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 파일 내려받기
1) 자주파의 “다극화”론: 비(非)제국주의 세계질서?
미·중 대결에 대한 태도 문제와 함께 정세인식의 또 다른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다극 세계질서”론은 한편으로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 및 실천 상의 주요 문제들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무엇인지, 노동자계급 · 피억압인민의 오늘날 반제국주의 과제는 어떠한 내용으로 구성되는지 (또는 그러한 반제국주의 과제가 더 이상 있기나 한 것인지), 나아가 레닌 제국주의론을 비롯한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분석은 오늘날의 세계정세에, 21세기 글로벌 경제·정치 현실에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시대에 뒤져 낡았는지) 등의 문제들로까지 쟁점이 번지고 있다.
이러한 쟁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다극세계질서론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에서도 다양한 세력이 저마다의 내용을 채워 계급·계층 속에서 유포하고 있지만, 노동자들 속에서는 자주파가 이 담론을 가장 정력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자주파에 의하면, 다극 세계질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 같은 지배와 예속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평등과 호혜의 새로운 세계질서”다. 오늘의 세계가 기존 미국 ‘일극’의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이 같은 다극 비(非)제국주의 세계질서로 나아가는 전환기에 있다는 정세인식인 것이다. (서방 대 중러 대결 등 이른바 “진영 대결구도” 또는 “신냉전” 대결구도도 이러한 탈 제국주의 다극화 세계질서 전환의 한 부분이라고 규정한다.)
“다극화세계질서에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모든 예속국가들은 자국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선행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중남미 거의 전역에 진보적 자주정권이 들어서고, 중동의 친미국가들이 탈미화 하여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아프리카연합(AU)국가들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세계사적 대 변화다. 이들 나라 모두는 중러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고, 맺으려 하고 있다.
미국의 지배와 예속, 압박과 간섭에 시달리던 수많은 신흥국(global south)들이 이제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면서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들이 주역인 새로운 세계질서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2월 새로운 국제안보질서인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의 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6개 원칙에는 주권평등과 냉전적 사고, 일방주의, 패권주의 반대 등이 제시되었다. 이렇듯 평등과 호혜의 새로운 세계질서 건설에 한국, 일본, 유럽과 같은 예속국들은 참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다극화 세계질서는 패권이 아예 없어지고 오직 주권국가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자주의 신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질서 전환을 위한 투쟁은 인류의 자주적 염원에 부응하는, 더 이상 지배와 예속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인류사적 진보다.” (위 통일시대, 같은 글)
2) 반제국주의 임무를 대신하는 ‘탈미자주’의 대외정책 전환
중·러가 탈미자주의 다극화 세계질서를 여는 진보의 기수이므로 “중러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는” 것이 진보진영의 투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세계질서에서 중러는 비제국주의 진보 세력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이지만, 이 문제는 일단 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적으로 제기된 문제부터 이야기해보자. 자주파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의 기존 세계질서에서 “더 이상 지배와 예속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질서로 전환하는 투쟁을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는” 문제로 제기한다. 즉 중남미에서 새로 들어선 룰라 정권이나 중동에서 사우디·UAE처럼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그러한 대외정책 전환을 ‘세계질서 전환 투쟁’의 주요 기제로, 핵심 지렛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조차도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기보다는 실리외교 차원에서, 즉 기존 친미 중심 또는 친미 일변도에서 미중 간 등거리 외교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브라질 룰라 정권이나 사우디 정권 등이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은 ㅡ 즉 강대국 사이의 ‘중립’ 외교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은 ㅡ “미국 패권 몰락” 정세를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 그러한 정세가 낳은 효과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자주적 태도” 전환은 다극화를 밀어가는 동력이 아니라 미국 절대 패권의 종식으로 이미 다극화된 질서의 반영이다. 룰라의 중국·러시아 순방을 통한 ‘탈미’ 행보는 세계정치의 새로운 변동을 상징한다기보다 이미 진행된 주요 변동을 반영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십여 년래 미국의 절대 패권이 소멸되고 미 제국주의가 쇠퇴를 맞고 있는 한편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신흥 열강으로 떠올랐고, 특히 중국은 미중 대결 속에서 새로운 패권 도전자로 부상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최대 무역 파트너도 이미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의 금융자본/ 독점체들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주요 외국인투자자다. 룰라의 탈미 대외정책 전환은 미국이 자신의 “뒷마당”에 대해서도 장악력을 이미 잃고 있는 정세의 효과이자 반영인 것이다. 최근 아르헨티나가 브릭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국제 협력기구)에 정식 가입 신청을 한 것도 이러한 정세 발전의 또 다른 결과물이다. 이와 같이 미국의 절대 패권이 종식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주요 주자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이들 정권들의 탈미 대외정책 전환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무슨 “자주의 신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돌파 같은 것으로 성격 부여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평가거나 희망적 사고에 따른 평가에 불과하다.
그 보다 더 문제는 반제국주의 임무, 민족해방 과제의 철저한 실종이다. “세계질서가 근본에서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니 ”자주의 신시대“니 운운하면서 정작 제국주의-식민지 관계, 지배-예속 관계를 타도 청산하는 반제국주의 임무를 정권의 정책 문제로 축소, 왜곡하고 있다. 식민지·반식민지 피억압 인민의 민족해방 과제를 대외‘정책’ 전환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반식민지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해방 전쟁은 미제의 대리전쟁이라 비난하고, 패권 공백을 틈탄 브라질 룰라 정권의 미중 간 줄타기 실리외교는 자주의 신시대를 여는 세계질서 전환투쟁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자주파는 제국주의 타도 없이도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며 노동자들 속에서 “다극세계질서” 깃발을 흔들어댄다. 남반구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피억압 인민의 해방투쟁/ 민족해방혁명 없이도 정권들의 대외정책으로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올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속인다. 제국주의 금융자본에 의한 경제종속·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의 굴레를 깨부수고 떨쳐버리는 것 없이도 단지 대외정책 전환으로 “더 이상 지배와 예속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인류사적 진보”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올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속인다.
문제는 대외‘정책’이다! 문제는 제국주의 ‘체제’가 아니다! 제국주의 타도도 필요 없고, 민족해방혁명도 필요 없는 이러한 탈미 친중러 (또는 적어도 탈미 ‘중립’)의 대외정책 전환이 현 시기 세계 ‘진보’진영의 투쟁방향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억압 민족이든 피억압 민족이든 관계없이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 두루 ‘보편적인’ 자주와 주권의 문구들을 내세우는 것을 본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과는 달리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해왔다. 강대국/억압민족들이 약소국/피억압민족들을 금융자본의 종속 그물망에 얽어매고 민족억압의 굴레를 들씌우는 한, 다시 말해 강대국들이 해외투자/자본수출로 남반구 “제3세계” “개도국들”, 즉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차관으로 높은 이자를 거둬들이는 한, 그래서 이 낙후되고 가난한 약소국 인민들이 억압의 굴레에 속박되어 있는 한, 모든 민족의 자주와 주권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역겨운 위선일 뿐이라고 말이다.
레닌 <제국주의론> 당시에 카우츠키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단계’로 보길 거부하고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정의했다. 카우츠키가 제국주의 정치를 제국주의 경제로부터 분리시켜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을 흐리는 데 봉사한 것처럼 자주파는 대외정책을 경제종속·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의 현실로부터 떼어내서 제국주의 질서를 숨기는 데 봉사한다.
3) 다극 세계질서와 남한 국가: 자주파의 탈미친중 견인과 계급협조
이와 같이 자주파의 다극세계질서론은 현 세계질서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다. 자주파는 한국에 대해서도, “예속국”이므로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고 있는 다른 “수많은 신흥국들”과는 달리 이러한 평등과 호혜의 다극화세계질서 건설에 “참가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윤석열 정권은 한국의 젤렌스키로서 미국의 패권몰락을 저지하기 위해 북중과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국가들 상호간의 계급적 성격은 ㅡ 즉 자본주의 제국주의인가, 자본주의 반(半)식민지인가는 ㅡ 일차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자주파에게는 정권의 대외‘정책’에 의해 국가들의 성격과 지위가 규정된다. 그래서 자주파에게는 제국주의 국가인가, (반)식민지 국가인가가 아니라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인가, 아닌가가 기준선이다. 윤석열 정권의 ‘자주적이지 않은’ 대외정책 탓에, 정권의 “자해 외교” 탓에 한국은 “예속국”으로 다시 굴러 떨어졌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 대해 “친미자주 정권”으로서 “탈미자주”로까지 견인 가능한 정권이라며 자본가정부에 계급협조를 바쳤던 자주파다. 이제 윤석열 정권의 대외정책으로 인해 한국은 “예속국”으로 되돌아갔으므로 탈미자주의 다극화 세계질서 건설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이제 자본가정부에 대해서는 계급협조 대신 ‘정권 심판·퇴진’으로 맞서야 한다고 한다. (물론 자주파는 여기서도 ‘자본가정부 타도’에는 반대한다). 민주당에서 국힘으로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 간의 정권 교체로 남한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자주국에서 “예속국”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이제 윤석열 정권 심판·퇴진으로 다시 정권교체를 이루면 예속국에서 자주국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자주파는 그에 따라 다시 탈미 견인/ 자본가정부 지지 정책으로 복귀할 것이다. 자주파의 탈미 견인에 따라 남한 국가도 다시 자주국으로서 다극화 세계질서 건설에서 배제가 아니라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 열린다. 세계질서에서 남한 국가의 성격과 지위를 이와 같이 탈미 친중러로 (최소한 탈미 ‘중립’으로) 바꿔낼 수 있도록 정권교체를 이루고 대외정책 전환을 견인하는 것, 이것이 자주파가 제시하는 현 시기 노동운동의 투쟁방향이다.
지배계급 한 분파에 대항하여 다른 분파를 지지하고 계급협조를 바쳐온 자주파의 그 동안의 정책논리에서 볼 때 이 같은 친중러 계급협조 세계질서 구상은 전혀 놀랄 것이 없다. 강대국 한 진영에 대항하여 다른 한 진영을 지지하고 노동자들 속에서 이 강대국 진영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를 홍보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자주파가 그러한 계급협조 정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울 것이다. 자주파의 다극화 깃발은 이와 같이 국내·국제 계급협조 정책을 본질적 구성요소로 바탕에 깔고 있다.
자주파와는 달리 오늘 진실 된 사회주의자들은, 진실로 지속 가능한 정의롭고 민주적인 세계질서는 그 모든 현존 자본가정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를 타도하고 자본가계급을 수탈하기 시작하는 노동자정부들에 의해서만 구축될 수 있다는 명명백백한 진실을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진실로 지속 가능한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는 부르주아 정권교체와 대외정책 전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타도하고 그것을 사회주의 세계로 대체하는 노동자·피억압자의 해방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명명백백한 진실을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4) “다극화”론 = 강대국 패권경쟁 가속화/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간 모순 격화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자주파는 “세계질서가 근본에서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라고 서두에서 운을 떼더니 대격변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정세발전의 그림을 내놓고 있다. 해방투쟁과 사회혁명이 아니라 대외정책 전환으로 “패권이 아예 없어지는”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실천방향을 전제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파의 현 시기 정세인식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쇠퇴해가는 자본주의도, 그 속에서 격화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공황도, 그로 인한 혁명적·반혁명적 위기 정세도 모두 없다. 그리고 파이가 줄어드는 이 시기에 노획물 분배를 둘러싸고 가속화하는 강대국 패권경쟁 정세에 대해서도 ‘양비론’ 비판을 내세워 부정한다.
노동자들을 속이는 이러한 현실 호도의 정세인식과는 반대로 우리는 세계가 이제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 석기시대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절박하게 제기하고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다극화 시대가 아니라, “자주의 신시대”가 아니라 재앙 자본주의, 파국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강대국들 간의 모순이 계속 심화되고 패권경쟁이 가속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에 따라 모든 강대국은 반식민지 나라들을 자신의 배타적 지배하에 두면서 동시에 경쟁상대방 강대국과 대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더욱 더 추동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전 상태로 당장은 정리된다 하더라도 곧 러시아와 미국뿐만 아니라 서유럽 열강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남반구 나라에 대한 군사 개입을 감행할 필요를 점점 더 강하게 느낄 것이다.
군사 개입을 넘어 직접 침략 (이를테면 미국 (및 남한)의 북한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등)도 충분히 예측되는 정세다. 그와 함께 강대국 자신들 간의 긴장과 대결이 더욱 고조될 것이다. 유럽에서 서방 열강과 러시아 간의 전쟁이나 대만해협/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이, 나아가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일한 대 중러 간의 전쟁이 다음 몇 년에, 늦어도 10년 내에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그에 따라 3차 세계대전도 가능하다. 그 전에 지배계급을 타도하지 않는 한 말이다. 대외정책 전환을 통한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 (즉 전쟁몰이 세계질서 구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에 의해 지배계급을 타도하지 않는 한 말이다!
5) 제국주의 간 세력권 쟁탈전 고조와 함께 반식민지에 대한 공격·침탈도 고조되고 있다
말로는 ‘사회주의’되 행동으로는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제국주의자들과는 달리, 우리를 비롯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 입각해 중국·러시아는 반제 세력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임을 여러 문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해왔다. 중·러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약소국/약소민족들을 (자본수출/해외투자, 차관 등을 통해) 금융자본의 종속 그물망에 얽어매고 민족 억압의 굴레를 들씌우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국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단지 푸틴 정권의 침략적 대외'정책’ 때문에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제출한 우리의 팜플렛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을 보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해 (그리고 나토/서방에 대해서도)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혁명적 방위주의 입장을 취한 것은 단지 누가 침략을 했고 누가 침략을 당했는지 라는 기준에서 한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관련 제 세력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 전술은 일차적으로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인식에 기초한 각각의 사회구성체 평가분석 ㅡ 즉 제국주의 국가인지 반식민지 국가인지 ㅡ 으로부터 도출한 것이다. (우리의 팜플렛 <우크라이나 사회성격: 자본주의 반식민지 사회구성체>도 보라. https://blog.wrpkorea.org/2023/02/blog-post_22.html).
결국 전진 글의 “국가별 비중 비교”는 질적 차이, 사회구성체 차이는 무시하고 양적 발달 수준만 따지는 비교다. 그 때문에 인도나 사우디나 튀르키예가 러시아/독일/프랑스와 같은 반열의 “열강들”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다, 즉 모두 (글로벌 수준에서든, 지역 수준에서든 패권경쟁을 벌이는) 제국주의 열강들로 읽히는 비교 방식인 것이다.
이와 같이 전진의 새로운 세계질서는 여러 (제국주의) 열강들만 있고 식민지·반식민지는 없는 세계질서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 일상화”하지만,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나라 간의 충돌·전쟁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질서다. 그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라는 것도 세력권 쟁탈과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놓고 벌이는 충돌이 아니라, 순 지정학적 이해를 둘러싼 충돌로 제시되고 있다.
“제국주의”는 누구나 이야기한다. “미 제국주의” 또는 “서방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좌익 조직들 사이에는 흔한, 공통된 관행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국주의” 범주를 맑스주의 이론에서의 제국주의 의미로 사용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를 배제한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제국주의" 범주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인식의 확고한 옹호자이지 않고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일 수 없다고 본다. 레닌을 비롯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세계가 한줌의 제국주의 국가와 세계 인구 다수가 살고 있는 종속국 ㅡ 식민지·반식민지 나라 ㅡ 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해왔다.
“제국주의는 한줌의 강대국들에 의한 전 세계 민족들의 억압이 누적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맑스주의자들은 당시에 스스로를 이렇게 칭했다 – 인용자] 강령에서의 초점은, 모든 민족을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구분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에 바로 제국주의의 본질이 있는데,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카우츠키는 이것을 기만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 구분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시각에서나, 자본주의 하에서 독립 민족들 간의 평화적 경쟁이라는 속물적 유토피아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의미 없는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투쟁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극히 유의미한 것이다.” (레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자결권>)
그리하여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구별이 맑스주의 강령의 중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사회민주주의 강령은 이 소부르주아 기회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항하는 균형추로서 다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즉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제 민족이 나뉘어 있는 것은 제국주의 하에서는 기본적이고 중요하며 불가피하다는 전제 말이다.” (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2) 맑스주의 반식민지 규정
제국주의 세계체제에서 피억압 민족으로는 식민지만이 아니라 반(半)식민지 나라도 있다. 반식민지는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사실상 강대국에 종속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제국주의 독점체에 의해 초과착취 당하는 나라다. 오늘 “남반구”, “개도국”, “제3세계” 등으로 불리는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의 나라들 대부분이 그러한 반식민지다. 이러한 유형의 나라들은 최근 현상이 아니라 레닌 <제국주의론> 시절부터 존재했다. 1916년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에서 레닌은 “중국, 페르샤, 터키”를 그 같은 반식민지의 예로 들었다. 또 <<제국주의론>>에서는 이렇게 썼다.
“‘반식민지’ 국가에 대해 말하자면 이 나라들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형태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자본은 온갖 경제관계와 온갖 국제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큰, 결정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기 때문에,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누리고 있는 국가들까지 종속시키는 능력이 있고, 실제로도 종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곧 뒤에서 그 실례를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종속된 나라들에게서 민족의 정치적 독립까지 뺏는 종속 형태가 금융자본에게 가장 큰 ‘편리함’과 가장 큰 이윤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점에서 반식민지 나라들은 ‘중간 단계’의 전형적인 예다. 나머지 세계가 이미 분할돼버린 금융자본의 시대에 이들 반 종속 나라들을 전취하기 위한 투쟁이 특히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레닌, <제국주의론>)
이어서 레닌은 몇 쪽 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정책을 논함에 있어, 금융자본과 그에 조응하는 대외정책 ㅡ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의 경제적·정치적 세계분할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ㅡ 이 국가 종속의 일련의 과도적 형태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보유국과 식민지라는 이 두 개의 기본적인 국가집단들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금융상·외교상으로 종속의 그물에 얽매어 있는 각양각색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에 전형적이다. 이 형태들 중 하나인 반식민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했다. 또 다른 형태의 예로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제국주의론>)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식민 봉기 물결, 영국·프랑스 제국주의의 쇠퇴와 미국의 부상으로 대부분의 식민지들은 형식상 독립국이 됐고 자본주의 반식민지로 전화됐다. 하지만 자본주의 반식민지들은 기본적으로 여전히 금융적 예속·억압 하에 있다는, 제국주의 열강 및 독점체들에 종속, 착취 받고 있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분명히 했다.
반식민지도 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이라는 제국주의 지배-종속 관계의 본질에서 식민지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오류인데, 그 차이란 간단히 말해서 반식민지 나라들의 형식상 정치적 독립 및 이로부터 나오는 줄타기 여지, 즉 강대국들 사이에서 운신 폭을 더 높은 정도로 가진다는 차이다. 이는 미국·중국·EU·러시아·일본 등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기와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자주파가 호혜/평등/자주의 다극화에 힘을 실어주는 정권들이라고 지목한 브라질 룰라 정권과 사우디 정권이 오늘 그러한 예다. 또 전진이 러시아, 독일·프랑스와 함께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는 국가들로 꼽은 인도, 사우디, 튀르키예도 그러한 줄타기 수위를 높이고 있는 반식민지 부르주아지의 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반)식민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다는 규정은 언제나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의 근간이었다. 트로츠키가 쓴 제4인터내셔널 강령적 선언문에서는 계급적 성격이 서로 다른 나라들로 세계가 나뉘어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인지, 식민지 국가인지, 노동자 국가인지, 국가의 계급적 성격 및 그 국가들 간의 상호관계와 각각의 내적 모순을 노동자들에게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세에서 올바른 실천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그 형태에서 지난 세기에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 본질에서는 여전히 독점체들과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동일한 체제로 남아있다. (반)식민지 세계의 인민들과 제국주의 중심부의 민족 소수자들 및 이주자들에 대한 경제적 초과착취에 의존하는 동일한 체제인 것이다. 제국주의 (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은 여전히 현대 제국주의의 핵심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패권경쟁도 여전히 세력권 쟁탈과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지,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말하는) 무슨 순 지정학적 경쟁 같은 것이 아니다. 이 같은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패권경쟁 없는 제국주의는 없다. 따라서 제국주의 지배와 민족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은 혁명적 계급투쟁 강령의 필수 요소였고 지금도 여전히 필수 요소다.
