%를 담당한 6개 산업이 제품의 절반 이상(54.3%)을 국외에 판매했다. [61]
 
우크라이나 경제에도 정보통신기술과 같은 현대적인 고숙련 산업부문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전쟁 이전에 이 부문은 GDP4%를 점하기까지 했으며 우크라이나의 정보통신기술 노동인력은 세계 4위권에 속했다. 우크라이나 정보통신 전문가들은 운전면허증, 코로나19 백신 기록, 여권 등 정부 서비스를 자동화하는 데 기여한 이른바 디아 앱”(Diia app)을 만들어냈다. 이 앱은 전쟁 상황에도 성공적으로 효능을 발휘했다. (예를 들어 난민 및 IDP 지원, 러시아 군사 활동 위치 파악 등). 그 결과, 우크라이나의 디지털 수출액은 2011년 연간 10억 달러 미만 수준에서 202168억 달러 넘는 수준으로 증가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2013)에서 10%(2021)를 조금 넘는 수준으로 증가했다.[62]
 
그럼에도 이 부문은 국가 경제와 무역에서 여전히 작은 일부일 뿐으로, 우크라이나 경제의 반식민지적 기형화를 막는 강력한 상쇄 경향을 유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 점은 전쟁 시작 몇 년 전에 우크라이나 수출물량에서 첨단기술 부문 비중이 감소하는 것에서 잘 볼 수 있다. (아래 표 4 참조). 그리고 끔찍한 전쟁 상황을 고려할 때, 제국주의 독점체들이 우크라이나 경제를 현대화하는 쪽보다는 정보통신기술 노동자들을 국외 이주자로 빼내올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표 4. 우크라이나 전체 상품수출에서 첨단기술로 생산된 상품수출 비중, 2013-2018[63]

2013년  2014년  20152016년  2017년  2018
 24.4%   20.4%   19.2%   17.3%   16.8%   17.0%
 
EU에 대한 수출 비중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조차도 제국주의 정부들이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데 열심이어서 곧 중요한 장애물에 직면했다. 동시에 EU는 우크라이나에게 시장 개방을 강요했다. 우크라이나의 진보 경제학자 마르코 보즈쿤은 우크라이나의 세계시장 편입에 관한 연구논문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우크라이나는 1990년대에 러시아와의 무역 비중을 약 80%에서 55%로 줄였다. EU에 가입 신청 중인 중유럽 국가들과의 무역도 20%에서 10%로 동시에 감소했지만, EU 회원국들과의 무역은 약 6%에서 20%로 증가했다.... EU 보호무역주의 체제가 우크라이나가 경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제품들 (철강, 화학, 식품, 섬유 등, 우크라이나로서는 생산적 투자와 경제 현대화를 위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제품들)의 수입을 막는 한 EU와의 무역관계 구조는 불만족스러웠다. 게다가, 반덤핑 조사 대상으로 지정된 우크라이나 수출 품목의 비율이 1990년대에 약 1/4에서 1/3 이상으로 증가했다.... 1990년대 동안 우크라이나 소매 시장의 약 60%, 원산지에서는 팔 수 없는 잉여 및 2등급 제품을 공급하는 외국인 업자들이 장악했다."[64]
 
같은 저자는 1996년에 절박한 경제 상황을 논평한 한 우크라이나 신문을 인용한다. "우리는 국외 시장만 잃은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의 것도 거의 다 잃었다.... 키이우의 한 슈퍼마켓은 지금 감자 바레니키 [만두와 비슷한 우크라이나 전통 음식]를 팔고 있는데 그것들은 뉴욕 브루클린에서 만들어진다!"[65]
 
이와 같이 우크라이나의 수출구조는 크게 변형되어버렸다. 주로 1·반제품을 EU에 수출하는 반면, 주로 가공품을 수입한다. 2016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의 EU 수출 품목은 비금속과 그 제품(전체의 22.1%), 채소류 제품(16.1%), 광물 제품(12.8%), 기계 및 가전 (11.5%)으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EU로부터 주로 기계 및 가전(26.1%), 화학 산업 또는 관련 산업 제품(16.8%), 운송 장비(10.7%), 플라스틱·고무 및 그 제품(7.1%) 등을 수입했다.[66]
 
우크라이나의 수출구조는 전쟁 시작 훨씬 전부터, 나아가 2014년 사건보다도 더 전부터 평균적인 반식민지 나라보다 더 낙후되어버렸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크라이나의 전체 수출에서 첨단기술 제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율을 다른 중·저소득국들과 비교해보자. 우크라이나는 2000년에서 2013년 사이에 이 비율이 평균 5% 수준이었는데 반해 중·저소득국들의 평균은 17~20%였다.[67]
 
우크라이나의 많은 관측자들은 그들의 나라가 부유한 나라들을 위한 기초 상품 공급자로 전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낸다. 사회노동연구소의 경제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경향은 지난 20년 동안 좇은 논리에 부합한다. 우크라이나를 원료 공급자로 세계시장에 편입시키는 그 일반적 논리 말이다라고 올바르게 논평한다.[68]
 
우크라이나의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조차 그러한 사태전개에 많은 불만을 가지고 논평한다. 재무차관과 국제통화기금(IMF) 우크라이나 대표를 역임한 숨김없는 신자유주의 숭배자인 우크라이나 경제학자 올레 하브리신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가 무엇을 수출해야 하는지에 대해 자원 기반 저부가가치 수출이 너무 많고 고도 첨단기술 제품은 충분치 못하다고 강하게 지적하는 논조의 관계자들 글이나 성명이 결코 없는 것이 아니다. 대표적으로 곤차르와 바비라드-라주닌은 우크라이나가 유럽연합과 러시아연방의 농업 부속물이 되었으며비록 국제 조사에서는 우크라이나의 과학 기술 잠재력이 상당히 높게 평가되고 있지만첨단기술 제품 수출은 매우 적다'고 말한다. 또 슬레프트소바도 우크라이나 수출이 철강이 1/3을 훨씬 넘게 차지하는 등 자원 집약도가 높다고 지적한다. 정부 프로그램들과 성명들도 비슷한 지적들로 채워져 있다. 단순, 자원 기반 저부가가치 제품의 높은 비중을 비판하는, 그리고 올바른 수출구조가 되려면 훨씬 더 정련된 제품을 포함해야 한다며 우크라이나의 선진 인적 자본 능력을 강조하는 내용의 지적들이다. 개발경제학에 친숙한 독자들은 저소득 국가들이 농산물이나 자원 수출국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이 공통된 불평불만을 인정할 것이다."[69]
 
요약하자면, 우크라이나 무역구조의 변화는 우크라이나를 무엇보다도 제국주의 국가들을 위한 1·반제품 공급자로 만들었다. 지난 30년을 거쳐 우크라이나도 자본주의 반식민지의 특징인 세계시장에서의 종속적 지위를 떠안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낸 책 <<남반구에 대한 대 강탈>>에서 설명했듯이, 그러한 종속적 위치에서 우크라이나는 다른 많은 반식민지 나라들처럼 제국주의 지배 세계시장에서의 부등가 교환이라는 불리한 조건을 맞고 있다. 보다 발달한 (제국주의) 나라의 상품과 덜 발달한 (반식민지) 나라의 상품이 세계시장에서 교환될 때, 가치법칙은 제국주의 자본이 부등가 교환을 통해 추가 이윤을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제국주의 자본의 더 싼 상품은 반식민지 나라의 더 비싼 상품을 두 손 들게 하고, 반식민지 나라가 그들의 상품을 그 가치 이하로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한다. 따라서 보다 강한 (제국주의) 자본은 자신의 상품을 생산 가격 이상으로 팔 수 있으며, 그러면서도 경쟁력이 낮은 (반식민지) 자본보다 세계시장에서 여전히 더 싸다. 반식민지 자본은 자신의 상품을 생산 가격 이하로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되며, 그러면서도 제국주의 자본보다 세계시장에서 여전히 더 비싸다.[70]
 
그 결과, 더 강한 (제국주의) 자본은 더 약한 (반식민지) 자본에 의해 창출된 잉여가치의 일부를 성공적으로 전유한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선진국에서 후진국으로 대량 가치 이전을 가능케 하는 기제가 바로 부등가 교환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이러한 사태발전은 결코 불가피하지 않았다. 1991년 독립국가가 되었을 때 우크라이나는 "약한" 또는 "후진" 경제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선진적인 산업을 보유한 경제라는 점에서 전혀 불가피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가 제국주의 열강에 (점점 더 농산품 비중이 늘어가는) 1·반제품을 공급하는 반식민지 나라로 전화한 것은 다름 아닌 자본주의 복고 정책의 결과였다.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강대국들과 소수 올리가르히 집단 탐욕적인 매판 부르주아지 에 의해 목적의식적으로 추진된 프로그램의 결과물인 것이다.
 
3) 외채의 덫에 깊이 빠진 경제
 
언제나 제국주의 자본은 자본수출을 통해 가난한 나라로부터 추가 이윤을 얻으려고 시도한다. 특히 1970년대 초부터 전 세계적으로 중요성이 커진 그 한 가지 형태는 차관·대출 형태로 화폐자본의 수출이다. 이런 경우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이 반식민지 나라들에게 공여하는 차관에는 막대한 금리가 따른다. 외채가 반식민지 나라들에 대한 제국주의 초과착취로 결과하는 이유다.
 
