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식민지 나라를 편 드는 것이 “진영주의”인가?

반식민지 나라를 편 드는 것이 진영주의인가?

 
미국-이스라엘 침략에 맞선 이란의 정당한 민족방위 전쟁을 편 들길 거부하는 비평가들에 대한 답변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2026324, www.thecommunists.net


    맑스주의자들 대부분이 이란에 대한 제국주의전쟁을 옳게 규탄하지만, 그들 중 소수만이 이란을 방어한다. 그리고 이 소수 중에서도 이란을 방어한다는 일반적 문구를 넘어 실제 이란 군대의 군사적 투쟁을 편 들 준비가 되어 있는 자는 거의 없다.[1]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외에 LIT-CI (국제노동자동맹-4인터), UIT-CI (국제노동자연합-4인터) 등 극소수의 조직들뿐이다.[2]
 
일련의 자칭 맑스주의자들이 우리를 비롯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을 진영주의자라고 비판한다. , 이란 정권 진영을 지지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비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해 서방 대리전운운하고, 이란에 대해서는 ()제국주의 지역 강국으로 몰아 반식민지 나라 방어에 반대하는 영국 SWP의 대표 이론가 캘리니코스는 우리를 비롯해 푸틴의 침략에 맞서 우크라이나의 편을 드는 자들을 진영주의라고 비난했다.
 
새로운 형태의 진영주의는 사실상 서방 제국주의를 권위주의적 위협에 맞선 민주주의의 수호자로 간주한다.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영향력 있는 이 새로운 형태의 진영주의는 우크라이나 전쟁을 민족해방투쟁으로, 미국에 맞선 베트남의 민족해방투쟁과 비견되는 그러한 투쟁으로 축소 환원하는 경향이 있다.”[4]
 
동일하게, 연속혁명경향-4인터 (구 트로츠키주의분파; FT)도 우리를 비롯해 아사드 독재에 맞서 시리아 혁명을 지지한 자들을 진영주의” 죄로 고발했다.[5]
 
   진영주의”: 혼란을 야기하는 범주
 
진영주의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게 된 것은 지난 몇 년 사이의 일로, 강대국 진영 어느 측도 미국·서유럽도, 중국·러시아도 지지하길 거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확산되었다. 그래서 애초에는 중국·러시아 제국주의에 동조하는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비판의 맥락에서 주로 (올바르게) 제기된 용어였다.
 
우리는 이 범주를 그와 같은 제국주의 간 경쟁 맥락에서 사용하는 것이 그 자체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우리 스스로는 그 말을 쓰지 않는다.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범주이기 때문이다.
 
진영주의는 한쪽 편을 든다는 단순한 뜻이다. 이것 자체로는 잘못된 게 없다. 어느 편을 드느냐가 문제일 따름이다. 제국주의 국가의 편에 서는 것 예컨대 이란을 적으로 하여 미국·이스라엘을 편 드는 것이나 우크라이나를 적으로 하여 러시아를 편 드는 것, 또는 중국을 적으로 하여 미국을 편드는 것이나 미국을 적으로 하여 중국을 편드는 것 은 원칙에서 잘못된 것이며, 맑스주의를 사회제국주의로 대체하는 것이다. 사회제국주의란 사회주의 언사로 위장하여 제국주의 국가를 지지하는 입장 (즉 말로는 사회주의인데 실제로는 제국주의 지지)을 말한다.
 
사회제국주의, 사회배외주의 (사회쇼비니즘), 사회애국주의 같은 범주들은 그러한 입장들의 정치적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 의미를 가지지만, “진영주의라는 용어는 그냥 대립·충돌에서 한쪽 편을 든다는 것을 밝힐 뿐인 무내용의 빈 범주다.
 
우크라이나나 시리아 혁명이나 또는 지금 이란을 방어한다는 이유로 우리 같은 사회주의자들을 향해 진영주의라고 비난하는 것을 보면, 이 용어가 왜 문제가 많은지 잘 알 수 있다. 그러한 비난은 러시아나 중국 진영에 서는 것을,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침략에 직면한 나라 (또는 독재에 의한 억압에 직면한 인민)의 투쟁을 지지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비난이다.
 
, 그러한 비난은 우리의 비판자들이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나 러시아나 중국 같은)와 반식민지 나라 (우크라이나[7]나 이란[8] 같은) 간의 계급적 차이에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드러낼 뿐이다.[9]
 
   세계는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나뉜다
 
실제로 착취하는 나라와 착취당하는 나라, 억압하는 민족과 억압받는 민족으로 세계가 나뉜다는 것은 현대 자본주의, 즉 제국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적 인식의 핵심 구성부분이다. 맑스와 엥겔스는 19세기, 즉 제국주의 이전의 자본주의 시대를 살았지만, 그럼에도 억압민족-피억압민족 구분이 세계 정치·경제의 핵심 지표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맑스 · 엥겔스가 러시아에 대항하는 폴란드 인민의 투쟁을, 영국에 대항하는 아일랜드 인민의 투쟁을, 오스트리아-헝가리에 대항하는 (통일 이전) 이탈리아인의 투쟁을, 대영제국에 대항하는 인도인의 투쟁을 지지한 이유다.
 
