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바스 자결”: 러시아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반동 슬로건

러시아의 네오나치들

돈바스 자결”: 러시아 제국주의에 봉사하는 반동 슬로건

왜 이 슬로건이 맑스주의 민족자결 강령에 반하는지, 그리고 우크라이나 인민의 현 민족해방투쟁의 이익에도 반하는지, 그 역사적·이론적·정치적 이유에 대하여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테제, 2022627, www.thecommunist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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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돈바스 자결슬로건은 푸틴 옹호자들 사이에서 푸틴의 침공을 정당화하는 핵심 이데올로기 기제로 복무하고 있다. 돈바스에 살고 있는 "억압 받는 러시아 인민""해방"을 위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이 슬로건은 러시아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스탈린주의자들과 좌익 포퓰리스트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다. 나아가 이 슬로건은, 대(大)러시아 배외주의와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반대하지만 우크라이나 방위 전쟁을 편 드는 데는 실패하고 있는 각종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 정당성을 얻기까지 하고 있다. 이 푸틴주의 슬로건과 연결된 것이, 돈바스가 역사적으로 러시아 영토 즉 악명 높은 루스키 미르”("러시아 세계")의 일부로서 이며, 따라서 천부적으로우크라이나가 아니라 러시아에 속한다는 이데올로기다.
 
2. 맑스주의자들은 "돈바스 자결" 슬로건에 엄중히 반대한다. “돈바스 자결슬로건은 레닌과 볼셰비키에 의해 정립된 바의 사회주의적 민족자결 강령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더욱이 객관적으로 그 슬로건은 2014년 러시아의 돈바스 개입 시작 이래로 친제국주의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3. 요약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원칙적 이유를 근거로 "돈바스 자결" 슬로건을 배격한다.
 
i) 그 같은 푸틴주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어떠한 역사적 근거도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인이 다수자인 지역이어 왔다. 돈바스 지역에서 러시아인은 언제나 소수자를 구성해왔을 뿐이다.
 
ii) 돈바스의 러시아 인민은 민족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가 아니며 그랬던 적도 없다. 따라서 맑스주의적 민족자결 원칙 오직 피억압 인민에게만 해당되는 해방 강령인 은 돈바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iii) "돈바스 자결"을 위해 싸우는 독립적 행위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소위 "도네츠크, 루한스크 인민공화국"을 자칭하는 괴뢰 정부를 비롯하여 이 슬로건을 내거는 돈바스 지역의 모든 세력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지지자들이다. 즉 푸틴 정권의 하수인·대리인들이지, 피억압 인민의 대표자들이 아니다.
 
다음에서 이 점들을 좀 더 자세히 들어가 보자.
 

Ⅰ. 돈바스: 20세기 내내 우크라이나인이 주민의 다수를 이룬 지역

 
4. 돈바스의 이전 역사에서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중 어느 쪽이 먼저 이 지역에 정주했느냐는 문제를 놓고 친러시아 역사가들과 친우크라이나 역사가들 간에 오랜 논쟁이 존재한다. 맑스주의자들에게 이 논쟁은 특별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그들과는 달리, 우리는 민족이라는 것을 이른바 인류 역사 처음부터 존재해온 몰역사적 현상 같은 것으로 보지 않는다. 실제로 근대 민족의 출현은 자본주의 확대발전 및 국내시장 창출의 필요, 공통어의 확립 등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러시아의 경우 차르 제국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다소 뒤늦었고 1861년 농노 해방 이후에야 자본주의가 지배적인 생산양식이 됨으로 인해 민족들의 형성 과정이 서유럽 나라들보다 나중에 일어났다. 그 때문에 돈바스의 민족적 성격에 대한 논의에서는 19세기 중반 이후의 상황전개를 고려에 넣는 것이 중요하다.
 
5. 민족 형성기 시작 이래로 언제나 돈바스 지역에서는 우크라이나인이 다수자를 이루었고, 러시아인은 상대적으로 수적 소수자였다. 공식 자료에 따르면 모든 시기에 걸쳐 이러했는데, 19세기 후반의 차르 제국 때부터 1920년대 초반의 혁명적 쏘연방 시기와 이후 스탈린주의 쏘연방 시기까지, 그리고 1989년 이후의 자본주의 우크라이나 시기까지 내내 돈바스에서 우크라이나인이 다수자가 아닌 적은 없었다. 아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1897/1926/1959/1989/2001년 인구조사에서 우크라이나인은 지속적으로 다수자로서 돈바스 주민의 5160%를 점했다. 반면 러시아인은 2644%로 같은 시기 동안 줄곧 소수자였다. (아래 표 참조)
 
