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연속혁명과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노동귀족성 (테제)
요시 슈바르츠 &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2024년 7월 16일, www.thecommunists.net1. 중동에서 연속혁명 전략은 관련 계급 제(諸)세력의 성격에 대한 올바른 이해에 기초해야 한다. 2차 세계대전 이래로 중동은 서방 제국주의, 특히 미 제국주의가 많은 부분 지배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 새 제국주의 열강들이 이 지역에 진출했고 영향력을 확대했다. 중국은 이란의 긴밀한 정치적 동맹국일 뿐만 아니라 중동 역내 모든 나라의 중요한 무역 파트너다. 이 같은 입지를 통해 역내에서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화해를 주선, 촉진하는 역할도 하고 있다. 러시아는 중동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개입하여 유가 정책을 러시아와 조율하도록 압박하는 지위에 이르렀고, 시리아와 리비아 등에는 군사 개입을 하고 있다.
2. 중동은 (이스라엘을 제외하고는)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들로 구성되어 있고 제국주의 독점체들에 의해 초과착취 당하고 있다. 이것은 이 나라들이 형식상 독립국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자본주의 세계시장과 강대국들에 여전히 종속된 채로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 중에는 역내에서 영향력을 키우려고 시도하는 반식민지 ‘중위권’ 국가들이 있다. 예를 들어 튀르키예 (시리아와 이라크의 쿠르드족 지역에서), 이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사우디와 UAE (예멘에서) 등이다.
3. 양차 세계대전 기간 (1918-45년)에 중동에서 제국주의 지배는 일차적으로 영국·프랑스에 의한 식민 지배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 이후 이 두 오랜 제국주의 열강이 쇠락하고 미 제국주의가 자본주의 진영 내 절대 패권 지위에 오르면서 중동지역의 정치체제는 중요한 변화를 겪었다. 대부분의 국가들은 형식적으로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여전히 서방 제국주의에 종속된 자본주의 반식민지로 남았다.
이스라엘의 계급적 성격: 제국주의 중동 지배에서 이스라엘의 지위와 역할
4. 이러한 제국주의 중동 지배를 보장해주는 주요 담보물이 19세기 말 유럽 유대인들 (유럽에서 반유대주의 박해를 겪은)의 조직적인 팔레스타인 정착이다. 1917년 이른바 밸푸어 선언 직후 시작된 시온주의 식민 정착은 대영제국이 부추기고 조장한 것이었다. 이러한 시온주의 정착은 팔레스타인 원주민에 대한 대대적인 억압 및 추방 ㅡ 1947/48년 나크바 (대추방)로 정점에 이른 ㅡ 과 자본주의 정착민 국가 이스라엘의 창설로 이어졌다.
5. 물론 이스라엘과 그 제국주의 상전 간의 관계가 마찰 없는 관계였던 것은 아니다. 유대인 정착민들은 영국 위임통치 당국을 도와 1936~39년 아랍 대봉기를 잔학하게 진압하는 데 일조한 뒤에 원주민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자신들이 팔레스타인을 차지해야 한다며 영국을 재촉했다. 이후 아랍계 주민을 상대로, 나아가 영국 식민당국을 상대로도 시온주의자들의 수차례 테러 행위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48년 직후 이스라엘은 영국과 프랑스의, 그리고 이어서 미국의 긴밀한 동맹군이 되었다.
6. 이스라엘 국가는 그 출범부터 중동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가장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해왔다. 아랍 나라 지배계급들 상당수가 이 지역에서 제국주의 지배가 유지되게 하는 데 협력해왔는데, 이스라엘은 이 아랍 나라들을 상대로도 수많은 전쟁을 벌였다. (1948년, 1956년, 1967년, 1973년, 1982년, 2006년의 전쟁들, 1987년과 2000년에 각각 있었던 두 인티파다에 대한 유혈 진압. 2008/09년, 2012년, 2014년, 2021년의 가자 전쟁, 2023년 10월 7일 이래의 현 전쟁, 그리고 그 이외에도 수많은 소규모 군사 충돌 등). 이 지역에서 서방 제국주의의 이익을 보호하는 경비대로서의 필수 역할로 인해 이스라엘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의 원조를 가장 많이 받은 국가가 되었다. 이스라엘 다음으로 이집트가 이 지역에서 미국 원조를 두 번째로 많이 받은 나라가 된 것도 우연이 아니다. 1978년 9월 17일 캠프 데이비드 협정에 서명한 후 이집트는 이듬해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체결했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의 처음 있는 평화조약이었다. 그 이래로 이집트는 시온주의 국가의 사실상 동맹국이었다.
