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
V.I. 레닌, 1915년 7월
혁명적 계급은 반동적인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자명한 공리이다. 의식적인 사회배외주의자 도당이나 그들의 영혼 없는 시종들만 이 공리와 다툰다. 전자의 부류에 속하는 자는 예를 들어 조직위원회의 셈코프스키이고 (조직위원회의 신문 <<이즈베스챠>> 2호), 후자에 속하는 자는 트로츠키와 부코보예드[1], 그리고 독일의 카우츠키이다. 트로츠키는 이렇게 쓰고 있다. 러시아의 패배를 바라는 것은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전혀 불필요하고 전적으로 부당한 양보이다. 전쟁( 및 전쟁을 야기한 조건들)에 대한 혁명적 투쟁이 필요한 상황에서, 단지 해악이 가장 작은 쪽을 지향하는 활동 — 현 조건에서 매우 자의적인 — 으로 이와 같은 혁명적 투쟁을 대체하는 것이 바로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이다.” (<<나셰 슬로보>> 105호).
이것은 트로츠키가 기회주의를 정당화할 때 항상 사용하는 허풍스런 과장법의 한 예이다. “전쟁에 대한 혁명적 투쟁”이라는 것이 현 상황에서 어떤 내용을 가지려면, 그것은 전시 중에도 자국 정부에 대한 혁명적 행동을 한다는 뜻일 때 만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말은 그저 제2인터내셔널 영웅들의 전매특허인 공허하고 내용 없는 고함지르기에 불과하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조금만 생각해보면 된다. 전시에 자국 정부에 대한 혁명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단지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패배를 촉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당연하지 않은가. (‘통찰력 있는 독자’는 알겠지만, 이것은 ‘다리를 폭파 한다’든가, 전쟁 산업에서 불발 파업을 조직한다든가 하여 일반적으로 정부가 혁명가들을 패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트로츠키는 자기 말에 도취되어 단순한 문제에서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러시아의 패배를 바란다는 것이 그에게는 독일의 승리를 바란다는 의미로 보이는가 보다. (부크보예드와 셈코프스키는 트로츠키와 공유하고 있는 ‘생각’ — 아니, 생각의 짧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 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트로츠키는 이를 ‘사회애국주의의 방법론’이라고 간주한다! 자신의 머리로 사고할 수 없는 사람을 돕기 위해 베른 결의(<<사회민주주의자>> 40호)가 명확히 천명한 명제를 환기해 보자.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지금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한다. 부크보예드와 트로츠키는 이 진실을 회피하고자 했지만, 셈코프스키 (부르주아적 지혜를 순진하리만치 솔직하게 그대로 옮기는 덕분에 노동자계급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유용한 기회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버렸다. “이것은 바보 같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독일이든 러시아든 둘 중에 하나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이즈베스챠>> 2호)
파리코뮌의 예를 들어보자. 독일은 프랑스에게 승리했지만, 비스마르크와 티에르는 노동자에게 승리했다! 부크보예드와 트로츠키가 조금만이라도 생각해 보았다면, 자신들이 정부와 부르주아지가 가지고 있는 전쟁에 대한 관점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 즉 (트로츠키의 허세부리는 언어를 사용한다면)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굽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시 중의 혁명은 내란을 뜻한다. 정부 간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한편으로 정부의 군사적 실패(‘패배’)에 의해 용이하게 된다. 다른 한편으로, 그러한 내란 전화를 지향한다면 바로 그것에 의해 패배[패전]를 촉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즉 패배를 촉진함이 없이 내란 전화를 지향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배외주의자들(조직위원회와 치헤이제 파 의원단을 포함하여)이 패배 ‘슬로건’을 거부하는 이유는 일관되게 이 슬로건만 전시에 자국 정부에 대한 혁명적 행동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 없이 “전쟁( 및 전쟁을 야기한 조건들)에 대한 혁명적 전쟁” 등등과 같은 초혁명적 문구를 수백만 번 고함질러봐야 하등의 가치도 없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 ‘슬로건’을 논파하려고 기를 쓰는 자는 다음 3가지 중 하나라도 증명해야 한다. 1) 1914-15년의 전쟁은 반동적인 전쟁이 아니다? 2) 혁명이 이 전쟁으로부터 일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3) 모든 교전국 혁명운동들 간의 호응과 협력은 불가능하다? 세 번째 점은 직접적인 사회주의혁명이 불가능한 가장 낙후된 나라인 러시아에 특히 중요하다.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패배 ‘슬로건’의 ‘이론과 실천’을 진전시킨 첫 주자여야만 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두마 의원단이 행한 선동 — 인터내셔널에서 유일한 사례인 바, 단지 의회 내 반대 선동으로서만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의 진정으로 혁명적인 반정부 선동으로서 유일한 — 이 러시아의 ‘군사력’을 약화시켰고, 그리하여 러시아의 패배를 가져올 요인이라고 짜르 정부는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완벽하게 맞는 말이다. 이 사실에 눈을 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패배 슬로건에 대한 반대자들은, 정부에 반대하는 혁명적 선동과 정부의 패배를 촉진시키는 것과는 떨어질 수 없는 관계라는 명백한 사실에 대해 직시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점에서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는 데 불과하다.