6. 1945년 이후 러시아인의 비율이 (다수자로 된 적은 없이) 어느 정도 증가하였다. 이는 1930년대 이래로 스탈린주의 관료층을 지탱하는 한 축이 된 대러시아 배외주의 정책의 결과물이었다. 이 정책의 결과로 모든 비러시아계 인민에 대한 조직적인 차별이 이루어졌고, 그 최악의 결과물로 1937년부터 여러 소민족 (크림 타타르인, 체첸인, 칼미크인, 잉구시인, 고려인 등)에 대한 범죄적인 집단추방이 자행됐다.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는 "쏘연방 제()인민의 독립적인 민족적 발전 일체를 대놓고 교살한 것"이라고 규정하며 그 시작 시점부터 이 반동적 정책과 싸웠다. 스탈린주의의 반인민적 만행을 경험한 결과,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 쏘연방에서 사회주의적 민족자결 강령의 구체적인 적용을 제창하며, 우크라이나의 경우 "통일/해방/독립 노동자·농민 소비에트 우크라이나" 슬로건을 내걸었다.
 
7. 친러 프로파간다 논자들은 돈바스 지역의 인민 다수가 러시아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흔히 든다. 사실이긴 하지만 그것으로 돈바스 지역이 민족적으로 러시아 지역이라는 주장의 정당화 논거는 되지 못한다. 실제로는, 사용 언어가 자동으로 해당 인민의 민족적 정체성을 반영하지 않는다. 돈바스에서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 동부 및 남부의 여러 지역에서도 우크라이나 인민의 상당 부분이 러시아어를 사용하지만, 그럼에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러시아인 아닌) 우크라이나인으로 내세운다. 러시아어를 말하는 것이 자동으로 (우크라이나 민족이 아니라) 러시아 민족에 속한다는 뜻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이 위험한 오류인 이유다. 이러한 몰역사적이고 기계적인 민족 개념을 가지고서, 프랑스어 사용 스위스인과 왈롱계 벨기에인이 프랑스 민족에 속하고 아일랜드인과 스코틀랜드인이 영국 민족에 속하며 오스트리아인과 독일어 사용 스위스인이 독일 민족에 속하며 라틴 아메리카 인민이 스페인 민족에 속한다는 등의 터무니없는 결론을 끌어내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나?!
 
8. 여기에 덧붙여, 2014년 이래로 러시아의 침략이, 나아가 2022224일 이래로는 더더욱 러시아의 침략이 러시아어 사용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우크라이나인들 속에서 민족 정체성과 자의식을 대대적으로 증가시켰다는 사실을 함께 언급해야 한다. 이는 돈바스와 헤르손 그리고 그 밖의 지역에서 러시아의 점령에 용기 있게 반대하는 많은 러시아어 사용 우크라이나인들에 의한 수많은 애국주의적 표현물 속에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오늘 단 하나 진실된 "돈바스 자결"은 러시아 제국주의 및 러제의 현지 대리인들의 점령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역사적으로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은 민족적으로 억압받는 소수자였던 적이 없다
 
9.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은 피억압 민족 소수자였던 적이 없으며,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다. 1917년까지의 차르 제국 시기와 1991년까지의 스탈린주의 독재기에 러시아인은 지배·억압 민족이었다. 반대로 우크라이나인은 차별받는 피억압 민족이었다. 1991년 이후 우크라이나가 독립국가가 되면서 이것은 바뀌었지만, 러시아인은 여전히 일련의 특권적 권리를 유지했으며 피억압 인민이 되지 않았다. 2014년 마이단 운동이 다양한 형태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를 조장하여 러시아어 사용에 대한 차별과 제한을 야기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인민들 간의 평등한 권리와 평화로운 공존을 침해하는 일체의 민족주의적 공격에 반대한다. RCIT는 모든 민족·인종 집단의 완전한 평등을 요구하며, 여기에는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언어 및 문화 사용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폐지할 것을 포함한다.
 
10.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러시아에 의한 역사적인 우크라이나 종속 및 억압과 우크라이나의 러시아계 인민이 보유한 역사적인 특권이라는 전체 맥락 속에 배치되어야 한다. 따라서 2014년에 나타난 이러한 첫 번째 반러시아 차별 요소가 즉각적으로 돈바스의 러시아계 인민을 피억압 민족 소수자로 전화시킨 것이 아니다. 이 점은 마이단 사태 직후인 2014년 봄과 여름 러시아 군대와 현지 동맹군들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면서 더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 이후로 러시아 자본가국가는 현지 대리인들의 도움을 받아 돈바스 일부 지역을 점령했다. (이어서 대리인들은 많은 우크라이나인을 돈바스에서 추방했다). 간단히 말해서, 반동 우크라이나 배외주의자들이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을 차별할 기세를 보이자 곧바로 러시아 제국주의가 군대를 보내 현지 대리인들의 조력 하에 이 지역 일부를 점령하고 우크라이나 인민에 대한 억압자로 들어서서 많은 사람을 고향에서 추방시킨 것이다.
 