7. 이스라엘은 그 존재 시작 시점부터 자본주의 아파르트헤이트 · 정착민 국가였다. 물론 역사적으로 유일한 정착민 국가는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과 호주가 있고, 알제리, 남아공, 나미비아 등 아프리카 나라들의 백인 정착민들이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자본주의 초기나 19세기가 아닌 20세기에, 즉 제국주의 시대 ㅡ 자본주의 최후 시대 ㅡ 에 만들어진 유일한 국가다. 이스라엘은 그 존재 기반을 원주 팔레스타인 인민의 추방에 두고 있다.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인민에게는 여전히 나크바에 대한 기억이 (직접 겪었든, 부모·조부모를 통해서든) 살아 있다. 나아가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억압과 추방을 유지 지속해야만 그 존재를 이어갈 수 있다. 1,400만 명 팔레스타인인의 귀환권, 즉 그들이 강제 추방됐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본적인 민주적 권리가 시행된다면 민족적으로 이스라엘의 유대인 국가로서의 존재는 자동으로 무효화될 것이다.
8.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매우 강력한 정치·경제·군사적 지위를 점할 수 있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요인들이 있다. a) 나크바, 그리고 남은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잔인한 억압, b) 제국주의 열강의 막대한 재정·군사 원조, c) 숙련 노동인력으로 팔레스타인에 정착한 많은 유럽 유대인, d) 팔레스타인인, 아랍 유대인 (1967년까지), 그리고 나중에는 이주자 등에 대한 초과착취.
9. 자본주의 국가로서의 이러한 강점들에 더해 1990년대부터 몇 가지 요인이 추가되었다. a) 1991년 스탈린주의 붕괴와 미국 (이스라엘의 오랜 주군)의 절대패권 부상, b) 1980년대에 시작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과학기술 혁명, c) 구소련으로부터 약 160만 명의 유대인 이주 (그들 중 40%가 고도로 교육 받은 전문인력이다), d) 반식민지 나라들 (대부분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부터 많은 이주자의 유입. 이러한 조건들로 인해 이스라엘은 현대 첨단기술 및 무기 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었고, 세계시장에 진출하여 대규모 자본수출-해외투자에 매진하는 다국적기업들을 세워낼 수 있었다. 여기에 이미 중동에서 점하는 지배적인 정치·경제적 지위가 결합되면서 그 결과, 이스라엘은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 전화했다. 이 같은 제국주의 성장전화는 호주와 캐나다 ㅡ 영국 식민 제국의 옛 자치령 ㅡ 의 예에서 보듯이 유일무이한 것은 아니다.
10. 이 모든 특질이 이스라엘 정착민 사회에 고도로 특권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오로지 팔레스타인 주민에 대한 추방·억압 체제와 역내 지배적 지위를 유지하는 것을 통해서만 그 특권을 획득하고 보존할 수 있는 이 같은 특수한 사회성격이 이스라엘 제국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구성체를 관통하고 있다. 레온 트로츠키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착민을 "특권적이고 오만한 백인 카스트"로 성격규정 한 바 있다. (남아프리카 혁명가들에게 보낸 편지, 1933년). 이것은 이스라엘 정착민 사회에 대한 매우 정확한 성격규정이기도 하다. 물론 이스라엘 유대인을 카스트 같은 집단이라고 말할 때, 그들이 엄격한 정식 사회법에 따른 문자적 의미의 카스트 (인도의 카스트와 같은)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보다는 그들의 민족 분리와 우월의식을 예로써 설명하기 위한 비유다. 이러한 카스트 성으로 인해 정착민 사회 내의 계급 분할 (부르주아지, 중간계급, 프롤레타리아트 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착민 사회 전체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지 (주되게는, 중동 역내 피억압 대중의 혁명적 격변에 의해, 또는 전쟁에서의 전략적 패배에 의해) 않는 한, 이 카스트 성이 정착민 사회와 피억압 인민 간의 관계에 관한 한 내부적 계급 모순보다 우위에 선다.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계급의 특수한 성격
11. "개별은 보편으로 이어지는 연관 속에서만 존재한다. 보편은 개별 속에서만, 그리고 개별을 통해서만 존재한다" (레닌)는 것은 유물변증법의 기본 법칙이다. 한 계급의 성격은 그 계급이 존재하는 계급사회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만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이스라엘 자본주의의 특수한 종별적 특징들은 처음부터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에게 특수한 성격을 부여했다. 원주민 추방과 남은 팔레스타인인 소수자에 대한 억압을 통해 특권적 카스트 집단을 이루며 중동 지역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가 된 이스라엘의 노동자계급은 이 특권 카스트 집단의 일부로서 언제나 노동귀족적 성격을 지녔다. 아랍 유대인 (아랍 나라들에서 태어난 세파르디 유대인)의 경우 초기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1967년 전쟁 이후에는 이들도 통합되어 이스라엘 전체 노동귀족층의 일부가 되었다.
