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더스, 룰라, 바루파키스, 코빈의 “진보인터내셔널”이 낸 성명 비판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국제서기, 2022년 5월 17일, www.thecommunists.net며칠 전 개량주의 국제조직 "진보 인터내셔널"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성명을 발의했다. 이른바 "아테네 선언"이다. 선언의 주제와 내용, 발의자들의 정치적 성격으로 봐서 이 성명은 사회주의자들이 지나칠 수 없는, 꼭 다루어야 할 문제들을 담고 있다.
제레미 코빈, 야니스 바루파키스 등이 “진보인터내셔널”을 대표하여 공식 발의한 선언문 전체를 여기에 옮겨 놓고 시작해보자.[1]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으로 전쟁 희생자들에 대한 지원과 새로운 비동맹 운동이 요구된다.
* 우리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편에 선다. 우리는 침략과 추방과 점령으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의 편에 선다.
* 우리는 즉각적인 정전과 러시아군의 철수, 그리고 유엔의 틀 속에서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가 보장하는 포괄적 평화조약을 요구한다.
* 우리는 국제법과 모는 난민을 존중할 것을 촉구한다. 난민들은 민족, 종교 등에 관계없이 권리가 보호되어야 하며 안전 장소를 제공받아야 한다.
* 우리는 만연한 군사주의와 초현대식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신 냉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경쟁 블록으로 세계가 분열하는 것에 반대한다.
* 우리는 모든 군사 블록을, 긴장을 완화시키고 자유를 확대하고 빈곤을 퇴치하고 착취를 제한하고 사회·환경 정의를 추구하고 한 나라에 의한 다른 나라의 지배를 종결시키는 포괄적인 국제 안보 틀로 대체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항구적인 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생각들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전 세계의 민주주의자들이 ‘새로운 비동맹 운동’ (New Non-Aligned Movement)에 동참할 것을 요청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비동맹·민주·자주 국가들이 함께 협력하는 것을 항구적인 평화로 가는 길이자 기후 재앙을 피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공유된 번영의 여건을 조성할 적절한 기회로 본다.”
부르주아 평화주의 빈말
먼저 선언의 내용부터 보자. 기본적으로 아무 구체적인 결론도 도출함이 없는 공허한 평화주의 언사의 반복이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편에 선다. 우리는 침략과 추방과 점령으로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의 편에 선다"고 진보인터내셔널은 말한다. 훌륭하다. 많은 부르주아 정부와 언론들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나? 두 국가 간에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 진보인터내셔널은 우크라이나의 민족 전쟁을 지지한다는 의미에서 "우크라이나 인민의 편에 선다"는 것인가? 성명은 이에 대해 아무 말도 없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진보인터내셔널은 러시아 제국주의의 침공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저항투쟁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5월 초, 미국 타임지는 룰라와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2002-10년 브라질 대통령이었고 올해 10월에 있을 대선에 다시 출마할 브라질 PT(“노동자당”)의 역사적인 지도자 룰라와의 인터뷰다. (PT는 진보인터내셔널 내 주도 세력 중 하나다.) 이 인터뷰에서 룰라는 이 전쟁에서 우크라이나를 편 들길 거부한다. 그리고 양측 모두 전쟁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룰라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푸틴에게 ‘당신은 무기가 많지만, 그것을 우크라이나에 사용할 필요는 없소. 얘기 좀 해봅시다!’고 말할 것입니다.” 동시에 룰라는 젤렌스키가 “전쟁을 실제 원했다”고 말한다. “정말 젤렌스키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면, 좀 더 협상을 했을 텐데요."[2]
이와 같이 진보인터내셔널은 푸틴의 침공에 대항하여 우크라이나 인민을 편 들길 거부하고 이 전쟁에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런 식으로 이들 자유주의 개량주의자들은 피억압 인민과 억압자를 구분하길 거부한다. 희생자와 침략자를,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 나라를 구분하길 거부하는 것이다. 이는 사회주의 원칙과, 아니 민주주의 원칙과도 전혀 공통점이 없다!
아테네 선언은 "즉각적인 정전"을 요구한다. 물론, 약자의 입지에서 피억압자 진영이 "즉각적인 정전"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요구를 지지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즉각적인 정전" 요구는 오직 침략자 편에만 유리한 요구일 것이다. 침략자가 정복한 것을 굳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오늘 “즉각적인 정전”이란 러시아가 동 우크라이나와 남 우크라이나의 많은 부분을 그대로 장악한다는 뜻이다.