이 점은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국가 간의 충돌 시에 특히 그렇다. 혁명과 함께, 전쟁은 언제나 사회주의 조직들에게 가장 큰 시험대였다. 국가 간 또는 진영 간의 무력충돌은 모든 조직과 정파들에게 자신의 이론과 강령을 구체적인 전술과 행동으로 옮기도록 강제한다. 이 점을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해당 조직의 경향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민족 방어에 대한, 그리고 식민지에 대한 그 조직의 태도다. 실천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태도 말이다."
3) 민족해방전쟁 없는 오직 “대리전”뿐인 세계질서
그러나 피억압민족/ (반)식민지 없는 전진의 세계질서에서는 그에 따라 민족 투쟁도, 민족해방전쟁도 없다. 그냥 모두 강대국의 “대리전”일 뿐인 세계질서다. 그래서 제국주의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 저항도 간단히 “대리전”이라고 한다. 전쟁에 관련된 제 세력 각각에 대한 구체적인 계급적 성격 분석도 없고, 억압 전쟁과 해방 전쟁의 구별도 없다. 그래서 전진의 세계질서에서는 러시아의 제국주의 식민전쟁뿐만 아니라 반식민지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방위전쟁도 반동적 전쟁이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억압전쟁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전쟁 일체가 다 “대리전”이며, 따라서 어떤 진보적 요소도 없는, 국제 노동자계급이 지지할 가치가 없는 다 반동적 전쟁일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대안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라고 한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억압 전쟁에 대항하는 반식민지 나라의 해방 전쟁에서 반식민지 나라를 편 들길 거부하고 해방 전쟁을 지지하길 보이콧 하는 ‘중립’ 기권주의 입장으로 ‘단결’하자고 한다. 사실상 제국주의 억압전쟁을 돕는 입장으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리전” 주장과 ‘중립’ 기권주의 입장에 반대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구체적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줄곧 밝혀왔다.
“이 전쟁은, 러시아 측에서는 반식민지 약소국을 강탈하고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려는 제국주의 전쟁이고,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제국주의 강도 전쟁에 대항하는 피억압 인민의 조국방위 전쟁, 정의의 민족 전쟁이다. 서방측에서는 강대국 패권경쟁에서 상대방 러시아를 약화시키고자 마름 젤렌스키를 지원하는 제국주의 패권쟁투의 일환이다. 따라서 러시아 측의 제국주의 전쟁과 서방 측의 제국주의 패권쟁투 둘 다에 대한 혁명적 패배주의 전술, 우크라이나 측의 민족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방어주의 전술, 이것이 이 전쟁에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전술 방침이다.
반대로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는 이 전쟁에서 서방-러시아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의 요소를 절대화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민족 전쟁의 요소는 부차화 내지 부정하고 나아가 “대리전”이라며 우크라이나 피억압 인민의 민족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방어주의 전술을 부정한다. 국제 노동자계급은 구체적으로 이러한 전술 (이러한 혁명적 패전주의 + 혁명적 방어주의의 이중 전술)을 통해 진정한 혁명적 단결을 이룰 수 있다. ‘대리전’이라며 민족 전쟁의 계기를 기각하고 우크라이나 인민의 항전에 대해 러시아·서방에 대해서와 동일하게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는 길이 아니라 단결을 파괴하는 길이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로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일관되게 옹호한 레닌이 아군 내에서 맑스주의를 희화화시키고 실추시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와 싸워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는 21세기 들어와 20여 년간 세계정세의 주요 발전동향을 인식하는 데 있어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을 비롯한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분석의 결정적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다. 이러한 21세기 정세발전의 가장 중요한 표현 중 하나가 강대국 패권경쟁의 극적 고조와 함께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나라 간 충돌·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에 따라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 및 그로 인한 국가 간 대결·분쟁의 구체적 성격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현 세계정세에서 올바른 방향을 갖는 것이 불가능함을 항상 강조해왔다.
많은 좌파 조직들이 우크라이나의 반식민지 성격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그에 따라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해왔다.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에서 이들 좌파 조직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북한 비핵화"를 앞세운 미국 (및 남한)의 북한 침공 시에 반식민지 북한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서도 "대리전"이라며 방어하길 거부할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거듭 경고해왔다.
좌파 조직들의 이러한 “대리전” 이론은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시대에 민족자결권/ 민족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며 모든 약소국들도 다 제국주의 양대 진영 중 한 진영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과거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의 정세인식 논리에 닿아 있다. 실제로 “[약소국의]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이 사실상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오늘날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전진의 다음 글을 보라.
“오늘날의 상황은 어떤가?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이 미국 제국주의 진영 대 중국·러시아 제국주의 진영 사이에서 중위, 하위 파트너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강력한 제국주의 모국이 아닌 경우에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 진영의 한 부분을 떠맡도록 강요되고 있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구호를 살펴보자.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맞서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한 부분으로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민족자결’ 요구는 사실상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건 ‘민족자결’을 앞세워 조국방위 전쟁을 제기하지만, 미 제국주의 진영의 한 사슬을 이루면서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의 흐름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을 미·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지지하지 않는다. 민족자결권을 내건 흐름에 대해 접근할 때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핵심은 그 흐름이 피억압 대중의 주도권과 자주성을 반영하느냐 여부다. 1970년대 베트남 민족해방전쟁을 지지하는 반면,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 내거는 위선적인 민족자결을 지지하지 않는 핵심 이유다.
북한 체제가 제기하는 ‘핵무장’도 그러한 맥락 위에 놓여 있다. 북한만이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이 사실상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오늘날의 특징이다. 2003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독립운동이 단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라크 정부의 탄압으로부터 민족자결을 확보하고자 했던 그들은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에 협력해 약간의 자치권을 확보하는 노선을 채택했다.
반대로 오늘날 진정으로 민족자결권을 실현하는 전망은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성장 전화라는 연속혁명의 정식은 노동자계급 주도로 민족자결권의 완전한 실현을 세계 사회주의 혁명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는 연속혁명 전망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최영익,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 핵무장이 아닌 평화를 향한 세계 노동자 총단결!>,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38&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F%89%ED%99%94%EB%A1%9C%EC%9A%B4+%ED%95%9C%EB%B0%98%EB%8F%84%EB%A5%BC&sop=and&page=1))
여기서도 억압민족-피억압민족, 제국주의 지배-예속 관계는 없고, 따라서 (반)식민지 나라도 없다. “강력한 제국주의 모국”은 있는데 식민지·반식민지는 없다. “제국주의 진영의 한 부분을 떠맡도록 강요되고 있”는 “중위, 하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만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가 피억압 인민에 대한 민족억압과 초과착취임을 망각하고 있다. 아니, “오늘날의 상황”을 내세워 부정하고 있다. 전진이 말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모든 나라가 제국주의 양대 진영 중 하나로 편입되는,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 대 반식민지 나라 간의 모순과 대립·충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질서다.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중위, 하위의 자본주의 국가들뿐인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민족자결권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은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오늘날의 특징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민족 전쟁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대리전일 뿐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제국주의 양대 진영 패권전쟁 상황에서는 민족자결도, 민족해방전쟁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억압민족-피억압민족의 구분과 민족자결권 지지를 강조한 레닌 제국주의론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유효하지 않으며, 시대에 뒤져 낡았다. 이와 같이 전진의 현 정세인식은 사실상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에 입각해 있다.
4)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과 “대리전” 이론
과연 레닌 제국주의론이 시대에 뒤진 이론인지, 아니면 전진의 “오늘날의 상황” 인식이 맑스주의를 희화화시키는 정세인식인지 레닌의 다음과 같은 언급들을 보자.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자결권/ 민족해방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논리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다.
“하나의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해방 투쟁이 어떤 조건 하에서는 다른 강대국에 의해 똑같이 제국주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가 민족자결권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은 일어날 법 하지 않다. 부르주아지가 정치적 기만과 금전적 약탈을 목적으로 공화주의 슬로건들을 이용하는 수많은 경우들 (예를 들어 라틴 나라들에서처럼)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가 자신의 공화주의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날 법 하지 않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전쟁은 유럽에서조차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제국주의 시대’는 현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되게 했고, 불가피하게 (사회주의가 승리할 때까지는)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 이 ‘시대’는 현 강대국들의 정책을 철저히 제국주의인 것이 되게 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가 민족전쟁의 가능성, 이를테면 약소국들 (병합된 나라이거나, 민족적으로 억압받는 나라)이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여 벌이는 민족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 동유럽의 대규모 민족운동을 배제하지 않는 것처럼 — 아니다....
우리가 ‘민족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그릇된 가정을 상세히 다루었던 것은, 단지 이론적인 면에서 틀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3인터내셔널의 건립이 오직 맑스주의의, 속류화 되지 않은 맑스주의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이 시점에서 ‘좌파’가 맑스주의 이론에 대해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몹시 통탄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천적 정치면에서도 이러한 오류는 매우 해롭다. 왜냐하면 반동적 전쟁 이외에는 다른 어떤 전쟁도 가능하지 않다는 단정 하에 ‘군비철폐’라는 어리석은 선전을 낳기 때문이다. 또 그 오류는 민족운동들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훨씬 더 어리석고 완전히 반동적인 태도의 원인이다. 유럽의 ‘강대’국 민족, 즉 약소국이나 식민지의 인민을 억압하는 민족의 성원들이 박식한 체 하며 ‘민족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공언할 때 그와 같은 무관심은 배외주의가 된다!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전쟁은 가능하고 개연성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며,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다.” (레닌, <유니우스 팜플렛에 대하여>)
“그러나 세계의 민족 대다수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자들인 우리 유럽인들이 몸에 밴 야비한 유럽 배외주의 (쇼비니즘)로부터 ‘식민지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많은 경우 피억압 민족들의 민족 전쟁 또는 민족 봉기다. 제국주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장 낙후된 나라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을 확대, 격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며, 이 사실로부터 불가피하게 제국주의는 많은 경우 민족 전쟁을 낳게 마련이라는 결론이 뒤따른다. 위에 인용한 ‘테제’를 자신의 소책자에서 옹호하고 있는 유니우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느 한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어떠한 민족 전쟁도 그 강대국과 경쟁하고 있는 타 제국주의 강대국의 간섭을 초래하며, 그에 따라 모든 민족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도 옳지 않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많은 식민지 전쟁이 그러한 경로를 밟지 않았다.”
“제국주의 하에서의 민족 전쟁의 가능성 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론상으로 틀렸고, 역사적으로 명백히 오류이며, 실천적으로는 유럽 배외주의에 다름 아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민족에 속하는 우리가 피억압 민족에게 당신들은 ‘우리’ 민족에 대항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는 셈이다!”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 강령>)
“제국주의 강대국들 (즉, 모든 민족들을 억압하고 그들을 금융자본에 대한 종속의 그물 속으로 얽어매는 열강들) 간의 전쟁, 또는 그들 강대국과의 동맹 속에서 벌이는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바로 1914~1916년 전쟁이 그러하다. 이러한 전쟁에서 ‘조국 방위’는 기만이고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피억압 (예를 들어 식민지) 민족이 제국주의 국가, 즉 억압 국가에 대항하는 전쟁은 진정한 민족 전쟁이다. 그러한 전쟁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 억압 국가에 대항하여 피억압 민족이 수행하는 전쟁에서 ‘조국 방위’는 기만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는 그러한 전쟁에서의 ‘조국 방위’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족자결은 완전한 민족해방과 완전한 독립을 위한 투쟁, 병합에 반대하는 투쟁과 동일한 것이며, 사회주의자는 — 사회주의자이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 봉기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어떠하든 그러한 투쟁을 거부할 수 없다.” (레닌, <맑스주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우리는 현대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반식민지의 부르주아지/지배계급이 일차적으로 강대국 전쟁의 하수인으로 역할하는 그런 대리전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현 강대국 패권경쟁 정세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시에 그러한 패권경쟁은 남반구 “제3세계”에서, 즉 반식민지 세계에서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제국주의 열강의 도발·공격 몰이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은 피억압 인민에 대한 더 많은 공격을 유발하며, 따라서 대리전만이 아니라 해방전쟁의 증가도 유발한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지난 20년은 제국주의 열강의 남반구 나라들에 대한 군사적 공격과 점령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2001년 이래 미국의 아프간 점령전쟁과 2003년 이래 이라크 점령전쟁, 2000년을 전후로 한 러시아의 두 차례 체첸 인민에 대한 전쟁과 2015년 이래 시리아 인민에 대한 전쟁, 최근 세 차례의 가자 전쟁 (2009, 2012, 2014년)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점령전쟁, 말리를 비롯한 아프리카 나라들에 대한 프랑스·EU 군대의 군사 개입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예는 이란·북한과 같은 반식민지 국가에 대한 미국의 도발·공격이다. 2007년 이래 서방이 지원하는 AMISOM (아프리카연합 소말리아임무단)의 소말리아 군사 개입도 제국주의 열강에 봉사하는 반동적 점령전쟁의 한 예다.
이와 같이, 패권경쟁 격화 속에서 강대국들이 지역 분쟁을 대리전으로 이용하려는 책동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반구 반식민지 나라들에 대한 도발·공격도 증가한다.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속에서 강대국과 반식민지 나라 간의 모순,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 간 모순도 격화하기 때문이다. 파이가 작아지는 자본주의 쇠퇴기에 모든 착취자들은 불가피하게 남반구의 노동자·피억압자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한 결과로, 향후 어느 하나의 대리전 (대만?)이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피억압 인민의 민족방위전쟁과 같은 민족해방전쟁이 증가하는 것을 훨씬 더 현실성 있는 현상으로 예상한다.
우리의 예상은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1919년에서 1939년 양차 대전 사이의 전간 기간을 보자. 그 당시에 지배적인 특징은 무엇이었나? 정당한 민족방위전쟁이었는가, 아니면 제국주의 대리전쟁이었는가? 분명히 그것은 전자였다. 물론, 당시도 제국주의 상호간의 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민족방위전쟁에 ‘대리’의 요소가 끼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 시기에 일어난 거의 모든 민족전쟁들에서처럼 그러한 사실이 이 전쟁들의 민족전쟁 성격을 없애지는 못했다. ‘대리’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 전쟁들이 대리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바뀔 수 있고, 우리가 2월 24일 이래로 반복해서 말했듯이 서방의 직접 군사개입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을 바꿔놓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의 전술도 바꿔놓을 수 있다. 그러나 내일 있을 수 있는 사태발전에 근거하여 오늘에 대한 우리의 전술을 정한다면,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당시 예를 들어, 1930년대 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반식민지 중국의 저항 (항일전쟁)에 미 제국주의가 무기 지원을 포함한 물질적 지지를 주고 패권경쟁 상대방 일본에 대해 초강력 경제제재를 가한 것을 떠올려보라. 중국의 항일전쟁이 태평양에서 미-일 간 제국주의 패권쟁투 격화를 배경으로 한 전쟁이고 그와 같이 다른 강대국 (미국)의 개입이라는 대리 요소가 끼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전쟁이 민족 전쟁의 성격을 잃고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이 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예로, 2차 세계대전 동안에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의 다양한 (항일, 항독) 파르티잔 투쟁들에 대한 서방 (영·프·미) 제국주의의 지지를 보라. 1935-36년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맞선 에티오피아의 항전에 대한 서방 및 나치 독일 제국주의의 지지도 보라. 이러한 종류의 강대국 개입으로 이 민족 전쟁들의 정당한 성격이 제거되고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이 됐는가? 이 전쟁들은 레닌과 트로츠키의 전통에 있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던 민족해방 투쟁들이었다.
반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대리전”으로 규정했던 전쟁의 예를 보자. 유니우스 팜플렛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경우를 예로 들어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 전쟁은 가능하지 않으며 모두 대리전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보였다. 레닌은 이러한 일반화에 대해 반박했지만, 세르비아가 영/프/러 제국주의 진영의 대리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당시 세르비아 대리전의 배경이 되었던 1차 세계대전은 모든 강대국이 참전한, 즉 세계인구의 4분의 3이 이 재앙의 영향을 입은 세계 전쟁이었다. 당시 세르비아 군은 발칸 반도에 군대를 파견 배치한 연합국 (영국/프랑스/러시아) 지휘 하에 연합국 군대의 일부로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웠다.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이 된 것이다. 영/프/러 제국주의 진영의 세르비아 지지, 개입은 무기 지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군대를 투입하여 직접 군사개입을 하고 이 군대에 세르비아 군을 편입시켜 직접 전쟁을 치른 것이라는 점에서 세르비아로서는 영/프/러 연합국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이 됐다.
이것을 전진이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전쟁이라고 평가한 우크라이나 민족방위전쟁과 대비해보라. 오늘, 무기 지원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는 서방 열강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종류의 군사원조를 받는다고 우크라이나 군대가 미군이나 나토군 지휘 하에 그 군대의 일부로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 전부터 젤렌스키 정부가 친서방 이해를 대변하고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서방 진영과의 동맹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진의 평가처럼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과 패권‘경쟁’에서 제국주의 한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는 것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여전히 이 전쟁에서 러시아 대 서방 간에는 패권 ‘경쟁’이지 패권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패권 ‘경쟁’과 패권 ‘전쟁’은 냉전과 열전이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다. 이것이 혼동되어선 안 된다. (여전히 이 전쟁은 러시아-서방 제국주의 상호 간 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지, 러시아와 서방 간의 ‘전쟁’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로선 아니다. 러시아와 서방 간의 ‘전쟁’이라면 준 세계대전, 사실상 3차 세계대전이라는 얘기가 된다).
