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귀족층/ 민족 문제/ 반제통전 / 경제주의·추수주의 문제


노동귀족층/ 민족 문제/ 반제통전 / 경제주의·추수주의 문제

-  시온주의 국가에 대한 투쟁에서의 전술·전략에 대하여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20241218, www.thecommunists.net

차례
 
들어가며
 
2. 우리의 팔레스타인 해방 강령
 
3.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적 성격에 대하여
 
4.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5.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에 대하여
 
6. "노동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7. 맺으며


                                  * * * *


 1. 들어가며
 
국제공산주의동맹 (ICL; 별칭 스파르타쿠스단”)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가자 전쟁 맥락 속에서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에 대한 우리의 입장을 비판하는 논설을 최근 발표했다. 우리는 현 시기 가장 중요한 투쟁 중 하나인 이 투쟁에 대한 맑스주의 전략·전술의 근본 문제들을 여기서 다루고자 한다.[1]
 
ICL의 비판은 매우 부당한 근거 없는 비난을 담고 있지만, 우리는 누가 누구에 대해 "데마고그 비난"을 했는지 입씨름을 할 생각이 없으며, 그 보다는 논쟁의 강령적 핵심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60여 년 동안 존속해 온 이 조직 스파르타쿠스단은 시온주의에 중대한 양보·타협을 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지난 2~3년 동안 스파르타쿠스단/ICL은 자신의 전통에 대한 비판적 재평가 과정을 거쳐 일련의 근본적인 교정 작업을 해냈다. 이 변화는 당연히 반제국주의 투쟁에 대한 조직의 강령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ICL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입장도 교정하고 개선했으며, 이제 그들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우리 전통의 얼룩진 유산의 오류를 밝히고 있다. ICL은 이를 시온주의에의 투항 유산이라고 규정한다.[2]
 
당연히 우리는 이러한 교정을 환영한다. 그러나 ICL의 비판 글에서 보듯이, 이 전환은 완전치 않으며, 기존 접근방식의 주요 잔재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ICL의 문서는 세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우리의 답변도 이 체계를 따를 것이다. 그 전에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서 우리가 내거는 투쟁 방향과 노선을 먼저 간략히 요약 제시하겠다.
 
2. 우리의 팔레스타인 해방 강령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과 RCIT 점령지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지부는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지지해 온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언제나 우리가 시온주의 야수에 맞서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편에 서 있는 이유다. 동시에, 우리는 하마스를 비롯한 그 밖의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또는 이슬람주의 조직들에 정치적 지지를 주지 않는다. 시리아의 반동 아사드 폭정과 이란의 물라(율법학자)-자본가 독재를 지지하는 수치스런 역할을 한 헤즈볼라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이스라엘 제국주의 아파르트헤이트 · 식민 정착자 국가 이스라엘 과의 어떠한 군사적 대결에서도 우리는 자본주의 반식민지들인 아랍·무슬림 나라들 (이란과 튀르키예를 포함하여)의 편을 든다. 시온주의와 제국주의 강대국들에 맞선 이러한 투쟁에서 노동자계급은 ()부르주아 민족주의 또는 이슬람주의 세력과는 독립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
 
우리는 전 세계 노동자·민중 조직들에게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지지할 것을 호소한다. 필요한 모든 수단으로 무기 인도 차단, 경제·금융 보이콧에서 이스라엘과의 모든 관계 단절까지 시온주의 국가를 보이콧하는 전 세계적인 연대 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또 노동자운동 내 일체의 친 시온주의 지도자들에 대한 투쟁도 특히 유럽과 미국에서 매우 중요하다. 아랍 나라들에서는 노동자·민중의 투쟁으로 시온주의 야수와의 "(국교)정상화" 시도 일체를 중단하도록 강제하고 원조와 무기로 팔레스타인 형제자매들을 돕도록 정부를 밀어붙여야 한다.
 
RCIT는 전진하는 유일한 길은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의 혁명적 파괴와 요르단강에서 지중해까지 붉은 해방 팔레스타인의 창설임을 밝히는 바다. 그러한 세속·민주 팔레스타인 국가는 모든 난민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할 것이다. 동시에, 모든 시민들 (유대인 소수자를 포함하여)에게 동등한 문화적·종교적 권리를 보장할 것이다. ···EU 등 강대국들이 지지하는 소위 두 국가 해법에 반대하여 수립될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는 중동 사회주의연방의 일부로서 노동자·농민 공화국이다.
아랍 나라들에서의 연속혁명, 그것이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비롯한 중동 혁명에 대한 우리 강령의 핵심축이다. 연속혁명으로 노동자·빈농이 독재 정권을 타도하고 자신의 손으로 권력을 잡는, 즉 노동자·민중평의회와 민병에 기반한 노동자 정부가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여는 것이다. 아랍 대중의 혁명적 격변의 일환으로, 또는 이스라엘의 심각한 군사적 패배의 결과로 이스라엘 유대인 노동자·청년의 진보적 부분을 시온주의로부터 단절시키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바로 이러한 연속혁명 프로그램 위에서 혁명당이 (중동) 지역에서 건설되어야 한다. 우리 세력의 규모가 작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시온주의 국가에 대한 투쟁은 결코 선전적 과제일 뿐이었던 적이 없고 언제나 매우 실천적인 문제들을 수반했다. 여기에는 온갖 종류의 연대 활동을 위한 선동과 조직화 작업이 포함되는데, 이는 당연히 자본가 국가와 정기적으로 충돌하게 만든다.
 
60년 동안 이스라엘에서 반()시온주의 유대인으로 활동해온 RCIT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 지부의 요시 슈바르츠 동지는 시온주의 국가에 맞선 투쟁으로 세 차례 구속되면서도 다양한 수단으로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을 실천적으로 지지해 왔다. 요시 동지는 또한 1980년대에 PLO (팔레스타인해방기구) 북미 지역 법적 대표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배신적인 오슬로 협정으로 이어진 PLO 정책에 반대하는 항의투쟁으로 사퇴하기 전까지). 지부의 다른 젊은 유대인 동지들은 이스라엘 점령군 복무를 거부하여 수년 간 씩 구속되면서도 시온주의 국가에 맞선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3.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적 성격에 대하여
 
ICL 동지들은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적 성격에 대한 우리의 평가분석을 비판한다. 우리는 최근 발표한 문서에서 이스라엘인 프롤레타리아트와 팔레스타인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생활조건 및 그들 각각의 시온주의 국가와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이 노동귀족적 성격을 갖는 것은 그들이 오직 팔레스타인 인민의 추방과 억압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식민 정착자 노동계급이기 때문이다.”[3]
 
우리의 평가분석에 대한 응답으로 스파르타쿠스단은 다음과 같이 썼다.
 