11. 레닌/볼셰비키가 제창한 맑스주의 민족자결 강령은 언제나 억압에 대항하는 강령이었다. 이 강령은 개개의 모든 인민에게, 즉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 모두에게 적용될 수 있는 자유주의적 강령 같은 것이 결코 아니다. RCIT는 이 강령을 피억압 인민을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투쟁으로 결집시키는 해방 강령으로,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피억압자를 단결시키는 데 복무하는 해방 강령으로 간주한다. 이것이 우리가 서 있는 볼셰비즘의 혁명적 해방주의 전통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족들에 대한 모든 억압에 맞선 투쟁 없이는 자신의 위대한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들은 억압국들의 (특히 이른바 '강대국들의) 사회민주주의 당들이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을, 다름 아닌 그 말의 정치적 의미에서 즉 정치적 분리의 권리를 인정하고 옹호할 것을 단호히 요구해야 한다. 이 권리를 옹호하지 않는 지배국 또는 식민지 보유국의 사회주의자는 배외주의자다."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1915])
 
"승리한 사회주의는 반드시 완전한 민주주의를 확립해야 하며, 그에 따라 민족들의 완전한 평등을 도입해야 할 뿐만 아니라 피억압 민족의 자결권, 즉 자유로운 정치적 분리의 권리를 실현해야 한다." (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1916])
 
"전적으로, 민족자결권이란 정치적 의미에서의 독립할 권리, 즉 억압 민족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치적 분리의 권리를 말한다.... 오로지 모든 민족 억압에 대항하는 투쟁의 일관된 표현을 말한다." (레닌 <사회주의혁명과 민족자결권>)
 
"바로 이 때문에 사회민주주의적 강령에서의 초점은, 모든 민족을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구분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에 바로 제국주의의 본질이 있는데,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카우츠키는 이것을 기만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바로 이 구분으로부터 민족자결권에 대한 우리의 규정이 도출되어야 하는데, 그 규정은 철저하게 민주주의적이고 혁명적이며, 사회주의를 위한 당면 투쟁의 일반 임무와 부합하는 규정이어야 한다," (레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자결권> [1915])
 
  ."돈바스 자결" 슬로건: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 정책을 위한 프로파간다 도구
 
12. 이러한 역사적·이론적 고찰 외에도 돈바스 자결슬로건은 현 국면에서 정치적으로도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러시아 군대는 2014년 여름 돈바스를 침공해 두 개의 대리인 공화국을 세웠다. 가장 광신적인 푸틴주의자만이 이들 "공화국"이 푸틴 정권이 꽂아놓고 통제하는 꼭두각시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공화국이 조금도 자결권을 대표하지 못하는 이유는 a) 돈바스 주민의 다수자가 우크라이나인이라는 것, b) 돈바스의 많은 러시아계 인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것, c) 제국주의적 점령을 "자결" 행위로 성격규정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 때문이다.
 
13. 전쟁 시작 전부터 돈바스 주민의 대다수는 우크라이나로부터 분리하고 싶은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이 점은 민족주의 마이단 운동이 권력에 오르고 동부의 많은 사람들이 언어·문화적 권리에 미칠 결과에 대해 걱정하던 날들에도 그러했다. 20144월에 실시된 3개 여론조사 (도네츠크 사회정치연구소, 키이우 사회연구소, 퓨 연구센터)에 따르면, 18-27%의 소수만이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분리에 찬성했고, 나머지 70-80% 다수는 우크라이나 국가의 일부로 ㅡ 현재의 형태로든, 다양한 수준의 지방분권을 토대로 해서든 남기를 원했다. (위키피디아: 2014년 돈바스 지위에 대한 주민투표: https://en.wikipedia.org/wiki/2014_Donbas_status_referendums)
 

 . 돈바스에서의 "반러시아 제노사이드(대량학살)" 주장은 푸틴주의 날조 프로파간다다!