서방-러시아 패권경쟁에서 젤렌스키 정부가 한 축으로 서방 제국주의의 이익을 대변하여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전쟁의 객관적 조건이 위와 같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전쟁에서 반식민지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권은 무의미해지거나 부차화 될 수 없다. 이는 위에서 예로 든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는 친미 매판 장개석 정부가 당시 미-일 패권경쟁에서 미 제국주의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며 한 축으로 미 제국주의의 이익을 대변하여 일본과 싸웠다 하더라도 중일전쟁에서 반식민지 중국의 민족자결권이 결코 부차화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도 이 전쟁은 일-미 제국주의 상호 간 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한 일본과 중국 간의 전쟁이지, 일본과 미국 간의 ‘전쟁’이 아니다. 이 중일전쟁 이후 1941년 12월에 일본과 미국 간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는 말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에 맞선 중국 인민이 그랬듯이, 우크라이나 인민은 미국/서방 제국주의가 시켜서 푸틴의 침공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족자결권을 비롯한 그들의 기본적인 민족적 권리를 지키고자 싸우는 것이다.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지배계급”의 그 어떤 반동적인 목표를 공유해서 러시아의 침략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점령군을 패퇴시키고 점령된 영토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전진은 이와 같이 패권경쟁에서 제국주의 한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는 것과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을 미·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한 진영의 군사 원조를 받고 동맹으로 복무한다는 것이 민족 전쟁을 제국주의 대리전쟁으로 전화시킨다면 역사상 민족 전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중일전쟁에서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장개석 정부가 ‘자’국 미국 제국주의의 군사 원조를 받고 미-일 패권경쟁에서 ‘자’국 미국 제국주의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함에도 불구하고 장개석 정부를 지도부로 하는 중국의 민족전쟁을 방어했다. “대리전에 불과하다”며 ‘중립’ 기권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에 반대하여 중국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을 지지한 것이다. 그들이 틀렸는가? 이 중일전쟁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자’국 미 제국주의 둘 다에 반대해 양측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그리고 반식민지 중국에 대한 혁명적 방위주의, 이러한 이중 전술을 취한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의 민족 전쟁과 2차 세계대전 동안의 여러 항일·항독 민족 투쟁들, 또 영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이 이탈리아에 제재를 가했던 1935-36년 에티오피아 전쟁 등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제4인터내셔널은 이 모든 정의의 민족방위전쟁에 대한 지지를 이어간 데서 절대적으로 옳았다.
5) 민족자결권 부정의 정세인식 논리: 북한도 대리전?
이 문제를 길게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전진이 북한에 대해서도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이 사실상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된다며 미 제국주의의 도발·공격에 맞서 반식민지 북한의 민족자결권을 방어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앞세운 미 제국주의의 북한 무장해제 압박·공격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에 대해서도 전진은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흐름”으로 규정하며 방어하길 거부하고, 나아가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요구한다.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이 미국 제국주의 진영 대 중국·러시아 제국주의 진영 사이에서 중위, 하위 파트너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정세에서는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흐름”만 존재할 뿐, 민족자결권/ 민족해방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제국주의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는 좌파 조직들이 그 연장선에서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반식민지 북한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전진의 입장이 위와 같은 것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일진대, "북한 비핵화"를 앞세운 미국 (및 남한)의 북한 침공 시에 반식민지 북한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서도 "대리전"이라며 방어하길 거부하지 않겠는가!
패권경쟁에서 제국주의 한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는 것을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는 전진이 김정은 정부를 지도부로 하는 북한의 민족전쟁을 중러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전쟁에 대해서 그러듯이 말이다.
우리는 북한이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미 제국주의의 북한 침공 시에 중국 제국주의가 북한에 대한 무기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직접 군사개입을 할 경우, 즉 군대를 북한에 투입하고 중국-북한의 합동군 체제로 싸우는 경우다. 그 경우 이 전쟁은 양대 제국주의 간 전쟁이 되고 북한은 더 이상 민족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된다. 이 가능성은 분명히 있지만, 그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이 직접 군대를 투입해 러시아와의 전쟁을 촉발하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처럼 중국도 직접 군사개입이 아닌 무기 지원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전쟁 첫 단계에서는 그렇다. 설사 어느 가능성이 더 크다고 가정하지 않더라도, 지금으로선 무기 지원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진은 이 두 경우를 따지지도 분별하지도 않고 오로지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리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는 논리다. 우크라이나의 민족방위 전쟁에 대해서 이 두 경우를 구별하지 않고 간단히 “대리전”이라며 보이콧하는 것으로 보면 북한에 대해서도 이 논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제국주의의 반식민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양 진영 간의 전쟁, 즉 미일한 대 중러 간의 전쟁 시에 반식민지 북한이 중러 진영으로 참전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도 북한이 제국주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3차 세계대전의 맥락이 아니고서는 미일한 대 중러북의 동시 전쟁을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전쟁은 세계전쟁일 것이고, 따라서 제국주의 양 진영 간의 전쟁과는 별개의 ‘북한 민족전쟁’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구조일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동맹 완성”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가 다시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 구도를 실제 “전쟁” 구도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단지 ‘대립’이 아니라 실제 한미일 대 북중러 간의 ‘전쟁’이라면 그것은 여지없이 세계대전(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고, 북한의 민족자결권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와 함께 ‘반식민지 북한 방어’가 아니라,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북한에 대해 다른 모든 교전국에 대해서처럼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을 가져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향후 전쟁을 모두 이러한 미일한 대 중러북 동시 전쟁으로, 사실상 3차 세계대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면, 그 이전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 대 반식민지 나라 간의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배제해선 안 된다. 이러한 제국주의 대 반식민지 간 전쟁의 계기를 배제하고 다 제국주의 양 진영 패권전쟁으로 귀착,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패권 ‘경쟁’과 패권 ‘전쟁’을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과 한미일 대 북중러 ‘전쟁’을 동일시할 수 없다. ‘대립’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 둘 간의 구별을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전진은 중위, 하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대립’과 ‘전쟁’을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은 이 ‘대립’ 단계에서 이미 (중러 제국주의 진영의 군사 원조를 받으며 동맹으로 복무하는 수준을 넘어)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아직 전쟁도 아닌 단계에서 이미 “대리전”을 하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립’을 ‘전쟁’으로 귀속 환원하지 않고 ‘대립’ 단계를 독립적인 계기로 인정한다면, 이 당면의 ‘대립’ 정세는 북한이 “제국주의 패권전쟁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정세가 아니다. 이 반식민지 나라 대(對) 제국주의 국가 (미국) 간의 충돌·전쟁이 문제가 되는 정세다. 즉 한미일 대 북중러 동시 세계대전이 아니라, 미국 (및 한국)의 북한 공격·침공이 문제가 되는 정세다. 따라서 이 당면의 ‘대립’ 정세에서는 북한의 대리전이 아니라 북한의 민족자결권과 민족방위전쟁이 문제가 된다. 전진은 이 계기를 무시하고 제국주의 양 진영 간 전쟁에 모두 귀속시켜 대리전 이외에 민족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 ‘대립’ 정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미 제국주의의 (또는 제국주의 한미동맹의) 북한 침공 시에 미국의 (또는 미·한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반동적 전쟁이고, 북한의 전쟁은 해방을 위한 전쟁, 진보적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김정은 정부가 군사 원조를 받으며 중러 제국주의 진영의 이해를 한 축으로 대변하며 싸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친 중러제국주의 김정은 자본가정부에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주지 않고서 이 해방 전쟁을 방어하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우크라이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처럼,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북한을 방어하라! 미·한 제국주의에 패배를! 미·한 제국주의와 중 제국주의 모두에 맞서자!”가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방침이다. 반대로 전진이 우크라이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 취했던 태도처럼, 북한 민족방위전쟁에 대해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한 “반동적”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중립’ 기권주의 입장을 취하는 ㅡ 사실상 북한에 대해서도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는 ㅡ 것은 제국주의 억압전쟁을 돕는, 사회제국주의에의 투항이다.
현 세계질서에서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제국주의 패권전쟁”으로 귀속시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논리는 이와 같은 대리전 이론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시기에 민족자결권/ 민족해방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은 레닌 제국주의론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 현대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도 틀렸는데, 왜냐하면 오늘날과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패권경쟁 격화 정세에서 민족전쟁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획물이 줄어드는 자본주의 쇠퇴기에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도 가속화함에 따라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나라 간의 모순·대립도 격화할 것이며 그에 따라 민족자결권을 위한 투쟁/ 민족해방 전쟁도 더 한층 촉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미중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또는 서방 대 중러 간 제국주의 세력권 쟁탈전 격화 정세는 남반구 반식민지 세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민족해방전쟁을 더욱 더 유발할 것이다.
6) “노동자 세계 혁명 전망”과 민족해방전쟁
<정세인식 토론 총괄정리>
현대 제국주의와 “다극 세계질서”론
차례
Ⅰ. 자주파: 탈미자주의 새로운 세계질서와 “다극화”
1) 자주파의 “다극화”론: 비(非)제국주의 세계질서?
2) 반제국주의 임무를 대신하는 ‘탈미자주’의 대외정책 전환
3) 다극 세계질서와 남한 국가: 자주파의 탈미친중 견인과 계급협조
4) “다극화”론 = 강대국 패권경쟁 가속화/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간 모순 격화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5) 제국주의 간 세력권 쟁탈전 고조와 함께 반식민지에 대한 공격·침탈도 고조되고 있다
6) 현 세계질서와 레닌 제국주의론
Ⅱ. <전진>: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대리전" 이론
1) 억압민족-피억압민족 구분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
2) 맑스주의 반식민지 규정
3) 민족해방전쟁 없는 오직 “대리전”뿐인 세계질서?
4)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과 “대리전” 이론
5) 민족자결권 부정의 정세인식 논리: “오늘날의 상황”에선 북한도 “대리전”?
6) “노동자 세계 혁명 전망”과 민족해방전쟁
7)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임무
* * * *
3) 민족해방전쟁 없는 오직 “대리전”뿐인 세계질서?
4)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과 “대리전” 이론
5) 민족자결권 부정의 정세인식 논리: “오늘날의 상황”에선 북한도 “대리전”?
6) “노동자 세계 혁명 전망”과 민족해방전쟁
7)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임무
* * * *
오늘 미·중 대결을 비롯한 강대국들 간 패권경쟁이 격화하면서 ‘세계질서 전환’에 관한 담론이 운동진영 내에서도 대거 유통되고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과거 냉전 구도를 떠올리는 서방 대 러·중 대립구도와 나아가 동아시아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가 다시 새롭게 부각되면서 “세계질서가 근본에서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라거나, “다시 한 번 전 세계가 위기와 전쟁으로 뒤덮이는 시대”라는 평가들도 나오고 있다.
현 시기 격동적인 세계사적 사건들을 고려할 때, 미·중 간 충돌을 비롯한 서방 대 중·러 대립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정세인식의 중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당연하게도 이러한 정세인식 토론은 현대 제국주의 규정과 제국주의론에 대한 인식, 그리고 특히 중국·러시아와 같은 신흥 열강에 대한 계급적 성격규정 문제를 끌어들인다.
노동운동 내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 민족자주파는 서방 대 중러 대립을 제국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반제 진영의 대결이라며, 미·중 대결을 비롯한 현 시기 가속화하고 있는 강대국 패권경쟁에 대해서도 제국주의 간 경쟁임을 부정한다. 자주파는 따라서 노동운동이 이 대결에서 미국 (및 그 동맹들)에 대항하여 중·러를 편 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국주의는 미국뿐이고, 반면 중국은 “사회주의”며 러시아는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제국주의 미국에 맞서는 반제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 자주파의 “다극화”론: 비(非)제국주의 세계질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자주파는 러시아 푸틴 정권과 중국 시진핑 정권이 함께 내걸고 있는 “다극 세계질서”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중·러 진영의 지배계급 이데올로그들은 미국 주도의 “일극” 제국주의 체제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지 않는 “정의로운 민주적 다극 세계질서”로 대체되고 있고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의 자주파도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질서전환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패권이 없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는 것이다.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명실상부 새로운 세계질서, 다극화 세계질서를 주체적으로 세우는 과정인 것이다. 다극화 세계질서는 미국처럼 일극패권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극이 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호혜와 평등, 견제와 균형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통일시대, <[손정목의 세상읽기] 현 정세인식의 3가지 오류>, 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1)
현 시기 격동적인 세계사적 사건들을 고려할 때, 미·중 간 충돌을 비롯한 서방 대 중·러 대립을 어떻게 볼 것인가가 정세인식의 중심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당연하게도 이러한 정세인식 토론은 현대 제국주의 규정과 제국주의론에 대한 인식, 그리고 특히 중국·러시아와 같은 신흥 열강에 대한 계급적 성격규정 문제를 끌어들인다.
노동운동 내 다수파를 이루고 있는 민족자주파는 서방 대 중러 대립을 제국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반제 진영의 대결이라며, 미·중 대결을 비롯한 현 시기 가속화하고 있는 강대국 패권경쟁에 대해서도 제국주의 간 경쟁임을 부정한다. 자주파는 따라서 노동운동이 이 대결에서 미국 (및 그 동맹들)에 대항하여 중·러를 편 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제국주의는 미국뿐이고, 반면 중국은 “사회주의”며 러시아는 사회주의는 아니지만 제국주의 미국에 맞서는 반제 세력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1) 자주파의 “다극화”론: 비(非)제국주의 세계질서?
이러한 논리의 연장선에서 자주파는 러시아 푸틴 정권과 중국 시진핑 정권이 함께 내걸고 있는 “다극 세계질서”론을 적극 홍보하고 있다. 중·러 진영의 지배계급 이데올로그들은 미국 주도의 “일극” 제국주의 체제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지 않는 “정의로운 민주적 다극 세계질서”로 대체되고 있고 대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우리의 자주파도 이러한 관점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세계질서전환은 미국에서 중국으로 패권이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예 패권이 없어지는 새로운 질서가 수립되는 것이다. 인류가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명실상부 새로운 세계질서, 다극화 세계질서를 주체적으로 세우는 과정인 것이다. 다극화 세계질서는 미국처럼 일극패권국이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의 극이 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호혜와 평등, 견제와 균형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통일시대, <[손정목의 세상읽기] 현 정세인식의 3가지 오류>, https://www.tongiltimes.com/news/articleView.html?idxno=1451)
미·중 대결에 대한 태도 문제와 함께 정세인식의 또 다른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 “다극 세계질서”론은 한편으로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인식 및 실천 상의 주요 문제들을 제기한다. 오늘날의 제국주의는 무엇인지, 노동자계급 · 피억압인민의 오늘날 반제국주의 과제는 어떠한 내용으로 구성되는지 (또는 그러한 반제국주의 과제가 더 이상 있기나 한 것인지), 나아가 레닌 제국주의론을 비롯한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분석은 오늘날의 세계정세에, 21세기 글로벌 경제·정치 현실에 여전히 유효한지 (아니면 시대에 뒤져 낡았는지) 등의 문제들로까지 쟁점이 번지고 있다.
이러한 쟁점들을 내포하고 있는 다극세계질서론에 대해서는 이미 국내에서도 다양한 세력이 저마다의 내용을 채워 계급·계층 속에서 유포하고 있지만, 노동자들 속에서는 자주파가 이 담론을 가장 정력적으로 전파하고 있다. 자주파에 의하면, 다극 세계질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 같은 지배와 예속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평등과 호혜의 새로운 세계질서”다. 오늘의 세계가 기존 미국 ‘일극’의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이 같은 다극 비(非)제국주의 세계질서로 나아가는 전환기에 있다는 정세인식인 것이다. (서방 대 중러 대결 등 이른바 “진영 대결구도” 또는 “신냉전” 대결구도도 이러한 탈 제국주의 다극화 세계질서 전환의 한 부분이라고 규정한다.)
“다극화세계질서에서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는 성립될 수 없다. 모든 예속국가들은 자국의 주권을 바로 세우는 선행과정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중남미 거의 전역에 진보적 자주정권이 들어서고, 중동의 친미국가들이 탈미화 하여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고, 아프리카연합(AU)국가들 대부분이 미국과 유럽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세계사적 대 변화다. 이들 나라 모두는 중러와 우호적 관계를 맺고 있고, 맺으려 하고 있다.
미국의 지배와 예속, 압박과 간섭에 시달리던 수많은 신흥국(global south)들이 이제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면서 미국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들이 주역인 새로운 세계질서가 구축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2월 새로운 국제안보질서인 ‘글로벌 안보 이니셔티브(GSI)의 원칙을 발표하였다. 이 6개 원칙에는 주권평등과 냉전적 사고, 일방주의, 패권주의 반대 등이 제시되었다. 이렇듯 평등과 호혜의 새로운 세계질서 건설에 한국, 일본, 유럽과 같은 예속국들은 참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렇듯 다극화 세계질서는 패권이 아예 없어지고 오직 주권국가들만이 참가할 수 있는 자주의 신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세계질서 전환을 위한 투쟁은 인류의 자주적 염원에 부응하는, 더 이상 지배와 예속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인류사적 진보다.” (위 통일시대, 같은 글)
2) 반제국주의 임무를 대신하는 ‘탈미자주’의 대외정책 전환
중·러가 탈미자주의 다극화 세계질서를 여는 진보의 기수이므로 “중러와 우호적 관계를 맺”는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는” 것이 진보진영의 투쟁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세계질서에서 중러는 비제국주의 진보 세력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이지만, 이 문제는 일단 뒤에서 논의하기로 하고 우선적으로 제기된 문제부터 이야기해보자. 자주파는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의 기존 세계질서에서 “더 이상 지배와 예속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질서로 전환하는 투쟁을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는” 문제로 제기한다. 즉 중남미에서 새로 들어선 룰라 정권이나 중동에서 사우디·UAE처럼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그러한 대외정책 전환을 ‘세계질서 전환 투쟁’의 주요 기제로, 핵심 지렛대로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조차도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기보다는 실리외교 차원에서, 즉 기존 친미 중심 또는 친미 일변도에서 미중 간 등거리 외교정책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브라질 룰라 정권이나 사우디 정권 등이 “자주적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은 ㅡ 즉 강대국 사이의 ‘중립’ 외교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은 ㅡ “미국 패권 몰락” 정세를 일으킨 원인이 아니라 그러한 정세가 낳은 효과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자주적 태도” 전환은 다극화를 밀어가는 동력이 아니라 미국 절대 패권의 종식으로 이미 다극화된 질서의 반영이다. 룰라의 중국·러시아 순방을 통한 ‘탈미’ 행보는 세계정치의 새로운 변동을 상징한다기보다 이미 진행된 주요 변동을 반영하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십여 년래 미국의 절대 패권이 소멸되고 미 제국주의가 쇠퇴를 맞고 있는 한편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신흥 열강으로 떠올랐고, 특히 중국은 미중 대결 속에서 새로운 패권 도전자로 부상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최대 무역 파트너도 이미 중국이다. 그리고 중국의 금융자본/ 독점체들은 라틴아메리카 나라들의 주요 외국인투자자다. 룰라의 탈미 대외정책 전환은 미국이 자신의 “뒷마당”에 대해서도 장악력을 이미 잃고 있는 정세의 효과이자 반영인 것이다. 최근 아르헨티나가 브릭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공의 국제 협력기구)에 정식 가입 신청을 한 것도 이러한 정세 발전의 또 다른 결과물이다. 이와 같이 미국의 절대 패권이 종식됨에 따라 중국과 러시아가 이미 라틴아메리카 정치의 주요 주자로 자리 잡았다는 점에서 이들 정권들의 탈미 대외정책 전환은 이미 예견된 것으로, 무슨 “자주의 신시대”를 여는 획기적인 돌파 같은 것으로 성격 부여하는 것은 아전인수식 평가거나 희망적 사고에 따른 평가에 불과하다.
그 보다 더 문제는 반제국주의 임무, 민족해방 과제의 철저한 실종이다. “세계질서가 근본에서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니 ”자주의 신시대“니 운운하면서 정작 제국주의-식민지 관계, 지배-예속 관계를 타도 청산하는 반제국주의 임무를 정권의 정책 문제로 축소, 왜곡하고 있다. 식민지·반식민지 피억압 인민의 민족해방 과제를 대외‘정책’ 전환의 문제로 호도하고 있다. 그리하여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반식민지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해방 전쟁은 미제의 대리전쟁이라 비난하고, 패권 공백을 틈탄 브라질 룰라 정권의 미중 간 줄타기 실리외교는 자주의 신시대를 여는 세계질서 전환투쟁이라고 추켜세우고 있는 것이다.