유대인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특권적인 지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서 오직 중동 전체와의 전쟁만을 약속할 뿐인 부패한 이스라엘 신정(神政) 정권을 위해 가혹한 생활조건과 만연한 불평등, 그리고 강제 병역을 견뎌내야 한다. 이스라엘인 노동자들이 팔레스타인인 노동자들에 비해 특권적인 지위를 누린다고 하더라도, 이스라엘인 노동자들의 물질적 이익은 팔레스타인 억압을 종식시키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결국 그러한 팔레스타인 억압은 이스라엘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을 끌어내리고 삶의 모든 측면을 하향화시키며 중동 지역에서 그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 관점의 문제점은 주체적 요소를 부정하고 전적으로 외부 개입에 모든 희망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인 노동자들 상당 부분이 시온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깊은 사회적·정치적 위기가 필요하다는 것은 분명 맞다. 그러나 그러한 결과를 내오기 위해 싸우는 혁명당이, 이스라엘인 노동자운동과 군대에 뿌리를 둔 혁명당이 또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실존적 군사 위협에 직면한 이스라엘인 주민의 가장 가능성 높은 반응은 시온주의 기치 아래 죽기로 싸우는 것이거나, 아니면 대량 탈주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ICLRCIT"이스라엘에서 혁명적 노동계급 당을 건설할 필요성을 배격하고, 대신 아랍 혁명을 기다리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의 임무로 제기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스파르타쿠스단의 비판은 경제주의적 "낙관주의"와 비변증법적 관념론에 바탕하고 있다. 첫째, 스파르타쿠스단은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적 성격에 대한 우리의 테제를 받아들이는 것인가?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들은 팔레스타인인 프롤레타리아트에 비해 이스라엘인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가 특권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듯하다. (이 점을 부인하기란 물론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은 중동 전체의 프롤레타리아트에 비해서도 특권적 지위에 있다. 나아가,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특권은 시온주의 국가의 식민 정착자 성격에 바탕을 두고 있다. 토착 팔레스타인 주민의 추방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동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전초기지로서 이스라엘의 예외적 지위가 없었다면,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과 서유럽의 그 같은 막대한 경제적·군사적 지원은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없었다면,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생활조건은 그밖에 중동의 아랍인 노동자들과 비슷했을 것이다. ICL은 여기에 동의하는가?
 
둘째, 자본주의의 경제적 모순이 세계 다른 모든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에도 존재한다는 것은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특수한 식민 정착자 성격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 계급 모순은 민족 문제에 압도되고 부차화 되었다. ICL 동지들은 이스라엘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경제적 모순이 격화되면 이스라엘인 노동자들이 시온주의에 반대하고 팔레스타인인 노동자들과 연대하게 될 것이라고 상상하는 듯하다. 그러나 이는 경제주의적인 "낙관론"적 환상이다. 경제적 계급투쟁이 그 자체로 정치적 계급의식을 고양시키지 않는다. 미국의 맑스주의자들이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듯이 말이다.
 
이스라엘 사회 내에 노동자와 자본가 간의 모순뿐 아니라 다른 많은 모순들 (아슈케나짐 대 세파르디 간, 자유주의자 대 우익 정착민 간, 하레디 유대인 대 그 밖의 유대인 간 모순 등)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십분 인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사회는 한 세기 동안 아랍인을 적으로 하여 하나로 뭉쳐 왔다! 모든 갈등 당사자들이 일치해서 받드는 기치가 있다. 어겨서는 안 되는 하나의 금기 사항이다. 바로 시온주의 지지다. 이 모든 내부 갈등과 시위·항쟁이 전면 전쟁 중에도 반동적인 전쟁몰이에 지장을 주지 않고서 지속할 수 있는 이유다. 계속해서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하고 지역 전체를 위협해야 한다는 광범위한 공감대가 이스라엘 유대인 사회에 형성되어 있어서다. 이는 이 국가의 식민 정착자 본질에서 비롯된 결과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 사회의 그러한 내부 모순에 우리가 무관심하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하레디 유대인을 군대에 강제 입대시키려는 시도에 맞서 그들을 방어한다. 우리는 임금삭감에 맞서 싸우는 (유대인) 노동자들을 지지한다. 우리의 매우 제한된 역량에도 불구하고, 점령지 팔레스타인의 우리 동지들은 이스라엘인 활동가들 그들이 설사 좌익 시온주의자들일지라도 과 협력하여 구체적인 시위 조직을 추진한다. 예를 들어, 몇 달 전 요시 슈바르츠는 아담 켈러 (평화주의 운동 구쉬 샬롬의 리더)와 함께 전 세계 노동조합들에게 이스라엘로 가는 무기 배송을 보이콧할 것을 촉구하는 광범위한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했다.[4]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이스라엘 사회 내 이러한 내부 모순의 잠재력이 제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ICL 동지들은 트로츠키의 <남아프리카 혁명가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인용하여 이것이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고 믿고 있다. 여기 인용문 전문이 있다.
 
이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뒤떨어진 흑인 하층민과 특권을 누리는 오만한 백인 카스트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최대 곤란점이 있습니다. 테제가 옳게 지적하듯이, 썩어가는 자본주의의 경제적 경련은 낡은 장벽을 세게 흔들고 혁명적 통합의 작업을 촉진하게 마련입니다. 어느 경우든 혁명가들이 범하는 최악의 범죄는 백인들의 특권과 편견에 최소한이라도 양보를 하는 것입니다. 배외주의 (쇼비니즘) 악마에게 손가락이라도 내미는 자는 누구든 지고 맙니다. 혁명당은 백인 노동자한테는 누구에게나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던져야 합니다. 영국 제국주의 및 남아프리카 백인 부르주아지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백인 봉건주의자와 노예 소유주, 그리고 노동계급 대열 내 그들의 하수인들에 맞서 흑인 노동자·농민과 함께 할 것인가?”[5]
 
ICL 동지들은 이 인용문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결론을 끌어낸다.

 "이것은 이스라엘에도 적용된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색조의 시온주의에 정면으로 반대하면서도 이스라엘 노동자들에게 이와 비슷한 날카로운 선택지를 제시해야 한다. 시온주의 지배자들과 제국주의, 그리고 노동계급 내 그들의 하수인들과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아랍 대중과 함께 할 것인가. 그러나 이스라엘에 혁명당이 없다면 이 선택지는 이스라엘 노동자들에게 제시될 수도 없고, 제시되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트로츠키의 인용문은 오히려 우리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만약 당신이 이스라엘 노동자들에게 "시온주의 및 이스라엘 부르주아지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이스라엘 압제자들 및 노동계급 대열 내 그들의 하수인들에 맞서 팔레스타인 노동자·농민과 함께 할 것인가"라는 선택지를 제시한다면 대부분의 이스라엘 노동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추측해보라! 근본적인 요인들이 단절의 객관적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 한, 대다수 이스라엘 노동자들은 여전히 ​​시온주의 진영의 일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이는 모든 내부 분열과 갈등에도 불구하고, 히스트라두트 (이스라엘 노총)와 모든 이스라엘 정당, 그리고 네타냐후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시위자가 공공연하게 시온주의를 지지한다는 사실로 입증된다.
 