진보인터내셔널 지지자들은 아테네 선언에는 "러시아군 철수" 요구도 포함되어 있다며 반론을 제기할지도 모른다. 이는 진보인터내셔널이 보기에도 우크라이나가 외국 침략자에 의한 불법 점령의 희생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물론, 결론을 도출해서 피억압 인민을 지지하는 것 없이) 느낀다는 뜻이다. 그러나 진보인터내셔널은 무력에 의한 침략자의 축출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즉각적인 휴전"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지한다. 이것이 푸틴을 유리한 위치에 놓이게 해준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다. 푸틴의 군대가 이미 우크라이나의 많은 부분을 점령한 상태라는 점에서 말이다.
글로벌 사회제국주의와 결합된 평화주의
진보인터내셔널은 어떻게 평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하는가? 사실상, 이들 리버럴 개량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강대국들 ㅡ 즉 "유엔 틀 속에서의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 ㅡ 이 보장하는, 협상을 통한 평화조약을 요구한다. 달리 말하면, 유럽제국주의 · 미제국주의 · 러제국주의 + UN (안보리 거부권 행사 5개 열강이 지배하는 그 UN)에 의한 평화 실현 요구다.
진보인터내셔널이 이 요구의 명백한 모순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역설적이다. 서두에 소개한 다음 발언을 보라. "우리는 만연한 군사주의와 초현대식 대량살상무기, 그리고 신냉전에 모든 것을 쏟아 붓는 경쟁 블록으로 세계가 분열하는 것에 반대한다. 우리는 모든 군사 블록을, 긴장을 완화시키고 자유권을 확대하고 빈곤을 퇴치하고 착취를 제한하고 사회·환경 정의를 추구하고 한 나라에 의한 다른 나라의 지배를 종결시키는 포괄적인 국제 안보 틀로 대체하는 것에 의해 비로소 항구적인 평화가 달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제국주의 강대국들 ㅡ 우크라이나의 평화조약을 보장해야 한다고 진보인터내셔널이 말하는 그 강대국들 ㅡ 이 계속 존재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빈곤 없는, 평화로운, 번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
세계를 지배하는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자본주의 독점체들의 혁명적 전복 없이 평화와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글로벌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어야 비로소 평화와 사회적 정의가 있을 것이다.
사실상 진보인터내셔널은 강대국들이 계속 존재하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세계질서라는 공상적인 관점을 제창하고 있는 것이다. 나토와 CSTO 같은 정식의 군사동맹이 없더라도 미국, 중국, 러시아, EU, 일본은 여전히 제국주의 열강이다. 제국주의 열강을 그대로 둔 채 단지 이러한 “군사 블록”을 다른 무슨 “국제 안보 틀”로 대체한다고 제국주의 전쟁의 위험이 제거될 것인가? 가당치 않은 얘기다.
두루 알다시피, 나토와 CSTO와 같은 기존 군사동맹체는 1945년 이후에야 생겨난 것들이다. 그 이전에는 이러한 동맹체의 존재 없이도,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존재와 이들 강대국 패권쟁투는 20세기에 양차 세계대전을 불러왔고 1억 명 이상의 목숨을 앗아갔다!
우리가 아래에서 보겠지만, “아테네 선언”의 이러한 모순은 어리석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외교 언어를 부르주아 현실권력정치 (레알폴리틱)에 결합시킨 리버럴 개량주의 정치가들의 양두구육적 위선 정책에 기인한다.
"새로운 비동맹 운동"?
진보인터내셔널 성명은 이처럼 평화롭고 번영하는 세계를 보장할 "새로운 비동맹 운동"의 창설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비동맹 운동"은 어떠한 반제국주의, 반자본주의 내용도 가지고 있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제국주의 세계질서의 또 다른 버전에 다름 아니다. 아마도 중국[3]과 러시아[4]가 지배하는 제국주의 세계질서일 것이다.
아테네 선언이 나온 같은 날 영국공산당의 스탈린주의 신문 모닝스타가 “새로운 비동맹 운동”을 다룬 인도 언론인의 기사를 게재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 저자는 지역 열강이 된 그의 모국의 자랑스러운 애국자라서 기사 제목을 "가능한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담당할 핵심 역할이 인도에게 있다"로 달았다.