자주파는 제국주의 타도 없이도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가 더 이상 성립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며 노동자들 속에서 “다극세계질서” 깃발을 흔들어댄다. 남반구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피억압 인민의 해방투쟁/ 민족해방혁명 없이도 정권들의 대외정책으로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올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속인다. 제국주의 금융자본에 의한 경제종속·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의 굴레를 깨부수고 떨쳐버리는 것 없이도 단지 대외정책 전환으로 “더 이상 지배와 예속 관계를 허용하지 않는 인류사적 진보”의 새로운 세계질서를 내올 수 있다고 노동자들을 속인다.
문제는 대외‘정책’이다! 문제는 제국주의 ‘체제’가 아니다! 제국주의 타도도 필요 없고, 민족해방혁명도 필요 없는 이러한 탈미 친중러 (또는 적어도 탈미 ‘중립’)의 대외정책 전환이 현 시기 세계 ‘진보’진영의 투쟁방향이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 강대국이든 약소국이든, 억압 민족이든 피억압 민족이든 관계없이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 두루 ‘보편적인’ 자주와 주권의 문구들을 내세우는 것을 본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과는 달리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말해왔다. 강대국/억압민족들이 약소국/피억압민족들을 금융자본의 종속 그물망에 얽어매고 민족억압의 굴레를 들씌우는 한, 다시 말해 강대국들이 해외투자/자본수출로 남반구 “제3세계” “개도국들”, 즉 반식민지 나라들에서 초과이윤을 뽑아내고 차관으로 높은 이자를 거둬들이는 한, 그래서 이 낙후되고 가난한 약소국 인민들이 억압의 굴레에 속박되어 있는 한, 모든 민족의 자주와 주권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는 것은 역겨운 위선일 뿐이라고 말이다.
레닌 <제국주의론> 당시에 카우츠키 같은 기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단계’로 보길 거부하고 금융자본이 선호하는 ‘정책’으로 정의했다. 카우츠키가 제국주의 정치를 제국주의 경제로부터 분리시켜 제국주의의 근본적인 모순을 흐리는 데 봉사한 것처럼 자주파는 대외정책을 경제종속·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의 현실로부터 떼어내서 제국주의 질서를 숨기는 데 봉사한다.
3) 다극 세계질서와 남한 국가: 자주파의 탈미친중 견인과 계급협조
이와 같이 자주파의 다극세계질서론은 현 세계질서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다. 자주파는 한국에 대해서도, “예속국”이므로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을 내오”고 있는 다른 “수많은 신흥국들”과는 달리 이러한 평등과 호혜의 다극화세계질서 건설에 “참가할 수 없을 것”이라 한다. “윤석열 정권은 한국의 젤렌스키로서 미국의 패권몰락을 저지하기 위해 북중과 일전을 불사하겠다고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세계질서에서 국가들 상호간의 계급적 성격은 ㅡ 즉 자본주의 제국주의인가, 자본주의 반(半)식민지인가는 ㅡ 일차적으로 해당 국가의 경제적 사회구성체에 의해 규정된다. 그러나 자주파에게는 정권의 대외‘정책’에 의해 국가들의 성격과 지위가 규정된다. 그래서 자주파에게는 제국주의 국가인가, (반)식민지 국가인가가 아니라 “자주적 정권, 자주적 정책”인가, 아닌가가 기준선이다. 윤석열 정권의 ‘자주적이지 않은’ 대외정책 탓에, 정권의 “자해 외교” 탓에 한국은 “예속국”으로 다시 굴러 떨어졌다.
지난 문재인 정권에 대해 “친미자주 정권”으로서 “탈미자주”로까지 견인 가능한 정권이라며 자본가정부에 계급협조를 바쳤던 자주파다. 이제 윤석열 정권의 대외정책으로 인해 한국은 “예속국”으로 되돌아갔으므로 탈미자주의 다극화 세계질서 건설에서 배제된다. 그리고 이제 자본가정부에 대해서는 계급협조 대신 ‘정권 심판·퇴진’으로 맞서야 한다고 한다. (물론 자주파는 여기서도 ‘자본가정부 타도’에는 반대한다). 민주당에서 국힘으로 같은 자본가 정치세력 간의 정권 교체로 남한 국가의 계급적 성격이 자주국에서 “예속국”으로 바뀌어버렸다! 그러나 이제 윤석열 정권 심판·퇴진으로 다시 정권교체를 이루면 예속국에서 자주국으로 바뀔 수 있다. 그리고 자주파는 그에 따라 다시 탈미 견인/ 자본가정부 지지 정책으로 복귀할 것이다. 자주파의 탈미 견인에 따라 남한 국가도 다시 자주국으로서 다극화 세계질서 건설에서 배제가 아니라 동참할 수 있는 자격이 열린다. 세계질서에서 남한 국가의 성격과 지위를 이와 같이 탈미 친중러로 (최소한 탈미 ‘중립’으로) 바꿔낼 수 있도록 정권교체를 이루고 대외정책 전환을 견인하는 것, 이것이 자주파가 제시하는 현 시기 노동운동의 투쟁방향이다.
지배계급 한 분파에 대항하여 다른 분파를 지지하고 계급협조를 바쳐온 자주파의 그 동안의 정책논리에서 볼 때 이 같은 친중러 계급협조 세계질서 구상은 전혀 놀랄 것이 없다. 강대국 한 진영에 대항하여 다른 한 진영을 지지하고 노동자들 속에서 이 강대국 진영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와 프로파간다를 홍보 전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자주파가 그러한 계급협조 정책을 취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울 것이다. 자주파의 다극화 깃발은 이와 같이 국내·국제 계급협조 정책을 본질적 구성요소로 바탕에 깔고 있다.
자주파와는 달리 오늘 진실 된 사회주의자들은, 진실로 지속 가능한 정의롭고 민주적인 세계질서는 그 모든 현존 자본가정부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지배를 타도하고 자본가계급을 수탈하기 시작하는 노동자정부들에 의해서만 구축될 수 있다는 명명백백한 진실을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진실로 지속 가능한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는 부르주아 정권교체와 대외정책 전환에 의해서가 아니라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타도하고 그것을 사회주의 세계로 대체하는 노동자·피억압자의 해방투쟁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명명백백한 진실을 대중에게 설명해야 한다.
4) “다극화”론 = 강대국 패권경쟁 가속화/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간 모순 격화를 은폐하는 이데올로기
자주파는 “세계질서가 근본에서 바뀌는 대격변의 시기”라고 서두에서 운을 떼더니 대격변과는 거리가 먼 지극히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정세발전의 그림을 내놓고 있다. 해방투쟁과 사회혁명이 아니라 대외정책 전환으로 “패권이 아예 없어지는” 호혜와 평등의 세계질서로 나아갈 수 있다는 실천방향을 전제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자주파의 현 시기 정세인식에는 제국주의 시대의 쇠퇴해가는 자본주의도, 그 속에서 격화하는 자본주의 세계경제 공황도, 그로 인한 혁명적·반혁명적 위기 정세도 모두 없다. 그리고 파이가 줄어드는 이 시기에 노획물 분배를 둘러싸고 가속화하는 강대국 패권경쟁 정세에 대해서도 ‘양비론’ 비판을 내세워 부정한다.
노동자들을 속이는 이러한 현실 호도의 정세인식과는 반대로 우리는 세계가 이제 ‘사회주의인가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 석기시대인가’를 그 어느 때보다 더 절박하게 제기하고 있는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호혜와 평등의 새로운 다극화 시대가 아니라, “자주의 신시대”가 아니라 재앙 자본주의, 파국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강대국들 간의 모순이 계속 심화되고 패권경쟁이 가속화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그에 따라 모든 강대국은 반식민지 나라들을 자신의 배타적 지배하에 두면서 동시에 경쟁상대방 강대국과 대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더욱 더 추동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정전 상태로 당장은 정리된다 하더라도 곧 러시아와 미국뿐만 아니라 서유럽 열강과 일본, 그리고 중국이 남반구 나라에 대한 군사 개입을 감행할 필요를 점점 더 강하게 느낄 것이다.
군사 개입을 넘어 직접 침략 (이를테면 미국 (및 남한)의 북한 침공, 중국의 대만 침공 등)도 충분히 예측되는 정세다. 그와 함께 강대국 자신들 간의 긴장과 대결이 더욱 고조될 것이다. 유럽에서 서방 열강과 러시아 간의 전쟁이나 대만해협/남중국해에서 미국과 중국 간의 전쟁이, 나아가서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미일한 대 중러 간의 전쟁이 다음 몇 년에, 늦어도 10년 내에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그에 따라 3차 세계대전도 가능하다. 그 전에 지배계급을 타도하지 않는 한 말이다. 대외정책 전환을 통한 다극화 세계질서 구축 (즉 전쟁몰이 세계질서 구축)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에 의해 지배계급을 타도하지 않는 한 말이다!
5) 제국주의 간 세력권 쟁탈전 고조와 함께 반식민지에 대한 공격·침탈도 고조되고 있다
말로는 ‘사회주의’되 행동으로는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제국주의자들과는 달리, 우리를 비롯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 입각해 중국·러시아는 반제 세력이 아니라 제국주의 열강임을 여러 문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해왔다. 중·러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약소국/약소민족들을 (자본수출/해외투자, 차관 등을 통해) 금융자본의 종속 그물망에 얽어매고 민족 억압의 굴레를 들씌우는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국가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단지 푸틴 정권의 침략적 대외'정책’ 때문에 러시아를 제국주의로 규정한 것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에 제출한 우리의 팜플렛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을 보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우리가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에 대해 (그리고 나토/서방에 대해서도)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혁명적 방위주의 입장을 취한 것은 단지 누가 침략을 했고 누가 침략을 당했는지 라는 기준에서 한 것이 아니다. 전쟁에서 관련 제 세력에 대한 우리의 구체적 전술은 일차적으로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인식에 기초한 각각의 사회구성체 평가분석 ㅡ 즉 제국주의 국가인지 반식민지 국가인지 ㅡ 으로부터 도출한 것이다. (우리의 팜플렛 <우크라이나 사회성격: 자본주의 반식민지 사회구성체>도 보라. https://blog.wrpkorea.org/2023/02/blog-post_22.html).
강대국 패권경쟁 고조와 전쟁몰이를 핵심 특징으로 하는 오늘의 세계정세다. 기존 서방 열강 (미국·EU·일본)뿐 아니라 신흥 열강 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적 성격에 대한 맑스주의적 평가분석 없이는 현 시기 올바른 정세인식을 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또 그러한 평가분석에 따라 모든 제국주의 열강에 대해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오늘 미중 대결을 비롯한 강대국 패권경쟁을 중심축으로 전개되는 세계정치에서 올바른 투쟁방향을 내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편 세력권 쟁탈과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강대국 패권경쟁 격화와 함께 제국주의 열강과 반식민지 나라 간에 충돌·분쟁도 더욱 늘어나고 있는 세계정세다. 남반구 나라들의 반식민지 성격에 대한 맑스주의적 평가분석 없이는, 즉 이들 인민이 제국주의 열강과 제국주의 독점체들에 의해 억압 · 초과착취 당하고 있는 현실 사회구성체 평가분석 없이는 현 시기 올바른 정세인식을 내올 수 없다. 또 그러한 평가분석에 따라 제국주의 공격·침탈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나라와 피억압 인민을 방어할 의무를 인식함이 없이는, 즉 혁명적 방위주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 지배·개입과 억압민족-피억압민족 모순을 여전히 주 특징으로 하고 있는 현 시기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올바른 투쟁방향을 내올 수 없다.
각각의 사회구성체 평가분석에 더해 우리는 현대 제국주의체제의 성격을 올바로 규명하는 차원에서 “다극화 신세계질서”라는 것도 비제국주의 질서가 아니라 미·중을 비롯한 복수의 제국주의 강도들이 반(半)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놓고 패권경쟁을 벌이는 동일한 제국주의 세계체제임을 밝혀왔다.
6) 현 세계질서와 레닌 제국주의론
오늘의 제국주의 세계질서는 1914년 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으로 치닫던 세계질서와 닮아 있다.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통해 규명했던 그 동일한 세계질서의 귀환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영국 패권에 후발 신흥 열강 독일이 도전하며 식민지·반식민지 세력권 쟁탈과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패권경쟁 격화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달은 그 세계질서 말이다.
물론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전변을 겪었다. 대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현 시기 제국주의 체제는 확실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절대 패권을 행사하던 세계질서와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오늘 미국은 더 이상 절대 패권국이 아니며, 오히려 굴욕적인 아프간 패주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듯이 미 제국주의의 쇠퇴와 중국의 신흥 강대국 부상이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계질서다.
강대국 패권경쟁은 다시 한 번 세계정치의 지배적인 특징이 되었다. 미 제국주의의 쇠퇴와 이에 대한 패권 경쟁자로서 중·러의 부상이라는 이러한 정세발전은, 우리가 광범위에 걸친 사실과 수치를 바탕으로 연구보고서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정치·경제·군사 모든 차원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이 오늘의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레닌이 당대 제국주의 분석을 통해 밝혀준 그 세계체제에 더 닮아 있다. 오늘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 타당한 이유다.
강대국 패권경쟁과 함께, 민족억압과 초과착취 같은 제국주의 체제의 본질적 지표들도 레닌 제국주의론 시절과 마찬가지다. “일극 세계질서”든 다극 세계질서든 그러한 본질적 지표들에서 다른 것이 없다. 자주파 등 다극세계질서론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폐절하지 않고도 그 안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 같은 지배와 예속 관계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체제를 내올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제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따라서 레닌 제국주의 이론의 유효성을 부정 기각하는 주장이다.
지배와 예속, 민족억압과 초과착취 같은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정치적·경제적 지표들에서 일어난 변화를 인식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 대부분이 이제는 반(半)식민지가 되었다. 따라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지배는 보통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며, 특정 경우에만 직접적으로, 즉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의연히 남아있는 것은 제국주의 열강의 본질적 지표다. 즉 세계경제와 세계정치를 지배하며 직간접적으로 타 민족들을 억압하고 (초과)착취한다는 것, 제국주의의 이 본질적 측면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 레닌이 내린 다음과 같은 간결명료한 정의를 보라. “제국주의 강대국, 즉 제 민족 전체를 억압하고 금융자본 종속의 그물망으로 얽어매는 열강들.” 이 정의는 오늘 현대 제국주의 세계질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와 같은 현대 제국주의 규정에 따라 우리는 제국주의 강대국 간 패권경쟁/ 제국주의 상호 대결에서 서방이든 중러든 어느 한 편, 어느 한 ‘진영’을 지지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 뿐 아니라 양측 모든 제국주의 국가 지배계급을 겨냥한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을 취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왔다. 제국주의 패권경쟁/ 제국주의 전쟁을 ‘자’국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국내전으로, 계급전쟁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임무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처럼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 시에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고조를 맥락으로 하여 일어났다 하더라도) 반식민지 피억압 인민의 저항투쟁/ 민족해방 전쟁을 지지하고 이에 대해 혁명적 방위주의 전술을 취하는 것 또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다. 이것이 오늘날 반제국주의 임무의 핵심 구성요소들이다. 제국주의 강대국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혁명적 방위주의, 이것이 오늘의 반제이고 21세기 제국주의 타도다!
* * * *
Ⅱ. <전진>: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대리전" 이론
2) 맑스주의 반식민지 규정
3) 민족해방전쟁 없는 오직 “대리전”뿐인 세계질서?
4)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과 “대리전” 이론
5) 민족자결권 부정의 정세인식 논리: “오늘날의 상황”에선 북한도 “대리전”?
6) “노동자 세계 혁명 전망”과 민족해방전쟁
7)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임무
한편 세력권 쟁탈과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강대국 패권경쟁 격화와 함께 제국주의 열강과 반식민지 나라 간에 충돌·분쟁도 더욱 늘어나고 있는 세계정세다. 남반구 나라들의 반식민지 성격에 대한 맑스주의적 평가분석 없이는, 즉 이들 인민이 제국주의 열강과 제국주의 독점체들에 의해 억압 · 초과착취 당하고 있는 현실 사회구성체 평가분석 없이는 현 시기 올바른 정세인식을 내올 수 없다. 또 그러한 평가분석에 따라 제국주의 공격·침탈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나라와 피억압 인민을 방어할 의무를 인식함이 없이는, 즉 혁명적 방위주의 입장을 취하지 않고는 강대국에 의한 약소국 지배·개입과 억압민족-피억압민족 모순을 여전히 주 특징으로 하고 있는 현 시기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올바른 투쟁방향을 내올 수 없다.
각각의 사회구성체 평가분석에 더해 우리는 현대 제국주의체제의 성격을 올바로 규명하는 차원에서 “다극화 신세계질서”라는 것도 비제국주의 질서가 아니라 미·중을 비롯한 복수의 제국주의 강도들이 반(半)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놓고 패권경쟁을 벌이는 동일한 제국주의 세계체제임을 밝혀왔다.
6) 현 세계질서와 레닌 제국주의론
오늘의 제국주의 세계질서는 1914년 1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으로 치닫던 세계질서와 닮아 있다. 레닌이 <제국주의론>을 통해 규명했던 그 동일한 세계질서의 귀환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영국 패권에 후발 신흥 열강 독일이 도전하며 식민지·반식민지 세력권 쟁탈과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패권경쟁 격화 속에서 제국주의 전쟁으로 치달은 그 세계질서 말이다.
물론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지난 수십 년간 여러 전변을 겪었다. 대략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현 시기 제국주의 체제는 확실히 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91년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이 절대 패권을 행사하던 세계질서와는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다. 오늘 미국은 더 이상 절대 패권국이 아니며, 오히려 굴욕적인 아프간 패주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듯이 미 제국주의의 쇠퇴와 중국의 신흥 강대국 부상이 두드러진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세계질서다.
강대국 패권경쟁은 다시 한 번 세계정치의 지배적인 특징이 되었다. 미 제국주의의 쇠퇴와 이에 대한 패권 경쟁자로서 중·러의 부상이라는 이러한 정세발전은, 우리가 광범위에 걸친 사실과 수치를 바탕으로 연구보고서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정치·경제·군사 모든 차원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이 오늘의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레닌이 당대 제국주의 분석을 통해 밝혀준 그 세계체제에 더 닮아 있다. 오늘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이 여전히 유효 타당한 이유다.
강대국 패권경쟁과 함께, 민족억압과 초과착취 같은 제국주의 체제의 본질적 지표들도 레닌 제국주의론 시절과 마찬가지다. “일극 세계질서”든 다극 세계질서든 그러한 본질적 지표들에서 다른 것이 없다. 자주파 등 다극세계질서론자들은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폐절하지 않고도 그 안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 관계 같은 지배와 예속 관계가 더 이상 성립할 수 없는” 체제를 내올 수 있다고 한다. 이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제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고, 따라서 레닌 제국주의 이론의 유효성을 부정 기각하는 주장이다.