ICL 동지들의 주장은 관념론적 논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 따르면, 문제는 주로 혁명당의 부재로 귀결된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을 시온주의에서 떼어놓기 위해서는 혁명당만 있으면 된다. 완전히 터무니없는 주장이다. 노동자계급이 매번 자본가와 싸우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근본적인 계급 이익이 자본가들과 맞서도록 그들을 밀어붙이기 때문이다. 자본가와 싸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혁명당이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노동자계급을 혁명적 타도 투쟁으로 이끄는 올바른 전략에 기초하여 싸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혁명당이 노동자계급에게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른 쟁점이다). 계급투쟁은 객관적으로 계급 모순에 바탕을 둔다. 민족투쟁도 마찬가지다. 압제자와 싸우기 위한 전제조건으로 혁명당이 피억압 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노동자들이 그저 혁명당을 결여하고 있어서 75년 동안 시온주의와 단절하지 않았다는 ICL의 주장은 틀렸다. 이는 식민 정착자 국가와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적 성격의 객관적 기초를 무시하는 것이다. 제 계급의 정치적 의식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을 결여하고 있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비유하자면 소부르주아지의 정치적 의식의 한계점들도 그 객관적 기초가 있다.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은 소부르주아지와는 다른 계급이라고 ICL은 반박할지 모르겠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예외적인 노동귀족적 · 식민정착자적 성격은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에게 예외적인 소부르주아적 성격을 부여한다.
 
ICL 동지들은, 레닌과 트로츠키는 언제나 억압자 민족의 노동자들에게 방향성을 맞출 필요성에 찬성했다며 반론을 편다. “RCIT 동지들은, 예를 들어 요시 슈바르츠 동지의 107일 기사에서 보듯 이스라엘인과 식민지 알제리의 피에누아 (프랑스계 백인 식민정착자)/ 아파르트헤이트 남아공의 백인/ 아일랜드의 개신교도 사이에 유사점을 설정한다. 실제로 일정한 유사성이 있지만, 이러한 예들을 드는 것이 억압자 민족의 노동자들에게 방향성을 맞출 필요성에 대한 반대 논거가 되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이든 아일랜드든 남아프리카공화국이든 식민지 알제리든 모든 혁명적 전략의 중요한 부분은 억압민족의 노동자들을 최대한 많이 피억압자 해방 쪽으로 전취하는 것이었고 지금도 그렇다. 언제나 레닌과 트로츠키는 공산주의자들이 억압민족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군대 속에서 체계적인 활동을 수행하여 피억압민족 노동자들과의 단결을 위해 싸워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사회배외주의에 영합하는 개량주의자나 중도주의자의 방식이 아니라, 혁명가의 방식으로, 즉 노동자들을 친제국주의 지도자들로부터 단절시키기 위해 분투하는 혁명가의 역할로서 말이다. 실제로 민족주의자들은 이렇게 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바로 그들이 해방투쟁을 훼손하는 하나의 방식이다."
 
이 주장의 문제점은 첫째, 틀림없이 맑스주의 고전은 피억압민족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의 활동 대비 억압민족 프롤레타리아트 속에서의 활동에 더 우선순위를 둔 바 없다는 것이다. 둘째, 식민정착자 국가의 노동계급과 "통상적인" 억압민족의 노동계급을 구분해야 한다. 물론 식민정착자 국가의 지배 민족도 억압민족이지만, 단지 극소수의 억압민족만이 식민정착자 국가를 운영한다. 정의상 식민정착자 국가는 원주민의 추방과 영구적 군사 탄압을 기반으로 한다. 알제리, 남아프리카, 팔레스타인이 그 예다. 그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이와 같은 조건이 식민정착자 국가의 노동계급을 여타 억압민족의 경우에서보다 지배계급에 훨씬 더 긴밀하게 묶어 놓기 때문이다.
 
미국, 호주, 뉴질랜드도 역사적으로 식민정착자 국가였다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맞는 얘기지만, 그러나 이들은 상승하는 자본주의 시대 제국주의 시대 훨씬 이전인 에 만들어진 식민 정착자 국가들이다. 게다가 이 국가들은 원주민을 절멸시키는 데 (원통하게도) 성공했다. 어느 경우도 팔레스타인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ICL은 알제리, 남아프리카공화국, 짐바브웨, 모잠비크, 앙골라, 케냐와 같은 나라의 식민정착자 노동계급에 대해 맑스주의자들이 접한 역사적 경험을 무시한다. 여기서도 백인 정착자 노동계급의 상당 부분을 아랍 대중 및 흑인 대중의 투쟁에 통합하는 것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거쳐 불가능한 것으로 입증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문제가 단지 혁명적 리더십의 부재였다면, 그러한 리더십이 없이 아랍 대중 및 흑인 대중을 결집할 수 있었던 것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말할 것도 없이, 이에 대한 유물론적 설명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각각의 프롤레타리아트와 그들이 해당 식민정착자 국가와 맺고 있던 관계가 어떻게 서로 다른 성격을 가졌는지에 대한 평가분석에 기초한 유물론적 설명 말이다.
 
이로부터, 이스라엘 노동자들을 전취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결론이 나오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그러나 이것이 일차적 과제는 아니다.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 즉 이스라엘에서 혁명당을 건설하기 위한 핵심 층은 팔레스타인 프롤레타리아트이지, 특권적인 유대인 노동계급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들의 투쟁보다 아랍 대중의 투쟁과 연계를 구축하고 지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4. 이스라엘 "민족"에 대하여
 