그러나 여기서는 스탈린주의의 사회애국주의적 특성에 대해 깊이 들어가지 않겠다. 그보다는 그러한 "새로운 비동맹 운동"의 성격을 구체화하려는 기사 저자의 시도에 주의를 환기시키고자 한다. "오늘의 비동맹은 세계은행과 IMF의 독재 및 지속되는 부채의 악영향을 거부하고 전쟁 도구로서의 제재를 폐지하고 유엔을 보다 공평하게 재정립하는 등의 세계질서 전환 요구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선례가 있는 구조의 구축이 필요하다. 브릭스 국가들은 미래 블록의 모델이 될 수 있는 브릭스 개발은행 (BRICS Development Bank)이라고 불리는 신 개발은행에 대한 올바른 구상을 가지고 있었다.”[5]
이와 같이 자유주의 개량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브릭스와 그 기구들을 "새로운 비동맹 운동"이 좇아야 할 본보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브릭스가 무엇인가? 주요 제국주의 열강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하여 그 밖의 자본주의 지역열강 (브라질, 인도, 남아공)의 동맹이다. 브릭스의 은행은 또 하나의 제국주의 금융기구 이상이 아니다. IMF나 세계은행보다 낫지 않고, 단지 지배하는 강대국이 다를 뿐이다! 중국 대출을 받고 그 결과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나라들에게 물어보라!
한마디로, 소위 “새로운 비동맹 운동”은 중·러 제국주의와 반식민지 나라의 그들 동맹 지배계급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 슬로건으로서 또 다른 혼성괴물 키메라일 뿐이다.
맑스주의와 평화주의
우리는 이참에 소부르주아 평화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겠다. 현재 평화주의를 전도하는 세력들은 이들 자유주의 개량주의자들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부르주아 정부들 (중국 정부를 포함한)과 "좌파" 세력들도 평화주의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대중의 위선적이지 않은 정직한 평화주의와 직업 정치가들 및 그들에게 고용된 전문가·학자들의 꾸며낸 위선적인 평화주의를 구분한다. 전자는 대중의 혼동된 의식을 표현하지만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의 역병을 없애려는 진보적 소망을 담고 있다. 당연히 혁명가들은 그러한 관점의 결함을 교육학적으로 설명해야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희망과 연결을 갖고, 그것을 대중의 집단적 투쟁의 전진을 위해 활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르주아 정치가들과 미사여구를 늘어놓는 “좌파” 지식인들의 평화주의는 이와는 다르다. 혁명가들은 이들을 날카롭게 비난하고 인민대중에게 이 양두구육 사기극의 객관적으로 반동적인 역할을 설명해야 한다.
위에서 말한 진보인터내셔널의 아테네 선언은 그러한 양두구육 위선의 좋은 예다. 그들은 평화를 요구하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내건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평화를 보장하는 것은 누구인가? 명백히, 권력과 무기를 쥔 자들이다. 정확히 말해서 오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자본주의 열강과 그들의 군대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진보인터내셔널은 이른바 평화조약을 보장한다고 하는 자본주의 열강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유엔 틀 속에서의 유럽연합, 미국, 러시아". 즉, 제국주의 열강들과 그들이 통제하는 기관에 의해 보장되는 ‘평화’다.
이와 같이 평화주의는 피억압자에게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하고, 자본주의 열강과 그들의 군대를 그대로 두는, 나아가 이 강도들에게 "평화"를 보장해 달라고 요청하는 위험한 이데올로기다.
실제로 역사를 통틀어 피억압자는 결코 폭력 없이는 어떤 의미 있는 진보도 이룰 수 없었다. 노예제의 폐지와 식민지 억압자의 축출, 파시즘이나 독재 정권의 타도 등, 이 모든 성취는 폭력과 무장투쟁 없이는 불가능했다. 이것은 오늘 잔학한 외세 침략에 대항하여 나라를 방위하는 우크라이나에서도 다르지 않다.
물론 사회주의자들도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원한다. 그리고 이것은 전쟁을 낳은 원인이 제거, 폐절된 사회적 기초 위에서 세워진 평화의 질서를 의미한다. 계급 착취와 억압이 없는 사회, 즉 사회주의 사회 말이다. 따라서 단 하나 의미 있는 평화 전략은 사회주의혁명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한 데서는 어디서든 억압자에 대항하는 폭력적인 투쟁 수단을 제창, 옹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주의는 피억압자를 무장해제 시키고 투쟁 방향을 잃게 만드는 반동적이고 해악적인 이데올로기다. 맑스주의 운동이 이 허튼소리에 언제나 적개심을 내려놓지 않아온 이유다. 물론,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평화주의자들과 제한적인 실천적 협력의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자본가계급에 의한 경제적 공격에 대항하여 개량주의자들과도 협력할 수 있고, 인종주의와 식민지 점령에 대항하여 피억압 민족의 민족주의자들이나 이슬람주의자들과도 협력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로서, 정치세력으로서 평화주의는 사회주의의 적이다.