14. 나아가 돈바스의 러시아계 주민에 대한 소위 "제노사이드"에 관한 푸틴 정권과 전 세계의 푸틴주의 벗들이 유포한 신화를 반박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주장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군대가 2014년부터 2022년까지 돈바스에서 14,000명의 러시아계 사람들을 죽였다. 이 푸틴주의 주장은 완전한 허구다. 첫째, 14,000이라는 사망자 수치는 피해자들에게는 분명 비극이지만 여기에 "제노사이드"라는 말을 갖다 붙일 수는 없다. 이런 식으로 "제노사이드" 범주를 평범화, 진부화 시키는 것은 실로 최근 몇 십 년 체첸인이나 보스니아인처럼 형언하기 힘들만치 끔찍한 전쟁범죄로 고통 받은 피억압 인민들을 조롱하는 것이다. 이들 1-2백만 수준의 소 민족이 그 중 수십만 명이 죽고 다치고 강간당하고, 그 외에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고향에서 집에서 쫓겨났다. 이른바 인종청소. 더욱이 돈바스의 14,000명 사망자 중 거의 모두가 2014년 여름부터 2015년 중반까지의 전쟁 기간 동안 발생한 (즉 그 때 이후의 몇 년에 걸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망자다. 더더욱 중요한 것은, 14,000의 수치가 모든 사망자 수, 즉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사망자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 14,000명의 대다수는 군인 (우크라이나군 4,400, 러시아군 및 그 동맹군 6,500)이었고, 민간인은 3.404이었다. 여기서도 다시 이 민간인 사망자 수에는 우크라이나인과 러시아인 모두가 포함되었다. (모든 수치는 유엔 난민 고등판무관 사무소 [UNHCR]에 따른 것이다.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분쟁 관련 민간인 사상자, 2022127일자). 한 마디로, 돈바스에서의 "반러시아 제노사이드" 주장은 푸틴주의 날조 프로파간다다!
 
15. 요약하자면, "돈바스 자결" 슬로건은 맑스주의 민족자결 원칙과 양립할 수 없다. “돈바스 자결슬로건은 푸틴의 대러시아 배외주의 정책과 그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싸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구실로 봉사한다. 그 슬로건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팽창주의적 대외정책을 위한 프로파간다 도구다. 오늘, "돈바스 자결" 슬로건은 사실상 "러시아 제국주의의 자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완전히 반동적인 슬로건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은 이 슬로건을 옹호하고 푸틴의 프로파간다를 앵무새처럼 되뇌는 저들 스탈린주의/볼리바르주의/사이비 트로츠키주의 당들을 규탄한다. 푸틴 정권에 대한 이와 같은 정치적 영합은 이 당들의 사회제국주의적 본질의 발현이다.
 
16. 현 상황에서, RCIT를 비롯한 모든 진실된 사회주의자들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의 군사적 투쟁을 지지한다.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젤렌스키 정부와 서방 제국주의에 대한 일체의 종속에 반대한다. 또 강대국들 (미국, 러시아, 서유럽, 중국, 일본) 간 제국주의 상호 패권쟁투에서 편을 들거나 그들의 배외주의 대외정책 (제재 같은)을 지지하는 것을 배격한다. 우리는 독립·해방의 사회주의 우크라이나!’를 내건다. 모든 민족 소수자에게 평등한 권리를 부여하며 그들의 언어와 문화에 어떠한 제한도 없는 사회주의 우크라이나!’를 제창한다. 그 민족 혼합 구성과 함께 돈바스 지역에 대한 그 어떤 구체적 해결책 (예를 들어, 자치 형태를 포함하여)도 지역 인민의 자유로운 결정의 결과물이어야 하며,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또는 중앙정부들 간의 협상 결과물로 내려꽃히는 것이어선 안 된다
.
 
 : 20세기에 돈바스 지역의 민족 구성

               1897년        1926년           1959년        1989년         2001

 우크라이나인   379,000명   1,222,000명    3,784,000명   4,176,000명         -

                      55.2%          60%            56.4%          51.1%        58% (루한스크 주)

                                                                                          56.9% (도네츠크 주)

 러시아인         180,000명     639,000명      2,551,000명    3,595,000명      -

                       26.2%          31.4%            38%              44%       39% (루한스크 주)

                                                                                            38.2% (도네츠크 주)

 출처: 1897-1989년 기간: Andrew Wilson: The Donbas between Ukraine and Russia: The Use of History in Political, in: Journal of Contemporary History, Vol. 30, No. 2 (April 1995), p. 275; for 2001: State Statistics Committee of Ukraine: About number and composition population of UKRAINE by data All-Ukrainian population census'2001 data, https://web.archive.org/web/20111217151026/http://2001.ukrcensus.gov.ua/eng/results/general/nationa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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