민족 문제는 계급 문제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민족 문제에 대한 올바른 강령/조직/전술이 필요하다. 트로츠키는 1923년의 한 논설 <민족 문제에 대하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리고 바로 지금, 당 전체가 이러한 방식으로 문제를 제시하기 시작하고 있는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는 제시할 수 없는 문제인데 바로 지금, 당신은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당신만 그런 것도 아닌데) 천진난만한 공리공담으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문제가 민족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다름 아닌 바로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위해 실제로 우리는 지금 민족 문제로 더 깊이 들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훨씬 더 깊이 들어 갈 것입니다). 당신이 하고 있는 대조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국가와 당에서 민족 요인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만이 이와 같은 식으로 문제를 제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어느 경우든 민족 문제에 대해 허무주의적이거나 경멸적인 태도를 취하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과 같은 정식화를 열렬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전 피억압 소 민족들, 특히 뒤떨어져 있고 주로 농민들로 구성된 소 민족들의 요구와 이익에 등을 돌리는 것은 매우 간단하고 아주 쉬운 일입니다. 특히 이러한 류의 게으른 무관심이 국제주의에 관한 일반적 언사로, 공산당 독재가 일체의 민족 문제보다 더 중요하다는 등의 언사로 덮어 감춰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6]
 
민족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본 게 틀리지 않다면, ICL은 스탈린의 정의를 사용한다. "민족은 역사적으로 구성된 안정적인 인민 공동체로, 공통의 언어 · 영토 · 경제생활 그리고 공통의 문화로 나타난 심리적 구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것이다."[7] 그러나 스탈린의 민족 정의의 문제점은 대부분의 유럽 민족들에게는 맞지만, 레닌이 식민지 세계의 약소민족이라고 불렀던 민족들로 가면 들어맞지 않은 경우들이 많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인이 하나의 민족이고 독자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는지 여부를 다루기에 앞서, 남아프리카 보어인 [네덜란드계 백인 정착자들]이 하나의 민족이고 독자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는지 살펴보자. 트로츠키는 이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영국의 군사적 패배와 제국 붕괴로 인한 결과로 남아프리카에서 영국 제국주의의 패권이 전복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 이 경우, 남아프리카 백인들은 일정 기간 동안 상당 기간은 아니지만 여전히 흑인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첫 번째 가능성과 연결될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은 영국과 그 속령에서의 혁명이다. 남아프리카 인구의 4분의 3 (800만 명 중 약 600만 명)은 비 유럽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주민 대중의 각성 없이는 승리하는 혁명이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그러한 각성이야말로 원주민 대중에게 오늘 그리도 결여되어 있는 것 스스로의 힘에 대한 자신감, 고양된 자기 의식, 문화적 성장 을 가져다줄 것이다.
이러한 조건 하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무엇보다도 흑인공화국으로 출현할 것이다. 물론 이는 백인에 대한 완전한 평등권이나 두 인종 간의 형제적 관계 주로 백인의 행동에 달려 있는 문제 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예적 종속에서 해방된 압도적 다수자 주민이 국가에 일정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없이 명백하다."[8]
 
스탈린의 정의를 도식적으로 적용하면 백인 (보어인과 영국인)은 하나의 민족이며 그들의 국가를, 또는 적어도 이중민족 국가를 가질 권리가 있지만, 그러나 트로츠키는 백인을 소수자로 포함하는 흑인 공화국이라는 다른 노선을 취했다.
 
그러나 남아프리카에서는 흑인이 다수자였고,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인이 소수자라며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민을 포함하면 팔레스타인인이 다수자라는 점에서 이는 (민족) 개량주의 개념에 입각한 반론이다. 남아프리카의 백인은 정착민 식민주의자이며 이스라엘 유대인도 마찬가지로 정착민 식민주의자다.
 
이제 다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이스라엘인은 독자 국가의 권리가 있는 민족인가?
 
ICL은 다음과 같이 썼다. “진정한 문제는 팔레스타인인들이 근동에서 유대인 민족의 지속적 존속과 양립할 수 있는 방식으로 자결권을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자행된 역사적 불의를 해결하고, 두 민족 모두가 언어, 문화, 종교에 관한 완전한 민주적 권리를 누리는 통일된 이중민족 국가 형태로만 가능하다.
 
자결의 원칙은 문화적인 것이 아닌 영토적인 것으로, 분리 독립하여 자신의 국가를 수립할 권리를 모든 민족에게 부여한다. ICL은 이를 모를 수 있지만, 수정주의적 시온주의와 극우 테러 조직 이르군의 창설자인 자보틴스키는 1926년 논문 <'이중민족'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의 땅에 대하여>에서 미래 유대인 국가의 법은 "민족적 평등을 보장해야 한다"고 선언했다. , 소수자에게 집단적인 민족적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 교육부 장관, 전 국회의원, 유명 극작가, 그리고 아랍인 시민 여러 명이 포함된 몇몇 저명한 이스라엘인들은 국가가 "이스라엘인"이라는 새로운 민족 범주를 인정해줄 것을 청원했다. 이 범주는 현재의 민족-종교적 분류를 사용하는 대신 (유대인과 아랍인이 똑같은 시민인) 모든 이스라엘 시민을 포함한다.
 
이스라엘 대법원에 제출한 청원서에서 이들은 민족-종교적 기원에 초점을 맞춘 현재의 분류 체계가 아랍인 시민과 유대인 시민을 구분하여 이스라엘 아랍계 시민의 차별과 권리 침해를 조장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청원자들은 아랍인의 시민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기존의 집단 "이스라엘인" 시민에 상응하는 새로운 집단 "이스라엘인" 민족을 창설하고자 한다.
 
“201310월 판결에서 이스라엘 대법원은 이스라엘인을 민족으로 인정해 달라는 청원을 기각하고, 일반적인 이스라엘인민족보다 특수한 유대인민족을 지지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이스라엘 유대인 시민의 민족 소속을 이스라엘인으로 분류하고자 할 때 그 함의는 유대주의가 그들에게 민족이 아니라 오로지 종교라는 뜻이다. 이 사상은 시온주의와 그 주요 사상가들 시온주의를 유대인의 민족 운동으로 본 헤르츨부터 벤구리온까지 의 근본 교의와 배치된다. 만약 유대인 이스라엘인의 민족 소속을 유대인이 아닌 이스라엘인으로 정의한다면, 이스라엘의 유대인과 디아스포라의 유대인을 하나로 묶는 민족적유대는 끊어질 것이다.“[9]
 
, 이스라엘 대법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인 국가가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유대인의 국가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인종주의적 헛소리다. 레닌주의자로서 우리가 이해하는 바로는, 민족은 영토적 개념이므로 세계 유대인 민족은 존재할 수 없다. 미국 유대인의 민족 소속은 미국이다. 미국 유대인이 미국인이 아니라 이스라엘에 속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반유대주의로 이어진다. 이 유대인 국가 정의는 정착민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시온주의 아파르트헤이트의 산물이다. 이스라엘인들이 시온주의자로 남는 한, 그들은 자신들의 민족 소속을 "세계 유대인 민족"의 이스라엘 파트로 규정할 것이다. 남아프리카의 해법으로 트로츠키가 지지했던 방안은 팔레스타인에도 해법이 된다. 난민을 포함하여 팔레스타인인은 피억압 다수자다. 이 나라에서 살고자 하는 이스라엘 유대인은 시민적 권리를 가진 소수자로서 강에서 바다까지 이어지는 팔레스타인 노동자국가에서 살아갈 것이다.
 