제국주의시대가 등장하면서 세계는 한줌의 독점체들과 강대국들에 의해 지배되었다. 레닌은 세계가 제국주의 국가와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로 나뉜다는 사실을 맑스주의 강령의 핵심 구성부분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국주의는 한줌의 강대국들에 의한 전 세계 민족들의 억압이 누적적으로 고조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제국주의는 민족 억압을 확대, 강화하기 위한 그들 강대국 간의 전쟁의 시대를 의미한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민주주의 강령에서의 초점은, 모든 민족을 억압 민족과 피억압 민족으로 구분하는 데 두어야 한다. 이러한 구분에 바로 제국주의의 본질이 있는데,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카우츠키는 이것을 기만적으로 회피하고 있다. 이 구분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의 시각이나 자본주의 하의 독립국들 간의 평화적 경쟁이라는 속물적 유토피아의 시각에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제국주의에 대한 혁명적 투쟁의 시각에서는 가장 중요하다."[10]
 
따라서 강대국 간 제국주의적 경쟁에서 한 강대국을 지지하는 것을, 어떻게 제국주의 국가에 대항하는 전쟁에서 반식민지 나라를 지지하는 것과 동일하게 취급할 수 있을까. 제국주의 국가 지지와 반식민지 나라 지지라는 이 정반대의 두 가지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자체가 완전히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자본 간 경쟁과, 자본가에 대항하는 노동자의 투쟁을 동일시하는 것과 같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우리의 비판자들은 반식민지 나라 내부의 계급 모순과 정권에 의한 대중 억압을 들길 좋아한다. 물론, 맑스주의자들은 이들 사실을 십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란의 인민을 억압하는 반동 신정 정권은 그 실제 예다. 그러나 우리가 반복해서 강조했듯이, 반식민지 부르주아지 자신이 어느 정도로는 제국주의 국가에 의한 억압에 직면해 있다. 그 때문에 트로츠키는 반식민지 부르주아지를 ()지배계급, ()피억압계급이라고 했다.[11]
 
더욱이, 대중이 권력을 장악한 상황이 아닌 한 이러한 반식민지 나라 인민의 어떠한 저항도 그 저항을 이끄는 것은 국가 무력 이외의 다른 것일 수가 없다. 그리고 국가 무력을 지배하는 것은 반식민지 나라를 이끄는 계급, 즉 반식민지 부르주아지와 그 정권이다. 따라서 주어진 전쟁에서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현존 유일의 구체적 저항 형태는 그러한 부르주아 반식민지 정권이 이끄는 저항이다. 이러한 저항의 편에 서길 거부하는 것, 즉 부르주아지 주도 투쟁 진영을 편 들길 거부하는 것은, 강대국에 대한 그 어떤 다른 형태의 저항도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반제 투쟁을 방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군사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의 차이
 
우리의 비판자들이 "진영주의" 비난을 정당화하기 위해 범하는 또 다른 오류는 이란 무력 (이란 군대, 즉 혁명수비대와 정규군 등)의 군사적 투쟁에 대한 지지를, 정권에 대한 정치적 지지와 혼동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것은 어리석은 비난이다. 대중의 자연발생적인 분출 (종종 폭동으로 끝나는)이라는 몇 안 되는 경우들을 제쳐둔다면, 대부분의 계급투쟁은 조직된 세력에 의해 주도된다. 이것이 노동조합이나 정당, 게릴라 세력일 수도 있고, 또는 국가일 수도 있다. 혁명적 리더십의 역사적인 위기를 고려할 때, 이러한 조직된 세력을 이끄는 것은 보통 개량주의 관료나 민족주의 운동, 이슬람주의 운동이나 또는 반식민지 부르주아 국가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조합 관료들이 이끄는 파업이나,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 또는 이슬람주의자가 이끄는 민족 운동이나 부르주아 군대가 이끄는 반제국주의 해방 전쟁에 함께 한다면,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비혁명적 세력을 지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가? 추상 속의 파업이나 해방투쟁을 지지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다. ,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투쟁, 즉 개량주의, 민족주의 등등의 의식을 가지고 있고 ()부르주아 세력에 의해 이끌리는 노동자들과 피억압자들의 투쟁을 오직 지지할 수 있을 뿐이다. 투쟁의 밖에서는 투쟁을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RCIT를 비롯한 모든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은, 한편으로 파업투쟁이나 대중시위, 해방 전쟁에서의 군사적 투쟁 등의 실천적 활동을 지지하는 것과,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투쟁을 이끄는 세력에 대한 정치적 지지를 엄격히 구분한다. 우리는 이러한 투쟁을 지지하지만, 지도부에 정치적으로 반대하고 혁명적 지도부로 대체되기를 원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사회주의자들이 그들의 실천적 지지를 정치적 비판과 결합하는 이유다. 투쟁 배신의 잠재적 위험을 경고하는 노력과 결합하는 이유다. 대중의 독립적인 활동에 대한 지지, 그리고 노동자·피억압자의 독립적인 자기 조직화 시도에 대한 일체의 지지와 결합하는 이유다.
 