지배와 예속, 민족억압과 초과착취 같은 제국주의 세계체제의 정치적·경제적 지표들에서 일어난 변화를 인식하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 대부분이 이제는 반(半)식민지가 되었다. 따라서 제국주의 열강들의 지배는 보통 간접적으로 이루어지며, 특정 경우에만 직접적으로, 즉 군사적 수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의연히 남아있는 것은 제국주의 열강의 본질적 지표다. 즉 세계경제와 세계정치를 지배하며 직간접적으로 타 민족들을 억압하고 (초과)착취한다는 것, 제국주의의 이 본질적 측면은 변함없이 그대로다. 제국주의 국가에 대해 레닌이 내린 다음과 같은 간결명료한 정의를 보라. “제국주의 강대국, 즉 제 민족 전체를 억압하고 금융자본 종속의 그물망으로 얽어매는 열강들.” 이 정의는 오늘 현대 제국주의 세계질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와 같은 현대 제국주의 규정에 따라 우리는 제국주의 강대국 간 패권경쟁/ 제국주의 상호 대결에서 서방이든 중러든 어느 한 편, 어느 한 ‘진영’을 지지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 뿐 아니라 양측 모든 제국주의 국가 지배계급을 겨냥한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을 취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해왔다. 제국주의 패권경쟁/ 제국주의 전쟁을 ‘자’국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국내전으로, 계급전쟁으로, 사회주의를 위한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것이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임무다. 또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처럼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 침략 전쟁 시에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고조를 맥락으로 하여 일어났다 하더라도) 반식민지 피억압 인민의 저항투쟁/ 민족해방 전쟁을 지지하고 이에 대해 혁명적 방위주의 전술을 취하는 것 또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다. 이것이 오늘날 반제국주의 임무의 핵심 구성요소들이다. 제국주의 강대국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혁명적 방위주의, 이것이 오늘의 반제이고 21세기 제국주의 타도다!
* * * *
Ⅱ. <전진>: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와 "대리전" 이론
차례
1) 억압민족-피억압민족 구분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2) 맑스주의 반식민지 규정
3) 민족해방전쟁 없는 오직 “대리전”뿐인 세계질서?
4)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과 “대리전” 이론
5) 민족자결권 부정의 정세인식 논리: “오늘날의 상황”에선 북한도 “대리전”?
6) “노동자 세계 혁명 전망”과 민족해방전쟁
7)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임무
노동운동 내 사회주의를 자임하는 좌파들 중에는 중국·러시아를 제국주의 국가로 인식하고 미·중 대결을 제국주의 간 “패권대결”이라면서도 한 축으로는 이와 다른 성격을 갖는 “다극 대립구도”로 세계질서가 재편되고 있다는 정세인식을 내놓는 조직도 있다. 대표적으로 <사회주의를 향한 전진>이 그렇다. <전진>은 이 같은 제국주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반식민지 약소국에 대한 제국주의 강대국의 도발·공격에 대해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반식민지 인민의 저항투쟁에 대해서도 방어하길 거부한다.
1) 억압민족-피억압민족 구분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
최근에 발표한 세계정세에 대한 글에서 <전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이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계질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큰 틀에서 보자면,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돼 온 세계질서가 미·중 패권대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경제력에 비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 세계질서를 더욱 뒤흔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나토를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반격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양준석, <자본주의 시대전환: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35쪽,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334&me_id=20&me_code=&type=web)
“그러므로 이후 세계질서는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이 패권대결을 펼치지만 이와 별개로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다극 대립구도가 병행하는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러시아·인도·사우디는 이미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보호주의가 맹렬히 확산하거나 극우 세력이 집권한다면, 주변 지역을 이끄는 맹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면서 미국 패권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아직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지 않지만 지역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튀르키예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리정치적 조건 때문에 미·중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면서 모든 나라가 그 구도 아래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에 덧붙여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다극 대결구도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가능케 했던 미국 유일 패권의 ‘단일한 세계질서’와는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각국이 결집하는 진영 간 대결구도로 재편된다 하더라도 역시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과 다양한 수준의 전쟁이 일상이 되고 나아가 점점 더 격화되는 격동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양준석, 같은 글, 36쪽)
새로운 세계질서에서는 미중 패권대결과 함께 “다극 대결구도” 또는 “진영 간 대결구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대결구도든 이 세계질서에서는 제국주의 국가 대 (반)식민지 나라 간 대립·모순은 없다. 이 세계질서에서는 억압민족-피억압민족도, 지배-예속 관계도, 초과착취도 없다. 패권대결을 벌이는 미·중 두 열강과 그밖에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또는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히 미칠 경우에는 미중 양 진영으로 나뉘어 “결집하는”) “여러 열강들”이 있을 뿐이다. 이 열강들은 단지 자본주의 발전 수준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인 열강들이다. 자본주의 제국주의인가, 자본주의 반식민지인가와 같은 사회구성체 수준의 차이가 아닌, 자본주의 발달 정도가 다를 뿐인 열강들로 구성된 세계질서다.
그래서 제국주의 러시아와 반식민지 인도·사우디가, 제국주의 독일·프랑스와 반식민지 튀르키예가 “여러 열강”으로 한 묶음으로 취급되고 있다. 인도·사우디, 튀르키예 모두 러시아, 독일·프랑스와는 달리 외국 독점자본이 이들 나라 경제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본수출보다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은, 그래서 외국인직접투자나 차관 또는 세계시장에서의 부등가교환으로 초과착취를 당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실제로 <전진>의 이 글에서는 “국가별 비중 비교”의 기준으로 GDP, 해외투자(FDI), 수출, 군비지출 같은 지표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지표들 어느 것도 경제적 종속과 초과착취 같은 국가 간 지배-예속 관계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게 없다. GDP는 나라의 인구 규모에 따른 경제 규모에 대해서나 말해줄 뿐,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내국 독점자본인지 외국 독점자본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단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수출 지표도 마찬가지다. 해당 나라의 경제를 외국 독점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 나라의 대외무역에서도 외국 독점자본이 지배적인 비중을 점할 것이다. 따라서 이 외국 자본의 수출액이 포함된 수출 규모로는 세계질서에서 해당 나라의 성격과 지위에 대해 밝힐 수 있는 것이 없다.
외국인직접투자 FDI도 유출 (자본수출)과 유입 (자본수입)을 비교해서 어느 액수가 월등히 더 큰 지를 조사해야 해당 국가가 초과착취를 하는 나라인지 당하는 나라인지 알 수 있는데, 위 글에서는 단지 “여러 열강들”의 FDI 유출에 대해서만 제시하고 있다. 위 인도나 사우디나 튀르키예가 해외투자로 상당 액수를 국외로 자본수출을 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월등히 더 큰 액수의 자본수입을 하고 있다면, 유출액만 가지고 독일·프랑스, 러시아 같은 제국주의 국가와 비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실 관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뿐이다. 한 국가가 해외투자를 통해 얼마간의 이윤을 얻더라도 그보다 월등히 더 큰 액수로 다른 국가의 해외투자, 즉 국내 유입 외국인투자에 대해 (이윤 본국송금, 차관 상환 등으로) 지불해야 한다면, 그러한 국가는 통상 제국주의로 간주될 수 없다. 인도/사우디/튀르키예/브라질 같은 소위 “개도국”들의 자본수출-수입 관계를 제국주의 남한의 그것과 비교해 놓은 다음 표를 보라.
표. 인도/사우디/튀르키예와 한국의 FDI 유입 및 유출 잔고, 2021년 (백만 달러 이하는 반올림)
나라 FDI 유입 잔고 FDI 유출 잔고
인도 5142억 9100만 달러 2063억 7700만 달러
사우디 2610억 6100만 1514억 9900만
튀르키예 1207억 573억 5600만
브라질 5927억 6100만 2961억 8500만
한국 2632억 5200만 5515억 4900만
1) 억압민족-피억압민족 구분 없는 새로운 세계질서?
최근에 발표한 세계정세에 대한 글에서 <전진>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과 이 전쟁에서 나타나고 있는 세계질서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큰 틀에서 보자면, 미국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돼 온 세계질서가 미·중 패권대결로 흔들리기 시작하자, 경제력에 비해 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된 러시아·인도·사우디가 자신들의 영향력을 강화할 기회를 붙잡기 위해 세계질서를 더욱 뒤흔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한편에서 보자면, 기존의 패권을 유지하려는 미국이 나토를 이끌며 우크라이나의 대리전을 적극 지원하면서 반격해 온 과정이기도 하다.“ (양준석, <자본주의 시대전환: 다시 위기·전쟁·혁명의 시대로 나아가는 세계 자본주의>, 35쪽,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334&me_id=20&me_code=&type=web)
“그러므로 이후 세계질서는 한편으로 미국과 중국이 패권대결을 펼치지만 이와 별개로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독자노선을 추구하면서 다극 대립구도가 병행하는 양상으로 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러시아·인도·사우디는 이미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다. 여기에 프랑스나 독일 같은 유럽의 주요 국가들에서 보호주의가 맹렬히 확산하거나 극우 세력이 집권한다면, 주변 지역을 이끄는 맹주로 스스로를 재정립하면서 미국 패권에서 벗어나 독자 노선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 아직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하지 않지만 지역의 맹주가 되고자 하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 튀르키예도 복병이 될 수 있다. (반면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 지역에서는 지리정치적 조건 때문에 미·중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하게 미치면서 모든 나라가 그 구도 아래로 종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에 덧붙여 여러 열강들이 보호주의에 입각해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다극 대결구도는 신자유주의·세계화·금융화를 가능케 했던 미국 유일 패권의 ‘단일한 세계질서’와는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만일 미국과 중국의 패권대결을 중심으로 각국이 결집하는 진영 간 대결구도로 재편된다 하더라도 역시 상당히 다른 질서가 될 것이다.)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과 다양한 수준의 전쟁이 일상이 되고 나아가 점점 더 격화되는 격동의 시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양준석, 같은 글, 36쪽)
새로운 세계질서에서는 미중 패권대결과 함께 “다극 대결구도” 또는 “진영 간 대결구도”가 펼쳐질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느 대결구도든 이 세계질서에서는 제국주의 국가 대 (반)식민지 나라 간 대립·모순은 없다. 이 세계질서에서는 억압민족-피억압민족도, 지배-예속 관계도, 초과착취도 없다. 패권대결을 벌이는 미·중 두 열강과 그밖에 “각자 영향력 강화를 추구하는” (또는 패권대결의 영향이 강력히 미칠 경우에는 미중 양 진영으로 나뉘어 “결집하는”) “여러 열강들”이 있을 뿐이다. 이 열강들은 단지 자본주의 발전 수준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인 열강들이다. 자본주의 제국주의인가, 자본주의 반식민지인가와 같은 사회구성체 수준의 차이가 아닌, 자본주의 발달 정도가 다를 뿐인 열강들로 구성된 세계질서다.
그래서 제국주의 러시아와 반식민지 인도·사우디가, 제국주의 독일·프랑스와 반식민지 튀르키예가 “여러 열강”으로 한 묶음으로 취급되고 있다. 인도·사우디, 튀르키예 모두 러시아, 독일·프랑스와는 달리 외국 독점자본이 이들 나라 경제에서 지배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자본수출보다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은, 그래서 외국인직접투자나 차관 또는 세계시장에서의 부등가교환으로 초과착취를 당하고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이 완전히 무시되고 있다.
실제로 <전진>의 이 글에서는 “국가별 비중 비교”의 기준으로 GDP, 해외투자(FDI), 수출, 군비지출 같은 지표들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 지표들 어느 것도 경제적 종속과 초과착취 같은 국가 간 지배-예속 관계에 대해서는 말해주는 게 없다. GDP는 나라의 인구 규모에 따른 경제 규모에 대해서나 말해줄 뿐, 경제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내국 독점자본인지 외국 독점자본인지에 대해서는 어떤 단서도 보여주지 않는다. 수출 지표도 마찬가지다. 해당 나라의 경제를 외국 독점자본이 지배하고 있는 경우라면 그 나라의 대외무역에서도 외국 독점자본이 지배적인 비중을 점할 것이다. 따라서 이 외국 자본의 수출액이 포함된 수출 규모로는 세계질서에서 해당 나라의 성격과 지위에 대해 밝힐 수 있는 것이 없다.
외국인직접투자 FDI도 유출 (자본수출)과 유입 (자본수입)을 비교해서 어느 액수가 월등히 더 큰 지를 조사해야 해당 국가가 초과착취를 하는 나라인지 당하는 나라인지 알 수 있는데, 위 글에서는 단지 “여러 열강들”의 FDI 유출에 대해서만 제시하고 있다. 위 인도나 사우디나 튀르키예가 해외투자로 상당 액수를 국외로 자본수출을 한다 하더라도 그보다 월등히 더 큰 액수의 자본수입을 하고 있다면, 유출액만 가지고 독일·프랑스, 러시아 같은 제국주의 국가와 비교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현실 관계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뿐이다. 한 국가가 해외투자를 통해 얼마간의 이윤을 얻더라도 그보다 월등히 더 큰 액수로 다른 국가의 해외투자, 즉 국내 유입 외국인투자에 대해 (이윤 본국송금, 차관 상환 등으로) 지불해야 한다면, 그러한 국가는 통상 제국주의로 간주될 수 없다. 인도/사우디/튀르키예/브라질 같은 소위 “개도국”들의 자본수출-수입 관계를 제국주의 남한의 그것과 비교해 놓은 다음 표를 보라.
표. 인도/사우디/튀르키예와 한국의 FDI 유입 및 유출 잔고, 2021년 (백만 달러 이하는 반올림)
나라 FDI 유입 잔고 FDI 유출 잔고
인도 5142억 9100만 달러 2063억 7700만 달러
사우디 2610억 6100만 1514억 9900만
튀르키예 1207억 573억 5600만
브라질 5927억 6100만 2961억 8500만
한국 2632억 5200만 5515억 4900만
이 수치들은 인도/사우디/튀르키예/브라질이 주되게 해외투자 대상 국가, 즉 월등히 자본수입국인 데 반해 한국은 주되게 해외투자 발원 국가, 즉 월등히 자본수출국임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이들 네 나라가 자본주의 세계시장에서 종속적 지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수치인 것이다. FDI 유입액이 FDI 유출액보다 월등히 크다는 것은 이들 나라 자본가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잉여가치를 뽑아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규모로 제국주의 독점체들에 의해 이들 나라가 착취당하고 있다는 표시다.
결국 전진 글의 “국가별 비중 비교”는 질적 차이, 사회구성체 차이는 무시하고 양적 발달 수준만 따지는 비교다. 그 때문에 인도나 사우디나 튀르키예가 러시아/독일/프랑스와 같은 반열의 “열강들”인 것처럼 제시되고 있다, 즉 모두 (글로벌 수준에서든, 지역 수준에서든 패권경쟁을 벌이는) 제국주의 열강들로 읽히는 비교 방식인 것이다.
이와 같이 전진의 새로운 세계질서는 여러 (제국주의) 열강들만 있고 식민지·반식민지는 없는 세계질서다.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 일상화”하지만,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나라 간의 충돌·전쟁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질서다. 그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충돌과 전쟁”이라는 것도 세력권 쟁탈과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놓고 벌이는 충돌이 아니라, 순 지정학적 이해를 둘러싼 충돌로 제시되고 있다.
“제국주의”는 누구나 이야기한다. “미 제국주의” 또는 “서방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좌익 조직들 사이에는 흔한, 공통된 관행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국주의” 범주를 맑스주의 이론에서의 제국주의 의미로 사용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런 의미를 배제한 자유주의적 방식으로 "제국주의" 범주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는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인식의 확고한 옹호자이지 않고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일 수 없다고 본다. 레닌을 비롯한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세계가 한줌의 제국주의 국가와 세계 인구 다수가 살고 있는 종속국 ㅡ 식민지·반식민지 나라 ㅡ 으로 나뉘어 있다고 설명해왔다.
“제국주의는 한줌의 강대국들에 의한 전 세계 민족들의 억압이 누적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맑스주의자들은 당시에 스스로를 이렇게 칭했다 – 인용자] 강령에서의 초점은, 모든 민족을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구분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에 바로 제국주의의 본질이 있는데,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카우츠키는 이것을 기만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 구분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시각에서나, 자본주의 하에서 독립 민족들 간의 평화적 경쟁이라는 속물적 유토피아의 시각에서 볼 때는 의미 없는 것이지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투쟁의 시각에서 볼 때는 극히 유의미한 것이다.” (레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자결권>)
그리하여 레닌은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의 구별이 맑스주의 강령의 중심 지표가 되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사회민주주의 강령은 이 소부르주아 기회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항하는 균형추로서 다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즉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제 민족이 나뉘어 있는 것은 제국주의 하에서는 기본적이고 중요하며 불가피하다는 전제 말이다.” (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2) 맑스주의 반식민지 규정
제국주의 세계체제에서 피억압 민족으로는 식민지만이 아니라 반(半)식민지 나라도 있다. 반식민지는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사실상 강대국에 종속된, 그리고 경제적으로 제국주의 독점체에 의해 초과착취 당하는 나라다. 오늘 “남반구”, “개도국”, “제3세계” 등으로 불리는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의 나라들 대부분이 그러한 반식민지다. 이러한 유형의 나라들은 최근 현상이 아니라 레닌 <제국주의론> 시절부터 존재했다. 1916년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에서 레닌은 “중국, 페르샤, 터키”를 그 같은 반식민지의 예로 들었다. 또 <<제국주의론>>에서는 이렇게 썼다.
“‘반식민지’ 국가에 대해 말하자면 이 나라들은 자연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과도적 형태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금융자본은 온갖 경제관계와 온갖 국제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큰, 결정적이라 말할 수 있을 정도의 세력이기 때문에, 완전한 정치적 독립을 누리고 있는 국가들까지 종속시키는 능력이 있고, 실제로도 종속시키고 있다. 우리는 곧 뒤에서 그 실례를 살펴볼 것이다. 하지만 종속된 나라들에게서 민족의 정치적 독립까지 뺏는 종속 형태가 금융자본에게 가장 큰 ‘편리함’과 가장 큰 이윤을 준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점에서 반식민지 나라들은 ‘중간 단계’의 전형적인 예다. 나머지 세계가 이미 분할돼버린 금융자본의 시대에 이들 반 종속 나라들을 전취하기 위한 투쟁이 특히 격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당연하다.” (레닌, <제국주의론>)
이어서 레닌은 몇 쪽 뒤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정책을 논함에 있어, 금융자본과 그에 조응하는 대외정책 ㅡ 이것이 바로 강대국들의 경제적·정치적 세계분할을 위한 투쟁으로 이어진다 ㅡ 이 국가 종속의 일련의 과도적 형태들을 만들어낸다는 것을 유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식민지 보유국과 식민지라는 이 두 개의 기본적인 국가집단들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는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실제로는 금융상·외교상으로 종속의 그물에 얽매어 있는 각양각색의 종속국들도 이 시대에 전형적이다. 이 형태들 중 하나인 반식민지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지적했다. 또 다른 형태의 예로 아르헨티나를 들 수 있다.” (<제국주의론>)
2차 세계대전 이후 반식민 봉기 물결, 영국·프랑스 제국주의의 쇠퇴와 미국의 부상으로 대부분의 식민지들은 형식상 독립국이 됐고 자본주의 반식민지로 전화됐다. 하지만 자본주의 반식민지들은 기본적으로 여전히 금융적 예속·억압 하에 있다는, 제국주의 열강 및 독점체들에 종속, 착취 받고 있다는 것을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분명히 했다.