처음에 독립 국가가 되었을 때 우크라이나는 미상환 외채가 없었다. 이것은 빠르게 바뀌었다. 1992년 말 어림잡아 14억 달러 수준이던 우크라이나의 부채는 급격히 증가하여 1999124억 파운드로까지 치솟았다.[71] 20013월에는 1407천만 달러로 상승했다. 그 결과 GDP 대비 부채 비율은 1999년에 40% 이상으로 증가했다. 수출 대비 부채 총액도 1994-9743-48%에서 1998-200065-77%로 증가했다. 또 수출 대비 부채 상환 비율 (한 나라가 세계시장에서 상품 판매를 통해 부채를 얼마나 상환할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1997년부터 급격히 증가했다.[72]
 
그러한 차관·대출의 많은 부분이 외국 자본가들로부터 온 것이다. 1996년 정부가 국채 발행안을 내놓았을 때 외국인투자자들이 국고채 시장에 넘쳐났다. 1997년 말 외국인투자자들은 모든 국고채권의 45%를 보유하고 있었다.[73]
 
우크라이나 자본가들도 막대한 대출을 받았는데, 많은 경우 국가가 그 부채에 대한 공적 보증을 떠맡았다. 놀랍지 않게도, 자본가들은 부채를 상환할 수 없었을 뿐더러 대부분 갚으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사회노동연구소는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우크라이나 국가회계원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외국계 대부업체로부터 대출받은 기업 중 수수료를 제대로 지불한 기업은 15% 미만이며, 이들 중 약 3분의 1은 받은 대출금을 갚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이 부채의 압도적인 부분이 우크라이나 기업들이 해외에서 수입한 상품에 대한 지불 채무라는 것은 흥미롭다. 따라서 국가 예산은 국내 생산을 발전시키는 것을 돕는 대신에 외국 제조업자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것으로 끝나버렸다."[74]
 
1990년대 말 우크라이나 국가는 공적 보증 대출의 (이자 포함) 상환 비용이 국가 전체 부채 상환액의 31%로까지 증가하는 기괴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75]
 
당연히, 정부는 누적된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2000년에 IMF에 대한 지급액만으로도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의 모든 통화 보유액을 초과했다. 2000년의 대외 공채 총 지급액은 37억 흐리우냐 [1흐리우냐 = 35]에 도달하여 전년도의 두 배로 뛰었다.[76]
 
2000년대 들어 경제가 몇 년간 성장기를 겪으면서 상황이 개선되었다. 이러한 성장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우크라이나 기업들이 수출하는 원자재에 유리했던 당시 세계시장 동향 때문이었다. 그 결과,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007년에 최저 12%로 떨어졌다.[77]
 
그러나 2008년 대공황이 시작되면서 부채 상황은 다시 급격히 악화되었다. 우크라이나의 자본가들은 외국 금융기관들로부터 계속해서 대출을 받았고, 그 결과 사기업 부문은 총 1,040억 달러의 대외부채 2009년에 달성한 GDP의 약 108% 에 직면했다. 그리고 그 금액 중 430억 달러는 2009년 상환 예정인 단기 부채였다.[78] 설상가상으로 우크라이나 국가 부채도 2013730억 달러로 정점을 찍으며 빠르게 증가했다.[79]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상황이 왔다. 2013년 경상수지 적자는 GDP9.2%에 달했고, 외화보유액은 두달치 수입액을 조금 넘는 액수가 다였다. 2014년 통합 예산 적자가 GDP10%를 초과했다. 그 결과 흐리우냐는 대폭 평가절하 되었다.[80]
 
2016년에 정점을 찍은 후, 부채 상황은 일시적인 경기상승을 배경으로 다소 개선되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부채는 20222월 전쟁 시작 전 몇 년 동안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해왔다. 2020년 중앙정부 부채가 (201671.8%로 정점을 찍은 뒤) 58.7%였다.[81]
 
IMF 자료에 따르면 국민총소득(GNI) 대비 대외부채 잔액은 56.9%(2007)에서 78.8%(2013), 123.2%(2016)로 증가했으며 2020년에는 82.7%를 기록했다. (아래 표5 참조)
 
5. 우크라이나 대외부채 잔액, 2007-2020(GNI 대비) [82]
2007년   2013년  2016년   2020
 56.9%    78.8%   123.2%   82.7%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수출 소득의 상당 부분 5분의 1 또는 5분의 2 을 외채 상환에 사용해야 했다. (아래 표 6 참조)
 
6. 우크라이나 총부채상환액 (상품·서비스 수출 및 1차 소득수지 대비), 2007-2020 [83]

2007년   2013년   2016년   2020
18.5%      42.3%    20.9%    23.8%
 
우크라이나가 외채의 덫에 걸리면서 전쟁과 파괴의 현 조건에서 상황은 더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제국주의 열강과 금융기관에 대한 부채가 대대적으로 증가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84] 주빌리 부채 캠페인 (Jubilee Debt Campaign)의 하이디 차우 사무총장은 위험한 상황이라며, 자본가들이 채권 만기 전에 현금화 하려고 하는 수익이 어느 정도인지 지적하고 있다. "침공 이후, 2015년 채무 재조정의 일환으로 발행된 우크라이나 달러 표시 채권은 달러당 25센트 수준에 거래되고 있다. 이는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지만 우크라이나가 채무 상환을 계속할 경우 서방 은행과 헤지펀드가 300%의 수익을 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85]
 
이 수치들은 외채 사업이 제국주의 독점체들에게는 매우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지만 그들에게 초과이윤 지불의 짐을 져야 하는 반식민지 나라의 인민에게는 매우 불리한 것임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4) 외국인투자: 우크라이나에 대한 제국주의 약탈
 
앞 장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제국주의 자본은 자본수출을 통해 가난한 나라로부터 추가 이윤을 얻으려고 시도한다. 차관·대출로 화폐 자본을 수출하는 것도 그러한 형태 중 하나지만, 외국인투자는 반식민지로부터 잉여가치를 전유하는 또 다른 중요한 방법이다.
 
한편으로는 거대한 노동력 저수지 및 이 노동력 착취를 위한 값싼 비용을, 다른 한편으론 본국에서 이윤율의 저하 경향을 고려할 때, 제국주의 독점체들은 이 가난한 나라들에 자본을 수출하려는 강한 동기를 가진다. 독점자본한테 이 해외시장이 국내시장을 대체하는 것은 아니며, 그러한 대체물이 될 수도 없다. 그러나 해외시장은, 이 나라들의 평균 이윤율이 더 높다는 점을 고려할 때 가능한 추가 이윤의 중요한 원천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한 자본수출은 독점체들이 현대 기계와 기술을 훨씬 더 값싼 노동력과 결합할 수 있게 해준다. 이런 식으로 독점체들은 그들의 상품에 대한 비용 가격, 즉 상품 원가를 낮춘다. 독점체들이 그들의 상품을 판매할 때 시장 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반식민지 시장과 제국주의 시장 모두에서 그렇다. 반식민지 시장에서는 이 독첨체들이 반식민지의 경쟁 자본가들에 비해 더 현대적인 기계를 사용하여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더 효과적이고 더 생산성 높은 방식으로 상품을 생산하도록 했기 때문에 시장 가격 이하로 판매할 수 있다. 제국주의 시장에서는 이 독점체들이 제국주의 시장의 다른 경쟁자들이 지불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적은 액수의 임금을 반식민지 노동자들에게 지불하면 됐기 때문에 시장 가격보다 싸게 판매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독점체들은 평균을 훨씬 웃도는 추가 이윤을 내고, 이 추가 이윤의 일부는 반식민지 나라들에 재투자될 수도 있지만 많은 부분이 제국주의 나라의 오너들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1990년대에 첫 번째 시기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직접투자 형태로의 외국인 자본수출은 상대적으로 낮았다. (앞 장에서 보았듯이, 외국으로부터의 차관·대출에 비해). 1998년 말, 우크라이나의 1인당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는 헝가리의 1,745달러, 체코의 822달러, 폴란드의 595달러, 러시아의 102달러와 비교하여 49달러에 지나지 않았다. 1999년 초, 누적 외국인직접투자(FDI)243천만 달러 수준으로 몰도바,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공화국과 같은 작은 나라들보다도 훨씬 더 낮았다.[86]
 
그럼에도 외국 자본가들의 우크라이나 경제 진출은 그 중요성이 더해간다. 아래 표 7에서 보듯이 우크라이나 은행 중 외국 자본가들이 투자한 은행들의 비율이 점점 늘어갔다.
 
7. 우크라이나의 전체 은행 수와 소유권, 1991-2000 [87]
                           1992년  1994  1996  1998   2000
전체 은행 수           133개     228   229    214    195
외국자본투자 은행     -          12     14       28     31
 
2000년대 동안, 특히 2004년 소위 오렌지 혁명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가속화되었다. FDI 유입은 2000년과 2008년 사이에 가중 평균 43.9% 증가했는데, 이는 유럽에서 가장 빠른 증가율이다.[88] 2012년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FDI 유입은 GDP4% 이상을 점했다.[89]
 
그 결과 우크라이나 은행에서 외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413%에서 200950% 이상으로 증가했다.[90] 마르코 보즈쿤은 다음과 같이 전한다. "20094월 기준으로 가장 큰 10개 은행 중 7개 은행의 자산 대부분이 외국인 소유였다. 한편 우크라이나 국영 은행들은 우크라이나 은행 자산의 8분의 1 미만을 보유했다. 이러한 상황은 호황기에 국립은행이 통화 정책을 시행하는 것을 점점 더 어렵게 만들었다. 그리고 민간 부문이 외국 채권자들에게 1,000억 달러 이상의 빚을 지고 있었던 파산 당시에 이들 민간 은행들은 IMF로부터 160억 달러의 대출을 받아 자신들을 구제하고 자신들의 부실 채권을 공공 부채로 전환하도록 정부를 압박했다."[91]
 
2008-09년 공황의 여파로 일부 외국 은행들이 우크라이나 시장을 떠나거나 사업을 축소했다. 그리하여 외국인이 보유한 은행 자본의 전체 비중은 감소했지만, 2014년에도 34%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아래 표 8 참조) [92]
 
8. 은행부문 소유구조, 2008-14 [93]
                                          20082010 2012  2014
내국 국영은행                        11%     14%  17%   22%
내국 민간은행                         40%     44%  54%   47%
외국 민간은행 (러시아 은행 포함) 42%    33% 21%   21%
러시아 국영은행                        7%      8%  8%   10.3%
 
동유럽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우크라이나는 가장 큰 기업들 사이에서 외국 자본의 비중이 낮다. 예를 들어 2014년 폴란드의 170개 대기업 중 90(53%)가 외국인 소유로 누적 매출액의 43%를 차지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 최대 기업 32개 중 7(22%)만 외국인 소유로 누적 매출액의 13%를 차지했다. (아래 표 9 참조).[94]
 
그럼에도 외국 자본가들이 우크라이나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지 않았다. 2016년에 발표한 OECD 연구는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소유 기업들은 우크라이나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2012, 유럽연합의 다국적기업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약 20만 명의 직원을 고용했고, 미국의 다국적기업들은 약 26,000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외국인 소유 기업들이 모바일 전화를 지배하고 있다. 모바일 사업자들이 현재 전국에 3G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외국인 소유 기업들은 또 농업 기업, 소비재, 은행 및 소매 유통 부문에서도 두드러진 역할을 한다. 아르셀로미탈 [룩셈부르크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세계 최대 철강기업]은 우크라이나에서 가장 큰 통합 철강 회사 중 하나를 소유하고 있다."[95]
 