1917년 최초의 성공적인 노동자계급 혁명을 조직한 당인 볼셰비키는 언제나 평화주의를 날카롭게 비난했다. 1915년 2월 당 재외지부 회의 (일명 “베른 회의”)에서 볼셰비키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평화주의, 즉 추상 속의 평화를 설교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을 속이는 수단 중의 하나다. 자본주의 하에서, 특히 그 제국주의적 단계에서 전쟁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제국주의 전쟁이 아닌, 혁명적 전쟁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1789년에서 1871년 사이에 치러진 전쟁들, 민족 억압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된, 그리고 분산된 봉건적 소국가들로부터 자본주의적 민족국가를 창설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행된 전쟁들, 또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승리하여 쟁취한 성과물을 방어하기 위해 수행되는 전쟁들이 그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이러한 혁명적 전쟁의 적극적 의의를 놓칠 수 없다.”[6]
“현 시기에 혁명적 대중행동에 대한 요구를 수반하지 않는 평화 선전은 단지 환상을 유포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혼란과 사기저하로 몰아넣을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평화 선전은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부르주아지가 인도적이라고 믿게 만들고, 교전국 비밀외교의 수중에서 놀아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일련의 혁명이 없이도 이른바 민주주의적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철두철미 오류다.”[7]
1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과 함께 공저자로 <<사회주의와 전쟁> 팜플렛을 국제 사회주의자 대회에 배부한 볼셰비키 지노비에프도 이 사상을 다음과 같이 아주 요령 있게 설명했다.
“ ‘우리 슬로건의 핵심에 위치해 있는 평화 사상’?! 이것이 이제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이 터진 뒤에 말이다! 이게 당신들이 사건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평화 사상이 아니라 내란 사상’, 이것이 우리가 그런 보잘 것 없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이들 위대한 유토피아 공상가들에게 외치고 싶은 유혹이다. 시민 아들러여! 평화 사상이 아니라 내란 사상, 이것이 우리 강령의 중심 포인트다.
문제는 우리가 전쟁 전에 평화 사상을 충분히 전도하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계급투쟁 사상, 내란 사상을 충분히 또는 진실로 충분히 전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전시에 내란을 인정하지 않고서 계급투쟁을 인정한다는 것은 공허한 수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선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속이는 것이다.”[8]
“그렇다. 우리는 결코 원리적인 평화주의자가 아니다. 절대로 우리는 모든 전쟁에 대한 반대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전쟁에 반대한다. 우리는 억압자들의 전쟁에, 제국주의 전쟁에, 수백 수천만 노동자들을 노예의 처지로 떨어뜨리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쟁에 반대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적 전쟁들에 대해서는 그 긍정적인 의의를 부정할 수 없다.”[9]
몇 년 뒤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코민테른)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평화주의의 위험을 요약정리 했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적 현실이다. 부르주아 평화주의는 자본주의적 환상이다. 평화주의는 부르주아 사회개혁만큼이나 자본주의의 모순과 해악과 범죄를 극복하는 데 무능하다. 그러나 평화주의는 부르주아지, 중소 부르주아지의 대열 속으로 불화와 불확실성을 도입할 것이고, 그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적 적을 약화시킬 것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이러한 계급적 적이 약화되는 데서 나오는 그 어떤 기회도 활용해야 한다. 모든 부르주아적 평화주의 이니셔티브가 가져오는 기회를, 노동자계급을 투쟁으로 이끄는 데 사용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러한 투쟁의 도정에서 노동자계급은 군사주의와 제국주의가 이성과 평화 애호의 점진적인 승리에 의해 철폐 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될 것이다... 이러한 확신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투 에너지에 평화주의가 미치는 그 어떤 무력화·약화 효과 ㅡ 부르주아 평화주의적 선전과 연결된 위험 ㅡ 에 대해서도 상쇄시키는 기능을 해줄 것이다... 평화주의적인 감상적 희망의 안개로 인해, 부르주아지가 삶의 생산수단과 죽음의 생산수단을 장악하고 있는 덕에 지배하고 착취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흐릿해져서는 안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와 예속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 그 두 생산수단 모두를 거머쥐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무력에 의해 자유를 빼앗겼으므로 무력에 의해 자유를 쟁취하고 지켜야 한다.”[10]
이 말들은 오늘에도 그 의의를 잃지 않았다. 우리가 더 많은 전쟁과 혁명·반혁명으로 점철되는 시기로 들어갔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누가 “진보인터내셔널”인가?
