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현황과 임무

                      
<자료>

         사회주의인터내셔널의 현황과 임무


                                       V, I.
레닌, 191411
 
현 위기의 가장 심각한 측면은 유럽 사회주의 공식 대표자들의 다수가 부르주아 민족주의와 배외주의에 굴복했다는 데 있다. 지극히 당연하게도, 모든 나라의 부르주아 언론이 이제는 그들에 대해 조롱과 기특하다는 투의 칭찬을 섞어가며 기사를 쓰고 있다. 여전히 사회주의자로 남아 있길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사회주의 위기의 원인을 밝혀내고 인터내셔널의 임무를 분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의무는 있을 수 없다.

2인터내셔널의 위기, 또는 보다 정확히 말하면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는 곧 기회주의의 붕괴임을 인정하길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완전한 의견 일치가 이루어졌다는, 그리고 사회주의 내 기존 그룹들이 필경 전쟁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바꿨다는 사실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그 같은 이야기는 근거가 없다.

계급협조의 옹호, 사회주의혁명 이념과 혁명적 투쟁방법의 포기, 부르주아 민족주의로의 순응, 민족과 나라의 경계선은 역사적으로 일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눈을 감기, 부르주아 합법성에 대한 물신화, ‘광범한 주민대중’ (소부르주아지를 뜻하는)을 떨어져나가게 하는 것이 될까봐 두려워 계급적 관점과 계급투쟁을 폐기하기, 이러한 것들이 바로 의심할 바 없이 기회주의의의 이데올로기적 기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토양으로부터 현재 대부분의 제2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이 드러내고 있는 배외주의적·애국주의적 의식구조가 발전해 온 것이다. 대단히 다양한 관점들을 대표하는 관측자들이 오래 전부터 주목해 온 바, 기회주의자들이 제2인터내셔널 지도부에서 우세를 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이 우세가 정말로 어느 정도인지를 급속히, 그리고 표 나게 드러냈을 따름이다. 위기가 비상하리만치 첨예하여 기존 그룹들 내에서 일련의 자리바꿈이 일어난 것은 전혀 놀라울 게 없다. 그러한 변화는 단지 개인들에 영향을 주었을 뿐, 사회주의 내 조류들은 전과 다름없이 그대로이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완전한 의견일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게드, 플레하노프, 에르베 등과 함께 배외주의 노선을 좇고 있는 바이양조차도, 이 전쟁이 제국주의 전쟁이며 어느 다른 나라 부르주아지보다도 프랑스 부르주아지에게 전쟁 발발의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프랑스 사회주의자들로부터 수많은 항의편지를 받았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이러한 항의의 목소리가 승리한 기회주의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군 검열에 의해서 질식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영국의 경우 하인드만 그룹 (영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 영국 사회당[1])은 반() 자유주의적인 노동조합 지도자들 대부분이 또한 그렇듯이 배외주의로 완전히 빨려들었다. 배외주의에 대한 저항은 기회주의 독립노동당[2]의 맥도널드와 케어 하디로부터 나오고 있다. 