9. 매출액 기준 우크라이나 최대 기업들의 소유권, 2012-14 [96]
                           매출액 (전체 비중)
                2012년       2013년           2014
민간기업 59,679(53%)  63,714(54%)   42,612(55%)
국영기업 37,059(33%)  32,399(28%)   25,504(33%)
외국기업 15,356(14%)  21,274(18%)    9,870(13%)
총         112,095       117,386          77,985
 
우크라이나의 침체된 자본축적 수준을 고려할 때, 외국인 투자 비중은 상당히 큰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연간 FDI 유입은 2006년 이래 우크라이나 연간 총고정자본형성의 20%를 넘는 수준이었다. 2011년에 발표한 OECD 연구에 따르면, 이 비율은 "러시아 (15%)를 포함하여 개도국 및 과도국 경제의 평균 (200814%)보다 높은 것이다."[97]
 
대부분의 FDI 유입은 금융부문, 광업 및 금속, 통신, 건설 자재, 식품 가공 등에서의 인수합병 (M&A) 자금으로 들어갔다. 아래 표 102005-2015년 기간 동안 가장 큰 15건의 인수합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보다시피 여기서 러시아 기업들이 큰 역할을 했고 이 인수합병의 절반에 관여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유럽연합 나라들이 우크라이나 FDI의 주요 공급원으로 전체 FDI 잔액의 75% 이상을 차지한다.[98]
 
10. 우크라이나의 주요 외국인 인수합병 거래, 2005-2015 [99]
연도     부문      투자자            국적      가치 (백만 달러)
2005년 철강    아르셀로미탈     룩셈부르크       4,800
2005년 은행  라이피젠인터내셔널 오스트리아     1,028
2005년 은행     BNP파리바            프랑스          465
2005년 텔레콤    빔펠콤     러시아/네덜란드         280
2006년 은행  크레이아그리콜    프랑스              262
2006년 은행   OTP뱅크             헝가리              821
2007년 농식품   펩시코               미국               542
2007/08년 철광석  에브라즈       러시아             2663
2008년 은행  유니크레디트      이탈리아            2076
2008년 은행  개인투자자          러시아               350
2008년 은행  인테사산파올로    이탈리아            730
2010년 통신  빔펠콤        러시아/네덜란드         5515
2010년 에너지  TNK-BP       러시아/영국            313
2011년 철강  메첼                 러시아                537
2014년 은행  알파뱅크           러시아                276
 
우리가 다른 문서들에서 지적했듯이, 비록 궁극적으로는 외국 열강 및 독점체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지만 해외에 적지 않은 규모의 투자를 하는 내국 기업들을 가진 선진 반식민지 나라들이 존재한다.[100] 우크라이나에는 확실히 그런 내국 기업들이 없다. 일부 우크라이나 올리가르히는 모종의 "외국인투자"를 할 수 있지만, 보통 이것은 국외로 돈을 밀반출 하는 형태다. FDI 유출입 및 FDI 잔액에 대한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최신 수치를 보면, 우크라이나 자본가들에 의한 외국인투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외국인투자에 비해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아래 표 11 12 참조)
 
11. FDI 유출입 우크라이나, 2016-2021(백만 달러) [101]
                    FDI 유입 
20162017  2018   2019   2020   2021 
4055   3727   4732   6017   36   6549 
                    FDI 유출
2016년  2017  2018  2019  2020  2021
100       281  -127   842     22   -198
 
12. FDI 잔액 우크라이나, 2000-2021(백만 달러) [102]
    FDI 유입 잔액 
2000년   2010    2021 
3,875   52,872   62,131
   FDI 유출 잔액
2000년   2010   2021
 170     6,548   -295
 
전체적으로 볼 때 외국 자본 서유럽과 러시아 은 우크라이나의 경제에서 강력한 역할을 해왔으며 우크라이나의 값싼 노동 비용으로부터 득을 봤다. 외국 자본은 은행 부문뿐만 아니라 몇몇 생산 부문들에서도 상당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 자본가들의 국외 실제 투자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제국주의 독점체들이 우크라이나로부터 잉여가치를 전유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시 한 번 우크라이나의 반식민지 지위를 확인시켜준다.
 
5) 이주: 우크라이나가 값싼 노동력을 공급하다
 
자본주의 반식민지로서의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은 값싼 이주 노동력 공급자로서의 역할이다. 우리가 여러 문서들을 통해 상세히 설명했듯이, 언제나 이주는 제국주의 독점 자본에 의한 반식민지 초과착취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러나 이 요인은 1970년대 초 자본주의 공황기 시작 이후로 그 중요성이 더해 가다가 세계화의 개시와 함께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게 되었다.[103]
 
기본적으로, 독점자본이 반식민지 세계로부터 추가 이윤을 뽑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주를 활용한 추가 이윤 전유도 있다. 제국주의 자본은 이주 노동자들에게 그들의 노동력 가치 이하로 지불함으로써 이윤을 얻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방식이 있다.
 
i) 이주자들은 보통 그들 본국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자본가들은 전혀 교육을 위한 비용을 들이지 않고, 또는 제한적인 비용만으로 이주자들을 착취할 수 있다. 소련의 맑스주의 경제학자 아이작 루빈이 지적했듯이, 한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직접적으로 들어가는 노동 생산물뿐만 아니라 해당 직종 노동자의 훈련에 필요한 노동 생산물도포함된다.[104] 따라서 자본가는 상품 가치 일부를 비용 없이 전유하고 있는 것이다.
 
ii) 이주자들은 연금과 사회보장 등 사회복지에 대한 접근권이 제한되어 있고, 노령화되면 많은 경우 본국으로 돌아가므로 자본가들은 이러한 사회복지 비용을 아예 지불하지 않거나 또는 조금만 지불해도 된다.
 
iii) 자본가들은 보통 자국, 즉 지배국 출신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상당히 낮은 임금을 이주자들에게 지불한다. 민족 억압을 핵심 특징으로 하는 이주자의 사회적 지위 때문에 자본가들은 (내국인에 비해) 더 값싼 노동력으로 이주자를 착취할 수 있다. 이는 이주자가 제국주의 나라에서 시민권이 없을 경우 각종 권리의 결여로 인해 더더욱 그러하다. 이주자들의 모국어가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고 그리하여 제국주의 사회에서 그들의 일자리와 학교와 그 밖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매우 불리한 지위로 인해 또한 그러하다. 이주자는 또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차별을 통해 억압 받고 있다. 이러한 형태의 억압은 1세대 이주자뿐만 아니라 2세대와 3세대 이주자에게도 해당된다.
 
역사적으로 우크라이나는 19세기 이래로 대규모 집단 이주 (디아스포라)가 있었다. 이러한 대량 이주의 주요 원인은 러시아 제국과 합스부르크 제국에서 우크라이나 인민이 겪은 열악한 생활 조건과 민족 억압 때문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대()러시아 배외주의는 푸틴의 발명품이 아니라 차르 제국에 역사적 뿌리를 두고 있다.[105] 이미 18세기 후반, 예카테리나 2세는 뱌젬스키 대공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스로를 러시아인과는 전혀 다른 민족이라고 여기는데 이런 불경한 생각은 근절해야 한다. 소러시아 [우크라이나를 지칭], 리보니아, 핀란드는 그들에게 굳어진 권한으로 통치하고 있는 지방들이다. 그들 모두를 한꺼번에 침해하는 것은 안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외국이라고 부르고 그러한 기준으로 그들을 대우하는 것은 단순한 어리석음 그 이상이다. 이들 지방과 함께 스몰렌스크 지방도 쉽게 단계적으로 러시아화 되어 늑대처럼 숲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106]
 
그러한 러시아화 정책 (그리고 한편으로 합스부르크 제국에서의 차별)에 직면하여, 많은 사람들이 당시 고향을 떠나 사회적 처지 개선을 희망하며 다른 나라들에 정착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1991년 독립 전에 당시 우크라이나 강역을 떠난 최대 2천만 명에 이르는 우크라이나인 디아스포라가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자료들이 있다.[107] 1991년에서 2014년 사이에 4백만에서 7백만 명의 또 다른 이민자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났다. 국제 이주에 대한 한 유엔 보고서는 2019년에 5-6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이 국외에서 이주자로 살고 있다고 추산한다.[108]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푸틴의 침략이 시작된 이후 우크라이나 이주민 수는 급격히 증가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참조).
 
많은 우크라이나 이주자들이 이주자 일반이 그렇듯이 값싼 노동인력으로 주재국에서 일한다. "값싼"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이주자들이 그들의 노동력 가치 이하로 지불 받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러한 우크라이나 이주자들 중에 첨단 기술을 가진 정보통신 노동자들도 일부 있을 수 있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한 미국 싱크탱크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2021년 우크라이나의 정보통신 노동자 수는 285000명으로 5년 전의 2배 수준이었다.[109] 현 전쟁의 파괴적 상황을 고려할 때, 서방 제국주의 독점체들이 이러한 이주 노동자들을 신규 노동인력으로 대거 모집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미 전쟁 시작 이전에 우크라이나 이주자들이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는 큰 액수의 송금액에도 그러한 거대한 이주 규모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송금이 2020년 우크라이나 GDP10% 가까이를 점했다![110]
 
끝으로, 우크라이나에도 많은 이주자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유엔은 그들의 수를 약 5백만으로 추정한다. 모두는 아니지만 많은 이주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유럽연합으로의 이주를 위한 통과 국가로 보고 있다.[111] 이들 이주자의 대부분 330만 명 이 러시아연방을 떠나온 사람들이고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푸틴 정권에 의해 끔찍한 박해를 당한 체첸 인민을 비롯한 그 밖의 카프카스 인민이다), 그 다음으로는 벨로루시인 25만 명, 카자흐스탄인 226천명이 있다.[112]
 
 
  5. 우크라이나: 동서 강대국들 사이에서 찢겨진 종속국
 
우리는 앞 장들에서 우크라이나가 지난 30년 동안 어떻게 자본주의 반식민지가 되었는지, 그 주요 특징들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이제 수년간 이 나라의 정치적·경제적 사태발전의 틀을 주조해온 온 특수한 그리고 매우 중요한 특징을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반식민지는 형식상 독립 국가라는 점에서 식민지와 구별된다. 이것의 결과 중 하나가 그러한 반식민지는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에 종속되는 경우뿐만 아니라 둘 또는 그 이상의 제국주의 국가들에 종속되는 경우들도 많다는 사실이다. 우크라이나도 이런 경우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경우 이러한 종속이 특이한 형태를 취했다.
 
