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적은 국내에 있다!”: 맑스주의 슬로건과 그것의 희화


주적은 국내에 있다!”: 맑스주의 슬로건과 그것의 희화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사태의 맥락 속에서 이 슬로건의 사회제국주의적 왜곡에 대하여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국제서기, 2022817, www.thecommunists.net
 
 
차례
 
1. 들어가며
 
2. “주적은 국내에 있다슬로건의 역사적 맥락
 
3. 이 슬로건의 의미
 
4. 이 슬로건이 의미하지 않는 것: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를 돕는 것
 
5.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반식민지 나라에 이 슬로건을 적용해선 안 된다
 
6. 이 슬로건이 의미하지 않는 것: ‘국 제국주의 지배계급의 전술적 지지를 받는 피억압 인민을 지지하는 데 실패하는 것
 
7. 이 슬로건이 일국적 편협함의 구실로 오용되어선 안 된다
 
8. 맺음말
 
 
                          * * * * *
 
 
1. 들어가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사태, 이 양대 충돌이 현 세계정세의 핵심 축을 이루고 있다. 실제로 이 사건들은 제국주의 간 패권쟁투 새 국면의 시작, 3차 세계대전의 프리시즌내지 서막을 열고 있다.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을 비롯한 그 밖의 진실된 사회주의자들은 이들 충돌에서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을 취한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나토-러시아 분쟁의 이중적 성격을 인식한다. 우리가 제국주의 러시아의 침략에 대항하여 반식민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며, 동시에 나토-러시아 간 분쟁에서 양측 모두에 반대하는 이유다.[1]
 
대만해협 사태에서 우리는 미 제국주의와 중 제국주의 모두에 반대한다. 이 경우에 대만 민족 문제, 즉 대만 인민의 민족자결권은 지금까지는 단지 부차적 종속적 지위를 점하고 있을 뿐이다.[2]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미국·중국·러시아·서유럽·일본 등 모든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하여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을 적용한다. 피억압 인민이 정당한 방위전쟁을 벌이고 있는 곳 (오늘 우크라이나·시리아·팔레스타인이나, 직전에 이라크·아프간·체첸처럼)에서 우리는 혁명적 방위주의 입장을 취한다. 즉 피억압 인민의 군사적 투쟁을 편 든다. 그 투쟁의 (부르주아) 지도부에게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주지 않고서 그 투쟁을 편 든다.[3]
 
많은 자칭 "맑스주의" 조직들이 이러한 접근태도를 취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방어하길 거부하며, 나아가서는 러시아를, 중국을 편 든다.[4] 공공연하게 러시아나 중국을 편 들지는 않지만, ·러는 "차악"이라며 오직 서방 열강만을 향해 정치적 포화를 쏟는 조직들도 있다.[5] “사회주의운동을 가장하고 제국주의 열강을 지지하는 사회제국주의 조직들과 사실상 다르지 않은 조직들이다.
 
RCIT는 이 문제들에 대한 스탈린주의자들, 사민주의자들, 볼리바르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의 정책을 여러 문서 (성명/논설/팜플렛/책자)를 통해 비판해왔다. 우리는 진정한 맑스주의 강령과 이들 세력에 의한 그것의 왜곡 사이에 놓인 심대한 차이를 설명했다. 여기서는 이 비판을 반복하진 않을 것이다. 그 보다는 이들 사회제국주의 주창자들 및 협조자들이 자주 끌어대는 한 슬로건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거의 모든 경우에서 이들 조직은 잘 알려진 맑스주의 슬로건 "주적은 국내에 있다"를 들어 자신들의 기회주의 정책을 정당화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자신의 중앙·본부가 서반구에 (통상 서유럽, 북미, 중남미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로 자신의 정치적 의무는 일차적으로 자신즉 서반구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접근태도는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맑스주의의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원칙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설명할 것이다.
 
 
2.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의 역사적 맥락
 
이 슬로건의 의미를 올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슬로건 자체와 그것의 역사적 맥락 둘 다를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가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독일의 혁명적 노동자계급 지도자 칼 리프크네히트는 1915년 메이데이 유인물에서 제국주의 세계대전을 규탄하며 이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을 처음 사용했다.
 
이 슬로건이 처음으로 제기되었던 유인물의 전체 구절을 재현하는 것으로 시작하자. "국제 제국주의 대량학살에 대항하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이 오늘 사회주의 최고 임무다. 모든 인민의 주적은 자국에 있다! 독일 인민의 주적은 독일에 있다. 독일 제국주의, 독일 전쟁정당, 독일 비밀외교가 그것이다. 국내의 이 적에 대해서는 독일 인민이 정치투쟁에서 싸워야 한다. 자국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는 다른 나라 프롤레타리아트와 협력하면서 싸워야 한다.... 제국주의 도박꾼들은 언제까지 인민의 인내심을 남용할 것인가? 살육은 이제 그만! 국내외의 전쟁 선동자들을 타도하라!"[6]
 
이 문구를 처음 쓴 것은 칼 리프크네히트 19191, 로자 룩셈부르크와 함께 공산당을 창건한 직후 순교자가 된 그 리프크네히트 였지만, 기본 개념은 레닌과 볼셰비키에 의해 이미 정립되었다. 19148월 초 개전 직후, 러시아 맑스주의자들은 선언문을 내고 제국주의 살육에 대한 반대를 선포하며 동시에 계급투쟁 전진과 지배계급 타도를 위해 전쟁의 조건들을 이용할 것을 제창했다. 이 개념이 슬로건으로 처음 표현된 것이 바로 자국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덜하다슬로건과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하라" 슬로건이다.
 