앞에서 보았듯이, “아테네 선언”은 모종의 평화주의 언사를, 제국주의 강대국들과 자본주의 독점체들이 계속해서 존재하는 새로운 평화적 세계 질서라는 부르주아 공상주의 개념에 결합시킨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어리석음의 결과라기보다는 부르주아 · 사회제국주의 전략을 덮어 가리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는 이 “인터내셔널” 중앙 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정치세력들의 면면을 보면 명백해진다.[11] 위원회 구성원은 상기한 룰라, 버니 샌더스, 제레미 코빈, 바루파키스를 비롯하여 거의 대부분이 자본가국가의 전현직 수반들, 국회의원들, 장관들로 복무한 자유주의/개량주의/볼리바르주의 당들의 대표자들이다.
평화주의 언사에다 모호한 "대안적 신 세계질서" 제안을 양두구육 적으로 섞어놓은 이 위선적인 조합이 철저히 부르주아적인 정책을 대표한다는 것은 더 이상 의문의 여지가 없다. 사실상 이것은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그 억압·착취적 성격을 바꾸지 않고서 개량하자는 제안이다. 진보인터내셔널의 지도자들이 이 제국주의 세계질서에 잘 어울리는 자본가국가 공직자로 수년간 복무했다는 점에서 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 진보인터내셔널은 대중의 의식을 혼란스럽게 하는 힘은 있지만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바꿀 힘은 없는 무력한 느슨한 연합체다. 실제로 이 “인터내셔널”의 구성을 보면, 언제나 중·러 제국주의와의 협력을 모색해 온 중남미 개량주의·볼리바르주의 세력들과, EU 제국주의 정부들에서 각료 등 정부 직책을 갈망하는 유럽의 개량주의 당 지도부들과, 현재 바이든 정부의 군국주의 대외정책의 지지자들인 샌더스 상원의원과 그 맹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이들 세력은 일종의 글로벌 사회제국주의 (또는 범 사회제국주의)를 전도한다. 개량된, 평화적인 제국주의 세계질서라는 공상적 프로그램의 연장이다. 현실에서, 진보인터내셔널은 언제든 동서 강대국들 간 심각한 대결 시에는 바로 붕괴되거나 마비될 수밖에 없는 느슨한 연합체다.
맺음말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아테네 선언”은 푸틴의 침공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서나, 강대국들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에 대항하는 투쟁을 위해서나 아무 전망도 밝혀주지 않는다. 오히려 투쟁의 방향을 흐트러뜨릴 수만 있을 뿐인 정치적 연막탄이다.
이러한 류의 평화주의와 글로벌 사회제국주의로부터 스스로를 날카롭게 구별하는 것은 위선적이지 않은 진실된 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의무다. 사회주의자들은 "진보인터내셔널"의, 그리고 노동자·민중 조직 내 그 비슷한 세력들의 유해한 영향력과 싸워야 한다.
리버럴 개량주의 “진보인터내셔널”의 부르주아 정책과는 반대로,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과 그 밖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개전 당초부터 일관된 국제주의·반제국주의 정책을 제창해왔다.
우리는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 전쟁, 방위 전쟁의 진보적 정당성을 인식하며, 따라서 제국주의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우크라이나 인민의 저항을 지지한다. 동시에, 우리는 강대국들 간 제국주의 패권쟁투의 반동적 성격을 인식하며, 따라서 러시아와 나토 양 진영 모두에 반대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슬로건으로 우리의 입장을 요약해놓았다.
* 우크라이나 방어! 러시아 제국주의에 패배를! (일체의 제국주의 영향력과는 독립적인) 우크라이나 민족 저항에 국제 민중연대를!
* 러시아뿐만 아니라 미국·EU 등, 모든 제국주의 열강 타도! 이 열강들 간의 모든 충돌·분쟁에서 혁명가들은 양 진영 모두에 맞서 싸운다!