그 이유는 우크라이나가 한편으로 EU와 미국, 다른 한편으로 러시아 등 가속화하는 상호 대립·충돌 속에 꽂혀 있는 강대국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열강은 과거에 다양한 사안들에서 협력했지만, 결코 장기적인 동맹 (예를 들어, 70년 이상 나토를 비롯한 그 밖의 동맹체의 일원인 미국·서유럽과는 달리)에 기반을 두고 통합된 적이 없다. 나아가 러시아와 서방 열강 간의 관계는 2014년 이후 악화되어 20222월 이래 냉전으로 전화되었다.
 
앞 장에서 우리는 우크라이나 경제에서 제국주의 독점체들의 중요한 비중과 역할 무역, 외국인투자, 차관·대출 등의 측면에서 을 보여주었다. 여기서는 서유럽·미국 기업과 러시아 기업 각각의 비중과 역할을 보다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경제는 1991년 이전에는 러시아와 밀접하게 통합되어 있었지만,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후에는 이 관계가 변화했다. 1990년대에 러시아와의 무역 비중은 약 80%에서 55%로 감소했다. 중유럽 국가들과의 무역도 20%에서 10%로 동시에 감소한 반면, EU 회원국들과의 무역은 약 6%에서 20%로 증가했다.[113]
 
이후 몇 년, EU의 비중은 더욱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러시아가 에너지 수입뿐만 아니라 수출 목적지로서도 중요한 무역 파트너로 남아 있었다. (아래 표 13 참조)
 
13. 목적지별 우크라이나 수출 비중 (%) [114]
         1995년  2000   2005  2010-11  2012-13  2015
러시아 43%      24      22      22          26        13
EU     20%       29      27      22         24         34
 
그러나 옛 소련 국가들 이른바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 전체적으로 보면 지난 10년간 이들 나라들이 여전히 중요한 수출 목적지였음을 알 수 있다. OECD는 몇 년 전 발표한 우크라이나 경제 관련 연구보고에서 다음과 같이 평했다. "전통적인 독립국가연합(CIS) 수출이 최근 몇 년간 눈에 띄게 감소했고 EU2015년 수출 세입의 3분의 1 이상을 점했다. 그러나 현재 진행 중인 분쟁에도 불구하고 2015년 우크라이나 수출에서 러시아 연방이 13%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튀르키예(7.3%), 중화인민공화국(6.3%), 이집트(5.5%), 이탈리아(5.2%)가 그 뒤를 이었다. 수입은 주로 EU(201541%)CIS 국가(28%)에서 온다."[115] (아래 그림 3 참조).
 
그림 3. 우크라이나 수출 추이, 1996-2015 [116]

2014/15년 돈바스 전쟁 이후 푸틴 정권이 우크라이나에 무역과 여행 제한을 가하면서 동측 시장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에 대한 접근이 더욱 어려워졌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의 이들 국가에 대한 기계제조 제품 수출은 2013년에서 2018년 사이에 5144천 달러나 급감했다. 우크라이나가 다른 나라 (EU, 중국, 미국)로 그러한 제품 수출을 늘릴 수는 있지만, 이것으로 동측 시장의 큰 손실 (+86300만 달러)을 메울 수는 없었다.[117]
 
외국인투자에서도 비슷한 그림을 볼 수 있다. 유럽과 러시아 기업 모두 우크라이나 경제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마르코 보즈쿤은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반면에 러시아 민간 투자자들은 생산적 부문에서 서방 투자자들보다 유리한 출발을 했다. 2008년까지 그들은 이미 비철금속, 석유 정제, 석유 화학, 이동 통신 분야에서 관제고지를 차지했고 철강과 유제품 산업에서 강력한 입지를 다졌다. 공황으로 러시아 투자자들이 새로운 자산을 사들일 수 있게 됐다. 러시아 국영은행 브네세코놈뱅크는 2008년 말 경영난에 봉착한 프롬인베스트뱅크의 지분 75%를 인수했다. 그리고 20101월 브네세코놈뱅크는 철강 생산업체 돈바스 공업연합의 과반수 소유권을 차지하기 위한 러시아 민간 투자자들의 성공적인 입찰을 지지했다."[118]
 
동시에 유럽 자본가들은 은행 부문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2008년까지 EU 6개 회원국의 은행들이 은행 자본의 30%를 보유한 반면 러시아에 본사를 둔 금융기관들은 10%를 보유했다.[119] 2008년 공황 이후 유럽의 점유율은 다소 하락한 반면 러시아 자본의 점유율은 12%로 상승했다. 동시에 다른 6%는 러시아 자본수출 목적지로 잘 알려진 키프로스가 형식적인 발원지로 되어 있어 키프로스 외국인투자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가 발원지일 공산이 매우 컸다.[120] 2014년까지 총 은행 자산에서 비러시아계 외국 은행의 비중은 20%를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감소한 반면 러시아계 은행의 비중은 16%로 증가했다.[121]
 
러시아 기업과 유럽 기업의 그러한 강력한 경제적 지위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동반한 것은 그리 놀랄 것이 없다. 푸틴 정권은 200011월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분에 대한 우크라이나 국가부채를 이용하여 우크라이나 정부가 지분 인수 거래에 동의하도록 했다. 마르코 보즈쿤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이 인수 거래는 러시아 기업들이 중유럽과 서유럽으로 가는 우크라이나 가스 수송 파이프라인의 통제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한편, 다른 러시아 기업들은 우크라이나의 주요 기업들에 대한 큰 지분 내지는 지배지분을 거머쥐고 있었다. 아브토자즈는 자포리즈히아 알루미늄 공장을 사들였고, 루코일은 오데사 정유공장을 매입하여 칼루시 정유공장과 합작회사를 설립했으며 우크라이나 주유소 100곳을 매입할 계획이었다. 튜멘 석유회사는 리시찬스크 정유공장과 TV방송국을 사들였고, 금속 대기업 러시아알루미늄은 미콜라이프알루미늄 공단을 인수했고, 메탈러시아는 도네츠크 금속 공단에 투자했으며, 얼라이언스그룹과 알파나프타와 타트나프타는 각각 헤르손, 나드비마, 크레멘추크 정유공장 민영화에 참여하고 있다."[122]
 
20104월에 비슷한 거래가 체결되었는데 이름하여 하르키우 협약이다. 이 조약은 가스를 보다 싸게 공급해주는 대가로 러시아 해군에 세바스토폴 항구와 그 밖의 크림반도 항구들의 임대를 2042년까지 연장하는 내용의 거래였다. 같은 해 6, 우크라이나 의회는 나토 가입 목표를 국가안보전략에서 제외했고, 그리하여 비동맹국 지위를 복원했다. 나아가 야누코비치 정부는 가스, 방산, 항공우주, 항공 산업에서 양국 간 보다 긴밀한 협력을 추진하는 협상에 동의했다.[123]
 
마찬가지로 서방 열강들도 우크라이나를 통제 하에 두기 위해 영향력을 사용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주민 사이에 거의 지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2008년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2012년에는 EU와 협상을 시작하여 2014년에 "EU-우크라이나 연합 협정"을 체결했다. 실제로, EU와의 연합 문제는 야누코비치 정부 타도를 내건 우익 마이단 운동의 핵심 슬로건이었다. 당시 야누코비치 정부는 EU와의 협상을 취소하고 러시아 주도의 연합체 이후 유라시아경제연합으로 불리게 되는 연합체 와 협정을 모색하고 있었다.
 
러시아와 EU (및 미국) 양측의 이러한 시도는 2014년 이래로 우크라이나에 파멸적인 사태발전에서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2014년 이래의 충돌로 최소 10,000명이 사망하고 23,500명이 부상을 입었다. 약 백만 명이 국내 난민이 되었다.
 
친러 세력이 2014년 돈바스 지역의 상당 부분을 장악하여 이 지역 자원 통제권을 푸틴 정권에게 사실상 넘겨줬다. 이때부터 도네츠크의 산업 생산능력의 약 78%, 루한스크의 약 84%가 정부 통제 지역 밖에 있게 됐다.[124]
 
요약하자면, 우크라이나는 수년 이래로 계속 가속화하고 있는 분쟁 속에 있는 강대국들 사이에서 찢겨진 반식민지 나라다. 이들 열강 주로 러시아와 EU (+미국) 은 최대한 우크라이나의 자원을 착취하고 동시에 우크라이나를 자신의 세력권 아래에 두기 위한 제국주의 상호 패권쟁투를 벌이다 마침내 푸틴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까지 온 것이다.
 
 
  6. 20222월 이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식민지화 몰이와 나토의 영향력 확대 시도
 
2022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은 새로운 상황을 열었다.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예속시켜 식민지로 전화시키려는 직접적인 시도다. 이 침략 전쟁이 주민을 야만적인 민족 억압의 위험에 나서서 저항하도록 결집시킨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귀결이다. 전쟁 시작 전에는 우크라이나 동부 주민들 사이에 러시아 친화적인 부분이 존재했지만 (그러나 그 부분은 이 지역 내에서도 소수자였고, 결코 푸틴주의자들이 즐겨 주장하는 바와 같은 심각한 민족 억압을 맞고 있지도 않았다[125]), 상황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오늘, 우크라이나 인민은 그들의 나라가 러시아 제국주의의 식민지가 되는 것을 막기로 결심했다.
 
여기서는 우리가 이미 많은 문서를 통해 제시해온 전쟁에 대한 평가분석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우크라이나의 향후 전망에서 전쟁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를 요약 제시하는 데 국한할 것이다. 이 장에서는 모든 종류의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해 이리저리 추측하는 식의 무익한 시도는 지양하고, 우리가 볼 때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강력하게 영향을 미칠 몇 가지 기본적인 발전 방향을 개괄해보고자 한다.
 
우리가 이미 최근에 낸 두 기사에서 지적했듯이, 현 전쟁이 우크라이나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을 급격히 악화시켰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126] 우리는 미래 전망이 불확실한, 현재 진행 중인 전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므로 구체적인 예측을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우크라이나가 사회 전체의 파멸로 이어질 위기 사태에 직면해 있다고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세계은행(World Bank)의 계산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경제는 2022년에 약 35% 축소됐다. 나라의 기반시설이 계속되는 러시아 미사일 및 드론 공격으로 많은 부분 파괴되었다. 정확한 피해 규모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거대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근 나온 평가에 따르면 교량 305, 공항 19, 철도역 57, 도로 24000를 포함하여 주택 40%, 발전소 30%, 기반시설 33%가 피해를 입었다. 이에 더해 러시아가 4,000개의 통신국, 6만 킬로미터의 인터넷 회선, 18개의 텔레비전·라디오 방송 안테나를 탈취 또는 파괴했다.[127]
 
당초 세계은행은 우크라이나의 회복과 재건을 위해서는 전쟁 전 경제 규모의 1.5배가 넘는 수준인 최소 349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안나 비에르데 세계은행 부총재는 최근 오스트리아 신문 디 프레세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평가를 업데이트하며 5,250억 달러에서 6,300억 달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다.[128] 또 다른 연구보고서들은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을 1조 달러까지 추정한다!
 