ICL은 다음과 같이 썼다. "요시 슈바르츠의 107일 기사는 본질적으로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이 관점의 문제점은 주체적 요인을 부정하고 모든 희망을 전적으로 외부 개입에 둔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노동자들의 상당 부분이 시온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깊은 사회적·정치적 위기가 필요할 것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맞다."
 
이는 본질적으로 ICL의 경제주의적 개념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역사에서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시온주의에서 벗어난 사례나 이스라엘에 의한 제노사이드 학살에 대한 노동계급 항의시위 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대인 노동자들이 시온주의와 단절한 유일한 사례는 볼셰비키 혁명에 환호하여 공산당 결성으로 이어졌던 사례다.
 
요약하자면, 시온주의 국가의 존재 전체가 해결할 수 없는 모순에 기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유대인들이 내부의 모든 인종적 · 문화적 분열 (예를 들어 아슈케나짐 대 세파르디 대 에티오피아 유대인, 세속적 유대인 대 종교적 유대인, 하레디 유대인 대 그 밖의 유대인 등)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민족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민족이 아닌데 왜냐하면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라는 민족적 의식이 없고, 스스로를 세계 유대인 민족의 일부로 여기기 때문이다. 유대인 국가로서의 시온주의 개념은 신화에 바탕을 둔 개념이다. 절반 이상의 유대인이 이스라엘 외부에서 다른 민족의 일원으로 살고 있으며 자신을 이스라엘인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시온주의는 이 신화를 유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왜냐하면 식민 정착자 국가로서 시온주의의 존재 자체가 전 세계의 유대인이 팔레스타인으로 와서 아랍 땅에 정착할 수 있다는 이념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 국가라는 민족 이념이 본질적으로 반동적인 이유다.
 
나아가, 이스라엘 유대인이 독자 민족이라는 이념을 (그들의 자기 인식과는 반대로) 받아들이는 경우에조차도, 독자 민족을 토착 팔레스타인 주민의 반동적 추방을 기반으로 한 정착자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이스라엘 유대인에게 "민족자결권" 즉 그들의 국가를 창설할 권리 을 부여한다는 사상은 그 자체로 반동이다. 팔레스타인 땅의 강탈을 정당화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이중민족 국가를 요구하는 것은 이스라엘 유대인이 훔친 팔레스타인인 (다수자 주민)의 땅 위에 독자 국가를 세울 권리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ICL은 다음과 같이 쓴다. “700만 명이 넘는 유대인이 이스라엘에 살고 있다. 팔레스타인을 실제로 해방하고 중동 전체를 해방하는 데 진지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시온주의 요새를 약화시키고 팔레스타인의 자유를 증진시키기 위해 이스라엘의 노동자들 · 빈민들 · 병사들의 어떤 균열이든 어떤 갈등이든 어떤 불만이든 다 이용해야 한다. 설사 이들 반란이 처음에는 시온주의의 틀 안에 머물러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예를 들어 네타냐후의 사법 개혁에 반대하는 대중운동과 최근 총파업).
 
이는 이스라엘의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ICL의 매우 흥미로운 개념이다. 한 번 보자. ()네타냐후 운동을 이끈 것이 누구들인가? 전직 장군들과 안보기구 수장들이다. 그들이 네타냐후를 대체한다면 네타냐후 정부처럼 팔레스타인인들을 억압할 것이다. 그들은, 예를 들어 헤즈볼라와의 나쁜 휴전에는 동의하면서 가자지구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네타냐후를 오른쪽에서 공격한 전직 총리들이고 전직 장관들이다.
 
이스라엘 야당연합 의장인 민주당의 야이르 골란은 어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연립정부가 나라를 범죄 조직처럼 운영한다고 비난했다. 골란은 이스라엘 정부가 레바논에서는 휴전협정 체결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도 이스라엘 인질들이 억류되어 있는 가자지구에서는 유사한 협정 체결을 거부하자 X를 통해 다음과 같이 항의했다. ”이스라엘 국가를 운영하는 범죄 조직은 남부 [가자지구]에서 휴전협정을 하게 되면 이스라엘의 미래가 위태로워질 것이며 또 다른 107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골란은 헤즈볼라가 여전히 강력한데 북부에서 그런 합의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 의아해했지만, 정부는 가자에서 합의에 이르는 것이 "이스라엘 국가에 대한 실존적 위협"이라고 주장한다.[10]
 
이 항의시위는 제노사이드 학살을 종식시키기 위한 시위가 아니라, 일단 이스라엘 인질을 석방시켜 낸 다음, 그리고 나서 전쟁을 계속하자는 시위다. 30만 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 도로를 봉쇄하고, 가자 지구에 100여 명으로 추산되는 남은 인질들을 구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변화를 요구했다. 1982년 레바논 2차 전쟁에서는 40만 명이 거리로 나서 전쟁 중단을 요구했다. 그 이래로 이스라엘은 오른쪽으로 더 한층 이동했다.
 
조합원 약 80만의 이스라엘 최대 노총 히스타드루트는 이스라엘 주요 제조업체와 첨단기술 분야 기업가들의 지지를 받는 하루 총파업을 선포했다. 자본가계급의 지지를 받는 총파업에 대해 들어봤는가? 이스라엘비즈니스포럼을 비롯해 윅스, 피버, 하니북, 플레이티카, 리스크파이티드, 레모네이드 등 이스라엘 하이테크 부문 기업들도 파업에 동참했다. 이스라엘 공업협회는 정부가 인질들을 살려내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고 비난했고, 이스라엘 변호사협회의 아미트 베처 회장은 전체 변호사들에게 파업에 돌입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그건 하루 총파업도 아닌, 반나절짜리 총파업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제노사이드 학살 종식, 가자지구에서 시온주의 군대 철수, 수백 명의 팔레스타인 정치수 석방 같은 요구가 총파업에서 전혀 제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물가가 계속 오르고 거대 자본이 막대한 이윤을 거두고 있는 상황에서 임금인상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ICL은 같은 트로츠키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 “어느 경우든 혁명가들이 범하는 최악의 범죄는 백인들의 특권과 편견에 아무리 최소한이라도 양보를 하는 것입니다. 배외주의 (쇼비니즘) 악마에게 손가락이라도 내미는 자는 누구든 지고 맙니다. 혁명당은 백인 노동자한테는 누구에게나 다음과 같은 선택지를 던져야 합니다. 영국 제국주의 및 남아프리카 백인 부르주아지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백인 봉건주의자와 노예소유주, 그리고 노동계급 대열 내 그들의 하수인들에 맞서 흑인 노동자·농민과 함께 할 것인가.”
 