반식민지도 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이라는 제국주의 지배-종속 관계의 본질에서 식민지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은 오류인데, 그 차이란 간단히 말해서 반식민지 나라들의 형식상 정치적 독립 및 이로부터 나오는 줄타기 여지, 즉 강대국들 사이에서 운신 폭을 더 높은 정도로 가진다는 차이다. 이는 미국·중국·EU·러시아·일본 등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현 시기와 같은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자주파가 호혜/평등/자주의 다극화에 힘을 실어주는 정권들이라고 지목한 브라질 룰라 정권과 사우디 정권이 오늘 그러한 예다. 또 전진이 러시아, 독일·프랑스와 함께 “세계질서 재편을 추구하는 적극적인 행위자로 나서고 있”는 국가들로 꼽은 인도, 사우디, 튀르키예도 그러한 줄타기 수위를 높이고 있는 반식민지 부르주아지의 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는 제국주의 국가들과 (반)식민지 나라들로 나뉘어져 있다는 규정은 언제나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의 근간이었다. 트로츠키가 쓴 제4인터내셔널 강령적 선언문에서는 계급적 성격이 서로 다른 나라들로 세계가 나뉘어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인지, 식민지 국가인지, 노동자 국가인지, 국가의 계급적 성격 및 그 국가들 간의 상호관계와 각각의 내적 모순을 노동자들에게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세에서 올바른 실천적 결론을 도출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제국주의 세계체제는 그 형태에서 지난 세기에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그 본질에서는 여전히 독점체들과 강대국들이 지배하는 동일한 체제로 남아있다. (반)식민지 세계의 인민들과 제국주의 중심부의 민족 소수자들 및 이주자들에 대한 경제적 초과착취에 의존하는 동일한 체제인 것이다. 제국주의 (초과)착취와 민족억압은 여전히 현대 제국주의의 핵심 특징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패권경쟁도 여전히 세력권 쟁탈과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지,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들이나 자유주의 국제정치 전문가들이 말하는) 무슨 순 지정학적 경쟁 같은 것이 아니다. 이 같은 (반)식민지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패권경쟁 없는 제국주의는 없다. 따라서 제국주의 지배와 민족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은 혁명적 계급투쟁 강령의 필수 요소였고 지금도 여전히 필수 요소다.
이 점은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국가 간의 충돌 시에 특히 그렇다. 혁명과 함께, 전쟁은 언제나 사회주의 조직들에게 가장 큰 시험대였다. 국가 간 또는 진영 간의 무력충돌은 모든 조직과 정파들에게 자신의 이론과 강령을 구체적인 전술과 행동으로 옮기도록 강제한다. 이 점을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해당 조직의 경향을 평가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민족 방어에 대한, 그리고 식민지에 대한 그 조직의 태도다. 실천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태도 말이다."
3) 민족해방전쟁 없는 오직 “대리전”뿐인 세계질서
그러나 피억압민족/ (반)식민지 없는 전진의 세계질서에서는 그에 따라 민족 투쟁도, 민족해방전쟁도 없다. 그냥 모두 강대국의 “대리전”일 뿐인 세계질서다. 그래서 제국주의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 저항도 간단히 “대리전”이라고 한다. 전쟁에 관련된 제 세력 각각에 대한 구체적인 계급적 성격 분석도 없고, 억압 전쟁과 해방 전쟁의 구별도 없다. 그래서 전진의 세계질서에서는 러시아의 제국주의 식민전쟁뿐만 아니라 반식민지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방위전쟁도 반동적 전쟁이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억압전쟁에 대항하는 약소국의 전쟁 일체가 다 “대리전”이며, 따라서 어떤 진보적 요소도 없는, 국제 노동자계급이 지지할 가치가 없는 다 반동적 전쟁일 뿐이다. 그리고 언제나 대안은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라고 한다. 제국주의 강대국의 억압 전쟁에 대항하는 반식민지 나라의 해방 전쟁에서 반식민지 나라를 편 들길 거부하고 해방 전쟁을 지지하길 보이콧 하는 ‘중립’ 기권주의 입장으로 ‘단결’하자고 한다. 사실상 제국주의 억압전쟁을 돕는 입장으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도모하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대리전” 주장과 ‘중립’ 기권주의 입장에 반대하여,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구체적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줄곧 밝혀왔다.
“이 전쟁은, 러시아 측에서는 반식민지 약소국을 강탈하고 세력권으로 편입시키려는 제국주의 전쟁이고,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제국주의 강도 전쟁에 대항하는 피억압 인민의 조국방위 전쟁, 정의의 민족 전쟁이다. 서방측에서는 강대국 패권경쟁에서 상대방 러시아를 약화시키고자 마름 젤렌스키를 지원하는 제국주의 패권쟁투의 일환이다. 따라서 러시아 측의 제국주의 전쟁과 서방 측의 제국주의 패권쟁투 둘 다에 대한 혁명적 패배주의 전술, 우크라이나 측의 민족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방어주의 전술, 이것이 이 전쟁에서 혁명적 노동자계급의 전술 방침이다.
반대로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는 이 전쟁에서 서방-러시아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의 요소를 절대화하는 한편 우크라이나 민족 전쟁의 요소는 부차화 내지 부정하고 나아가 “대리전”이라며 우크라이나 피억압 인민의 민족 전쟁에 대한 혁명적 방어주의 전술을 부정한다. 국제 노동자계급은 구체적으로 이러한 전술 (이러한 혁명적 패전주의 + 혁명적 방어주의의 이중 전술)을 통해 진정한 혁명적 단결을 이룰 수 있다. ‘대리전’이라며 민족 전쟁의 계기를 기각하고 우크라이나 인민의 항전에 대해 러시아·서방에 대해서와 동일하게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은 국제적으로 노동자계급을 단결시키는 길이 아니라 단결을 파괴하는 길이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의 대표자로서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일관되게 옹호한 레닌이 아군 내에서 맑스주의를 희화화시키고 실추시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와 싸워야 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우리는 21세기 들어와 20여 년간 세계정세의 주요 발전동향을 인식하는 데 있어 레닌의 제국주의 이론을 비롯한 맑스주의적 제국주의 분석의 결정적 중요성을 항상 강조해왔다. 이러한 21세기 정세발전의 가장 중요한 표현 중 하나가 강대국 패권경쟁의 극적 고조와 함께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나라 간 충돌·분쟁이 증가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에 따라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 및 그로 인한 국가 간 대결·분쟁의 구체적 성격을 인식하지 않고서는 현 세계정세에서 올바른 방향을 갖는 것이 불가능함을 항상 강조해왔다.
많은 좌파 조직들이 우크라이나의 반식민지 성격을 인정하길 거부하고, 그에 따라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해왔다. 이러한 입장의 연장선에서 이들 좌파 조직 중 적지 않은 부분이 "북한 비핵화"를 앞세운 미국 (및 남한)의 북한 침공 시에 반식민지 북한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서도 "대리전"이라며 방어하길 거부할 가능성에 대해 우리는 거듭 경고해왔다.
좌파 조직들의 이러한 “대리전” 이론은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시대에 민족자결권/ 민족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며 모든 약소국들도 다 제국주의 양대 진영 중 한 진영으로 편입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 과거 제국주의적 경제주의자들의 정세인식 논리에 닿아 있다. 실제로 “[약소국의]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이 사실상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오늘날의 특징”이라고 주장하는 전진의 다음 글을 보라.
“오늘날의 상황은 어떤가?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이 미국 제국주의 진영 대 중국·러시아 제국주의 진영 사이에서 중위, 하위 파트너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강력한 제국주의 모국이 아닌 경우에도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전체적으로 볼 때 제국주의 진영의 한 부분을 떠맡도록 강요되고 있다.
러시아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민족해방 구호를 살펴보자. 미국과 서방 제국주의로부터 독립적일 뿐만 아니라 그것에 맞서면서, 사회주의 혁명의 한 부분으로 러시아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민족자결’ 요구는 사실상 지금의 우크라이나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실제로 존재하는 건 ‘민족자결’을 앞세워 조국방위 전쟁을 제기하지만, 미 제국주의 진영의 한 사슬을 이루면서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의 흐름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본적으로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을 미·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지지하지 않는다. 민족자결권을 내건 흐름에 대해 접근할 때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핵심은 그 흐름이 피억압 대중의 주도권과 자주성을 반영하느냐 여부다. 1970년대 베트남 민족해방전쟁을 지지하는 반면,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이 내거는 위선적인 민족자결을 지지하지 않는 핵심 이유다.
북한 체제가 제기하는 ‘핵무장’도 그러한 맥락 위에 놓여 있다. 북한만이 아니라 중동,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볼 수 있듯이,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이 사실상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오늘날의 특징이다. 2003년 이라크 북부의 쿠르드족 독립운동이 단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이라크 정부의 탄압으로부터 민족자결을 확보하고자 했던 그들은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에 협력해 약간의 자치권을 확보하는 노선을 채택했다.
반대로 오늘날 진정으로 민족자결권을 실현하는 전망은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혁명의 사회주의 혁명으로의 성장 전화라는 연속혁명의 정식은 노동자계급 주도로 민족자결권의 완전한 실현을 세계 사회주의 혁명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다는 연속혁명 전망으로까지 범위를 확장해야 한다.“ (최영익, <평화로운 한반도를 위해, 핵무장이 아닌 평화를 향한 세계 노동자 총단결!>, http://socialism.jinbo.net/bbs/board.php?bo_table=news&wr_id=238&sfl=wr_subject%7C%7Cwr_content&stx=%ED%8F%89%ED%99%94%EB%A1%9C%EC%9A%B4+%ED%95%9C%EB%B0%98%EB%8F%84%EB%A5%BC&sop=and&page=1))
여기서도 억압민족-피억압민족, 제국주의 지배-예속 관계는 없고, 따라서 (반)식민지 나라도 없다. “강력한 제국주의 모국”은 있는데 식민지·반식민지는 없다. “제국주의 진영의 한 부분을 떠맡도록 강요되고 있”는 “중위, 하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만 있을 뿐이다.
‘제국주의’에 대해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제국주의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가 피억압 인민에 대한 민족억압과 초과착취임을 망각하고 있다. 아니, “오늘날의 상황”을 내세워 부정하고 있다. 전진이 말하는 “오늘날의 상황”은 모든 나라가 제국주의 양대 진영 중 하나로 편입되는,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 대 반식민지 나라 간의 모순과 대립·충돌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 세계질서다.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중위, 하위의 자본주의 국가들뿐인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민족자결권도 마찬가지다. 이들 국가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은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되는 게 오늘날의 특징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민족 전쟁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대리전일 뿐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제국주의 양대 진영 패권전쟁 상황에서는 민족자결도, 민족해방전쟁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따라서 억압민족-피억압민족의 구분과 민족자결권 지지를 강조한 레닌 제국주의론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유효하지 않으며, 시대에 뒤져 낡았다. 이와 같이 전진의 현 정세인식은 사실상 현대 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에 입각해 있다.
4)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과 “대리전” 이론
과연 레닌 제국주의론이 시대에 뒤진 이론인지, 아니면 전진의 “오늘날의 상황” 인식이 맑스주의를 희화화시키는 정세인식인지 레닌의 다음과 같은 언급들을 보자.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자결권/ 민족해방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논리에 대해 반박하는 내용이다.
“하나의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해방 투쟁이 어떤 조건 하에서는 다른 강대국에 의해 똑같이 제국주의적인 목적을 위해 이용될 수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가 민족자결권을 인정하길 거부하는 일이 있을까? 그런 일은 일어날 법 하지 않다. 부르주아지가 정치적 기만과 금전적 약탈을 목적으로 공화주의 슬로건들을 이용하는 수많은 경우들 (예를 들어 라틴 나라들에서처럼)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자가 자신의 공화주의를 거부하는 일이 일어날 법 하지 않은 것과 꼭 마찬가지로 말이다.” (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제국주의 시대의 민족전쟁은 유럽에서조차도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제국주의 시대’는 현 전쟁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되게 했고, 불가피하게 (사회주의가 승리할 때까지는)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을 낳는다. 이 ‘시대’는 현 강대국들의 정책을 철저히 제국주의인 것이 되게 했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시대’가 민족전쟁의 가능성, 이를테면 약소국들 (병합된 나라이거나, 민족적으로 억압받는 나라)이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여 벌이는 민족전쟁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결코 — 동유럽의 대규모 민족운동을 배제하지 않는 것처럼 — 아니다....
우리가 ‘민족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그릇된 가정을 상세히 다루었던 것은, 단지 이론적인 면에서 틀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제3인터내셔널의 건립이 오직 맑스주의의, 속류화 되지 않은 맑스주의의 토대 위에서만 가능한 이 시점에서 ‘좌파’가 맑스주의 이론에 대해 안이한 태도를 보인다면 이는 몹시 통탄할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천적 정치면에서도 이러한 오류는 매우 해롭다. 왜냐하면 반동적 전쟁 이외에는 다른 어떤 전쟁도 가능하지 않다는 단정 하에 ‘군비철폐’라는 어리석은 선전을 낳기 때문이다. 또 그 오류는 민족운동들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훨씬 더 어리석고 완전히 반동적인 태도의 원인이다. 유럽의 ‘강대’국 민족, 즉 약소국이나 식민지의 인민을 억압하는 민족의 성원들이 박식한 체 하며 ‘민족전쟁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고 공언할 때 그와 같은 무관심은 배외주의가 된다!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전쟁은 가능하고 개연성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며,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다.” (레닌, <유니우스 팜플렛에 대하여>)
“그러나 세계의 민족 대다수에 대한 제국주의적 억압자들인 우리 유럽인들이 몸에 밴 야비한 유럽 배외주의 (쇼비니즘)로부터 ‘식민지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은 많은 경우 피억압 민족들의 민족 전쟁 또는 민족 봉기다. 제국주의의 주요한 특징 중 하나는, 가장 낙후된 나라에서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속화시키고, 그럼으로써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을 확대, 격화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며, 이 사실로부터 불가피하게 제국주의는 많은 경우 민족 전쟁을 낳게 마련이라는 결론이 뒤따른다. 위에 인용한 ‘테제’를 자신의 소책자에서 옹호하고 있는 유니우스 [로자 룩셈부르크]는, 제국주의 시대에는 어느 한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어떠한 민족 전쟁도 그 강대국과 경쟁하고 있는 타 제국주의 강대국의 간섭을 초래하며, 그에 따라 모든 민족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도 옳지 않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지만, 언제나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1900년에서 1914년 사이의 많은 식민지 전쟁이 그러한 경로를 밟지 않았다.”
“제국주의 하에서의 민족 전쟁의 가능성 일체를 부정하는 것은 이론상으로 틀렸고, 역사적으로 명백히 오류이며, 실천적으로는 유럽 배외주의에 다름 아니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을 억압하는 민족에 속하는 우리가 피억압 민족에게 당신들은 ‘우리’ 민족에 대항하는 전쟁을 벌이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해야 한다는 셈이다!” (레닌,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군사 강령>)
“제국주의 강대국들 (즉, 모든 민족들을 억압하고 그들을 금융자본에 대한 종속의 그물 속으로 얽어매는 열강들) 간의 전쟁, 또는 그들 강대국과의 동맹 속에서 벌이는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바로 1914~1916년 전쟁이 그러하다. 이러한 전쟁에서 ‘조국 방위’는 기만이고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시도다.
피억압 (예를 들어 식민지) 민족이 제국주의 국가, 즉 억압 국가에 대항하는 전쟁은 진정한 민족 전쟁이다. 그러한 전쟁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 억압 국가에 대항하여 피억압 민족이 수행하는 전쟁에서 ‘조국 방위’는 기만이 아니다. 사회주의자는 그러한 전쟁에서의 ‘조국 방위’에 반대하지 않는다.
민족자결은 완전한 민족해방과 완전한 독립을 위한 투쟁, 병합에 반대하는 투쟁과 동일한 것이며, 사회주의자는 — 사회주의자이기를 그만두지 않는 한 — 봉기나 전쟁에 이르기까지 그 형태가 어떠하든 그러한 투쟁을 거부할 수 없다.” (레닌, <맑스주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우리는 현대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 반식민지의 부르주아지/지배계급이 일차적으로 강대국 전쟁의 하수인으로 역할하는 그런 대리전쟁이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은 현 강대국 패권경쟁 정세의 주요 특징 중 하나일 뿐이다. 왜냐하면, 동시에 그러한 패권경쟁은 남반구 “제3세계”에서, 즉 반식민지 세계에서 세력권을 확대하려는 제국주의 열강의 도발·공격 몰이를 가속화하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은 피억압 인민에 대한 더 많은 공격을 유발하며, 따라서 대리전만이 아니라 해방전쟁의 증가도 유발한다.
실제로, 21세기 들어 지난 20년은 제국주의 열강의 남반구 나라들에 대한 군사적 공격과 점령으로 점철된 시간이다. 2001년 이래 미국의 아프간 점령전쟁과 2003년 이래 이라크 점령전쟁, 2000년을 전후로 한 러시아의 두 차례 체첸 인민에 대한 전쟁과 2015년 이래 시리아 인민에 대한 전쟁, 최근 세 차례의 가자 전쟁 (2009, 2012, 2014년)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점령전쟁, 말리를 비롯한 아프리카 나라들에 대한 프랑스·EU 군대의 군사 개입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또 다른 예는 이란·북한과 같은 반식민지 국가에 대한 미국의 도발·공격이다. 2007년 이래 서방이 지원하는 AMISOM (아프리카연합 소말리아임무단)의 소말리아 군사 개입도 제국주의 열강에 봉사하는 반동적 점령전쟁의 한 예다.
이와 같이, 패권경쟁 격화 속에서 강대국들이 지역 분쟁을 대리전으로 이용하려는 책동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반구 반식민지 나라들에 대한 도발·공격도 증가한다.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속에서 강대국과 반식민지 나라 간의 모순,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 간 모순도 격화하기 때문이다. 파이가 작아지는 자본주의 쇠퇴기에 모든 착취자들은 불가피하게 남반구의 노동자·피억압자에 대한 공격을 강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한 결과로, 향후 어느 하나의 대리전 (대만?)이 분명히 있을 것이지만, 우리는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피억압 인민의 민족방위전쟁과 같은 민족해방전쟁이 증가하는 것을 훨씬 더 현실성 있는 현상으로 예상한다.
우리의 예상은 역사적 경험에 근거한 것이다. 1919년에서 1939년 양차 대전 사이의 전간 기간을 보자. 그 당시에 지배적인 특징은 무엇이었나? 정당한 민족방위전쟁이었는가, 아니면 제국주의 대리전쟁이었는가? 분명히 그것은 전자였다. 물론, 당시도 제국주의 상호간의 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민족방위전쟁에 ‘대리’의 요소가 끼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 시기에 일어난 거의 모든 민족전쟁들에서처럼 그러한 사실이 이 전쟁들의 민족전쟁 성격을 없애지는 못했다. ‘대리’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으로 이 전쟁들이 대리전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바뀔 수 있고, 우리가 2월 24일 이래로 반복해서 말했듯이 서방의 직접 군사개입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성격을 바꿔놓을 수 있으며, 그리고 그에 따라 우리의 전술도 바꿔놓을 수 있다. 그러나 내일 있을 수 있는 사태발전에 근거하여 오늘에 대한 우리의 전술을 정한다면, 이는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당시 예를 들어, 1930년대 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선 반식민지 중국의 저항 (항일전쟁)에 미 제국주의가 무기 지원을 포함한 물질적 지지를 주고 패권경쟁 상대방 일본에 대해 초강력 경제제재를 가한 것을 떠올려보라. 중국의 항일전쟁이 태평양에서 미-일 간 제국주의 패권쟁투 격화를 배경으로 한 전쟁이고 그와 같이 다른 강대국 (미국)의 개입이라는 대리 요소가 끼어 있었지만, 그럼에도 이 전쟁이 민족 전쟁의 성격을 잃고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이 된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예로, 2차 세계대전 동안에 동남아시아와 유럽에서의 다양한 (항일, 항독) 파르티잔 투쟁들에 대한 서방 (영·프·미) 제국주의의 지지를 보라. 1935-36년 이탈리아 제국주의에 맞선 에티오피아의 항전에 대한 서방 및 나치 독일 제국주의의 지지도 보라. 이러한 종류의 강대국 개입으로 이 민족 전쟁들의 정당한 성격이 제거되고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이 됐는가? 이 전쟁들은 레닌과 트로츠키의 전통에 있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했던 민족해방 투쟁들이었다.