자연히 이런 대규모 파괴는 재앙적인 사회적 결과를 낳는다. 세계은행의 추산에 따르면, 극단적 빈곤에 처한 우크라이나인 수가 2023년 말까지 인구의 약 50%에 도달할 것이다! 나아가 우크라이나 국립은행은 20222분기에 실업률이 35%에 달했다고 보고했다.
 
우리가 이미 앞 장에서 논의했듯이, 1991년에서 2020년 기간에 5-6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라를 떠났다. 현 전쟁은 이 숫자를 극적으로 증가시켰다. 최신 수치에 따르면, 인구의 3분의 120222월 이래로 난민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내에 650만 명, 다른 유럽 나라들에 약 800만 명의 우크라이나 난민이 있다. 파괴적인 전쟁이 계속된다면 이 수치는 더 증가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인민에게 당장의 위험은 러시아 제국주의에 의한 잔학한 점령과 식민지화 위협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지만, 서방 제국주의에 의한 위험을 무시하기란 불가능하다. 나토 국가들의 재정적·군사적 원조는 우크라이나를 종속국으로 만드는 수단이다. 우크라이나가 가능한 모든 곳에서 무기를 얻으려고 하는 것을 비판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미국·유럽 제국주의가 그들의 영향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어떠한 형태의 원조도 이용하려고 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여기서 그들의 시종 부르주아 젤렌스키 정부가 내부에서 그들에게 조력하고 있다.
 
외채는 확실히 우크라이나의 예속을 심화시키기 위한 서방 제국주의의 핵심 도구 중 하나다. 현재 우크라이나 부채의 정확한 수치는 분명하지 않지만, GDP 대비 외채 비율이 풍선처럼 부풀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경제의 광범위한 파괴를 고려할 때, 전쟁이 곧 끝나더라도 우크라이나가 제국주의 금융기관에 부채를 상환할 위치에 있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제국주의 "우방들"은 그러한 상황을 냉혹하게 이용하여 지분 인수 거래를 제안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푸틴이 2000년과 2010년에 우크라이나에 강요한 것과 비슷하게 우크라이나 경제의 가장 값나가는 부문들의 소유권을 넘겨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미 미국의 몇몇 싱크탱크들은 우크라이나의 어려운 상황을 어떻게 서방 독점체들에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을지 플랜을 짜기 시작했다. 20231, 영향력 있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키이우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신자유주의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며 그에 대한 일련의 권고안을 포함하는 연구보고서를 냈다.
 
CSIS 연구보고서의 주요 제안 중에는 아직 남아 있는 국유은행을 마저 민영화 (사유화)하라는 권고안이 있다. "우크라이나 은행들이 국제금융기구(IFI)의 지원을 얻고 국가 차원의 일반적 책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는 은행권의 더 많은 민영화에 힘써야 한다. 2020년 상위 5개 대형 은행 중 4개 은행이 국유였다.... 이들 은행은 우크라이나 은행권 전체 자산의 54%를 점했다."[129] “부패를 줄이고 경제의 전반적인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OECD 원칙에 맞춰 계속해서 국유기업 민영화와 구조조정에 집중해야 한다. 이 단계는 2021년에 통과된 산업 민영화를 허용하는 법을 전면 시행하는 것을 포함한다. 우크라이나는 이 위험 부문 [은행 부문]에 대한 정부의 노출을 줄이고, 부실 대출을 최소화하여 기업이 다시 시작하고 성장할 수 있는 유동성을 늘리는 방향으로 은행 부문의 자본 재편을 가능케 하기 위해 은행 산업의 지속적인 민영화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권으로부터 악성 부채를 제거하고 부채 해결, 재구성을 위한 "배드뱅크"[부실채권전담은행]를 설립해야 할 것이다."[130]
 
이 미국 싱크탱크가 서방 기업들에게 매우 가치 있다고 여기는 두 번째 부문은 토지다. 위에서 지적했듯이 우크라이나는 중요한 농업 생산국으로 농산물 수출이 중요한 수입원이 됐다. 그리하여 CSIS는 민영화 과정에 더욱 속도를 낼 것, 그리고 이 부문에 대한 외국인투자의 법적 가능성을 열어줄 것을 제안한다.
 
"토지 개혁은 우크라이나와 그 투자 파트너들이 농업 부문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주의를 집중해야 할 분야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 농지의 약 27%는 소유권이 분명치 않다. 전쟁 전에는 이 농지에 대한 명확한 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지만,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노력은 중단되었다. 20203, 우크라이나는 농지 매각 유예를 해제하고 이 시장에 대한 새로운 규제를 만드는 법을 채택했다. 농지 시장을 1990년대 초에 처음 사유화된 2,800만 헥타르 토지로 제한하고 있는 새로운 법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소유의 농지는 매각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법에 따라 토지 매입은 100 헥타르로 제한되며, 20241월까지는 개인에 한해 매입이 가능하다. 이후 합법적으로 등록된 우크라이나 기업은 최대 1만 헥타르의 토지를 매입할 수 있지만 외국인에 대한 매각은 여전히 금지돼 있다.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세계은행은 토지 개혁이 농업 부문에 최대 50억 달러의 신규 투자를 유치할 수 있을 것으로 추산한다."[131]
 
CSIS 연구보고서의 저자들은 서방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직접 책임져야 한다는 또 다른 미국 싱크탱크 저먼마샬펀드(GMF) 의 아이디어를 소개한다. (“재건을 책임진다는 것은 사실상 우크라이나 경제를 장악한다는 의미다). GMF는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미국의 힘과 위신을 이용해 세계적인 재건 동맹이 이루어지도록 보장하기 위해 제1대 재건 기획조정자는 세계적인 위상을 가진 미국인이어야 한다.... 후속 조정자는 장기적인 프로세스에 대한 EU의 책임이 커지는 것을 반영하여 유럽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132]
 
이러한 미국인 "재건 기획조정자""바르샤바에 본부를 둔 G7/EU 공동 사무국을 통해 재건 노력을 지휘감독 해야 한다."[133] 나아가 이들 서방 제국주의 전략가들은 필요한 개혁이 시행된 후 우크라이나는 "10-15년의 시한" 내에 유럽연합의 정식 회원국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134]
 
우리는 가능한 미래 시나리오에 대한 몇 마디로 이 장을 마무리할 것이다. 첫째, 러시아가 대부분 적대적인 주민을 상대로 잔인한 무력을 사용함으로써만 이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모스크바가 우크라이나 내에서 도움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구 돈바스 "인민공화국들"의 마름들과 같은 소규모 세력뿐이다. 러시아는 2001년과 2003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식민지 사업들을 벌였을 때와 마찬가지로 우크라이나 점령 통치에 대한 현지의 지지를 전혀 확보하지 못할 것이다. 러시아군의 승리라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시나리오가 발생하더라도 점령군은 즉시 대규모 게릴라전에 직면할 것이다. 이미 이에 대해서는 점령군이 얼마 전 도네츠크, 루한스크, 자포리자, 헤르손 등의 점령지에서 쓴맛을 본 바 있다.
 
또 다른 가능한 시나리오는 전쟁이 교착 상태로 끝나서 나라가 남북한처럼 두 지역으로 분단되는 경우다. 이 경우에서도 위와 같은 게릴라전 시나리오를 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동부 지역에 국한된 게릴라전이겠지만 말이다.
 
이러한 분단의 경우, 나토군이 우크라이나 서부 지역에 주둔할 가능성도 있다.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서방 열강을 러시아 침략자에 대항하는 동맹으로 (그릇되게) 보고 있어 이 군대가 처음에는 러시아 군대와 같은 정도의 대중적 적대에 안 부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나토 지상군 수용 입장은, 이러한 군대가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는 것을 대신해서 젤렌스키 (또는 다른 꼭두각시) 서방 마름 정부 보호를 위한 군대로 봉사할 경우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우크라이나 인민이 살아야 할 극심한 빈곤 상황을 고려할 때, 그리고 미국·EU 제국주의가 우크라이나의 가장 값나가는 생산물을 전유하려 할 것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매우 현실적인 시나리오다. 인민대중이 키이우의 친서방 정부에 반기를 들어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침략자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면, 노동자들이 그러한 승리를 노동자독자 세력화로 옮겨놓을 수 있는지, 즉 올리가르히와 외국 독점체를 몰수·수탈하고 노동자 자신의 정부를 세우는 이러한 자신의 무기를 사용할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전망을 제창하고, 내외 자본가들과 정치가들이 인민의 승리의 과실을 훔치려 할 때 대중이 소모전에 지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힘 쓸 것이다.
 
이로부터 이 주제에 대한 마지막 관측으로 넘어가자. 전쟁이 지속되는 한 서방 열강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재건하겠다는 그 어떤 노력도 환상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비록 어느 시점에 휴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해도, 상황은 매우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것은 1995년 나토와 EU 군이 보스니아 인민에 대한 세르비아 밀로셰비치 정권의 반동 전쟁을 중단하도록 강제할 수 있었던 데이튼 협정 이후의 보스니아가 아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 정치적·군사적 불안정이 예측 가능한 미래에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상황에서 서방 기업들이 실적적인 투자를 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일각에서는 남한이 북한과의 냉전 상황에도 불구하고 경제 기적을 이룬 것과 같은 것을 우크라이나가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품는다.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첫째,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과 스탈린주의 국가들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냉전 체제를 수립할 수 있었다. 현 시기 동서 제국주의 열강 간의 패권경쟁은 훨씬 더 위태롭고 폭발적일 가능성이 높다.
 