이것은 물론 예외적인 경우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하인드만에 반대해 왔던 일단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지금은 영국 사회당을 떠났다. 독일의 경우를 보면, 상황은 명확하다. 기회주의자들이 승리했다. 그들은 득의만면해 있다. 카우츠키를 우두머리로 한 중앙파는 기회주의에 굴복하여 가장 위선적이고 속악하고 잘난 척하는 궤변으로 기회주의를 옹호하고 있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 메링, 파네쿡, 칼 리프크네히트, 그리고 독일 및 독일어권 스위스에서 다수의 미확인 목소리들 로부터 항의가 터져 나왔다. 이탈리아에서도 라인업은 명확하다. 극단적인 기회주의자들인 비솔라티 일파가 조국을 지지하고, 게드-바이양-플레하노프-에르베의 편을 든다. <<아반티!>>를 선두로 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배외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고, 전쟁 요구의 부르주아적 이기적 본질을 폭로하고 있다. 그들이 진보적 노동자들 대다수의 지지를 받고 있다. 러시아에는 청산파 진영 내 극단적 기회주의자들이 이미 공개강연과 언론을 통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배외주의를 옹호했다. 마슬로프와 스미르노프는 조국을 방어해야 한다는 구실로 짜리즘을 방어하고 있다. (알다시피, 독일은 우리에게 칼을 겨누고 통상조약을 강요할 기세인 데 반해 짜리즘은 칼과 회초리를 사용하지 않고서 러시아 주민 90퍼센트의 경제적 정치적 민족적 생활을 질식시키고 있다!) 그들은 사회주의자가 반동적인 부르주아 정부에 참여하는 것을 정당화한다. 오늘은 전쟁공채 승인을, 그리고 내일은 군비확대를 정당화한다! 민족주의로 빠져든 플레하노프는 자신의 러시아 배외주의를 친() 프랑스적 태도로 감추려 애쓰고 있다. 알렉신스키도 그렇게 했다. 파리의 <<골로스>>[3]로부터 판단해 볼 때 마르토프는 나머지 이들 무리보다는 품위를 지키며 행동하고 있고, 독일 배외주의와 프랑스 배외주의 둘 다에 대해, 그리고 <<포어배르츠>>와 하인드만 씨, 마슬로프 씨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국제 기회주의 전체에 대해, 그리고 이 국제 기회주의의 가장 영향력 있는수호자인 독일 사회민주당 중도주의 그룹(‘중앙)에 대해 단호히 반대하고 나서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있다. 군복무 자원을 사회주의적 의무 이행이라고 강변하려는 시도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사회주의혁명가 당 당원들로 구성된 러시아인 자원병 집단의 파리 선언을 보라. 또한 레더를 비롯한 폴란드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선언도 보라)에 대해서는 플레하노프 혼자만 지지했다. 우리 당 파리 그룹[4] 다수는 이 시도들을 규탄했다. <<사회민주주의자>> 이번 호의 기조논문인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독자들에게 우리 당 중앙위원회의 입장을 알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어떠한 오해도 개입되지 않도록 여기서 우리 당의 견해 및 그것을 정식화한 역사와 관련하여 다음의 사실들에 대해 설명이 필요하다. 전쟁에 의해 단절된 조직 접촉선을 재구축하는 데서 따르는 엄청난 어려움을 극복한 뒤 당원들 한 그룹이 먼저 테제를 작성하여 96-8(신력)에 그것을 동지들 사이에서 유통시켰다. 그리고서는 스위스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도움으로 이탈리아-스위스 당 합동 회의 (927일 루가노에서)에 대표단으로 참가했다. 10월 중순이 되어서야 비로소 접촉선을 재구축하고 당 중앙위원회의 관점을 정식화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이번 호의 기조논문은 테제의 최종본을 대표한다.