각각의 나라에서 혁명적 선전의 결과로 해당 나라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투쟁이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정부 군대의 패배는 정부를 약화시키고, 정부가 억압하는 민족들의 해방을 촉진하며, 지배계급에 대한 내란을 용이하게 한다.
이 명제는 러시아와 관련하여 특히 진실이다. 러시아의 승리는 그에 따라 반동의 강화 전 세계에서나 러시아 내에서나 모두 를 가져올 것이고, 이미 점령된 지역들에 살고 있는 인민들의 완전한 예속을 동반할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러시아가 패배하는 쪽이 모든 조건에서 해악이 가장 작은 길이라고 생각한다.”[7]
 
현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단 하나의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슬로건이다. 코뮌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고 바젤 결의(1912)에서 그 윤곽이 제시된 바, 이 슬로건은 고도로 발달한 부르주아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제국주의 전쟁의 모든 조건들이 지시하는 결론이다. 내란으로의 그러한 전화가 주어진 시점에서 아무리 어려워 보일지라도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이 사실로 된 이상, 이러한 방향으로의 체계적이고 집요하고 흔들림 없는 준비 작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8]
 
레닌은 이후 여러 논문, 특히 팜플렛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이 사상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팜플렛에 볼셰비키 당 전쟁 강령의 기본 원칙이 총괄 제시되어 있다). “현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승리를 주창하는 자들과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슬로건을 주창하는 자들 모두 똑같이 사회배외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혁명적 계급은 반동적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군사적 패배는 반드시 정부의 타도를 용이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정부에 의해 시작된 전쟁은 반드시 정부 간의 전쟁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고, 또한 그처럼 끝나기를 바라는 부르주아만이, 모든 교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모든 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하고 이 바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엉뚱한’ ‘터무니없는짓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생각이야말로 모든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평소의 생각과 일치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한 우리의 활동과 합치한다.”[9]
 
3. 이 슬로건의 의미
 
이 개념의 의미는 무엇인가?[10] 첫째, 맥락 제국주의 1차 세계대전 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전쟁은 당시 거의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이 시작하고 벌여낸 거대한 살육전이었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영국, 러시아, 그리고 19174월 이후로는 미국이 그러한 제국주의 열강들이다.
 
둘째, 레닌은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라는 프로이센 군사 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의 유명한 정식에 여러 차례 주목했다.[11] 맑스주의 정치의 근본은 부르주아지 및 노동운동 공식 조직 내 부르주아지 시종들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영향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독립이다. 이 원칙은 전쟁 조건하에서도 유지되어야 한다. 레닌이 말했듯이, “전쟁과 관련하여.... 변증법의 근본 명제는 전쟁은 단지 다른 (즉 폭력적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쟁사의 가장 위대한 저술가 중 한 사람인 클라우제비츠의 명제다. 그리고 이것은 언제나 맑스와 엥겔스의 입장이었다. 맑스와 엥겔스는 어떠한 전쟁도 주어진 시기에 관련 강대국들의 그리고 이들 나라 내부의 각 계급들의 정치의 계속에 다름 아니라고 보았다.”[12]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평화 시에든, 전쟁 시에든 국 지배계급의 정치를 지지해선 안 되며, ‘국 지배계급에 대적하는 외국 라이벌에 대한 어떤 형태의 정치·경제·군사 전쟁도 지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자본가계급과의 민족 대단결이든 거국일치인민전선이든 일체의 계급협조 제도를 지지 또는 참가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는 것이며, 부르주아지와 공통의 조국이 있다는 사상에 지지를 주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맑스주의자들은 지배계급의 진짜 동기가 무엇인지 설명해내야 하며, 노동자계급의 진정한 이익이 무엇인지 제시해내야 한다.
 
지배계급 및 그 개량주의 시종들과는 달리,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은 노동자가 전쟁 시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배격한다. 오히려 평화의 시대에 뿐만 아니라 전쟁의 시대에도 계급투쟁은 경제적 요구 투쟁과 정치투쟁 모두 이어져야 한다. 자기 이익을 위한 투쟁이 국의 어려움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자기 이익을 위한 투쟁을 미뤄야 한다는 주장을 사회주의자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반대로, 사회주의자들은 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어떠한 어려움도 환영하며, 노동자계급의 해방투쟁을 부르주아지 타도로까지 밀어가는 데 그러한 어려움을 최대로 이용한다.
 
마지막으로, 제국주의 "조국" 이데올로기에 반대하는 완강한 비타협적인 투쟁이 필요하다. 이미 평화 시에, 지금 그 투쟁을 수행해야 한다. 노동자가 지배계급과 공통으로 가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배계급 문화와 "가치"도 그렇다. 의회 및 노동운동 내 부패한 부르주아지 시종들과도 공통으로 가지는 것은 없다. 우리의 형제자매는 같은 국적을 가진 부자들이 아니다. 국적은 달라도 같은 작업장에서, 같은 지역공동체에서 착취 (그리고 초과착취)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의 형제자매다. 우리의 형제자매는 다른 나라의 노동자·피억압자들이며, “우리 나라부르주아지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국의 노동자·피억압자들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국적이 아니라, (국경을 가로질러, 그리고 피부색에 상관없이)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계급으로서의 우리의 공통의 본성이다! 요컨대, 노동자·피억압자를 반()배외주의 정신으로 교육하여 제국주의 "조국"을 향한 애국주의가 발을 못 붙이게 면역력을 갖도록 하고, 제국주의 민족국가와 스스로를 정치적·이데올로기적으로 동일시하는 일체의 민족주의와 단절하도록 이끄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필수 임무다! 이것이 맑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에 나오는 유명한 말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의 진정한 의미다.[13]
 
요약하자면, 혁명적 패전주의 원칙은 2차 세계대전 시작 직전에 트로츠키가 말한 것처럼 다음과 같이 총괄 정리할 수 있다. “패전주의는 전쟁 중에도 국내에서 주적을, 제국주의 우리나라 내에서 주적을 식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정치다. 반면에 애국주의는 자국 밖에서 주적을 찾는 정치다. 패전주의 사상은 현실에서 다음을 의미한다. 자국 부르주아지를 주적으로 하여 화해할 수 없는 혁명적 투쟁을 수행한다. 이 투쟁이 자국 정부의 패배로 결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제지받지 않고서 혁명적 투쟁을 수행한다. 혁명적 운동을 고려할 때, 자국 정부가 패배하는 것이 해악이 덜하다.”[14]
 
 
4. 이 슬로건이 의미하지 않는 것: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를 돕는 것
 
주적은 국내에 있다개념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사태의 맥락에서 매우 분명하게 볼 수 있듯이 다양한 왜곡을 겪었다. 그러한 왜곡들을 다뤄보자.
 