둘째, 순진하게 우크라이나의 "한국식 미래"를 바라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태발전의 경로·과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한국은 1940년대 말 미군정 이후로 1990년대 초까지 군사독재로서, 모든 형태의 대중 시위와 항쟁이 잔인하게 진압되었고 대중은 수십 년 동안 빈곤 속에서 살았다. 오랜 기간이 지나 1970년대에 와서 비로소 대규모 서방 투자와 그로부터의 공업화가 (“한국식 미래를 바라는 순진한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종의 생활수준 향상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135]
 
 
  7. 전진하는 길: 민족해방에서 사회혁명으로
 
우리는 이 팜플렛에서 1991년 스탈린주의 붕괴 이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EU,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이 초과착취하고 지배하는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 제국주의 나라들의 독점체들은 우크라이나판 매판 부르주아지라고 할 수 있는 부패한 올리가르히 (과두재벌)의 도움으로 우크라이나를 약탈했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는 빈곤해졌고, 러시아와의 군사적 충돌이 시작되기 훨씬 전에 이미 인구가 감소했다. 우크라이나는 국제 금융기관에 많은 부채를 지고 있고 외국 기업들에게 경제를 개방하도록 강요되어 왔다. 1980년대 말까지 상당히 발달한 제조업 기반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경과하면서 크게 축소되었다. 그로 인해 우크라이나는 자본주의 세계시장을 위한 반식민지 원료 공급자가 되었다. 또 수백만 명의 우크라이나인들이 나라를 떠나 국외에서 값싼 이주 노동인력으로 일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이러한 반식민지적 기형화와 종속이 시작된 것은 우크라이나가 형식적으로 독립국이 된 직후부터였다. 2014년 이래 사태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시에 푸틴의 침공으로 상황이 더욱 악화된 것은 분명하다. 푸틴은 반식민지 우크라이나를 러시아 제국주의의 완전한 식민지로 전화시키겠다고 위협한다.
 
푸틴의 침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을 방어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서방 제국주의 열강의 간섭 일체에 반대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최우선 임무다.
 
첫 장에서 말했듯이 맑스주의 제국주의 이론과 이 이론에 의한 국가 간 관계에 대한 분석 없이는 격동의 세계정세에서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레닌이 그의 <<철학 노트>>에서 지적했듯이, 범주가 없는 과학은 없다. “개념 (인식)은 존재의 (직접적 현상의) 본질 (인과 법칙, 동일성, 차이 등)을 드러낸다. 그러한 것이 모든 인간 인식 (모든 과학) 일반의 일반적 경로다.”[136]
 
RCIT는 계급투쟁에서 그리고 이 계급투쟁의 일부인 민족해방 전쟁에서 올바른 입장을 취하기 위해, 관련 제 세력의 계급적 성격에 대한 과학적 평가분석이 필수임을 항상 강조해왔다. 여기서 우리는 레닌과 트로츠키가 국가의 계급적 성격을 인식하는 것의 중요성을 주장하며 정립한 맑스주의 접근법을 따른다.
 
"노동자들에게 제국주의 국가인지, 식민지 국가인지, 노동자 국가인지, 국가의 계급적 성격 및 이 국가들 간의 상호 관계, 그리고 그들 각개의 내적 모순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세에서 올바른 실천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해준다."[137]
 
지금까지의 우크라이나 반식민지 사회성격에 대한 평가 분석에 입각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사회주의자의 관점을 요약 정리하는 것으로 이 팜플렛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1. 첫째, 우크라이나 인민은 어떠한 수단으로든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싸우는 것이 옳다. 제국주의 점령과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전쟁은 정의의 투쟁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정의의 투쟁이다. 우리는 가능한 모든 곳에서 무기를 얻으려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노력을 지지한다.
 
2. 우크라이나 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의 최우선 임무다.
 
3. 우크라이나의 노동자·피억압자는 부르주아 젤렌스키 정부도, 나토 제국주의도 일체 신뢰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피억압자는 자신의 통제 하에 민족해방 투쟁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독자적인 민중 평의회와 민병을 창설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4. 우크라이나의 사회주의자들은 서방 열강에 의한 모든 형태의 간섭과 직간접적 지배에 반대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EU나 나토 가입으로 가는 어떠한 발걸음에도 반대해야 한다. 또 사회주의자들은 정부에 모든 외채 무효화를 요구해야 한다.
 
5. 전 세계의 사회주의자들, 특히 서방 나라들의 사회주의자들은 우크라이나의 모든 외채 무효화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 필요하다. 사회주의자들은 또 나토와 EU 확대에 반대해야 한다.
 
6. 러시아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 KPRF(러연방공산당)RKRP(러시아 공산주의노동자당) 등 사회애국주의자들과는 달리 국 정부의 패배와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승리를 위해 노력한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러시아의 진짜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모든 대중시위를 계속 지지할 것이며, 이 시위를 푸틴 정권에 대한 인민 반란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7. 마찬가지로 전 세계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의 반전 운동과 특히 반제국주의 사회주의자들을 지지해야 한다.
 
8. 우크라이나에서의 전략적 목표는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는 투쟁과, 젤렌스키 정부 및 나토의 우크라이나 간접 지배에 대항하는 독립적 노동자 투쟁을 결합하는 것이다. , 사회주의자들은 민족해방 투쟁을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그리고 서방 열강과는 독립적인 인민 전쟁으로 전화할 것을 제창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에서 사회혁명과 노동자·민중 정부 수립을 제창해야 한다.
 
9. 그러한 노동자·민중 정부는 모든 점령군이 축출될 때까지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싸울 것이다. 동시에, 서방 열강의 간섭에 반대할 것이다. 노동자·민중 정부는 올리가르히와 외국 독점체들을 몰수·수탈할 것이다. 민주적으로 계획된 경제가 전쟁과 나라의 생존 (및 이후의 재건)을 위해 모든 자원을 동원할 수 있도록 노동자 통제 하에 공업, 서비스, 금융, 농업 등 기간산업 핵심 부문들을 국유화할 것이다. 점령군과 올리가르히 없는 독립·사회주의 우크라이나의 깃발을 들어 올릴 것이다!
 
10. 나아가 그러한 노동자·민중 정부는 다른 나라의 노동자·피억압자의 투쟁을 지지할 것이다. 러시아 내 체첸인, 시리아 인민, 영국과 프랑스의 파업 노동자들, 페루의 민중 등, 자신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이들 대중이 바로 우크라이나 대중의 자연스런 동맹군이다. 나토 수장들과 서방 자본가들, 언제나 그들은 자신의 권력과 이윤에만 관심을 가질 것이다.
 
잃을 것이라곤 자신을 묶고 있는 사슬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우크라이나와 전 세계의 대중들이여!
 
우크라이나를 방어하자! 푸틴의 침략을 패퇴시키자!

우크라이나 외채의 무효화!

점령군과 올리가르히 없는 독립·사회주의 우크라이나 쟁취!

러시아 제국주의와 서방 제국주의 모두에 맞서자! 국제 사회주의세계프롤레타리아혁명 만세!
 
-----------------------------------------------------------
[1] 이에 대해서는 우리 웹사이트에 있는 다양한 보고를 보라. https://www.thecommunists.net/rcit/international-workers-aid/. 다음 국제노동자원조캠페인 웹사이트도 보라. www.workers-aid.net. 다음도 보라. An Inspiring Internationalist Rally against Russian Imperialism. Syrian, Chechen and Ukrainian migrants as well as “Russians against War” jointly demonstrate against the Putin regime, 25 September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rcit/internationalist-rally-against-russian-imperialism-25-9-2022/
 
[2] 우크라이나 전쟁과 현 나토-러시아 분쟁에 대한 160여 편의 문서가 다음 RCIT 웹사이트 특별 페이지에 수록 정리되어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compilation-of-documents-on-nato-russia-conflict/. 특히 다음 문서를 보라. < [RCIT 선언]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전환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 202231, https://blog.wrpkorea.org/2022/05/rcit.html.
 
[3] 예를 들어 2015년 이래 시리아에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Defend the Syrian Revolution against Russian Imperialism! Stop the US, UK and French Air Strikes! Smash the Assad Dictatorship! 9.10.2015, https://rcitarchive.wordpress.com/worldwide/africa-and-middle-east/defend-syria-against-russia/; Rally on the 11th Anniversary of the Syrian Revolution 2011, 20 March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rcit/rally-on-11th-anniversary-of-syrian-revolution-20-3-2022/. RCIT는 시리아 혁명에 관한 다수의 책자와 논설, 성명을 발표했다. 다음 웹사이트 특별 하위 페이지에서 이 문서들을 볼 수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llection-of-articles-on-the-syrian-revolution/
 
[4] 다음을 보라. RCIT: Solidarity with the Liberation Struggle of the Chechen People! Open Letter to the Oppressed Chechen People, February 2018,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europe/solidarity-with-the-liberation-struggle-of-the-chechen-people/; Where does the RCIT Stand on Russia's Occupation of Chechnya?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russia-and-chechnya/; Chechnya: Rally against the Murder of Mamikhan Umarov by the Russian Security Service, 7 July 2020,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europe/chechnya-rally-against-the-murder-of-mamikhan-umarov-by-the-russian-security-service/
 
[5] RCIT는 러시아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제국주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Peculiar Features of Russian Imperialism. A Study of Russia’s Monopolies, Capital Export and Super-Exploitation in the Light of Marxist Theory, 10 August 2021,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peculiar-features-of-russian-imperialism/; 노동자혁명당(),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202110,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Michael Pröbsting: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d the Rise of Russia as a Great Power. On the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of Today’s Inter-Imperialist Rivalry in the Light of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other Reply to Our Critics Who Deny Russia’s Imperialist Character, August 2014,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m-theory-and-russia/; Russia as a Great Imperialist Power. The formation of Russian Monopoly Capital and its Empire A Reply to our Critics, 18 March 2014, in: Revolutionary Communism No. 21,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t-russia/; Russian Imperialism and Its Monopolies, in: New Politics Vol. XVIII No. 4, Whole Number 72, Winter 2022, https://newpol.org/issue_post/russian-imperialism-and-its-monopolies/ (이 논문은 다음 잡지에도 실렸다. International Viewpoint, 21. April 2022, https://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7618); Once Again on Russian Imperialism (Reply to Critics). A rebuttal of a theory which claims that Russia is not an imperialist state but would be rather “comparable to Brazil and Iran”, 30 March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once-again-on-russian-imperialism-reply-to-critics/. 이 문제에 관한 여러 다른 RCIT 문서들이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별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6] 우리의 다음 책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같은 저자의 다음 팜플렛들도 보라. <푸틴의 푸들들 - 현 나토-러시아 분쟁에서 친러 스탈린주의 당들>, 202229,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7.html; <두 주인을 섬기는 시종 - 스탈린주의와 제국주의 신냉전>, 2021710,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24.html; <제국주의 간 냉전은 어떻게 바이든 하에서도 계속되고 있나>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10.html.
 