반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대리전”으로 규정했던 전쟁의 예를 보자. 유니우스 팜플렛에서 로자 룩셈부르크는 1차 세계대전에서 세르비아의 경우를 예로 들어 제국주의 시대에 민족 전쟁은 가능하지 않으며 모두 대리전으로 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를 보였다. 레닌은 이러한 일반화에 대해 반박했지만, 세르비아가 영/프/러 제국주의 진영의 대리전쟁을 수행하고 있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했다. 당시 세르비아 대리전의 배경이 되었던 1차 세계대전은 모든 강대국이 참전한, 즉 세계인구의 4분의 3이 이 재앙의 영향을 입은 세계 전쟁이었다. 당시 세르비아 군은 발칸 반도에 군대를 파견 배치한 연합국 (영국/프랑스/러시아) 지휘 하에 연합국 군대의 일부로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싸웠다.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이 된 것이다. 영/프/러 제국주의 진영의 세르비아 지지, 개입은 무기 지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군대를 투입하여 직접 군사개입을 하고 이 군대에 세르비아 군을 편입시켜 직접 전쟁을 치른 것이라는 점에서 세르비아로서는 영/프/러 연합국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이 됐다.
이것을 전진이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전쟁이라고 평가한 우크라이나 민족방위전쟁과 대비해보라. 오늘, 무기 지원을 넘어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배치하고 있는 서방 열강은 아무도 없다. 이러한 종류의 군사원조를 받는다고 우크라이나 군대가 미군이나 나토군 지휘 하에 그 군대의 일부로 싸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쟁 전부터 젤렌스키 정부가 친서방 이해를 대변하고 우크라이나가 사실상 서방 진영과의 동맹 관계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진의 평가처럼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과 패권‘경쟁’에서 제국주의 한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는 것은 명백히 구별되어야 한다. 여전히 이 전쟁에서 러시아 대 서방 간에는 패권 ‘경쟁’이지 패권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패권 ‘경쟁’과 패권 ‘전쟁’은 냉전과 열전이 다른 것만큼이나 다르다. 이것이 혼동되어선 안 된다. (여전히 이 전쟁은 러시아-서방 제국주의 상호 간 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전쟁이지, 러시아와 서방 간의 ‘전쟁’이 아니다. 적어도 현재로선 아니다. 러시아와 서방 간의 ‘전쟁’이라면 준 세계대전, 사실상 3차 세계대전이라는 얘기가 된다).
서방-러시아 패권경쟁에서 젤렌스키 정부가 한 축으로 서방 제국주의의 이익을 대변하여 러시아와 싸우고 있다 하더라도 여전히 전쟁의 객관적 조건이 위와 같은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 전쟁에서 반식민지 우크라이나의 민족자결권은 무의미해지거나 부차화 될 수 없다. 이는 위에서 예로 든 미국의 군사 지원을 받는 친미 매판 장개석 정부가 당시 미-일 패권경쟁에서 미 제국주의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며 한 축으로 미 제국주의의 이익을 대변하여 일본과 싸웠다 하더라도 중일전쟁에서 반식민지 중국의 민족자결권이 결코 부차화 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도 이 전쟁은 일-미 제국주의 상호 간 패권‘경쟁’을 배경으로 한 일본과 중국 간의 전쟁이지, 일본과 미국 간의 ‘전쟁’이 아니다. 이 중일전쟁 이후 1941년 12월에 일본과 미국 간의 태평양 전쟁이 발발할 때까지는 말이다). 당시 일본의 침략에 맞선 중국 인민이 그랬듯이, 우크라이나 인민은 미국/서방 제국주의가 시켜서 푸틴의 침공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민족자결권을 비롯한 그들의 기본적인 민족적 권리를 지키고자 싸우는 것이다.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지배계급”의 그 어떤 반동적인 목표를 공유해서 러시아의 침략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점령군을 패퇴시키고 점령된 영토를 해방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전진은 이와 같이 패권경쟁에서 제국주의 한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는 것과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정부가 수행하는 전쟁을 미·서방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지지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제국주의 한 진영의 군사 원조를 받고 동맹으로 복무한다는 것이 민족 전쟁을 제국주의 대리전쟁으로 전화시킨다면 역사상 민족 전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중일전쟁에서 미국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장개석 정부가 ‘자’국 미국 제국주의의 군사 원조를 받고 미-일 패권경쟁에서 ‘자’국 미국 제국주의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함에도 불구하고 장개석 정부를 지도부로 하는 중국의 민족전쟁을 방어했다. “대리전에 불과하다”며 ‘중립’ 기권주의 입장을 취하는 것에 반대하여 중국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을 지지한 것이다. 그들이 틀렸는가? 이 중일전쟁에서 일본 제국주의와 ‘자’국 미 제국주의 둘 다에 반대해 양측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그리고 반식민지 중국에 대한 혁명적 방위주의, 이러한 이중 전술을 취한 것은 잘못된 것인가? 그리고 우리는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들의 민족 전쟁과 2차 세계대전 동안의 여러 항일·항독 민족 투쟁들, 또 영국·프랑스 등 서구 열강들이 이탈리아에 제재를 가했던 1935-36년 에티오피아 전쟁 등에 대해서도 같은 질문을 할 수 있다. 제4인터내셔널은 이 모든 정의의 민족방위전쟁에 대한 지지를 이어간 데서 절대적으로 옳았다.
5) 민족자결권 부정의 정세인식 논리: 북한도 대리전?
이 문제를 길게 얘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는 전진이 북한에 대해서도 “지배계급이 추구하는 민족자결권이 사실상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된다며 미 제국주의의 도발·공격에 맞서 반식민지 북한의 민족자결권을 방어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비핵화”를 앞세운 미 제국주의의 북한 무장해제 압박·공격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할 권리에 대해서도 전진은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흐름”으로 규정하며 방어하길 거부하고, 나아가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요구한다.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이 미국 제국주의 진영 대 중국·러시아 제국주의 진영 사이에서 중위, 하위 파트너로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정세에서는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흐름”만 존재할 뿐, 민족자결권/ 민족해방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제국주의 러시아의 침공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는 좌파 조직들이 그 연장선에서 북한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을 취할 가능성에 대해 경고해왔다. 반식민지 북한의 민족자결권에 대한 전진의 입장이 위와 같은 것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일진대, "북한 비핵화"를 앞세운 미국 (및 남한)의 북한 침공 시에 반식민지 북한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서도 "대리전"이라며 방어하길 거부하지 않겠는가!
패권경쟁에서 제국주의 한 진영의 동맹으로 복무하는 것을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규정하는 전진이 김정은 정부를 지도부로 하는 북한의 민족전쟁을 중러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고 규정하며,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리라는 것은 논리적으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우크라이나의 민족전쟁에 대해서 그러듯이 말이다.
우리는 북한이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한 미 제국주의의 북한 침공 시에 중국 제국주의가 북한에 대한 무기 지원에 그치지 않고 직접 군사개입을 할 경우, 즉 군대를 북한에 투입하고 중국-북한의 합동군 체제로 싸우는 경우다. 그 경우 이 전쟁은 양대 제국주의 간 전쟁이 되고 북한은 더 이상 민족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된다. 이 가능성은 분명히 있지만, 그보다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서방이 직접 군대를 투입해 러시아와의 전쟁을 촉발하는 위험까지 감수하고 싶어 하지는 않는 것처럼 중국도 직접 군사개입이 아닌 무기 지원에 주력할 가능성이 크다. 적어도 전쟁 첫 단계에서는 그렇다. 설사 어느 가능성이 더 크다고 가정하지 않더라도, 지금으로선 무기 지원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전진은 이 두 경우를 따지지도 분별하지도 않고 오로지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것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대리전”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없다는 논리다. 우크라이나의 민족방위 전쟁에 대해서 이 두 경우를 구별하지 않고 간단히 “대리전”이라며 보이콧하는 것으로 보면 북한에 대해서도 이 논리가 이어질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한편 제국주의의 반식민지 침략 전쟁이 아니라 제국주의 양 진영 간의 전쟁, 즉 미일한 대 중러 간의 전쟁 시에 반식민지 북한이 중러 진영으로 참전하는 경우도 예상할 수 있다. 이 경우도 북한이 제국주의 대리전을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다. 3차 세계대전의 맥락이 아니고서는 미일한 대 중러북의 동시 전쟁을 상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이 전쟁은 세계전쟁일 것이고, 따라서 제국주의 양 진영 간의 전쟁과는 별개의 ‘북한 민족전쟁’이라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구조일 것이다.
최근 윤석열 정부의 “한미일 동맹 완성”으로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구도가 다시 첨예하게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 구도를 실제 “전쟁” 구도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단지 ‘대립’이 아니라 실제 한미일 대 북중러 간의 ‘전쟁’이라면 그것은 여지없이 세계대전(의 한 부분)일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대리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될 것이고, 북한의 민족자결권은 더 이상 의미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와 함께 ‘반식민지 북한 방어’가 아니라,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북한에 대해 다른 모든 교전국에 대해서처럼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을 가져가야 할 것이다.
그러나 향후 전쟁을 모두 이러한 미일한 대 중러북 동시 전쟁으로, 사실상 3차 세계대전으로 귀속시킬 수 없다면, 그 이전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 대 반식민지 나라 간의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배제해선 안 된다. 이러한 제국주의 대 반식민지 간 전쟁의 계기를 배제하고 다 제국주의 양 진영 패권전쟁으로 귀착, 환원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패권 ‘경쟁’과 패권 ‘전쟁’을 동일시할 수 없는 것처럼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과 한미일 대 북중러 ‘전쟁’을 동일시할 수 없다. ‘대립’이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 둘 간의 구별을 없애지 않는다. 그러나 전진은 중위, 하위의 모든 자본주의 국가들이 “제국주의 패권 진영의 일부로 편입”되는 “오늘날의 상황”에서는 이러한 ‘대립’과 ‘전쟁’을 구별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북한은 이 ‘대립’ 단계에서 이미 (중러 제국주의 진영의 군사 원조를 받으며 동맹으로 복무하는 수준을 넘어)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것으로 규정된다. 아직 전쟁도 아닌 단계에서 이미 “대리전”을 하는 것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대립’을 ‘전쟁’으로 귀속 환원하지 않고 ‘대립’ 단계를 독립적인 계기로 인정한다면, 이 당면의 ‘대립’ 정세는 북한이 “제국주의 패권전쟁에서 한 축을 차지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 정세가 아니다. 이 반식민지 나라 대(對) 제국주의 국가 (미국) 간의 충돌·전쟁이 문제가 되는 정세다. 즉 한미일 대 북중러 동시 세계대전이 아니라, 미국 (및 한국)의 북한 공격·침공이 문제가 되는 정세다. 따라서 이 당면의 ‘대립’ 정세에서는 북한의 대리전이 아니라 북한의 민족자결권과 민족방위전쟁이 문제가 된다. 전진은 이 계기를 무시하고 제국주의 양 진영 간 전쟁에 모두 귀속시켜 대리전 이외에 민족 전쟁의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 ‘대립’ 정세에서 일어날 수 있는 미 제국주의의 (또는 제국주의 한미동맹의) 북한 침공 시에 미국의 (또는 미·한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 반동적 전쟁이고, 북한의 전쟁은 해방을 위한 전쟁, 진보적 전쟁이다. 이 전쟁에서 김정은 정부가 군사 원조를 받으며 중러 제국주의 진영의 이해를 한 축으로 대변하며 싸운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은 친 중러제국주의 김정은 자본가정부에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주지 않고서 이 해방 전쟁을 방어하지만 말이다. 여기서는 우리가 우크라이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처럼, “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북한을 방어하라! 미·한 제국주의에 패배를! 미·한 제국주의와 중 제국주의 모두에 맞서자!”가 구체적 정세에 대한 구체적 방침이다. 반대로 전진이 우크라이나 민족방위전쟁에 대해 취했던 태도처럼, 북한 민족방위전쟁에 대해 “제국주의 진영을 대변하는 대리전에 불과”한 “반동적” 전쟁이라고 규정하고 ‘중립’ 기권주의 입장을 취하는 ㅡ 사실상 북한에 대해서도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는 ㅡ 것은 제국주의 억압전쟁을 돕는, 사회제국주의에의 투항이다.
현 세계질서에서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제국주의 패권전쟁”으로 귀속시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논리는 이와 같은 대리전 이론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 시기에 민족자결권/ 민족해방전쟁은 가능하지 않다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은 레닌 제국주의론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 현대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도 틀렸는데, 왜냐하면 오늘날과 같은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 패권경쟁 격화 정세에서 민족전쟁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노획물이 줄어드는 자본주의 쇠퇴기에 제국주의 간 패권경쟁도 가속화함에 따라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나라 간의 모순·대립도 격화할 것이며 그에 따라 민족자결권을 위한 투쟁/ 민족해방 전쟁도 더 한층 촉발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 미중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또는 서방 대 중러 간 제국주의 세력권 쟁탈전 격화 정세는 남반구 반식민지 세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민족해방전쟁을 더욱 더 유발할 것이다.
6) “노동자 세계 혁명 전망”과 민족해방전쟁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은 실천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난관을 조성하고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해칠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혁명을 희화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전진은 “사회주의혁명의 한 부분으로” 내거는 “노동자계급의 민족자결 요구”가 아니라면 모두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을 차지하는 반동적인 흐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날 진정으로 민족자결권을 실현하는 전망은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통합될 수밖에 없다.”
사회주의혁명 전망 속에서 행해지는 민족자결 투쟁이 아니라면 지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민족해방전쟁을 이끄는 강력한 노동자계급 혁명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 따라서 해방전쟁이 비혁명적 지도부 하에서 진행되는 한 전진은 이 해방전쟁을 지지하길 거부한다는 뜻이다. 오늘 혁명적 세력이 취약함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민족자결을 위한 투쟁, 민족해방전쟁이 대개 비혁명적 지도부 하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오늘 전진은 지도부의 비혁명적 성격 때문에 이러한 민족 투쟁, 민족해방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이끄는 민족해방전쟁만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민족해방전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 전망 속에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끄는 전쟁이라면 그 전쟁은 이미 ‘민족해방’을 넘어선 사회해방을 위한 계급전쟁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전진은 민족해방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 레닌, 트로츠키와 같은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언제나 이러한 태도를 사회제국주의에 대한 투항이라고 고발해왔다.
“우리는 모든 전쟁을 같은 지평에 두지 않으며 그렇게 둔 적도 없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영국에 대항하는 아일랜드인의, 차르에 대항하는 폴란드인의 혁명적 투쟁을 지지했습니다. 비록 이 두 민족주의 전쟁에서 지도자들이 대부분 부르주아지의 성원들이고 심지어 어느 경우엔 봉건 귀족이거나 가톨릭 반동들일지라도 말입니다.... 제국주의 민족과, 인류 대다수를 이루는 식민지·반식민지 민족을 구별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레닌은 수백 페이지를 썼습니다. 착취국과 피착취국을 구별함이 없이 ‘혁명적 패배주의’ 일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볼셰비즘을 한심하게 희화화하는 것이고 그러한 희화화를 통해 제국주의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트로츠키, <중일전쟁에 대하여>, 1937년 9월)
비혁명적 세력이 이끄는 민족 전쟁에 대해 전진처럼 적대적인 반대 정책을 제창하는 그룹이 트로츠키 제4인터내셔널 당시에도 있었다.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언급도 들어보라.
"아이펠주의 그룹의 멍청이들은 이러한 정책을 조롱하려 듭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말로는 프롤레타리아에 봉사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장개석에 봉사한다’고 아이펠주의자들은 말합니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전쟁에 [기권, 보이콧 하지 않고] 참가하는 것은 ‘장개석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개석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나라의 독립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당에 반대하는 선전은 대중에게 장개석 타도를 교육하는 수단입니다. 불행하게도 독립 전쟁에서 지휘권을 가진 것이 장개석이므로 장개석의 지휘 하에 진행되는 군사투쟁에 참가하여 장개석의 타도를 정치적으로 준비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혁명적 정책입니다. 아이펠주의자들은 ‘계급투쟁’ 정책을 가져와 이 ‘민족주의적·사회애국주의적’ 정책에 대립시킵니다. 레닌은 이 추상적이고 아무 쓸모없는 대립시키기에 맞서 한평생을 싸웠습니다. 레닌에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적·애국적 투쟁에 나선 피억압인민을 원조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4반세기가 흐르고 10월 혁명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혁명적 전위에 의해 최악의 내부 적으로 가차 없이 내쳐져야 합니다." (<중일전쟁에 대하여>)
전진은 지도부 문제를 들어 정당한 민족투쟁/민족해방전쟁을 보이콧 하고, “노동자 세계 혁명의 전망”으로 모든 것을 넘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순수한’ 세계 노동자계급 대 세계 자본가계급의 결전이 올 때까지는 추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내거는 것으로 당면의 임무를 (반제국주의 과제들을 사회혁명의 과제들과 결합시키기 위한 전술적 임무를) 대신하려는 경향에 대해 레닌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실천적 결론이라고 고발했다.
“식민지와 유럽의 약소민족들에 의한 봉기 없이도, 모든 편견을 갖고 있는 소부르주아지 일부에 의한 혁명적 분출 없이도, 지주와 교회와 군주제에 의한 억압 및 민족 억압에 반대하는 정치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운동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사회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 쪽의 군대가 어느 한 장소에 정렬하여 ‘우리는 사회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 쪽의 군대가 다른 한 장소에 정렬하여 ‘우리는 제국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사회혁명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현학적인 견해를 가진 자들만이 아일랜드 반란을 ‘폭동’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자는 누구든 살아서는 결코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이 없이 혁명에 립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다.“ (레닌, <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정리>)
오늘 “노동자 세계 혁명의 전망”은 사회주의자들이 반식민지 나라들의 민족 전쟁에 대해 기권주의 입장을 취하고 이와 같은 반제국주의 과제를 보이콧하는 것으로 열릴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 임무에 이러한 반제국주의 과제를 결합시키는 것으로 열릴 것인가?
7)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임무
제국주의 열강은 서로를 겨냥한 패권쟁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피억압 민족을 억압·착취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패권쟁투와 (반)식민지 억압·착취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제국주의 강대국들 및 독점체들은 서로 경쟁상대방을 희생시켜 자신의 세력권과 세계시장 지분을 확대하고 동시에 피억압인민에게서 더 많은 부를 짜냄으로써만 그들의 이윤·권력 증식의 본성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이 같은 모순적 본질 때문에 이미 레닌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피억압민족의 해방투쟁이 갖는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에 그와 같은 어떤 민족 봉기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강대국 패권쟁투와 (반)식민지 인민에 대한 제국주의 억압 간의 밀접한 연관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이 연관을 수십 번 강조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규정성을 내세워 민족자결권과 민족전쟁의 현실 가능성을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유행을 거슬러 레닌 홀로 이 연관을 강조해야 했던 것이다. 또 민족·식민지 모순이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쟁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쟁과 결합할 가능성과 필연성에 대해서도 레닌 홀로 강조해야 했다. 민족·식민지 문제에 대한 대국 배외주의적 오만과 무지의 흐름을 거슬러 말이다.