러시아 운동 — 부르주아 민주주의적인 의미에서 혁명적인 운동 — 과 서구에서의 사회주의 운동 간의 호응과 협력은 가능한가? 지난 10년 동안 그 문제에 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사회주의자들 중 이를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1905년 10월 17일[2] 이후 오스트리아의 프롤레타리아트 운동은 그것이 가능함을 실제로 증명했다.
국제주의자를 자칭하는 사회민주주의자에게 물어보라. 당신은 모든 교전국 정부들에 대한 공동의 혁명적 행동을 위해 여러 교전국 사회민주주의자들 간에 협정을 맺는 것에 찬성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카우츠키가 그랬던 것처럼(<<노이에 차이트>> 1914년 2월 10일자)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것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사회배외주의임을 완전히 증명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 간의 협정이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한편으론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거짓말,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들 및 바젤 선언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거짓말이다. 반면 불가능하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그 경우 많은 점들에서 기회주의자들의 말이 아주 맞는 말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협정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할 것이다. 이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만약 이러한 찬성이 위선이 아니라면, 대표자들의 선출이라든가 회담의 배치나 협정의 조인, 그리고 일자의 선정 같은 어떤 ‘형식적인’ 협정이 전쟁 중에 그리고 전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웃기는 것이다! 셈코프스키 같은 사람들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수의 나라들은 말할 것도 없고, 단 하나의 나라에서조차 혁명적 행동을 위한 협정은 오직 진지한 혁명적 행동의 실례가 갖는 힘에 의해서만, 그러한 행동에 착수하고 그것을 발전시킴으로써만 실현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은 정부의 패배를 바라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러한 패배를 촉진하지 않고서는 착수될 수 없다.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혁명이 ‘만들어질’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치에서 ‘만들어질’ 수 없다. 내란 전화는 제국주의 전쟁의 아주 다양한 현상 · 측면 · 특징 · 특성 · 결과로부터 발전해 나오는 것이다. 이 발전은 정부가 자국의 피억압 계급들로부터 일격을 맞아 일련의 군사적 실패와 패배를 입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패배 슬로건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혁명적 정신을 공문구나 순전한 위선으로 전락시키는 것을 뜻한다.
패배 슬로건을 대신해서 제출되고 있는 대용품은 무엇인가? 그것은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라는 슬로건이다. (<<이즈베스챠>> 2호에 있는 셈코프스키의 논설, 그리고 1호에 있는 조직위원회 전체의 입장). 그러나 이 슬로건은 ‘조국방위’ 슬로건을 말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 슬로건은 문제를 정부 (이 슬로건의 내용에 따르면, 자신의 기존 입장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자기 위치를 고수할 수밖에 없는’ 정부) 간 전쟁이라는 층위로 옮겨 놓은 것이지, 각국 정부에 대한 피억압 계급들의 투쟁이라는 층위로 옮겨 놓은 것이 아니다! 결국 이 슬로건은 모든 제국주의 민족들의 배외주의를 정당화한다. 보라. 이들 제국주의 민족의 부르주아지는 ‘단지’ 자신들은 ‘패배에 반대해서’ 싸우고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항상 말할 준비가 되어 있고, 또 실제로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은가. “8월 4일 우리가 전쟁공채에 찬성투표를 한 것의 의미는 우리가 전쟁에 찬성해서가 아니라 패배에 반대해서이다”라고 기회주의자들의 지도자 다비트는 자기 저서에서 썼다. 조직위원회는 부크보예드 및 트로츠키와 함께, 완전히 다비트와 같은 입장을 취하며,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슬로건을 옹호하고 있다.
이 슬로건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계급 휴전’, 즉 모든 교전국의 피억압 계급들은 계급투쟁을 중지하자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자’국 부르주아지와 ‘자’국 정부에 타격을 가하지 않는 계급투쟁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시에 자국 정부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부크보예드의 정보에 따르면)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며, 자국의 패배를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슬로건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계급투쟁에, ‘계급휴전의 파기’에 단지 위선적으로만 찬성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는 그런 사람은 독립적인 프롤레타리아 정책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국주의 정부를 패배로부터 보호한다는 완전히 부르주아적인 임무에 모든 교전국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종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계급휴전’을 거부하고 계급투쟁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정책은 자국 정부와 자국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저들이 겪는 곤란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지 않고서는, 그리고 이 패배를 촉진하지 않고서는 이를 실현할, 또는 지향할 도리가 없다.