[7] 제국주의 이론과 그것이 21세기 자본주의 분석에서 갖는 적실성을 다룬 우리의 다음 두 저작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Great Robbery of the South. Continuity and Changes in the Super-Exploitation of the Semi-Colonial World by Monopoly Capital Consequences for the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2013,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great-robbery-of-the-south/ (이후 주에서는 모두 “Pröbsting, 2013”으로 줄여서 표기함);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반식민지 나라들에 대한 사례 연구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Greece: A Modern Semi-Colony. The Contradictory Development of Greek Capitalism, Its Failed Attempts to Become a Minor Imperialist Power, and Its Present Situation as an Advanced Semi-Colonial Country with Some Specific Features, RCIT Books, Vienna 2015,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greece-semi-colony/; Is Türkiye a (Sub-)Imperialist Power? The economic, political and military features of the Turkish state, its class character and the programmatic consequences for socialists. A contribution to an ongoing debate amongst Marxists, 25 September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is-tuerkiye-a-sub-imperialist-power/; Is India a New Emerging Great Power? in: Critique: Journal of Socialist Theory, Volume 48, Issue 1, 2020 https://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03017605.2019.1706783; The China-India Conflict: Its Causes and Consequences, Chapter V, August 2017,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india-rivalry/
 
[8] 제국주의에 대한 레닌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는 다음을 보라.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내의 분열>, 레닌전집 64(“맑시즘의 희화외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양효식 옮김, 아고라;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레닌전집 63, 이정인 옮김, 아고라.
 
[9] 레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자결권>, 레닌전집 60(“사회주의와 전쟁”), 양효식 옮김, 아고라, 244-5.
 
[10] V. I. Lenin: Conspectus of Hegel’s Science of Logic (1914); in: Collected Works Vol. 38, p. 220
 
[11] Karl Marx: Capital, Vol. III, MECW Vol. 37, p. 311
 
[12] 트로츠키의 다음 언급을 보라. “단연 인류의 대부분을 포괄하는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은 따라서 후진국들은 유목생활부터, 심지어는 식인풍습부터 가장 현대적인 산업 문화에 이르기까지의 역사 사다리를 이룰 만큼 후진성의 정도에서 서로 간에 현저하게 다르다. 이런저런 식으로 양극단의 조합이 모든 후진국의 특성을 이룬다. 그러나 후진성의 위계는 이러한 표현을 쓸 수 있다면 각개의 식민지 나라의 삶에서 야만 요소와 문화 요소의 구체적인 비중에 의해 결정된다. 적도 아프리카는 알제리보다, 파라과이는 멕시코보다, 아비시니아는 인도나 중국보다 훨씬 뒤쳐져 있다. 제국주의 중심부에 대한 공통의 경제적 종속과 함께 그들의 정치적 종속은, 어떤 경우에는 공공연한 식민지 노예제의 성격을 띠고 있는 반면 (인도, 적도 아프리카), 다른 경우에는 이 종속이 국가 독립의 허구에 의해 은폐된다 (중국, 라틴아메리카).” (Leon Trotsky: Introduction, in: 해럴드 로버트 아이작이 쓴 <<중국 혁명의 비극 (정원섭, 김명환 공역, 숨쉬는책공장)>> [1938]에 붙인 트로츠키의 서문, http://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8/xx/china.htm)
 
[13] Pröbsting, 2013, p. 228
 
[14] V.I. Lenin: Conspectus of Hegel’s Lectures on the History of Philosophy; in: LCW 38, p. 256
 
[15] 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The Science of Logic, (Translated by A.V. Miller), Humanity Books, New York 1969, p. 826
 
[16] 다음을 보라. Joseph Stalin: The October Revolution and the Tactics of the Russian Communists (1924), in: J. V. Stalin Works, Vol. 6,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Moscow 1953, pp. 374-420; “일국 사회주의론에 대한 비판으로는, 다음을 보라. 트로츠키, <<레닌 이후의 제3인터내셔널>>, 정민규 옮김, 풀무질; 다음도 보라. Michael Pröbsting: Capitalism Today and the Law of Uneven Development: The Marxist Tradition and its Application in the Present Historic Period, in: Critique: Journal of Socialist Theory, Vol. 44, Issue 4, 2016, http://www.tandfonline.com/doi/full/10.1080/03017605.2016.1236483
 
[17] 트로츠키, <<영구혁명 및 평가와 전망>>, 정성진 옮김, 신평론,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1/tpr/pr-index.htm
 
[18] 스탈린주의 독재에 대한 우리의 분석 및 비판으로는, 우리의 전임 조직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연맹이 발행한 다음 책을 보라. The Degenerated Revolution: The Origin and Nature of the Stalinist States,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stalinism-and-the-degeneration-of-the-revolution/; 다음 책의 II장도 보라. Michael Pröbsting: Cuba’s Revolution Sold Out? The Road from Revolution to the Restoration of Capitalism, RCIT Books, Vienna 2013,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uba-s-revolution-sold-out/
 
[19] 다음을 보라. 트로츠키, <<배반당한 혁명>>, 김성훈 옮김, 갈무리,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6/revbet/index.htm
 
[20] 이 과정에 대한 우리의 평가분석으로는, 우리의 전임 조직의 다음 문서들을 보라. Theses on Gorbachev, adopted by the MRCI conference, July 1987,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archive-documents-from-the-lrci-and-lfi/#anker_30; LRCI: The Failed Coup in the USSR (August 1991),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archive-documents-from-the-lrci-and-lfi/#anker_5
 
[21] Hans Van Zon, Andre Batako, Anna Kreslavska: Social and Economic Change in Eastern Ukraine. The example of Zaporizhzhya, published in 1998, reissued 2018 by Routledge, New York 2018, p. 164 (이후 주에서는 “Zon”으로 줄여서 표기함).
 
[22] UNIDO: Ukraine,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Decent Work and Economic Growth, 2019, p. 8 (henceforth referred to as “UNIDO”)
 
[23] Anastasia Nesvetailova: From ‘Transition’ to Dependent Development: The New Periphery in Global Financial Capitalism, in: Neil Robinson (Ed.): Reforging the Weakest Link. Global Political Economy and Post-Soviet Change in Russia, Ukraine and Belarus, Routledge, New York 2019, p. 147
 
[24] 다음도 보라. Oleksandr Petryk: History of Monetary Development in Ukraine, Bank i Kredyt Nr. 8, 2006, p. 12
 
[25] 1999년 수치는 다음에서 따온 것이다. Marek Dabrowski and Malgorzata Jakubiak: The Sources of Economic Growth in Ukraine after 1998 Currency Crisis and the Country’s Prospects, Center for Social and Economic Research, CASE Reports No. 55, Warsaw 2003, p. 9; 2006년 수치는 다음에서 따온 것이다. Vasily Astrov and Peter Havlik: Economic Developments in the Wider Black Sea Region, in: Daniel Hamilton and Gerhard Mangott (Eds.): The Wider Black Sea Region in the 21st Century: Strategic, Economic and Energy Perspectives, Center for Transatlantic Relations, Washington, D.C. 2008), p. 123; 2013년 및 2018년 수치는 다음에서 따온 것이다. UNIDO, p. 9
 
[26] Robert S. Kravchuk: Ukrainian Political Economy. The First Ten Years, Palgrave Macmillan, New York 2002, p. 14 (이후 주에서는 “Kravchuk”로 줄여서 표기함).
 
[27] Nadia Lisovskaya: Merchandise Foreign Trade in Russia, Ukraine and Belarus, in: Neil Robinson (Ed.): Reforging the Weakest Link. Global Political Economy and Post-Soviet Change in Russia, Ukraine and Belarus, Routledge, New York 2019, p. 86 (이후 주에서는 “Lisovskaya”로 줄여서 표기함 ).
 
[28] 공식 경제 통계에서는 공업 부문에 제조업 외에도 건설, 광업, 전기, 석유, 가스 등도 포함하고 있다.
 
[29] World Bank: World Development Indicators, 2021, Data are from Excel file, https://databank.worldbank.org/source/world-development-indicators
 
[30] Kravchuk, p. 27
 
[31] Marko Bojcun: Towards a Political Economy of Ukraine. Selected Essays 19902015, ibidem-Verlag, Stuttgart 2020, p. 158 (이후 주에서는 “Bojcun, 2020”으로 줄여서 표기함).
 
[32] OECD: OECD Investment Policy Reviews: Ukraine 2016, OECD Publishing, Paris 2016, http://dx.doi.org/10.1787/9789264257368-en, p. 37 (이후 주에서는“OECD 2016”으로 줄여서 표기함).
 
[33] Andriy Hladun, Vitaliy Dudin, Oksana Dutchak, Oleksandr Kravchuk, Mykhaylo Neboha, Oleksandr Odosiy, Zakhar Popovych: Alternative Mechanisms for the Socio-Economic Development of Ukraine,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Kyiv 2016, p. 57 (이후 주에서는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로 줄여서 표기함).
 
[34] Zon, pp. 126-132
 
[35] World Bank: Life expectancy at birth, total (years) Ukraine,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P.DYN.LE00.IN?locations=UA
 
[36] World Bank: Death rate, crude (per 1,000 people) Ukraine,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P.DYN.CDRT.IN?locations=UA
 
[37] World Bank: Fertility rate, total (births per woman) Ukraine,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SP.DYN.TFRT.IN?locations=UA
 
[38] John P Ruehl: How many Ukrainian refugees will return home? January 14, 2023 https://asiatimes.com/2023/01/how-many-ukrainian-refugees-will-return-home/
 
[39] OECD: Maintaining the Momentum of Decentralisation in Ukraine, OECD Multi-level Governance Studies, OECD Publishing, Paris 2018, http://dx.doi.org/10.1787/9789264301436-en, p. 50 (이후 주에서는 “OECD 2018”로 줄여서 표기함).
 
[40] Kravchuk, p. 22
 
[41] Kravchuk, pp. 23-24
 
[42] Conor M. Savoy, Janina Staguhn: Enabling an Economic Transformation of Ukraine Recovery, Reconstruction, and Modernization,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 January 2023, A Report of the CSIS Ukraine Economic Reconstruction Commission, p. 13 (이후 주에서는 “CSIS”로 줄여서 표기함).
 