"주적은 국내에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와 경쟁하는 상대방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해악이 덜한 "차악"임을 뜻하지 않는다.[15] 실제로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중에 볼셰비키가 적국의 승리를 돕는다며 볼셰비키를 공격한 여러 정파들이 종종 제기하던 중상비방이었다. 즉 볼셰비키가 국 러시아와 싸우는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의 승리를 바라고 거기에 봉사한다는 것이다. 각종 멘셰비키 파벌들은 "러시아가 패배하는 것이 해악이 덜하다"라는 슬로건은 독일 제국주의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는 것이라며 레닌을 비난했다. 한 때 "러시아 맑스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플레하노프는 말년에 제국주의 조국의 추악한 사회배외주의적 옹호자가 되면서, 국제주의 반전 정강(플랫폼)독일 제국주의의 최소강령이라고 비방했다.[16]
 
한 때 볼셰비키 두마 의원이었다가 1914년에 플레하노프의 측근으로 변신한 알렉신스키는 국제주의자들을 독일이 승리하길 간절히 바라는자들이라고 비난했다.[17] 개전 직후, 알렉신스키는 러시아 국제주의자들이 "조국"에 대항하여 독일 총참모부와 공모하고 있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18] (나중에, 19172월 혁명 이후 알렉신스키는 레닌을 "독일의 첩자"로 몰며 볼셰비키에 대한 마녀사냥에 앞장섰다. 알렉신스키의 비방 성명을 게재한 한 반동 신문의 헤드라인이 레닌, 독일의 첩자였다.[19])
 
당시 여전히 반 볼셰비키 편견과 단절하지 못한 트로츠키도 레닌의 패전주의 강령을 "사회애국주의의 본질인 일국적 제한성에 갇혀 그 희생양이 되어버리는 것"이라고 비난했다.[20]
 
이러한 비판자들에 대해 레닌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트로츠키는 자기 말에 도취되어 단순한 문제에서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러시아의 패배를 바란다는 것이 그에게는 독일의 승리를 바란다는 의미로 보이는가 보다. (부크보예드와 셈코프스키는 트로츠키와 공유하고 있는 생각아니, 생각의 짧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트로츠키는 이를 사회애국주의의 방법론이라고 간주한다! 자신의 머리로 사고할 수 없는 사람을 돕기 위해 베른 결의가 명확히 천명한 명제를 환기해 보자.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지금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한다. 부크보예드와 트로츠키는 이 진실을 회피하고자 했지만, 셈코프스키 (부르주아적 지혜를 순진하리만치 솔직하게 그대로 옮기는 덕분에 노동자계급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유용한 기회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버렸다. ‘이것은 바보 같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독일이든 러시아든 둘 중에 하나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21]
 
당시 레닌은 비열한 중상비방들에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데, 오늘 우리에게는 아예 그러한 반동적 헛소리를 자신들의 정강정책으로 채택한 수많은 스탈린주의자, 민중주의자,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자들이 있다! ‘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의식적으로 외국 제국주의 열강을 지지함으로써 그러한 반동적 중상비방을 자신들의 강령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결코 레닌의 전략이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1917년 볼셰비키 당에 가입한 이후의 트로츠키의 전략과도 아무 유사성이 없다. 레닌과 트로츠키 모두 제국주의 상호 간의 전쟁 동안에 혁명가들은 개개의 모든 나라에서 패전주의 강령 "주적은 국내에 있다", "패배가 해악이 덜하다", "내란 전화" 을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위에서 인용했듯이, 1915년 봄 볼셰비키 당 재외지부 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각각의 나라에서 혁명적 선전의 결과로 그 나라가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제국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정부에 대한 투쟁이 머뭇거려서는 안 된다. 정부 군대의 패배는 정부를 약화시키고, 정부가 억압하는 민족들의 해방을 촉진하며, 지배계급에 대한 내란을 용이하게 한다.”[22]
 
트로츠키는 1934년에 발표한 테제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패전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소제목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문제가 자본주의 나라들 간의 충돌인 경우, 그 중 어느 나라든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군사적 승리를 위해 자신의 역사적인 이익 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이익은 최종적으로는 국민과 인류의 이익과 일치한다 을 희생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패배가 해악이 덜하다라는 레닌의 정식은 적국의 패배에 비하여 자국의 패배가 해악이 덜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혁명적 운동의 성장으로 인한 결과물로서의 군사적 패배는 국내평화’ [계급휴전]로 확보된 군사적 승리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체 인민에게 수천 배는 더 이롭다는 의미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전쟁 시의 프롤레타리아 정책을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정식화했다. ‘인민의 주적은 자국에 있다.’ 승리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패전으로 야기된 해악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전쟁과 패배를 막을 최종적 보장책도 만들어낼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변증법적 태도는 혁명적 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따라서 전쟁에 맞선 투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전쟁 동안에 프롤레타리아 당의 모든 사업이 거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총괄적인 전략적 임무다.”[23]
 
요약하자면, 맑스주의 개념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를 돕는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 개념은 제국주의 상호간 충돌에서 관련 모든 개개의 강대국들에게 적용되는 국제주의 원칙이다. 따라서, 이를테면 서방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이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이름으로 나토에 대항하여 러시아를 직접적으든, 간접적으로든 지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양 진영 모두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진영에 대해서만 정치적 포화를 쏟는 것 또한 마찬가지로 허용되지 않는다. 나아가 서방의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의 대() 나토 조치 (에너지 수출 중단 같은)를 지지하거나, 러시아의 사회주의자들이 서방의 대 러시아 제재를 지지하는 것 역시도 오류다.
 
 
5.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반식민지 나라에 이 슬로건을 적용해선 안 된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으로서,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은 사회주의자들이 어느 쪽도 지지할 수 없는 두 반동 진영 간의 충돌에만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제국주의 침략자와 피억압 인민 (반식민지 나라) 간의 충돌에서는 이 슬로건이 끼일 자리가 없다.
 
이와 같이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원칙은 제국주의 열강에게만 적용되고 비제국주의 나라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원칙은 제국주의 침략자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반식민지 의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 억압국과 피억압국 간의 충돌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국을 편 들어야 한다.
 