12.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이 같은 노동귀족성의 토대는 기본적으로 비 유대인 노동자에 대한 초과착취에 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 노동자와 팔레스타인인 노동자/ 이주 노동자 간의 사회적 격차와 민족적 격차의 결합에 그 물질적 토대가 있다. 이 결합을 통해서 사실상의 민족분리 체제, 즉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성립됐다. 팔레스타인 노동자는 ㅡ 그리고 최근에는 아시아·아프리카 출신의 이주 노동자도 포함하여 ㅡ 대부분이 저임금 불안정 노동인력인 노동자계급 하층을 이루고 있다. 이들 대다수가 특정 경제부문에 집중되어 있으며 임금은 유대인 노동자보다 훨씬 낮다.
13. 정보통신기술 분야와 무기 산업, 다이아몬드 산업과 같이 급여가 높고 전략적 중요성을 갖는 경제부문의 노동자들은 거의 모두 유대인이다. 이스라엘 정부 데이터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인 이스라엘 시민은 전체 인구의 1/5을 약간 상회하는데, 이들 아랍계 남성의 2%와 여성의 1%만이 첨단기술 산업에서 일한다.
14. 하레디 유대인 집단 (열악한 생활조건에서 살며 남성들 다수가 정통 경전을 공부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 초정통 유대인들)을 제외하면 유대인 노동자와 팔레스타인인 노동자 사이의 격차는 더욱 분명해진다. 2019년, 25세‒64세 남녀 노동자 월평균 급여는 유대인이 아랍계 이스라엘 시민보다 약 70% 더 높다. (서안지구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고용된 팔레스타인인과 비교하면 격차가 훨씬 더 크다). 한 이스라엘 경제학자는 이로 인한 결과, 이스라엘은 다음과 같은 ‘분리 경제’가 되었다고 지적한다. "많은 저숙련의 사회적 취약층 노동자들 (여성, 아랍계, 장애인, 이주·외국인 노동자)이 2차 노동시장의 열악한 일자리 (주로 건설, 청소, 경비, 농업 및 서비스업)에 고용되어 있다." 이와 같이 이스라엘 사회를 유대인에 한정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보면 그 내부적인 사회·경제적 격차는 어느 자본주의 사회보다도 크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공식 빈곤율은 팔레스타인인의 경우 약 50%, 하레디 유대인의 경우 60%에 근접하지만 하레디 이외 대다수 유대인의 경우 9%에 지나지 않는다. 네타냐후는 몇 년 전 시온주의 국가가 다른 나라에 비해 “나쁘지 않게” 잘 돼가고 있다며 "불평등 지수에서 아랍계와 하레디 파를 빼면 우리는 상태가 좋다"라고 말하면서 의도치 않게 이스라엘의 아파르트헤이트 국가로서의 성격을 확인했다.
15. 팔레스타인인 노동자들은 이른바 그린라인으로 분단되어 있다. 즉 이스라엘에 시민으로 거주하는 사람들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 거주하지만 이스라엘에서 정기적으로 일하는 사람들로 나뉘어 있는 것이다. 1931년까지 전체 팔레스타인인의 57.1%가 농업에 고용되었는데 유대인은 18.1%만이 고용되었다. 시온주의 토지 수탈과 공업화의 결과로, 1981년 아랍계 시민의 11.2%만이 농업 부문에 고용되었고, 이후로 이 비율은 더욱 감소했다. 오늘 이스라엘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 (그린라인 양쪽 출신 모두)은 건설업, 제조업, 농업에 고용되어 있으며, 취업 허가 없이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일자리를 갖지 못하거나 비공식적으로 일한다.