그러나 대중운동과 히스타드루트 [노총]가 요구하는 것이 일단 협상으로 인질들을 석방해내고 그리고 나서는 제노사이드 학살을 계속하자는 것이라면, 그 대중운동과 히스타드루트에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ICL은 혁명적 강령으로 개입하라고 말하지만, 시위자들에게 알리려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유인물이나 현수막을 들고 오는 사람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날까? “미 제국주의와 이스라엘 시온주의 부르주아지와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와 노예소유주, 그리고 히스타드루트 관료와 같은 노동계급 대열 내 저들 하수인에 맞서 팔레스타인 노동자, 농민, 난민과 함께 할 것인가시온주의 노동자들은 당신들의 말을 들을까, 아니면 당신들을 패 죽이려고 덤벼들까?
 
5.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에 대하여
 
ICL 문서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에 대한 그들의 변명이다. 우리는 동지들이 최근 이 문제에 대한 접근방식을 바꾸고 이제 원칙적으로 이 전술을 승인하는 것을 환영하지만, 현 시기 가장 중요한 분쟁 가자 전쟁 에 이를 적용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는 바다. RCITRCIT 점령지 팔레스타인 지부는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하마스 및 헤즈볼라와의 반제통전 구축을 촉구했지만, ICL은 지금까지 이를 거부해 왔다.
 
처음에 ICL은 다른 조직과의 공개 토론에서 보안상의 이유를 들어 이 같은 거부를 정당화했다.
 
"최근 편지에서 당신은 우리 스파르타쿠스주의 성명서 <하마스에겐 죽음과 패배뿐: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혁명적 길>에서 제시된 입장이 본질적으로 우리 조직이 이 문제에 대해 앞서 쓴 글들과 동일하다고 말합니다. 이는 우리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의 공격에 맞서 군사적 편을 들기를 거부한다는 주장에 근거한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의 편지에서 제기하고 있는 특정 정식화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맞습니다. 그 이유는 그런 정식화의 사용이 우리의 현 상황에 아무 실천적 의미도 없으면서 단지 우리를 국가 탄압의 표적으로 만드는 데만 봉사할 뿐이기 때문입니다."[11]
 
그러나 이 얘기는 공허하게 들린다. 우리는 그리고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의 다른 지지자들도 전쟁 시작 이래로 (1년 넘는 동안) 팔레스타인 저항군의 군사적 투쟁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제창해 왔으며, 지난 몇 십 년간의 모든 팔레스타인 분쟁에서도 그렇게 해 왔다. 서방 나라들에서 이러한 활동이 일부 법적 어려움을 (우리 동지 미하엘 프뢰브스팅이 겪었듯이) 가져올 수 있지만, 원칙 있는 맑스주의 조직이 그 때문에 진실을 밝히는 것이 저해 돼선 안 된다.
 
ICL은 비판 글에서 이 주장을 반복하지 않고 두 가지 다른 주장을 제시한다. 첫째, ICL은 우리에 대해 "문자 물신주의"라고 비판하며, "시온주의 · 제국주의 공격에 맞서 가자와 서안지구, 예멘과 레바논, 이란을 방어하자!"라는 자신들의 슬로건이 같은 의미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이스라엘과 제국주의자들에 맞서 싸우는 모든 세력의 통일전선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이는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ICL을 매 기사마다 저항군의 군사적 투쟁을 지지할 필요성을 반복해서 밝히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이라면, 확실히 우리는 "문자 물신주의"에 빠져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비판은 ICL이 모든 기사에서 이 슬로건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아니라, 단 한 번도 그런 슬로건을 내걸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다! 그리고 ICL의 이러한 모습은 우연이 아니라 (아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의식적인 정치적 결정이다.
 
나아가 "시온주의 · 제국주의 공격에 맞서 가자와 서안지구, 예멘과 레바논, 이란을 방어하자!"라는 슬로건이 하마스 · 헤즈볼라와의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을 요구하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결코 같지 않다!
 
종파주의자는 하나 같이 모두 이 또는 저 업종 · 산업에서 "노동자들의 투쟁을 방어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종파주의자는 특정 노동조합이나 특정 개량주의 당과의 통일전선을 요구하길 거부한다. 그것은 반제 투쟁에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가자, 서안지구 등등의 방어를 요구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을 방어하는 투쟁은 진공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 즉 이름들을 가지고 있고 그러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 현실의 조직들이 있는 현실 세계에서 이루어진다. 현재 팔레스타인 해방투쟁은 하마스 (그리고 그밖에 이슬람 지하드, PFLP, DFLP 등의 정파들)가 이끌고 있으며, 이스라엘에 맞선 레바논의 항전은 헤즈볼라가 이끌어왔다.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피억압계급도 이를 잘 알고 있다. 이것이 바로 하마스가 아랍 세계에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대중의 선진 부분 속에서도) 큰 민중적 인기를 누리는 이유다. 또한 하마스와 하마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서방 나라의 부르주아지 (그리고 노동자운동 내 그 시종들)에게 증오와 박해를 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아닌 통일전선 전술의 목적 전체가, 계급투쟁에서 역할을 하며 피억압자 속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구체적인 조직들과 연계하는 데에 있다. ICL은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하마스 · 헤즈볼라와의 통일전선을 요구하길 거부함으로써, 팔레스타인 대의 일반에는 동조하지만 이스라엘과 서방 제국주의에 ​​의해 증오와 박해를 받는 조직들의 편을 들지 않는 조직들과 차별화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ICL이 하마스를 비난할 때는 하마스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으면서 (예를 들어 "하마스에겐 죽음과 패배뿐"), 이스라엘의 침략에 맞서 하마스의 편을 들어야 할 때는 그 이름을 언급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딘가 부끄러운 일이지 않은가.
 
6. "노동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다. ICL은 하마스 · 헤즈볼라를 공공연하게 편들기를 거부하는 또 다른 주장을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특히 우려스럽다.
 
예를 들어, 우리 활동의 대부분은 서방 나라들의, 특히 미국의 노동계급에게 맞춰져 있다. 하마스/헤즈볼라의 본질과 조합관료의 사회배외주의와 노동자들의, 심지어 선진 노동자들의 현재 의식을 고려할 때, "하마스/헤즈볼라에게 군사적 지지를!"과 같은 슬로건은 우리를 노동자들로부터 단절시킬 것이다. 노동자들은 이를 이슬람주의에 대한 지지의 한 형태이자 하나의 도발로 이해할 것이다. 따라서 그와는 달리 언제나 우리는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문제를 전면에 제기하고,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을 통해 노동자운동 지도자들의 제국주의체제 지지가 어떻게 프롤레타리아트의 지위를 약화시키는지 보여주고자 한다.
 