이러한 충돌에서 주적은 국내에 있다슬로건은 관련 제국주의 국가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여기서 사회주의자들은 국 부르주아지를 지지하길 거부할 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의 공격을 받고 있는 피억압 인민의 승리를 내걸어야 한다. 여기서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침략을 내부로부터 약화시키고 사보타지 하는 한편, 모든 수단을 통해 피억압 인민의 해방투쟁을 도와야 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피억압 인민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다른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도 포함하여) 받을 수 있는 그 어떤 군사 원조든 그것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지지한다.
 
이미 레닌은 1차 세계대전 동안에 제출한 글들에서 제국주의 상호 간의 충돌과 제국주의 열강 ()식민지 간의 전쟁을 이와 같이 구별할 것을 강조했다. “제국주의 시대에 식민지·반식민지가 민족전쟁을 벌이는 것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가피하다. 식민지와 반식민지(중국, 터키, 페르시아)는 인구가 거의 십억 가까이 된다. , 지구 인구의 반이 넘는다. 이들 나라에서 민족해방 운동은 이미 매우 강력하거나, 성장해서 성숙해 가고 있다. 모든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이다. 식민지의 민족해방 정치는 불가피하게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식민지의 민족전쟁으로 계속될 것이다.”[24]
 
이 원칙은 그 뒤에 스탈린주의 관료에 대항하여 트로츠키/좌익반대파가 옹호하고 지켜나갔다. " '조국 방어' 슬로건은 모든 부르주아 나라들에서 제국주의의 이익에 봉사하는 거짓 위장막이다.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민족혁명전쟁을 밀어가고 있는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말이다."[25]
 
나중에 소련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박해 받고 절멸 당한 이후, 4인터내셔널이 이러한 원칙과 강령을 위한 투쟁을 이어나갔다. “전쟁과의 투쟁은, 제대로 이해되고 실행될 경우 프롤레타리아트와 그 조직들의,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와 그 밖의 모든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를 향한 비타협적인 적대를 언제, 어디에서나 전제로 한다.... 전쟁과의 투쟁 및 전쟁의 사회적 근원인 자본주의와의 투쟁은 피억압 식민지 인민들에 대한 지지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과 전쟁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며 분명한 지지를 전제로 한다. 여기서 중립입장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26]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에서 독립 민족국가를 위한 투쟁과 그에 따른 조국 방어는 제국주의 나라들에서의 그것과 원칙에서 다르다. 전 세계의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중국 또는 인도의 민족 독립을 위한 투쟁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준다. 이 투쟁은 후진국 인민을 아시아주의, 지방적 편견, 외국의 속박으로부터 떼어냄으로써.... 제국주의 국가들에 강력한 타격을 가하기때문이다.”[27]
 
제국주의는 우리 지구상에 후진국,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이 있기 때문에 오직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이들 피억압 인민들의 민족 통일과 독립을 위한 투쟁은, 한편으로는 발전의 유리한 조건을 스스로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국주의에 타격을 가한다는 점에서 이중의 진보적 성격을 갖는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문명화된 제국주의 민주공화제와 식민지 나라의 후진적인 야만적 군주제 간의 전쟁에서 전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은 그 군주제에도 불구하고 피억압국의 편에 설 것이며, 그리고 그 민주주의에도 불구하고 억압국에 맞설 것이다.”[28]
 
요약하자면,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같은 반식민지 나라의 투쟁에는 적용될 수 없다. 그 슬로건은 제국주의 열강에만 적용된다.
 
 
6. 이 슬로건이 의미하지 않는 것: ‘국 제국주의 지배계급의 전술적 지지를 받는 피억압 인민을 지지하는 데 실패하는 것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를 편 드는 것에 반대하는 서방의 사회주의자들이 흔히 구실로 대는 것이 나토 제국주의자들이 우크라이나를 지지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우리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제국주의 전쟁에서 단지 부차적 종속적인 역할만을 갖는 민족 투쟁이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차 세계대전의 세르비아, 1999년 나토 침공 이후의 코소보).
 
그러나 제국주의 간 상호충돌과 섞였지만 거기에 종속적 부차적으로 되지는 않은 정당한 민족해방투쟁도 있어 왔다. 이러한 민족 투쟁의 예로는 1차 세계대전 동안의 여러 투쟁 (예를 들어 1916년 독일의 지지를 받은 반영
反英 아일랜드 부활절 봉기)과 함께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다양한 민족해방전쟁이 있다. 이 민족해방전쟁의 예로는, 1935-36년 에티오피아의 대()이탈리아 전쟁 (여기서 국제연맹이 이탈리아에 제재를 가하고, 나치 독일을 포함한 몇몇 국가가 에티오피아에 군사 원조를 보낸 전쟁)[29], 1937-45년 중국의 항일 전쟁 (미국의 지지를 받은 전쟁)[30], 2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와 발칸반도에서 파르티잔의 독일 점령군과의 전쟁 (서방 열강의 원조를 받은 전쟁), 아랍 인민들과 인도 인민의 대영(對英) 항쟁 (독일과 일본으로부터 원조를 받은 항쟁) 등이 있다.
 
거듭 지적해왔다시피, 스탈린주의자들, 사민주의자들, 사이비 트로츠키주의자들,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경향의 익주의자들은 이러한 민족해방투쟁에 대한 지지를 거부한다. 이들이 그러한 지지 거부를 정당화하기 위해 늘 내세우는 구실이, 그러한 민족해방투쟁이 이 또는 저 제국주의 강대국에 의해 지지 받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맑스 이래 맑스주의 고전 스승들은 진보적 해방투쟁에 대한 그러한 반동적 배신을 배격했다. 고전 스승들은 사회주의자가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영향력에 반대하는 한편, 그러한 해방투쟁 자체를 지지하는 것을 자제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왔다. 1차 세계대전 중에 레닌은 제국주의 개입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피억압자의 해방투쟁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접근태도를 잘 정리하여 제시한 바 있다.
 