우리는 진실된 사회주의자들에게 제국주의 강대국들 없는, 자본주의 독점체들 없는 세계를 위해 함께 싸울 것을 호소한다. 그러한 사회질서 속에서만 전쟁과 폭력이 제거될 것이다. 그러한 투쟁을 밀어가기 위해서는, 사회주의자들이 “진보인터내셔널”과 같은 세력들이 제창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부르주아 평화주의와 자유주의 개량주의의 유해한 영향력에 맞서 투쟁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역사적인 임무는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힘을 합쳐야만 이룰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과 전망에 동의하는 모든 동지들에게 이 투쟁에서 RCIT와 함께 하고 공동으로 혁명세계당을 만들 것을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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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anis Varoufakis, Jeremy Corbyn and Ece Temelkuran present the Athens Declaration, DiEM25 Communications, 13/05/2022, https://progressive.international/wire/2022-05-13-corbyn-temelkuran-varoufakis-the-athens-declaration/en 및 https://diem25.org/yanis-varoufakis-jeremy-corbyn-and-ece-temelkuran-present-the-athens-declaration/
[2] Lula Talks to TIME About Ukraine, Bolsonaro, and Brazil's Fragile Democracy, by Ciara Nugent, May 4, 2022, https://time.com/6173232/lula-da-silva-transcript/
[3] RCIT는 중국 자본주의와 중국의 강대국 부상에 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https://www.thecommunists.net/home/%ED%95%9C%EA%B5%AD%EC%96%B4/book-anti-imperialism-in-the-age-of-great-power-rivalry/; 같은 저자의 다음 논문들도 보라. the second edition of The Palgrave Encyclopedia of Imperialism and Anti-Imperialism (edited by Immanuel Ness and Zak Cope), Palgrave Macmillan, Cham, 2020, https://link.springer.com/referenceworkentry/10.1007%2F978-3-319-91206-6_179-1; China: An Imperialist Power … Or Not Yet? A Theoretical Question with Very Practical Consequences! Continuing the Debate with Esteban Mercatante and the PTS/FT on China’s class character and consequences for the revolutionary strategy, 22 January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imperialist-power-or-not-yet/; China‘s transformation into an imperialist power. A study of the economic, political and military aspects of China as a Great Power (2012), in: Revolutionary Communism No. 4, http://www.thecommunists.net/publications/revcom-number-4; How is it possible that some Marxists still Doubt that China has Become Capitalist? (A Critique of the PTS/FT), An analysis of the capitalist character of China’s State-Owned Enterprises and its political consequences, 18 September 2020,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pts-ft-and-chinese-imperialism-2/; <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PTS/FT와 중국 사회성격 토론>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pts-ft-and-chinese-imperialism/#anker_1; China’s Emergence as an Imperialist Power (Article in the US journal 'New Politics'), in: “New Politics”, Summer 2014 (Vol:XV-1, Whole #: 57).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특별 하위 페이지에서 더 많은 문서들을 볼 수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4] RCIT는 러시아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제국주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peculiar-features-of-russian-imperialism/#anker_6; 같은 저자: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d the Rise of Russia as a Great Power. On the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of Today’s Inter-Imperialist Rivalry in the Light of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other Reply to Our Critics Who Deny Russia’s Imperialist Character, August 2014,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m-theory-and-russia/; Russia as a Great Imperialist Power. The formation of Russian Monopoly Capital and its Empire – A Reply to our Critics, 18 March 2014, in: Revolutionary Communism No. 21,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t-russia/; Russian Imperialism and Its Monopolies, in: New Politics Vol. XVIII No. 4, Whole Number 72, Winter 2022, https://newpol.org/issue_post/russian-imperialism-and-its-monopolies/. 이 문제에 관한 여러 다른 RCIT 문서들이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별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5] Prasanth Radhakrishnan: India has a key role to play in a possible new world order. A non-aligned future for the global South raises immense challenges and glimpses of hope for India and other nations, 13th May 2022, https://www.morningstaronline.co.uk/article/f/india-has-key-role-play-possible-new-world-order
[6]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 레닌전집 59권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양효식 옮김, 아고라, 115쪽
[7] 같은 글, 116쪽
[8] Gregory Zinoviev: Pazifismus oder Marxismus (Böse Folgen einer Losung.), in: G. Sinowjew / V. I. Lenin: Gegen den Strom, Verlag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Hamburg 1921, p. 116 (In English: Pacifism or Marxism (The Misadventures of a Slogan), in: Spartacist, No. 64, Summer 2014, http://www.icl-fi.org/english/esp/64/zinoviev.html
[9] Ibid, p. 119
[10] Communist International: Theses on the Fight against the War Danger (1922), in: Jane Degras: The Communist International 1919-1943. Documents Volume I 1919-1922, pp. 331-332
[11] 다음을 보라. https://progressive.international/counc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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