“모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완전히 오류다. 현 제국주의 전쟁은 양대 열강의 제국주의적 정치의 계속이며, 이 정치는 제국주의 시대의 제 관계의 총체에 의해 생겨나고 배양되었다. 그러나 또한 이 시대 자체가 필연적으로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의 정치를,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정치를 낳고 배양하기 마련이며, 그 결과로 첫째 혁명적 민족봉기와 민족전쟁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둘째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쟁과 봉기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셋째 그 두 가지 혁명전쟁의 결합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또한 낳고 배양하기 마련이다.” (레닌, <맑스주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맑스주의자들은 폭력이 자본주의의 총체적 붕괴와 사회주의 사회의 탄생에 불가피하게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코 망각한 적이 없다. 이 폭력이 세계사의 한 시기 전체, 각종 전쟁들의 한 시대 전체를 점할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과 국내전, 그 둘의 뒤섞임, 그리고 민족전쟁이 그러한 전쟁들이다.” (레닌, <당 강령 검토 및 당명 변경에 관한 보고>)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강대국 모두에 대해 비타협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며, 자본주의 타도를 준비하는 데 그 어떤 전쟁이든 다 활용할 것을 제창하는 이유다. 따라서 제국주의 패권경쟁/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피억압 인민의 해방투쟁과 결합시키는 반제국주의 전략으로 노동자·피억압자 선진부위를 결집시키기 위해 언제나 힘써야 한다.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전쟁은 가능하고 개연성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며,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다. 물론 그러한 민족전쟁이 승리하려면 피억압국의 다수 인민대중 (우리가 예로 든 인도와 중국의 수억 인민들)의 일치된 노력이나, 국제 정세에서 특별히 유리한 조건들의 조합 (예를 들어 제국주의 열강이 힘의 소진, 전쟁, 상호적대 등으로 마비되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나, 강대국 중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총 봉기나 이러한 것들이 요구되겠지만 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위해 무엇이 가장 바람직하고 유리한가라는 관점에서는 이 마지막 경우가 첫 번째 지위를 점한다.)” (레닌, <유니우스 팸플릿에 대하여>)
추상 속에서가 아니라 이 같은 구체적 전쟁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이와 같이 제국주의 패권쟁투에 대항하는 패전주의 투쟁을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 전쟁과 결합시키는 반제국주의 전략으로 노동자·피억압자 선진층을 단결시키는 것 없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가능한가. 제국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피억압민족의 민족자결권/민족해방전쟁을 부정하고 제국주의 ‘조국방어’/제국주의 ‘민족자주’를 내거는 사회제국주의 · 사회배외주의와 투쟁하는 것 없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가능한가.
제국주의 나라에서 맑스주의자들의 의무에 대해 토론하는 대목에서 레닌은 피억압민족의 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필수적 의무라고 설명했다. 피억압민족 해방투쟁의 정당성 때문에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나라의 원주(原住) 노동자계급을 국제주의·반배외주의의 정신으로 교육시켜야 할 필요 때문에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한을 비롯한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노동자계급 운동이 “두 개의 국제적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은 레닌 시절이나 오늘날의 제국주의 체제에서나 똑같이 진실이다. 한 진영은 제국주의 초과이윤의 빵부스러기에 매수되어 부패해버린 한줌의 사회배외주의/계급협조 ‘민족자주’/사회제국주의 진영이고, 다른 한 진영은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반배외주의 진영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혁명 이전에 소 민족들의 50분의 1이 해방되느냐, 아니면 100분의 1이 해방되느냐가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는 객관적 원인들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가 두 개의 국제적 진영으로 분열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 한 진영은 지배 민족의 식탁에서 떨어진 — 무엇보다도 약소 민족들에 대한 이중, 삼중의 착취로부터 얻어진 — 빵부스러기로 인해 부패해버린 반면, 다른 한 진영은 약소민족을 해방하지 않고서는, 대중을 반배외주의적, 즉 반병합주의적, 즉 ‘자결주의적’ 정신으로 교육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게 되었다.” (레닌, <민족 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정리>)
트로츠키도 1934년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에서 같은 사상을 제시했다.
“[제국주의 나라에서] 민족 방어를 설파하는 ‘사회주의자’는 쇠퇴 사멸하는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소부르주아 반동이다. 전쟁 시에 자신을 민족국가에 매어놓지 않는 것, 전쟁 지도가 아니라 계급투쟁 지도를 좇는 것은 이미 평화 시에 민족국가와의 비타협적인 전쟁을 선언한 그러한 당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객관적으로 반동적인 역할을 완전하게 인식함으로써만 프롤레타리아 전위는 모든 유형의 사회애국주의에 끄떡없는 난공불락 상태로 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민족 방어’ 이데올로기 및 정책과의 실제적 단절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관점에 설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
실제로, 사회주의 10월혁명 지도자들의 이 중요한 사상은 오늘날의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혁명가들은 반배외주의 정신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으로, 국제 노동자계급 연대의 정신으로 대중을 교육하기 위해 사회제국주의 · 사회배외주의 진영과의 투쟁 사안들 – 다름 아닌 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제국주의 식민 전쟁과 같은 사안 ㅡ 을 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 강대국 패권쟁투 격화 정세에서,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 격화 정세에서 노동자운동 조직들, 사회주의 자임 조직들의 진정한 성격이 판가름 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모든 형태의 배외주의와 일관되게 투쟁하는가의 문제, 즉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반제국주의인가의 문제가 결정적인 판정 기준이 되는 오늘의 정세다. 그 조직은 제국주의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며 동시에 사회제국주의·사회배외주의와 단호한 투쟁을 벌이는 진짜 투사들인가, 아니면 노동운동을 계급협조 타락으로 모는 부르주아지의 사회제국주의 시종들인가, 또는 동요하며 사회제국주의에 투항하는 경제주의자들인가?
사회주의혁명 전망 속에서 행해지는 민족자결 투쟁이 아니라면 지지할 수 없다는 얘기다.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민족해방전쟁을 이끄는 강력한 노동자계급 혁명당이 존재하지 않는 한, 따라서 해방전쟁이 비혁명적 지도부 하에서 진행되는 한 전진은 이 해방전쟁을 지지하길 거부한다는 뜻이다. 오늘 혁명적 세력이 취약함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민족자결을 위한 투쟁, 민족해방전쟁이 대개 비혁명적 지도부 하에서 진행된다. 그리고 오늘 전진은 지도부의 비혁명적 성격 때문에 이러한 민족 투쟁, 민족해방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 “노동자 세계 혁명이라는 전망의 일부분으로”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이끄는 민족해방전쟁만 지지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민족해방전쟁은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 전망 속에서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가 이끄는 전쟁이라면 그 전쟁은 이미 ‘민족해방’을 넘어선 사회해방을 위한 계급전쟁일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전진은 민족해방전쟁을 지지할 수 없다! 레닌, 트로츠키와 같은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은 언제나 이러한 태도를 사회제국주의에 대한 투항이라고 고발해왔다.
“우리는 모든 전쟁을 같은 지평에 두지 않으며 그렇게 둔 적도 없습니다. 맑스와 엥겔스는 영국에 대항하는 아일랜드인의, 차르에 대항하는 폴란드인의 혁명적 투쟁을 지지했습니다. 비록 이 두 민족주의 전쟁에서 지도자들이 대부분 부르주아지의 성원들이고 심지어 어느 경우엔 봉건 귀족이거나 가톨릭 반동들일지라도 말입니다.... 제국주의 민족과, 인류 대다수를 이루는 식민지·반식민지 민족을 구별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레닌은 수백 페이지를 썼습니다. 착취국과 피착취국을 구별함이 없이 ‘혁명적 패배주의’ 일반에 대해 말하는 것은 볼셰비즘을 한심하게 희화화하는 것이고 그러한 희화화를 통해 제국주의자들에게 봉사하는 것입니다.” (트로츠키, <중일전쟁에 대하여>, 1937년 9월)
비혁명적 세력이 이끄는 민족 전쟁에 대해 전진처럼 적대적인 반대 정책을 제창하는 그룹이 트로츠키 제4인터내셔널 당시에도 있었다. 이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트로츠키의 다음과 같은 언급도 들어보라.
"아이펠주의 그룹의 멍청이들은 이러한 정책을 조롱하려 듭니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말로는 프롤레타리아에 봉사한다고 하면서 행동으로는 장개석에 봉사한다’고 아이펠주의자들은 말합니다. 적극적이고 의식적으로 전쟁에 [기권, 보이콧 하지 않고] 참가하는 것은 ‘장개석에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장개석에도 불구하고 식민지 나라의 독립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당에 반대하는 선전은 대중에게 장개석 타도를 교육하는 수단입니다. 불행하게도 독립 전쟁에서 지휘권을 가진 것이 장개석이므로 장개석의 지휘 하에 진행되는 군사투쟁에 참가하여 장개석의 타도를 정치적으로 준비하는 것, 그것이 유일한 혁명적 정책입니다. 아이펠주의자들은 ‘계급투쟁’ 정책을 가져와 이 ‘민족주의적·사회애국주의적’ 정책에 대립시킵니다. 레닌은 이 추상적이고 아무 쓸모없는 대립시키기에 맞서 한평생을 싸웠습니다. 레닌에게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은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민족적·애국적 투쟁에 나선 피억압인민을 원조하는 것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세계대전 이후 4반세기가 흐르고 10월 혁명이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음에도 아직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은 혁명적 전위에 의해 최악의 내부 적으로 가차 없이 내쳐져야 합니다." (<중일전쟁에 대하여>)
전진은 지도부 문제를 들어 정당한 민족투쟁/민족해방전쟁을 보이콧 하고, “노동자 세계 혁명의 전망”으로 모든 것을 넘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순수한’ 세계 노동자계급 대 세계 자본가계급의 결전이 올 때까지는 추상 속에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을 내거는 것으로 당면의 임무를 (반제국주의 과제들을 사회혁명의 과제들과 결합시키기 위한 전술적 임무를) 대신하려는 경향에 대해 레닌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정세인식에서 나오는 필연적인 실천적 결론이라고 고발했다.
“식민지와 유럽의 약소민족들에 의한 봉기 없이도, 모든 편견을 갖고 있는 소부르주아지 일부에 의한 혁명적 분출 없이도, 지주와 교회와 군주제에 의한 억압 및 민족 억압에 반대하는 정치적으로 각성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운동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상상하는 것은 사회혁명을 부정하는 것이다. 한 쪽의 군대가 어느 한 장소에 정렬하여 ‘우리는 사회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고, 다른 한 쪽의 군대가 다른 한 장소에 정렬하여 ‘우리는 제국주의에 찬성한다’고 말하는 것, 이것이 사회혁명일 것이다! 이와 같이 우스꽝스럽게 현학적인 견해를 가진 자들만이 아일랜드 반란을 ‘폭동’이라고 부름으로써 그것을 비난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 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자는 누구든 살아서는 결코 그것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혁명이 무엇인지를 이해함이 없이 혁명에 립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다.“ (레닌, <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정리>)
오늘 “노동자 세계 혁명의 전망”은 사회주의자들이 반식민지 나라들의 민족 전쟁에 대해 기권주의 입장을 취하고 이와 같은 반제국주의 과제를 보이콧하는 것으로 열릴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계급의 권력 장악 임무에 이러한 반제국주의 과제를 결합시키는 것으로 열릴 것인가?
7)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과 반제국주의 임무
제국주의 열강은 서로를 겨냥한 패권쟁투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피억압 민족을 억압·착취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패권쟁투와 (반)식민지 억압·착취는 서로 연관되어 있는데, 왜냐하면 제국주의 강대국들 및 독점체들은 서로 경쟁상대방을 희생시켜 자신의 세력권과 세계시장 지분을 확대하고 동시에 피억압인민에게서 더 많은 부를 짜냄으로써만 그들의 이윤·권력 증식의 본성을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의 이 같은 모순적 본질 때문에 이미 레닌은 제국주의 열강 간의 1차 세계대전이 한창일 때 피억압민족의 해방투쟁이 갖는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시에 그와 같은 어떤 민족 봉기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레닌은 강대국 패권쟁투와 (반)식민지 인민에 대한 제국주의 억압 간의 밀접한 연관을 완전하게 파악하고, 이 연관을 수십 번 강조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규정성을 내세워 민족자결권과 민족전쟁의 현실 가능성을 부정하는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유행을 거슬러 레닌 홀로 이 연관을 강조해야 했던 것이다. 또 민족·식민지 모순이 (“제국주의 패권전쟁의 한 축으로 편입”되는 것이 아니라) 민족 전쟁으로 표출되고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계급 전쟁과 결합할 가능성과 필연성에 대해서도 레닌 홀로 강조해야 했다. 민족·식민지 문제에 대한 대국 배외주의적 오만과 무지의 흐름을 거슬러 말이다.
“모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하는 것은 이론적으로 완전히 오류다. 현 제국주의 전쟁은 양대 열강의 제국주의적 정치의 계속이며, 이 정치는 제국주의 시대의 제 관계의 총체에 의해 생겨나고 배양되었다. 그러나 또한 이 시대 자체가 필연적으로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의 정치를,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의 정치를 낳고 배양하기 마련이며, 그 결과로 첫째 혁명적 민족봉기와 민족전쟁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둘째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쟁과 봉기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셋째 그 두 가지 혁명전쟁의 결합의 가능성과 필연성을 또한 낳고 배양하기 마련이다.” (레닌, <맑스주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맑스주의자들은 폭력이 자본주의의 총체적 붕괴와 사회주의 사회의 탄생에 불가피하게 동반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결코 망각한 적이 없다. 이 폭력이 세계사의 한 시기 전체, 각종 전쟁들의 한 시대 전체를 점할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과 국내전, 그 둘의 뒤섞임, 그리고 민족전쟁이 그러한 전쟁들이다.” (레닌, <당 강령 검토 및 당명 변경에 관한 보고>)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강대국 모두에 대해 비타협적인 반대 입장을 취하며, 자본주의 타도를 준비하는 데 그 어떤 전쟁이든 다 활용할 것을 제창하는 이유다. 따라서 제국주의 패권경쟁/전쟁에 반대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자’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투쟁을 피억압 인민의 해방투쟁과 결합시키는 반제국주의 전략으로 노동자·피억압자 선진부위를 결집시키기 위해 언제나 힘써야 한다.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전쟁은 가능하고 개연성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며, 진보적이고 혁명적이다. 물론 그러한 민족전쟁이 승리하려면 피억압국의 다수 인민대중 (우리가 예로 든 인도와 중국의 수억 인민들)의 일치된 노력이나, 국제 정세에서 특별히 유리한 조건들의 조합 (예를 들어 제국주의 열강이 힘의 소진, 전쟁, 상호적대 등으로 마비되어 개입할 수 없는 상황)이나, 강대국 중 한 나라에서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총 봉기나 이러한 것들이 요구되겠지만 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위해 무엇이 가장 바람직하고 유리한가라는 관점에서는 이 마지막 경우가 첫 번째 지위를 점한다.)” (레닌, <유니우스 팸플릿에 대하여>)
추상 속에서가 아니라 이 같은 구체적 전쟁 조건에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은 어떻게 실현되는가? 이와 같이 제국주의 패권쟁투에 대항하는 패전주의 투쟁을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민족 전쟁과 결합시키는 반제국주의 전략으로 노동자·피억압자 선진층을 단결시키는 것 없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가능한가. 제국주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들이 피억압민족의 민족자결권/민족해방전쟁을 부정하고 제국주의 ‘조국방어’/제국주의 ‘민족자주’를 내거는 사회제국주의 · 사회배외주의와 투쟁하는 것 없이 “노동자계급의 국제적 단결”이 가능한가.
제국주의 나라에서 맑스주의자들의 의무에 대해 토론하는 대목에서 레닌은 피억압민족의 자결권을 무조건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필수적 의무라고 설명했다. 피억압민족 해방투쟁의 정당성 때문에만이 아니라 제국주의 나라의 원주(原住) 노동자계급을 국제주의·반배외주의의 정신으로 교육시켜야 할 필요 때문에도 이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남한을 비롯한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노동자계급 운동이 “두 개의 국제적 진영으로” 갈라져 있다는 것은 레닌 시절이나 오늘날의 제국주의 체제에서나 똑같이 진실이다. 한 진영은 제국주의 초과이윤의 빵부스러기에 매수되어 부패해버린 한줌의 사회배외주의/계급협조 ‘민족자주’/사회제국주의 진영이고, 다른 한 진영은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반배외주의 진영이다.
“중요한 것은 사회주의혁명 이전에 소 민족들의 50분의 1이 해방되느냐, 아니면 100분의 1이 해방되느냐가 아니라, 제국주의 시대에는 객관적 원인들로 인해 프롤레타리아트가 두 개의 국제적 진영으로 분열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중 한 진영은 지배 민족의 식탁에서 떨어진 — 무엇보다도 약소 민족들에 대한 이중, 삼중의 착취로부터 얻어진 — 빵부스러기로 인해 부패해버린 반면, 다른 한 진영은 약소민족을 해방하지 않고서는, 대중을 반배외주의적, 즉 반병합주의적, 즉 ‘자결주의적’ 정신으로 교육하지 않고서는 자신을 해방시킬 수 없게 되었다.” (레닌, <민족 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정리>)
트로츠키도 1934년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에서 같은 사상을 제시했다.
“[제국주의 나라에서] 민족 방어를 설파하는 ‘사회주의자’는 쇠퇴 사멸하는 자본주의에 봉사하는 소부르주아 반동이다. 전쟁 시에 자신을 민족국가에 매어놓지 않는 것, 전쟁 지도가 아니라 계급투쟁 지도를 좇는 것은 이미 평화 시에 민족국가와의 비타협적인 전쟁을 선언한 그러한 당에게만 가능한 일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객관적으로 반동적인 역할을 완전하게 인식함으로써만 프롤레타리아 전위는 모든 유형의 사회애국주의에 끄떡없는 난공불락 상태로 될 수 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민족 방어’ 이데올로기 및 정책과의 실제적 단절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관점에 설 때에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이다.”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
실제로, 사회주의 10월혁명 지도자들의 이 중요한 사상은 오늘날의 제국주의 세계질서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혁명가들은 반배외주의 정신으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 정신으로, 국제 노동자계급 연대의 정신으로 대중을 교육하기 위해 사회제국주의 · 사회배외주의 진영과의 투쟁 사안들 – 다름 아닌 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의 제국주의 식민 전쟁과 같은 사안 ㅡ 을 활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
오늘 강대국 패권쟁투 격화 정세에서, 제국주의-반식민지 모순 격화 정세에서 노동자운동 조직들, 사회주의 자임 조직들의 진정한 성격이 판가름 나는 것도 이 지점이다. 모든 형태의 배외주의와 일관되게 투쟁하는가의 문제, 즉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반제국주의인가의 문제가 결정적인 판정 기준이 되는 오늘의 정세다. 그 조직은 제국주의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며 동시에 사회제국주의·사회배외주의와 단호한 투쟁을 벌이는 진짜 투사들인가, 아니면 노동운동을 계급협조 타락으로 모는 부르주아지의 사회제국주의 시종들인가, 또는 동요하며 사회제국주의에 투항하는 경제주의자들인가?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