전쟁 전에 이탈리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대중파업 문제를 제기했을 때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관점에서 볼 때 의심할 바 없이 옳게도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반역죄로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반역자로 다루어질 것이다.’ 이것은 맞다. 참호에서의 형제적 우애가 반역죄인 것처럼 말이다. 부크보예드처럼 ‘반역’에 반대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 또는 셈코프스키처럼 ‘러시아의 붕괴’에 반대하여 글을 쓰는 사람들은 프롤레타리아적 관점이 아닌 부르주아적 관점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반역’을 저지르지 않고는, 패배를 촉진하지 않고는, ‘자’국 제국주의 대국의 붕괴를 촉진하지 않고는 자국 정부에게 계급적 타격을 가하거나, 자신의 형제인 ‘외’국 프롤레타리아 — ‘우리 측’과 전쟁 중인 — 에게 손을 (실제로) 뻗칠 수 없다.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슬로건을 지지하는 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배외주의자이다. 잘해야 그는 타협적인 소부르주아이지만, 그러나 어느 경우든 그는 프롤레타리아 정책에 대항하는 적이자, 현 정부와 현 지배계급의 열성 동조자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전쟁은 긴장이 완화된 대중의 일상적 심리상태를 깨뜨려버릴 수 있는 격렬한 감정을 대중 속에서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새롭고 격렬한 감정에 맞춰 적응하지 않고서는 혁명적 전술이란 불가능하다.
이와 같은 격렬한 감정의 주된 흐름은 무엇인가? 1) 공포와 절망. 여기서 종교적 감상이 자라나온다. 다시 교회에 사람이 붐비고 반동들이 환호를 지른다. “고통이 있는 곳에 종교가 있다”고 반동 우두머리 바레(Barres)가 말한다. 그의 말도 맞다. 2) ‘적’에 대한 증오. 이것은 (목사들보다도 오히려) 부르주아지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조장되며 부르주아지에게만 경제적, 정치적으로 유리한 감정이다. 3) 자국 정부와 자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증오. 이것은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라면 모두 느끼는 감정이다. 그들은 한편으로 전쟁이 제국주의 ‘정치의 계속’임을 이해하고, 이에 대해 그들의 계급적 적에 대한 증오의 ‘계속’으로 대응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전쟁에 반대하는 전쟁’이란 것이 자국 정부에 반대하는 혁명을 뜻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진부한 문구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자국 정부와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를 바라지 않고서는 이들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 없다. 그리고 자국 정부와 자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증오를 불러일으키지 않고서도 국내평화 (즉 계급평화)의 충심어린 반대자, 즉 위선적이지 않은 반대자가 될 수는 없다.
‘승리도 패배도 아니다’ 슬로건을 지지하는 자들은 실제로 부르주아지와 기회주의자의 편에 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국 정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혁명적 행동의 가능성을 ‘믿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을 발전시키는 것 — 의심할 바 없이 어려운 일이지만, 프롤레타리아에게 걸맞는 유일한 임무, 유일한 사회주의적 임무인 — 을 돕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름 아닌 바로 교전국 열강 가운데 가장 뒤떨어진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가 — 더더욱 독일과 프랑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파렴치한 배반에 직면하여 — 혁명적 전술을 (자신의 당을 통해) 채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 혁명적 전술은 자국 정부의 ‘패배를 촉진’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실현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이것만이 유럽혁명으로, 사회주의의 항구적 평화로 인도할 것이며, 오늘을 지배하고 있는 참화, 재앙, 야만, 야수화로부터 인류를 구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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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크보예드는 D. 랴자노프이다.
[2] 1905년 10월 17일(30일)에 짜르의 선언이 반포되었다. 이 선언은 ‘시민적 자유권들’과 ‘입법 두마’를 약속했다. 선언은 혁명이 짜르 정권으로부터 쟁취해낸 양보였지만, 그러나 이 양보는 결코 자유주의자들과 멘셰비키가 주장하는 것처럼 혁명의 운명을 결정하진 않았다. 볼셰비키는 선언의 진정한 의미를 폭로했고, 대중에게 계속 투쟁하여 전제정을 타도할 것을 호소했다.
제1차 러시아혁명은 다른 나라,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에서 노동계급운동에 혁명적 기운을 전파하는 거대한 영향을 미쳤다. 레닌은 짜르의 양보 및 ‘시민적 자유권들’을 약속한 선언에 대한 소식이 “오스트리아에서 보통선거권의 최종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지적했다.
대중시위들이 비엔나를 비롯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다른 산업도시들에서 일어났다. 프라하에서는 바리케이드가 설치되었다. 그 결과로 보통선거가 오스트리아에 도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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