현 전쟁에서 교전국 총참모부들은 적 진영의 어떠한 민족혁명적 운동이라도 이용하려고 전력을 다하고 있다. 독일인들은 아일랜드의 반란을 이용하고 프랑스인들은 체코의 운동을 이용한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관점에서 완전히 올바르게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적의 가장 사소한 약점까지도 유리한 쪽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면, 그리고 굴러 들어오는 모든 기회를 붙잡지 않는다면, 심각한 전쟁이 심각하게 취급되지 않고 말 것인데, 이는 어느 순간에, 어느 곳에서, 어떠한 힘으로 화약고가 폭발할지 미리 알 수 없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사회주의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위대한 해방 전쟁에서, 제국주의가 위기를 심화 확대시키기 위해 불러오는 단 하나의 재앙에 대해서도 그것에 대항하는 모든 인민 운동을 이용하는 방법을 모른다면, 우리는 매우 가련한 혁명가일 것이다. 우리가 한편으로는 수천 가지 어조로 모든 민족 억압에 반대한다는 선언을 되풀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피억압 민족의 어떤 계급의 가장 기동성 있고 계몽된 부분이 그 억압자들에 대항하여 일어선 영웅적인 반란을 폭동이라고 묘사한다면, 우리는 카우츠키주의자들과 같은 수준의 어리석음으로 빠져버릴 것이다.”[31]
 
이후 레닌은 서로 다른 성격의 전쟁들이 섞일 수 있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맑스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붕괴와 사회주의 사회의 탄생에 폭력이 필연적으로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이 폭력이 세계사의 한 시기를 구성할 것이다. 제국주의 전쟁, 국내전, 그 둘의 혼합, 그리고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억압 받는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민족 전쟁 (거대한 국가자본주의·군사 트러스와 신디케이트의 시대에 필연적으로 다양한 동맹에 들어갈 제국주의 열강들의 다양한 조합에 의해 억압 받는 민족들을 해방시키는 민족 전쟁) 등 다종다양한 전쟁들의 한 시대 전체를 구성할 것이다.”[32]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이 전쟁 문제에 대한 맑스주의 강령의 방어를 이어갔다. 4인터내셔널은 반동적 전쟁에 반대했지만, 1930년대 중국 인민이나 에티오피아 인민의 해방투쟁, 또는 공화주의 스페인의 해방투쟁 같은 피억압자의 해방투쟁을 지지했다.
 
"한 측에서만 제국주의 전쟁이고, 다른 측에서는 비제국주의 민족의 해방전쟁이거나 현존하는 또는 임박한 제국주의 억압에 대항하는 사회주의 나라의 전쟁인 경우에는, 그리고 계급 간 또는 민주주의 대 파시즘 간의 국내전에서는,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양측에 동일한 전술을 적용할 수 없고 적용해서도 안 된다. 이 해방전쟁의 진보적 성격을 인식하여 주적, 즉 반동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또는 내전의 경우 반동 진영에 대항하여) 단호히 싸워야 한다. 즉 사회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억압받거나 억압당할 위기에 처한 에티오피아나 중국 같은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 공화주의 스페인, 소련 등의 승리를 위해 단호히 싸워야 한다."[33]
 
반동적 전쟁과 진보적 전쟁 간의 이러한 근본적인 구별에 입각하여 맑스주의자들은 두 전쟁 각각에 대해 완전히 다른 전략을 제창한다. 우리는 반동적 전쟁의 확전에 반대하며,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전쟁에서는 무기 전달에 반대한다. 그러나 해방 전쟁에서는 사정이 매우 다르다! 그러한 경우, 사회주의자들은 무기 전달을 지지한다! 트로츠키는 1935년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물론 우리는 이탈리아의 패배/에티오피아의 승리에 찬성하며, 따라서 우리는 다른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탈리아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을 가능한 모든 수단으로 방해하고, 동시에 에티오피아에 무기 등의 전달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한다.”[34]
 
비슷한 경우로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일본의 침략에 대항하여 중국의 방위전쟁을 지지하는 명확한 입장을 취했다. 4인터내셔널은 19389월 창립총회에서 채택한 문서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중국의 항일 투쟁을 지지하는 것은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와 혁명적 전위의 당연한 의무다.... 상술한 방침에 따라 모든 나라의 노동자와 특히 혁명적 전위는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중국의 항일투쟁을 지지해야 할 의무를 진다."[35]
 
4인터내셔널은 중국의 저항이 장제스의 반동 국민당에 의해 주도되었고 미·영 제국주의에 강하게 의존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항일 투쟁을 지지했다. "국민당은 피억압 대중을 억제하고 일본 침략자들 앞에서 한발 한발 후퇴하면서 한편으론, ·미 제국주의가 중국 내 자신들의 이권이 침해당할까 우려 속에서 일본의 진군을 저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이들 열강에 더 밀착했다."
 
또 제4인터내셔널은 제국주의 열강들 간의 충돌이 세계대전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불과 몇 년 후에 현실로 확인되었다.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중국에서 그들의 약탈적인 목표를 추구함으로써 제국주의 간 상호적대를 격화시키고 인류를 새로운 세계대전의 벼랑 끝으로 몰아넣고 있다."
 
나아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이 일본 침략자들을 몰아내는 데 성공하지 못하고 이 임무를 서방 제국주의자들에게 맡긴다면 중국은 결국 그들의 식민지로 끝나고 말 것이라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서방의 제국주의자들은 극동에서 자신들의 강도적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만 일본에 맞서 개입할 것이다. 만약 일본 제국주의가 혁명적 대중에 의해서가 아니라 상대방 제국주의들에 의해 중국에서 패배한다면, 이것은 영·미 자본에 의한 중국의 노예화를 의미할 것이다. 중국의 민족해방, 그리고 모든 착취로부터 중국 대중의 해방은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트 및 피억압 인민들과의 동맹 속에서 중국 대중 자신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이 모든 곤란과 위험은 제4인터내셔널이 중국 인민의 민족해방전쟁에 대한 지지를 이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제4인터내셔널은 분쟁의 이중적 성격을 인식하여, 정의의 전쟁을 지지하면서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반대했다.
 
그러므로 사회주의자는 [이를테면 서방 나라]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피억압 인민 [이를 테면 우크라이나 인민]에 대해 군사 원조를 하는 것에 반대해야 한다고 결론짓는 것은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을 희화화 하는 것이다! 이것은 에티오피아를 위한 독일 무기에, 중국을 위한 미국 무기에, 2차 세계대전에서 유럽의 파르티잔들을 위한 서방 원조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 실제로 그러한 형태의 "반제국주의"는 맑스주의의 희화로서, 변주된 사회제국주의다!
 