16. 1970년대와 1980년대에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출신의 팔레스타인인은 이스라엘 노동인력의 약 7%를 점했다. 이 시기에 서안지구 노동자 약 1/3과 가자지구 노동자의 약 절반이 이스라엘에서 일했다. (이들 중 절반 정도가 건설업에서 일했다). 그러나 1987~93년 1차 인티파다 이후 많은 팔레스타인인 노동자가 이주 노동자로 대체되어, 2007년 이후로는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 중 14~17%만이 이스라엘에서 일자리를 가졌고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은 거의 일자리를 가지지 못했다. (시온주의자들이 가자지구 봉쇄 조치를 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안지구 팔레스타인인의 고용 비중은 서안지구 유대인 정착촌에서의 고용을 추가하면 조금 더 높다. (2019년 20%). 이스라엘 및 유대인 정착촌에 고용된 팔레스타인인의 거의 절반(45.6%)이 2022년에 비공식 고용 상태였다. 농업 부문에서는 이 비중이 66.3%나 됐다!
17. 1987~93년 1차 인티파다 이후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 출신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아시아·아프리카 출신 이주자로 대체해나갔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이스라엘에 들어왔다. 이전에는 ‘외국인 노동자'라고는 거의 모두가 팔레스타인인이었는데 오늘 그 4/5 정도를 이주노동자가 대체하여 이스라엘 전체 노동인력의 약 10%를 이루고 있다.
18. 유대인 노동자와 팔레스타인인 노동자/ 이주 노동자 사이의 민족 분리는 같은 산업부문 내에서 고용된 경우에도 분명하게 나타난다. 팔레스타인인 노동자가 고용된 최대 부문이 건설 산업이다. 건설 산업부문의 임금은 상업 부문보다 약 1/4에서 1/3 정도 낮다.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인구의 약 1/5 수준인데 건설산업 노동인력의 약 40%를 점한다. (대조적으로 유대계 이스라엘인은 12.5%다). 2019년 이스라엘의 공식 건설 노동자 수 292,100명 중 184,900명 (즉 63% 가량)이 유대인이 아니며, 이 중 156,200명이 (이스라엘 시민 팔레스타인인이든 서안지구 ·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이든) 팔레스타인인이었다. (여기에 추가로, 취업 허가 없이 건설 부문에서 일하는 수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있다). 히스타드루트 (이스라엘 최대 노총)의 한 임원이 지적했듯이, 이들 비 유대인 피용자들이 "건설업에서 더럽고 힘든 일을 하고 있고 그 밖의 피용자들은 관리자와 엔지니어들이다." 또 다른 차별의 형태는, 팔레스타인인 노동자들은 이스라엘의 사회보장제도에 기여금을 바쳐야 하지만 보장 혜택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국가 “노조” 히스타드루트에 내는 기여금도 마찬가지였다.
19. 노동시장의 민족 분리는 또한 파업투쟁에서도 그러한 민족적으로 큰 격차가 나는 이유다. 건설업과 농업 등 팔레스타인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가 주를 이루는 산업부문에서는 지난 4반세기 동안 파업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가 절대적으로 주를 이루는 공공부문에서는 수많은 경제파업이 있었다.
연속혁명 전략에서 노동귀족성 문제
20. 이상과 같이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계급은 원주 팔레스타인인 노동자 및 이주 노동자와 관련하여 비상한 특권을 가지고 있다. 카스트적 성격을 가지는 지배 민족 정착민 집단의 일원인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계급을 노동귀족층으로 성격규정 해야 하는 이유다. 이스라엘 자본주의의 잉여가치 상당 부분이 팔레스타인인 노동자와 이주 노동자에 의해 창출된다는 것은 분명하다.