우리는 비판자들에게 묻는다. 노동자 · 피억압인민의 정당한 투쟁을 이것 말고 달리 어떻게 지지하고 싶은 것인가? 가상공간에만 존재하는 상상 속의 '3진영'을 창조해서?!
 
이 모든 이유로 우리는 미국-시온주의 침략에 맞선 이란의 정당한 민족방위 전쟁에 대한 우리의 지지를 비난하는 어떠한 비평도 배격한다. 또한 쓸모없는 무내용의 진영주의공담도 배격한다. 명확히 하자. 우리는 사회제국주의적 "진영주의"에 반대하지만, 프롤레타리아 반제국주의적 "진영주의"에는 앞장선다. , 억압자들에 맞선 구체적 저항투쟁을 (그 저항투쟁의 비혁명적 지도부에 정치적 지지를 주지 않고서) 지지하는 것에는 찬성 옹호하고 선도한다.
 
    미국·이스라엘 제국주의에 패전을! 이란에 승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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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량주의 · 중도주의 좌익에 대한 우리의 비판으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미국 대 이란의 전쟁에서 억압 전쟁과 해방 전쟁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평화주의자들 - 사회주의자는 예로부터 해방 전쟁의 반대자인 적이 없고, 또한 결코 반대자일 수가 없다>, 2026316, https://blog.wrpkorea.org/2026/03/blog-post_24.html; <이란 방어와 반제 통일전선 전술>, 2026312, https://blog.wrpkorea.org/2026/03/blog-post_92.html; 같은 저자, The Iran War and those Socialists Who Are Not So Anti-Imperialist. A critique of LIS/ISL, CWI, ISA, PRMI and ISp which all refuse to side with the Iranian forces against the American-Zionist aggression, 2 March 2026,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the-iran-war-and-those-socialists-who-are-not-so-anti-imperialist/
 
[2] For a compilation of the RCIT Documents on the Iran War 2026 we refer readers to a subpage on our website,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mpilation-of-articles-on-the-iran-war-2026/.
 
[3] 이에 대한 우리의 답변으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Misunderstanding Imperialism and its Crisis. A reply to Alex Callinicos (SWP/IST) on Great Power rivalry and imperialist super-exploitation of semi-colonial countries, 27 March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misunderstanding-imperialism-and-its-crisis-reply-to-alex-callinicos/
 
[4] Alex Callinicos: Understanding the crisis of imperialism. What is imperialism and how should the left oppose it? 16 January 2025, https://socialistworker.co.uk/in-depth/understanding-the-crisis-of-imperialism/.
 
[5] Trotskyist Fraction Fourth International: An Internationalist Position on the Fall of Assad and the Crisis in Syria, December 16, 2024, https://www.leftvoice.org/declaration-an-internationalist-position-on-the-fall-of-assad-and-the-crisis-in-syria/. 우리의 답변으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시리아 혁명의 비방자들 - 아사드 타도에 대한 대중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없는트로츠키주의분파 (FT/PTS) 비판>, 202519, https://blog.wrpkorea.org/2025/02/ftpts.html
 
[6] RCIT는 중국 · 러시아의 자본주의 복고 및 제국주의 열강으로의 부상에 대해 여러 문서를 발표했다. 다음을 보라.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7] [팜플렛] 우크라이나 사회성격: 자본주의 반식민지 사회구성체 - 1991년 자본주의 복고 이래 제국주의 독점체와 과두재벌에 의한 우크라이나 경제의 착취와 기형화에 대하여, 20231, https://blog.wrpkorea.org/2023/02/blog-post_22.html
 
[8] 미하엘 프뢰브스팅, <“이란도 제국주의다”? - “지역 제국주의 국가인가, 자본주의 반식민지인가?>, 2025618, https://blog.wrpkorea.org/2025/06/blog-post_24.html
 
[9] 오늘날 제국주의에 대한 RCIT의 평가분석으로는, 우리의 다음 두 책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같은 저자, The Great Robbery of the South. Continuity and Changes in the Super-Exploitation of the Semi-Colonial World by Monopoly Capital Consequences for the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2013,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great-robbery-of-the-south/
 
[10] 레닌,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와 민족자결권>, <<사회주의와 전쟁>>, 아고라, 244.
 
[11] Leon Trotsky: Not a Workers’ and Not a Bourgeois State? (1937); in: Trotsky Writings 1937-38, p.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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