[43] CSIS, p. 13
 
[44] Kravchuk, p. 27
 
[45]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113
 
[46] 우리는 이 문제를 여러 저작을 통해 다룬 바 있다. 상기한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중 다음 두 장을 보라. “자본수출과 라운드트리핑 해외직접투자 문제“’유령 FDI’: 러시아 특유의 현상이 아니라 글로벌 현상”,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47]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132
 
[48] Oleh Havrylyshyn: The Political Economy of Independent Ukraine. Slow Starts, False Starts, and a Last Chance? Palgrave Macmillan, London 2017, pp. 214-215 (이후 주에서는 “Havrylyshyn”으로 줄여서 표기함).
 
[49] Havrylyshyn, p. 238
 
[50] Marko Bojcun: Trade, Investment and Debt: Ukraine’s Integration into World Markets, in: Neil Robinson (Ed.): Reforging the Weakest Link. Global Political Economy and Post-Soviet Change in Russia, Ukraine and Belarus, Routledge, New York 2019, p. 53 (이후 주에서는 “Bojcun, 2019”로 줄여서 표기함); Kravchuk, p. 30
 
[51] Havrylyshyn, pp. 100-101
 
[52] Anton Oleinik: Building Ukraine From Within. A Sociological, Institutional, and Economic Analysis of a Nation-State in the Making, ibidem-Verlag, Stuttgart 2018, p. 340 (이후 주에서는 “Oleinik”로 줄여서 표기함).
 
[53] Lisovskaya, p. 86
 
[54] 같은 글, p. 88
 
[55] OECD 2018, p. 49; OECD 2016, http://dx.doi.org/10.1787/9789264257368-en, p. 34
 
[56] CSIS, p. 17
 
[57] OECD 2018, http://dx.doi.org/10.1787/9789264301436-en, p. 49
 
[58] 같은 글, p. 49
 
[59] Sławomir Matuszak: In search of new routes. Ukraine’s foreign trade after the Revolution of Dignity, Ośrodek Studiów Wschodnich im. Marka Karpia, Centre for Eastern Studies, OSW Studies Number 75, Warsaw 2018, p. 18
 
[60] David X. Noack: Hardliner, Neoliberale, Oligarchen: Der fragwürdige Erfolg der Ukraine, 2. January 2023, https://www.heise.de/tp/features/Hardliner-Neoliberale-Oligarchen-Der-fragwuerdige-Erfolg-der-Ukraine-7445797.html
 
[61]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72
 
[62] CSIS, p. 19
 
[63] UNIDO, p. 14
 
[64] Bojcun, 2020, p. 158
 
[65] Bojcun, 2020, p. 99
 
[66] Oleinik, pp. 344-345
 
[67]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71
 
[68]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68
 
[69] Havrylyshyn, pp. 242-243
 
[70] Pröbsting, 20136,7장 및 8장을 보라.
 
[71] Bojcun, 2020, p. 213
 
[72] Kravchuk, p. 33
 
[73] Bojcun, 2019, p. 56
 
[74]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12
 
[75] 같은 글
 
[76]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13
 
[77] Center for Social and Labor Research, p. 15
 
[78] Bojcun, 2020, p. 223
 
[79] Marko Bojcun: Origins of the Ukrainian Crisis, in: Critique, Vol. 43, Nos. 34, 2015, p. 404 (henceforth referred to as “Bojcun, 2015”)
 
[80] OECD 2016, p. 30
 
[81] Worldbank: Central Government Debt (1970-2020), Ukraine, 데이터는 다음 엑셀 파일에서 따온 것이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GC.DOD.TOTL.GD.ZS
 
[82] Worldbank: External Debt Stocks (% of GNI), Ukraine, 데이터는 다음 엑셀 파일에서 따온 것이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DT.DOD.DECT.GN.ZS
 
[83] Worldbank: External Debt Stocks (% of GNI), Ukraine, 데이터는 다음 엑셀 파일에서 따온 것이다. https://data.worldbank.org/indicator/DT.DOD.DECT.GN.ZS
 
[84]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제국주의 부채의 덫에 걸린 우크라이나 - 우크라이나 외채 무효화! 침략에 맞선 인민 전쟁으로 나아가자!>, 2022, 79, https://blog.wrpkorea.org/2022/07/blog-post_11.html
 
[85] Heidi Chow: It’s Time to Cancel Ukraine’s Foreign Debt, 06.04.2022, https://jacobin.com/2022/03/ukraine-foreign-debt-cancellation-imf-global-finance
 
[86] Kravchuk, p. 30
 
[87] Kravchuk, p. 257
 
[88] OECD: OECD Territorial Reviews: Ukraine 2013, OECD Publishing, 2014, http://dx.doi.org/10.1787/9789264204836-en, p. 34
 
[89] OECD 2016, p. 42
 
[90] Bojcun, 2020, p. 221
 
[91] Bojcun, 2020, p. 243
 
[92] Bojcun, 2015, pp. 403-404
 
[93] OECD 2016, p. 138
 
[94] OECD 2016, pp. 49-50
 
[95] OECD 2016, p. 18
 
[96] OECD 2016, p. 50
 
[97] OECD: Investment Policy Reviews: Ukraine 2011, OECD Investment Policy Reviews, OECD Publishing 2011, http://dx.doi.org/9789264113503-en, p. 19
 
[98] OECD 2016, p. 17
 
[99] OECD 2016, p. 48
 
[100] 반식민지 문제와 관련하여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 튀르키예, 인도에 관한 우리의 책자들을 보라.
 
[101]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22, p. 210
 
[102] 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22, p. 214
 
[103] 상기한 우리의 책 <<남반구에 대한 대 강탈>>에서의 광범위에 걸친 분석 이외에 이주자 초과착취에 대한 다음의 우리 책자도 보라. Michael Pröbsting: Marxismus, Migration und revolutionäre Integration (2010); in: Revolutionärer Kommunismus, Nr. 7, http://www.thecommunists.net/publications/werk-7. 같은 저자의 다음 글도 보라. Migration and Super-exploitation: Marxist Theory and the Role of Migration in the present Period of Capitalist Decay, Critique: Journal of Socialist Theory, Vol. 43, No 3-4 (2015), http://www.tandfonline.com/doi/abs/10.1080/03017605.2015.1099846
 
[104] I. I. Rubin: Essays on Marx’s Theory of Value (1928), Black Rose Books, Montreal 1990, p. 165
 
[105] 푸틴과 반우크라이나 배외주의에 대해서는 상기한 프뢰브스팅, <푸틴의 푸들들>을 보라.
 
[106] 다음에서 인용. Konstantyn Kononenko: Ukraine and Russia. A History of the Economic Relations Between Ukraine and Russia (1654-1917), The Marquette University Press, Milwaukee 1958, p. 32
 
[107] Iryna Lapshyna: Ukraine Emigration and Displacement in Past and Present, 08.07.2022, Bundeszentrale für politische Bildung, https://www.bpb.de/themen/migration-integration/laenderprofile/english-version-country-profiles/510002/ukraine-emigration-and-displacement-in-past-and-present/ (이후 주에서는 “Lapshyna”로 줄여서 표기함).
 
[108] UN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World Migration Report 2020, p. 26 and 281
 
[109] CSIS, p. 19
 
[110] Paul J. J. Welfens: Russia’s Invasion of Ukraine. Economic Challenges, Embargo Issues, and a New Global Economic Order, European Institute for International Economic Relations, Palgrave Macmillan, Cham 2022, https://doi.org/10.1007/978-3-031-19138-1_13, p. 247
 
[111] UN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World Migration Report 2020, p. 88
 
[112] Lapshyna
 
[113] Bojcun, 2020, p. 158
 
[114] Havrylyshyn, p. 239
 
[115] OECD 2018, p. 48
 
[116] OECD 2018, http://dx.doi.org/10.1787/9789264301436-en, p. 49
 
[117] UNIDO, p. 15
 
[118] Bojcun, 2020, p. 246
 
[119] Bojcun, 2015, p. 403
 
[120] Bojcun, 2015, pp. 403-404
 
[121] OECD 2016, p. 49
 
[122] Bojcun, 2019, pp. 54-55
 
[123] Bojcun, 2015, p. 405
 
[124] OECD 2018, http://dx.doi.org/10.1787/9789264301436-en, p. 61
 
[12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테제, <“돈바스 자결”: 러시아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반동 슬로건 - 왜 이 슬로건이 맑스주의 민족자결 강령에 반하는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민의 현 민족해방투쟁의 이익에도 반하는지, 그 역사적·이론적·정치적 이유에 대하여>, 2022627, https://blog.wrpkorea.org/2022/07/blog-post.html.
 
[126] 다음을 보라. 상기한 프뢰브스팅, <제국주의 부채의 덫에 걸린 우크라이나>; 같은 저자, The Gigantic Destruction of the Ukrainian Society, 12 December 2022, https://links.org.au/gigantic-destruction-ukrainian-society. 이 장에서의 모든 수치는, 다른 언급이 없는 한 이 두 글에서 따온 것이다. 이 두 글에서 독자들은 이러한 정보에 대한 출처도 볼 수 있다.
 
[127] CSIS, p. 14 and 19
 
[128] Jakob Zirm: Ukraine: "Die Entwicklung von 15 Jahren ist ausgelöscht", Die Presse, 03.12.2022, https://www.diepresse.com/6223189/ukraine-die-entwicklung-von-15-jahren-ist-ausgeloescht
 
[129] CSIS, p. 15
 
[130] CSIS, p. 27
 
[131] CSIS, p. 17
 
[132] Ronja Ganster, Jacob Kirkegaard, Thomas Kleine-Brockhoff, and Bruce Stoke: Designing Ukraine’s Recovery in the Spirit of the Marshall Plan, German Marshall Fund of the United States, September 2022, p. 17
 
[133] CSIS, p. 26
 
[134] CSIS, p. 25
 
[13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South Korea as an Imperialist Power. On the nature of South Korean monopoly capital and the ensuing programmatic tasks of the workers vanguard, December 2019,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study-on-south-korea-as-an-imperialist-power/; 노동자혁명당() 팜플렛, <<남한 제국주의와 사회주의 노동운동의 임무>> 자료; 제국주의 열강으로서의 남한”, https://blog.wrpkorea.org/2023/03/pdf-rcit-2019-12-i.html.
 
[136] V.I.Lenin: Plan of Hegel’s Dialectics (Logic) (1914); in: Collected Works Vol. 38, p. 316
 
[137] Fourth International: Imperialist War and the Proletarian World Revolution; Manifesto adopted by the Emergency Conference of the Fourth International in May 1940;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Formative Years (1933-40), Pathfinder Press, New York 1973, p. 327; http://www.marxists.org/history/etol/document/fi/1938-1949/emergconf/fi-emerg02.htm.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