21. 전체적으로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의 이 노동귀족성은 시온주의 국가가 지금까지 줄곧, 그리고 수많은 전쟁에도 불구하고 자국 노동자계급의 충성을 확보할 수 있어온 물질적 토대다. 이러한 유물론적 근거 때문에, 계급적 단결에 대한 호소로, 또는 경제적 요구투쟁을 통해 이스라엘 노동자계급의 상당 부분을 민족해방 · 계급해방을 위한 팔레스타인 · 아랍 대중과의 공동투쟁으로 견인, 전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유감스럽게도, 이스라엘공산당 같은 개량주의 스탈린주의 세력들, 또는 자칭 트로츠키주의 중도파 세력들 (CWI, IMT, ISA)이 이러한 망상, 이러한 썩은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22. 이와는 달리, 언제나 RCIT와 국제주의사회주의동맹 (RCIT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 지부)은 정치적 실패와 시오니즘에 대한 기회주의적 영합으로 결과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전략을 늘 거부해 왔다. (시온주의적 두 국가 해법에 대한 스탈린주의자들과 자칭 트로츠키주의 중도파 세력들의 지지를 보라). 팔레스타인 해방을 위한 투쟁은 중동에서 연속혁명 전략의 일부로서만 승리할 수 있음을 거듭 강조하는 바다. 팔레스타인 대중의 태생적 동맹군은 아랍 노동자·빈농이며, 보다 일반적으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먼저 카이로, 암만, 다마스쿠스, 베이루트를 경유한다. 텔아비브를 경유하는 것이 아니라.
23. 중동에서 친제국주의 독재자들의 타도와 노동자·빈농 공화국의 수립으로 결과할 아랍 혁명의 승리만이, 또는 중동 다른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시온주의 국가의 전략적 패배만이 이스라엘 계급 사회를 철저히 분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에서만 이스라엘-유대인 노동자계급의 한 부분을 시온주의에서 떼어내는 것이 (또는 적어도 중립적 입장을 취하도록 떠미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24. 사회주의자들의 전략적 목표는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하나의 민주적·세속적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위한 투쟁이다. 이러한 국가는 모든 팔레스타인 난민이 고향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 것이고, 나크바와 시온주의 국가 창설 이전 언제나 그랬듯이 팔레스타인인을 다수자 주민으로 되게 해줄 것이다. 또 이 국가는 중동 사회주의 연방의 일부로서 노동자·빈농 공화국일 것이다. 독점체와 억만장자를 수탈하는 국가만이 팔레스타인인이 땅과 집을 되찾을 수 있도록 보장해준다. 사회주의 경제만이 가자지구와 서안지구를 재건하고 모든 시민들 사이에 부를 평등하게 나누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25. 이러한 국가는 종교적 또는 민족적 배경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을 동등하게 대우할 것이다. 유대인은 그러한 국가에서 소수자이지만 완전한 종교적·문화적 권리를 가질 것이다. 아프리카의 많은 백인 정착민이 그랬듯이 시온주의 정착민도 다수가 지배적 지위를 잃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과 동등하게 살기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모두 환영받을 것이다.
26. 연속혁명 이론과 전략은 변증법의 기본 법칙인 부정의 부정 법칙을 확인시켜 준다. 1948년 이전에 팔레스타인 인구의 1/3을 점했던 정착민-식민주의 유대인의 권리와 원주 팔레스타인인의 권리에 대한 해법은 문화와 종교 측면에서 유대인 소수자에게 시민적 권리를 부여하는 팔레스타인 국가여야 했다. 그러나 시온주의자들은 이 해법을 부정했고, 팔레스타인 땅 78%를 점령하여 70만 명에서 9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했다. 1967년에는, 시온주의자들은 1947-48년 전쟁의 결과를 부정하며 시온주의자들의 지배 아래 팔레스타인 땅을 통합하고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했다. 현 시온주의 가자 전쟁의 패배 시 1947년에 필요했던 해법 ㅡ 유대인이 소수자로 있는, 요르단강부터 지중해까지 하나의 팔레스타인 국가 ㅡ 으로 가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이것은 더 높은 차원에서 시온주의 지배의 부정인데 왜냐하면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단순히 90만 명이 아니라 1,400만 명에 가까운)이 귀환할 것이고 혁명적 토지 분배가 있을 것이며 노동자 주도의 경제가 모두를 위한 고용, 주택, 사회서비스를 공급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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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수치들은 다음 문서들에서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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