트로츠키는 그런 사이비 사회주의자들을 경멸할 수밖에 없었다. “전쟁과의 투쟁 및 전쟁의 사회적 근원인 자본주의와의 투쟁은 피억압 식민지 인민들에 대한 지지를,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그들의 투쟁과 전쟁에 대한 직접적이고 적극적이며 분명한 지지를 전제로 한다. ‘중립입장은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런던사무국 대회 지지 선언자들 가운데는 약탈자 이탈리아 파시즘에 대항하는 용기 있는 에티오피아 전사들을 곤경에 처하게 하는 것을 중립논리로 지지하는 독립노동당원들도 있으며, 아랍 농민들의 정당한 비록 혼란되어 있긴 하지만 정당한 투쟁에 대한 영국 제국주의의 야만적인 공격에 이 순간까지도 기대고 있는 좌파 시온주의자들도 있다.”[36]
 
 
7. 이 슬로건이 사회제국주의적인 일국적 편협함의 구실로 오용되어선 안 된다
 
마지막으로,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의 또 다른 왜곡을 지적해야 하겠다. 일국적 편협함이다. 각종 스탈린주의자들, 민중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이 국 부르주아지에 반대하는 것에 만족하고 국 외의 나머지 세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접근태도가 그것이다! 서방 외의 타 열강들 (말하자면 러시아와 중국)의 계급적 성격은 무엇인가? 민족해방투쟁이 또 다른 나라에서 (말하자면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는가? 분쟁 지역에 (말하자면 대만에) 복잡한 민족 문제가 존재하는가? 등등. 이 모든 것이 많은 서방의 사회주의자들에게는 별 관심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는 우리나라 지배계급에 반대하고, 우리나라 외의 나머지 세계는 우리에게 너무 복잡하다"는 원칙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한 접근태도는 맑스주의의 국제주의 원칙에 정면 대립한다. 실제로는, 나머지 세계에 대한 평가분석 없이는 우리나라부르주아지와 싸울 수 없다.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세계정치/국제 계급투쟁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평가분석 없이는 우리나라부르주아지의 어느 적이 지지해야 할 적이고, 어느 적이 지지하지 말아야 할 적인지 알 수 없다. 그러한 평가분석 없이는 국제 계급투쟁에 결합하는 것도, 국제 연대와 국제 캠페인을 조직하는 것도, 사회주의혁명 세계당을 건설하는 것도 다 가능하지 않다!
 
보통 이런 일국적 정치 편협성의 진짜 이유는 지적 '나태'가 아니라 기회주의적인 정치적 계산이다. 그러한 세력이 세계정치와 국제 계급투쟁의 주요 사안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해나가길 거부한다면, 이 경우 사회제국주의 세력과 동맹을 구축하는 것이 그들에게 훨씬 쉬워질 것이다! 요컨대, 세계정치와 국제 계급투쟁의 맥락에서 일국적 편협함은 사회제국주의를 도울 수밖에 없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일국' 맑스주의 정치는 '일국' 사회주의 사회 건설만큼이나 불가능하다. 일국적 문제에 국한된 정치 노선을 발전시키려는어떤 집단도 불가피하게 종파주의적 퇴보 타락에 처하게 된다."[37] 오늘 전 지구적인 분쟁과 전쟁으로 점철되고 있는 세계에서 이 말은 특히 정곡을 찌른다!
 
 
8. 맺음말
 
1)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은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파멸적 충돌인 1차 세계대전의 맥락 속에서 생겨났다. 이 슬로건은 식민지와 세력권, 노획물 분배를 둘러싼 쟁탈전 속에서 군사적 충돌에 들어간 제국주의 정부들을 명시적으로 겨눈 슬로건이다.
 
2) 맑스 이래 맑스주의 스승들이 이해하고 있었던 바 그 슬로건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제국주의 나라의 노동자계급은 모든 조건하에서 언제나 지배계급과는 정치적으로 독자·독립적이어야 한다. 부르주아지가 공력을 들이는 정치적·경제적·군사적·외교적·이데올로기적 사업들에 어떠한 지지도 보내선 안 된다. 그것들은 모두 강대국 정책의 일부다. 노동자계급은 모든 형태의 국민통합”, “민족대단결”, “거국일치에 반대해야 하며, 이러한 반대가 국 제국주의 국가에 미칠 결과를 고려하는 것 없이 자신의 이해를 위한 투쟁을 밀어가야 한다. 제국주의 전쟁을, 지배계급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전복시킬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종류의 배외주의와 제국주의적 애국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 노동자는 민족 부르주아지와 아무것도 공통으로 가지는 것이 없지만, 이주자 및 다른 나라의 노동자·피억압자와 모든 것을 공통으로 가진다.
 
3) “주적은 국내에 있다슬로건은 '우리'나라 부르주아지의 경쟁자 (상대방 부르주아지)차악임을, 또는 계급투쟁의 동맹군임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1914-18년 제국주의 전쟁의 사회애국주의적 지지자들이 레닌과 볼셰비키를 비방하는 데 사용한 희화다. 언제나 맑스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강대국 국 이든 외국이든 에 지지를 주길 단호히 거부했다. 오늘, 서방 나라들의 많은 스탈린주의자들, 민중주의자들, 중도주의자들은 이 사회애국주의적 희화를 받들고서 자신들이 주적은 국내에 있다슬로건을 견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러·중 제국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또는 서방에 비해 러·중이 차악이라고 주장하는 것으로 자신들이 그 슬로건을 고수하고 있다고 자처한다. 실제로는, 그러한 희화는 이 슬로건의 반제국주의적 본질에 대한 사회제국주의적 왜곡에 불과하다.
 
4)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고 있는 반식민지 나라에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을 적용해선 안 된다. 이 슬로건은 반동적 전쟁에만 해당된다. 즉 사회주의자들이 비타협적으로 양측 모두에 반대하고 양측의 패배를 내거는 경우의 전쟁에만 해당된다. 한쪽 진영이 진보적 해방투쟁 (민족해방전쟁, 노동자들의 내란/국내전, 노동자국가의 혁명전쟁)을 벌이고 있는 정의의 전쟁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러한 전쟁에서 주적은 (자국의 지도부가 아니라) 제국주의 침략자, 반동 침략자다.
 