물론, 맑스주의자들은 구체적으로 국 제국주의에 반대해야 하고, 개량주의 지도부들에 대한 노동자들의 경험을 통해 지도부의 배신자적 본질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공공연하게 반제국주의적인 입장을 취해야 하며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저항 세력의 군사적 투쟁에 대한 지지를 촉구해야 한다. 이러한 행동들을 배제하거나 자제하는 것이어선 안 된다.
 
그러나 동지들이 말한 대로, 진짜 문제는 그러한 지지가 "이슬람주의에 대한 지지의 한 형태이자 하나의 도발로 이해하는 노동자들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보통 우익 중도주의자들이 내거는 공공연한 기회주의 · 반맑스주의 논리다.
 
첫째, 그것은 사실도 아니다. 물론 많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슬로건에 반대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제국주의 입장을 공유하는 정치적으로 선진적인 노동자와 청년층과 피억압자가 명백히 서방 나라들에 집단으로 존재하며, 근래에 와서 점점 더 수적으로 증가세에 있다. 이는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로, 아니 어쩌면 베트남 전쟁 이후로 가장 중요한 전 세계적 운동인 팔레스타인 연대운동에서 분명히 볼 수 있다. 최근 발표된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14세에서 18세 사이의 미국 유대인 청소년의 3분의 1"나는 하마스에 공감한다!"는 진술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12] 이렇게 볼 때 ICL은 정치적으로 선진적인 노동자층보다는 보다 보수적이고 후진적인 노동자층에 지향점을 두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스스로를 맑스주의/ 레닌주의/ 트로츠키주의라고 칭하는 조직이라면 노동계급 대중의 일순간의 의식으로부터가 아니라 객관 정세로부터 자신의 핵심 슬로건과 그에 따른 혁명가의 임무를 정립하는 것이 맞다. 그렇지 않으면, 레닌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지적한 추수주의 (chvostism)”, 즉 후진적 의식의 꼬리가 되는 것으로 귀결된다.
 
실제로 이것은, 전술과 슬로건은 현재의 지배적인 의식에서가 아니라 객관적 상황에서 도출되어야 한다는 맑스주의 운동의 경험에서 나온 핵심 교훈이다. 이를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의 정책은 주관적 분위기가 아니라 객관적 조건을 고려에 넣는 것이어야 한다."[13]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에 레닌이 혁명적 패전주의의 핵심 슬로건들 "주적은 국내에 있다", "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하라" 을 정립했을 때, 결코 그는 이 전술이 "노동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인지, 이해될 것인지 여부에 대한 고려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바로 그 때문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코민테른)은 당과 계급의 개념 분리를 필수적이라고 보았으며, 이에 따라 필요한 투쟁 슬로건을 노동계급의 일순간의 의식으로부터가 아니라 계급투쟁의 객관적 과제로부터 정립해낼 필요성을 제기했다.
 
당이라는 개념은 계급이라는 개념과 극히 엄밀하게 구분되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 영국 등 여러 나라의 '기독교' 노동조합과 자유주의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은 의심할 나위 없이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이다. 아직도 샤이데만, 곰퍼스 일파를 지지하고 있는 다소 많은 수의 노동자 층 또한 의심할 바 없는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이다. 특정 역사적 상황 하에서는 노동자계급 가운데 매우 많은 반동적 분자들이 포함될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공산주의의 임무는 이러한 노동자계급의 후진적인 부분에 영합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 전체를 공산주의적 전위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당과 계급이라는 이 두 개념을 혼동하면 더할 수 없이 큰 오류와 혼란을 가져올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제국주의 전쟁 동안의 노동자계급 특정 부분의 감정과 편견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익을 지켜나감으로써 이것은 프롤레타리아 당이 전쟁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것을 요구했다 일체의 희생을 무릅쓰고 이러한 감정과 편견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리하여, 1914년 제국주의전쟁이 발발했을 때, 모든 나라의 사회배외주의 배신자 당들은 국의 부르주아지를 지지할 때, 언제나 그리고 일관되게 자신들이 노동자계급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프롤레타리아 당의 임무는 노동자 다수의 정서에 맞서고, 무슨 일이 있어도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그들은 망각했던 것이다. 같은 식으로, 20세기 초에 당시 러시아 멘셰비키 (이른바 '경제주의자들')는 전체 노동자계급이 아직 정치 투쟁을 이해할 만큼 성숙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차리즘에 대한 공공연한 정치투쟁을 거부했던 것이다.
  같은 식으로 독일 독립당의 우파는 우유부단하고 부적절하게 행동할 때 언제나 대중의 의지'를 내세우는데, 당이 ​​대중을 이끌고 대중에게 나아갈 길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14]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채택된 <프롤레타리아혁명에서 공산당의 역할에 관한 테제>)
 
셋째, 스스로를 국제(!)공산주의동맹 (ICL) 이라고 칭하는 조직은 서방 나라들의 특수한 조건으로부터가 아니라 남반구를 포함하는 세계적 관점으로부터 전술과 슬로건을 내와야 한다. ICL은 국제 노동자계급의 선진층이 그러한 반제국주의 슬로건에 반감을 가질 것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것인가?!
 
넷째, 특히 ICL이 주로 서방 나라들에 기반을 두고 있다면, ‘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여 해방투쟁을 이끌고 있는 세력들과의 구체적인 연대를 보여야 할 의무가 있다. 코민테른은 2차 대회에서 제국주의 나라의 코민테른 소속 당들은 "식민지의 모든 해방운동을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입의 전제조건으로 삼았다.[15] 불행히도 ICL은 반제국주의 투쟁에서 자신들이 지지해야 할 이 운동들을 이름조차 부르지 않는다. “노동자들에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유로 말이다!
 
혁명가들에게 말과 행동에서 모두 반제 투쟁을 지지할 것을 요구한 초기 코민테른의 접근법을 따라야 한다고 본다. 당시 코민테른의 (그리고 이후 트로츠키 좌익반대파의) 주요 지도자였던 칼 라데크는 1920년 코민테른 2차 대회에서 이 접근법을 다음과 같이 아주 적절하게 정식화했다.
 