5) 따라서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하여 자신을 방어하는 반식민지 나라를, 맑스주의자가 국 부르주아지가 이 나라를 지지한다는 구실로 지지하길 거부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사실상 제국주의 침략자를 돕는 것일 뿐인,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의 또 다른 희화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강대국들 서로가 상대방의 어려움 (피억압 인민의 저항 같은)을 이용하려는 것은 거의 피할 수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와 같이 피억압 인민의 저항을 이용하려 한다는 그 때문에 맑스주의자들이 그러한 반식민지 나라의 해방투쟁을 지지하길 거부할 권리가 있다? 얼토당토 않는 얘기다. 레닌과 트로츠키의 그러한 강조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 전혀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 인민의 정당한 투쟁 (사회주의자들이 국 부르주아지의 접근태도와 상관없이 지지해야 하는)과 제국주의 상호 간 패권쟁투 (사회주의자들이 어느 쪽 강대국도 지지해선 안 되는)를 구별해야 한다.
 
6) 마지막으로, “주적은 국내에 있다슬로건이 일국적 편협함의 구실로 악용돼선 안 된다. 이 원칙을, 많은 기회주의자들이 국내 계급투쟁의 문제들로 자신들을 한정하고 전 지구적 분쟁과 국제 계급투쟁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관해서는 잊기위한 또는 신경 쓰지 않기 위한 구실로 이용한다. 그러한 "게으름"은 그들이 이 문제들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취하지 않아도 되게 해준다. 그리고 다시 이것은 그들 기회주의자들이 사회제국주의 세력과 동맹을 구축하는 것을 쉽게 해준다. 간단히 말해서, 그러한 일국적 편협함은 사회제국주의를 도울 수밖에 없다!
 
7)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투쟁은 모든 형태의 사회배외주의와의 비타협적인 투쟁을 요구한다. 그 투쟁은 무엇보다도 사회주의혁명 세계당 창건으로 나아가기 위한 체계적인 활동을 요구한다. 세계당은 이러한 체계적인 투쟁을 수행할 수 있고 노동자계급을 세계사회주의혁명 제국주의 전쟁과 착취를 끝장내고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여는 단 하나의 길 으로 이끌 수 있는 조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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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크라이나 전쟁과 현 나토-러시아 분쟁에 관한 100여 편의 RCIT 문서가 다음의 우리 웹사이트 특별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compilation-of-documents-on-nato-russia-conflict/. 특히 다음 문서를 보라. < [RCIT 선언] 우크라이나 전쟁: 세계사적 의의를 갖는 전환점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임무>, 202231, https://blog.wrpkorea.org/2022/05/rcit.html
 
[2] 대만해협 사태에 대한 RCIT의 입장으로는, 다음을 보라. <[대만 테제] 강대국 패권쟁투와 민족 문제>, 2022820, https://blog.wrpkorea.org/2022/08/blog-post_72.html; 다음 글들도 보라. <펠로시의 대만 방문: ·중 전쟁을 촉발할 수 있다 - 양측 제국주의 모두 반대! ·중 대결에서 노동자운동은 양측 모두에 대해 혁명적 패전주의를 취해야 한다!>, 202281, https://blog.wrpkorea.org/2022/08/blog-post_2.htm; <다가오는 제국주의 간 대만 전쟁 - ·중 두 강대국 모두에 대항하는 혁명적 패전주의>, 20211010,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538.html
; Michael Pröbsting: China: An Imperialist Power Or Not Yet? A Theoretical Question with Very Practical Consequences! RCIT Pamphlet, 22 January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imperialist-power-or-not-yet/
 
[3] 맑스주의 강령 혁명적 패전주의 및 방위주의에 대한 포괄적인 설명으로는, 다음 두 책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The Great Robbery of the South. Continuity and Changes in the Super-Exploitation of the Semi-Colonial World by Monopoly Capital Consequences for the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2013,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great-robbery-of-the-south/, 특히 12장과 13장을 보라.
 
[4] 우리는 러시아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제국주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peculiar-features-of-russian-imperialism/#anker_6; 노동자혁명당(),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202110,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Michael Pröbsting: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d the Rise of Russia as a Great Power. On the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of Today’s Inter-Imperialist Rivalry in the Light of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other Reply to Our Critics Who Deny Russia’s Imperialist Character, August 2014,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m-theory-and-russia/; Russia as a Great Imperialist Power. The formation of Russian Monopoly Capital and its Empire A Reply to our Critics, 18 March 2014, in: Revolutionary Communism No. 21,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t-russia/; Russian Imperialism and Its Monopolies, in: New Politics Vol. XVIII No. 4, Whole Number 72, Winter 2022, https://newpol.org/issue_post/russian-imperialism-and-its-monopolies/ (이 논문은 다음 잡지에도 실렸다. International Viewpoint, 21. April 2022, https://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7618); Once Again on Russian Imperialism (Reply to Critics). A rebuttal of a theory which claims that Russia is not an imperialist state but would be rather “comparable to Brazil and Iran”, 30 March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once-again-on-russian-imperialism-reply-to-critics/. 이 문제에 관한 여러 다른 RCIT 문서들이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별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5] RCIT는 중국 자본주의와 중국의 강대국 부상에 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https://www.thecommunists.net/home/%ED%95%9C%EA%B5%AD%EC%96%B4/book-anti-imperialism-in-the-age-of-great-power-rivalry/; 같은 저자의 다음 논문들도 보라. the second edition of The Palgrave Encyclopedia of Imperialism and Anti-Imperialism (edited by Immanuel Ness and Zak Cope), Palgrave Macmillan, Cham, 2020, https://link.springer.com/referenceworkentry/10.1007%2F978-3-319-91206-6_179-1; China: An Imperialist Power Or Not Yet? A Theoretical Question with Very Practical Consequences! Continuing the Debate with Esteban Mercatante and the PTS/FT on China’s class character and consequences for the revolutionary strategy, 22 January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imperialist-power-or-not-yet/; China‘s transformation into an imperialist power. A study of the economic, political and military aspects of China as a Great Power (2012), in: Revolutionary Communism No. 4, http://www.thecommunists.net/publications/revcom-number-4; How is it possible that some Marxists still Doubt that China has Become Capitalist? (A Critique of the PTS/FT), An analysis of the capitalist character of China’s State-Owned Enterprises and its political consequences, 18 September 2020,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pts-ft-and-chinese-imperialism-2/; <PTS/FT와 중국 사회성격 토론>, https://blog.wrpkorea.org/2022/05/ptsft.html; China’s Emergence as an Imperialist Power (Article in the US journal 'New Politics'), in: “New Politics”, Summer 2014 (Vol:XV-1, Whole #: 57); 노동자혁명당(),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중국 제국주의>>,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27.html.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특별 하위 페이지에서 더 많은 문서들을 볼 수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6] Karl Liebknecht: Der Hauptfeind steht im eigenen Land! (May 1915), in: Karl Liebknecht: Gesammelte Reden und Schriften, Dietz Verlag, Berlin 1974, pp. 229230; in English: Karl Liebknecht: The Main Enemy Is At Home!, https://www.marxists.org/archive/liebknecht-k/works/1915/05/main-enemy-home.htm
 
[7]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 레닌전집 59(“2인터내셔널의 붕괴”), 양효식 옮김, 아고라, 116.
 
[8] 레닌,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레닌전집 58. (“마르크스”), 양효식 옮김, 아고라, 42
 
[9]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레닌전집 60, (“사회주의와 전쟁”), 양효식 옮김, 아고라, 55-6
 
[10] 이에 대한 요약정리로는 다음을 보라. RCIT: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혁명적 패전주의에 관한 테제>, 201898,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9.html
 
[11] Carl von Clausewitz: On War, Vol. 1, London: Kegan Paul, Trench, Trubner & C., 1908, p. 23
 
[12] 레닌, <2인터내셔널의 붕괴>, 레닌전집 59(“2인터내셔널의 붕괴”), 227. (강조는 원저자).
 
[13] 별도로, 반식민지 피억압국에서는 이 임무가 다른데, 여기서는 강대국에 대항하는 반제국주의적 애국주의는 정당할 뿐 아니라 진보적이다.
 
[14] Leon Trotsky: A step towards social patriotism (1939),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8-39, p. 209
 
[1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Russia and the Theory of “Lesser-Evil” Imperialism. On some Stalinists and “Trotskyists” who formally recognize Russia’s class character but reject the political consequences, 28 July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russia-and-the-theory-of-lesser-evil-imperialism/
 
[16] Georgi W. Plechanow: Zwischen Revolution und Demokratie. Artikel und Reden 19171918, BasisDruck, Berlin 2016, pp. 188-198. 다음도 보라. Samuel H. Baron: The Father of Russian Marxism, Stanford University Press, Stanford 1963, pp. 317-336
 
[17] Gregor Alexinsky: Russia and the Great War, T. Fisher Unwin, London 1915, p. 240
 
[18] Alfred Erich Senn: The Russian Revolution in Switzerland, 1914-1917,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Madison 1971, pp. 103-114; 다음도 보라. Ian D. Thatcher: Leon Trotsky and World War One. August 1914February 1917, Macmillan Press, London 2000, pp. 111-132
 
[19]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Alexander Rabinowitch: The Bolsheviks Come to Power, NLB, London 1979, pp. 15-20
 
[20] 다음에서 인용. Ian D. Thatcher: Trotskii, Lenin and the Bolsheviks, August 1914-February 1917, in: The Slavonic and East European Review, Vol. 72, No. 1 (1994), p. 107
 
[21] 레닌,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에 대하여>, 레닌전집 59(“2인터내셔널의 붕괴”), 336-7
 
[22]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 레닌전집 59(“2인터내셔널의 붕괴”), 116.
 
[23] Leon Trotsky: War and the Fourth International (June 10, 1934),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3-34, p. 320
 
[24] 레닌, <유니우스 팜플렛에 대하여>, 레닌전집 64(“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양효식 옮김, 아고라, 19.
 
[25] The Platform of the Opposition (1927), in: Leon Trotsky: The Challenge of the Left Opposition (1926-27), pp. 367-368
 
[26] Leon Trotsky: Resolution on the Antiwar Congress of the London Bureau (1936),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New York 1973, p. 99
 
[27] Manifesto of the Fourth International on Imperialist War. Imperialist War And The Proletarian World Revolution; Adopted by the Emergency Conference of the Fourth International May 19-26, 1940;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pp. 330-331; http://www.marxists.org/history/etol/document/fi/1938-1949/emergconf/fi-emerg02.htm
 
[28] Leon Trotsky: Stalin An Appraisal of the Man and his Influence (1940), Chapter VI: War and Exile, http://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40/xx/stalin/ch06.htm
 
[29] Michael Pröbsting: Ukraine War: Revolutionary Defensism and Non-Revolutionary Defensism. A comradely critique of LIT-CI which falsely combines its defence of the Ukraine with support for Western imperialist sanctions against Russia, 15 July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ukraine-war-revolutionary-defensism-and-non-revolutionary-defensism/
 
[3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우크라이나 전쟁과 2차 중일전쟁: 역사적 유추>, 2022310, https://blog.wrpkorea.org/2022/05/2_26.html
 
[31] 레닌, <민족자결에 관한 토론 총괄 정리>, 레닌전집 64(“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99-100.
 
[32] V. I. Lenin: Report on the Review of the Programme and on Changing the Name of the Party, March 8 (1918), in: LCW Vol. 27, p.130
 
[33] Rudolf Klement: Principles and Tactics in War, The New International, May 1938, Theoretical Journal of the Socialist Workers Party (US-Section of the Fourth International),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klement-war/
 
[34] Leon Trotsky: The Italo-Ethiopian Conflict (1935),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5-36), Pathfinder Press, New York 1970, p. 41
 
[35] Fourth International: The War in the Far East and the Revolutionary Perspectives (1938),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Formative Years (1933-40), Pathfinder Press, New York 1973, http://www.marxists.org/history/etol/document/fi/1938-1949/fi-1stcongress/ch08.htm.
 
[36] Leon Trotsky: Resolution on the Antiwar Congress of the London Bureau (1936),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New York 1973, p. 99
 
[37] Leon Trotsky: Unifying the Left Opposition (1930); in: Writings 1930, p. 99, http://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0/02/unity.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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