인터내셔널은 영국 동지들을 그들이 기관지에 쓴 기사로 판단하지 않고, 식민지 나라에서 선동하다 감옥에 갇힌 동지들의 숫자로 판단할 것이다. 우리는 영국 동지들에게 온 힘을 다해 아일랜드 운동을 돕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영국 군대 속에서 선동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영국 운수철도 노조들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아일랜드로의 병력 수송 허용 정책을 저지하기 위해 모든 자원을 사용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지적하고 싶다. 러시아에 대한 개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영국에서 내는 것은 현재 매우 쉽다. 부르주아 좌파조차도 그것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훨씬 어려운 것은 영국 동지들이 아일랜드 독립과 반군국주의 활동의 대의를 옹호하는 것이다.”[16]
 
당연히 오늘날의 상황은 1차 세계대전 후의 상황과 동일하지 않으며, 더 중요하게는 우리의 세력이 코민테른의 그것보다 훨씬 적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한 말과 행동을 통일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위에서 보여드렸듯이, 우리는 지난 수년에 걸쳐 이것을 여러 차례 해 왔다.
 
다섯째, 우리는 공장 정문에서 배포되는 선동 전단이나 노동조합 집회 연설에 반드시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군사 투쟁을 지지하자"라는 슬로건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그러한 선동적 개입은 교육학적이어야 하며 구체적인 상황과 연계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비판은 ICL이 모든 매 작업장 현장 개입 때마다 그러한 슬로건을 제창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비판이 아니다. 14개월 전 [2024107] 전쟁 시작 이래로 ICL이 선전 작업에서 그러한 슬로건을 한 번도 제창한 적이 없다는 비판이다!
 
여섯째,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전술은 반식민지 나라들뿐 아니라 제국주의 중심부에서도 실천적인 쟁점이다. 수백만 명의 무슬림 나라 출신 이주자가 유럽과 북미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노동자계급의 이 부분 [이주노동자] 속에서의 어떠한 실천 작업도 이슬람주의 세력과의 공동 활동을 수반할 것이다. RCIT는 오랫동안 이것을 해왔다. 이에 대해 ICL이 취하는 접근방식은 무엇인가? 동의한다면, 왜 그 조직들을 반제국주의 통일전선에 포함될 세력으로 이름 부르기를 자제하는가? (참고로, 그들은 무슬림 노동자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 있는 세력들이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반제통전 전술은 ICL에게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지막으로, 과거에 혁명가들이 소부르주아 민족주의 운동의 군사 투쟁과의 연대를 표하기 위해 비슷한 슬로건을 제창했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좌파의 선진 부분은 "베트콩에게 승리를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고,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초 중앙아메리카에서 치열한 게릴라 투쟁이 전개되던 시기에는 "FSLN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FMLN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에게 승리를!"이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ICL 동지들은 이것을 잊었는가?
 
7. 맺으며
 
ICL20238차 대회에서 제국주의와 반제통전에 대한 조직의 기존 접근방식을 정정했다. 대회 문서와 결정사항을 발표한 직후 가자 전쟁이 시작됐다.[17] 따라서 이 전쟁은 조직이 새로운 접근방식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첫 번째 시험대였다. 불행히도, ICL은 이론과 역사적 쟁점 분야에서 과거 입장 (예를 들어 말비나스 전쟁, 팔레스타인 전쟁 등에 대한 입장)을 수정하여 중요한 정정을 했지만, 반제 투쟁에 대한 자신의 새로운 접근법을 가장 중요한, 현재 진행 중인 전쟁 중동 전쟁 에 적용하는 데 실패했다.
 
이 토론이 이 오류들을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한다
.

---------------------------------
[1] Vincent David: Exchange with RCIT: On Palestinian Liberation and the Israeli Working Class, 19 October 2024, https://iclfi.org/spartacist/en/2024-rcit-letter. 별도의 언급이 없는 한 모든 인용문은 이 문서에서 인용한 것이다.
 
[2] Marxists & Palestine: 100 Years of Failure, in: Spartacists No. 69 (August 2024), p. 44 and 45
 
[3] 요시 슈바르츠 & 미하엘 프뢰브스팅, <중동에서 연속혁명과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성 (테제)>, 2024716, https://blog.wrpkorea.org/2024/10/blog-post_14.html
 
[4] 아담 켈러 (구시 샬롬) & 요시 슈바르츠, <이스라엘의 반전 운동가들이 전 세계 노동조합에 이스라엘로 가는 무기 전달을 보이콧 할 것을 호소하다>, 202433, https://blog.wrpkorea.org/2024/03/blog-post.html
 
[5] Leon Trotsky: On the South African Theses (1933); in: Trotsky Writings 1934-35, p. 254
 
[6] Leon Trotsky: On the National Question (May 1923), 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23/05/natquest.htm
 
[7] J. V. Stalin: Marxism and the National Question (1913), in: Stalin Works Vol. 2, Foreign Languages Publishing House, Moscow 1953, p. 307
 
[8] Leon Trotsky: On the South African Theses (1933), p. 249
 
[9] Ornan v. Minister of Interior, Case Number CA 8573/08
 
[10] Middle East Monitor: Israeli Democrats chair slams Netanyahu’s government as ‘criminal organisation’, 12 November 2024, https://www.middleeastmonitor.com/20241112-israeli-democrats-chair-slams-netanyahus-government-as-criminal-organisation/0/
 
[11] ICL: Letter to the Bolshevik Group, 23 December 2023, in: Exchanges between Korean Bolshevik Group and ICL, https://iclfi.org/spartacist/en/2024-kbg-letter
 
[12] MEE: One-third of Jewish-American teens say they 'sympathise' with Hamas, Israeli government poll shows, 22 November 2024, https://www.middleeasteye.net/news/one-third-american-jewish-teens-say-they-sympathise-hamas-israeli-government-poll-shows
 
[13] Leon Trotsky: Declaration of the Bolshevik-Leninist Delegation at the Conference of Left Socialist and Communist Organizations. The Collapse of Both Internationals (1933),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3-34, p. 39
 
[14] Communist International: Theses on the Role of the Communist Party in the Proletarian Revolution, approved by the Second Comintern Congress (1920); in: The Communist International 1919-1943. Documents. Selected and edited by Jane Degras, Volume I 1919-1922, p. 129. (<프롤레타리아혁명에서 공산당의 역할에 관한 테제> <<코민테른 자료선집 1>>, 동녘, 148-149).
 
[15] Communist International: Theses on the Conditions of Admission to the Communist International, adopted by the Second Comintern Congress (1920), in: The Communist International 1919-1943. Documents Selected and Edited by Jane Degras, Vol. I 1919-1922, p. 170.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의 가입 조건>, <<코민테른 자료선집 1>>, 동녘, 61).
 
[16] John Riddell (Ed.): Workers of the World and Oppressed Peoples, Unite! Proceedings and Documents of the Second Congress, 1920, Pathfinder Press, New York 1991, p. 232
 
[17] Spartacists No. 69 (September 2023)를 보라.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