이것이 간단히 말해 유럽 및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운동의 현황이다. 인터내셔널의 붕괴는 이미 사실이다. 이 사실은 프랑스와 독일의 사회주의자들 간에 출판물 상의 논쟁으로 최종적으로 입증되었고, 좌파 사회민주의자들 (메링과 <<브레머 뷰르거차이퉁>>)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온건한 스위스 신문들 (<<폴크스레히트>>)에 의해서도 인정되었다. 이러한 붕괴를 덮어 가리려는 카우츠키의 시도는 비겁한 속임수다. 명확히, 인터내셔널의 붕괴는 지금 부르주아지에게 포로가 되어 있는 기회주의의 붕괴다.

부르주아지의 입장은 분명하다. 기회주의자들이 단지 부르주아지의 주장을 받아서 되풀이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도 못지않게 분명하다. 기조논문에서 말한 것에 덧붙인다면, 한 나라의 노동자가 이른바 조국방위를 위해! 다른 나라의 노동자를 총 쏴 죽이는 것이 국제주의라고 암시하는 <<노이에 차이트>>의 극악한 성명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조국 문제는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기회주의자들에게 응답하게 될 것이다 현 전쟁의 구체 역사적 성격을 제대로 고찰함이 없이는 제기될 수 없다. 이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다. 즉 자본주의가 최고로 발전한 시대에, 자본주의가 종말에 접근하는 시대에 수행되고 있는 전쟁인 것이다. <<공산당 선언>>은 노동자계급이 먼저 국민적 계급으로 올라서야 한다고 선언하면서, 민족과 조국을 부르주아 체제의, 따라서 부르주아 조국의 필수적 형태로 우리가 인정하는 것에 내재된 한계와 조건을 강조한다. 기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의 발생기에 진실인 것을 자본주의의 종말기로 확장함으로써 <<공산당 선언>>이 강조한 이 진실을 왜곡한다. 자본주의의 종말기와 관련하여, 그리고 봉건제가 아니라 자본주의를 파괴하기 위한 투쟁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와 관련하여 <<공산당 선언>>은 명료하고 정확한 정식을 제시한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 기회주의자들이 왜 이 사회주의적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심지어는 대부분의 경우에 그 명제를 열어놓고 고려하는 것조차 그리도 두려워하는지는 누구나 잘 알 수 있다. 사회주의운동은 조국이라는 낡은 틀 내에서는 승리할 수 없다. 사회주의운동은, 각 민족 노동대중의 정당한 필요와 진보적 열망이 기존의 민족적 칸막이가 제거됨에 따라 국제적 단결을 통해 처음으로 충족되는, 그러한 새롭고 우월한 형태의 인간 사회를 창조한다. 위선적인 조국 방위호소를 통해 각 민족 노동대중을 서로 분열시키고 단결을 깨뜨리려는 작금의 부르주아지의 시도에 대해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은 거듭 새로운 불굴의 노력으로 모든 민족의 노동자들을 부르주아지의 지배를 타도하는 투쟁으로 단결시키는 것으로 응답할 것이다.
부르주아지는 제국주의적 약탈을 민족 전쟁이라는 낡은 이데올로기로 위장하여 대중을 속이고 있다. 이러한 사기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라는 자신의 슬로건을 내건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낱낱이 폭로되고 있다. 이것은 슈투트가르트 선언과 바젤 선언의 슬로건이었다. 전쟁 일반이 아니라 정확히 현 전쟁을 염두에 둔 그 선언들은 조국 방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붕괴를 재촉할 것에 대해, 전쟁이 낳은 위기를 이 목적에 활용할 것에 대해, 그리고 파리코뮌이 제공한 실례(민족들의 전쟁이 내란으로 전화한 실례)에 대해 호소했다.

물론 그러한 내란으로의 전화가 쉬운 문제가 아니며 하나의 당 또는 다른 한 당의 일시적 기분으로 수행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내란으로의 전화는 자본주의 일반 및 특수하게는 자본주의 종말기의 객관적 조건에 내재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자는 이 방향으로, 오직 이 방향으로만 자신의 활동을 수행해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공채에 투표하거나, ‘( 및 동맹국)에서 배외주의를 부추기는 것은, 물론 사회주의자가 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를 넘어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국 부르주아지의 배외주의와 투쟁하는 데서 위기가 무르익어 부르주아지 스스로가 자신이 만들어낸 합법성을 부정해버릴 때는 합법적인 투쟁 형태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 바로 내란으로 이끌어갈 활동지침이며, 전 유럽에서 전쟁이 상승하는 시기 중 그 어떤 시점에서 내란을 유발할 것인가 하는 활동지침이다.

전쟁은 우연히 일어나는 사건이 아니며, 기독교 목사들(애국과 인류와 평화를 설교하는 데서 조금도 기회주의자들에 뒤지지 않는)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죄악이 아니다. 전쟁은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단계로서, 평화만큼이나 자본주의적 생활방식의 적법한 형태이다. 오늘날의 전쟁은 인민의 전쟁이다. 이 진실로부터 나오는 결론은 우리가 인민적인 배외주의 흐름과 함께 헤엄쳐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민족을 분할하는 계급 모순이 전시에도 계속해서 존재하고 전쟁의 조건 속에서 스스로를 발현시킨다는 결론이다. 병역거부나 반전총파업 등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며, 무장한 부르주아지에 맞서 비무장으로 싸우려고 하는 가련하고 겁먹은 몽상이며, 필사적인 내란 혹은 일련의 전쟁들 없이 자본주의가 파괴되기를 바라는 헛된 소망이다. 또한 군대에서도 계급투쟁에 대한 선전을 수행하는 것이 모든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민족들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방향으로 작업해 나가는 것, 이것이 모든 나라 부르주아지의 제국주의적 무장충돌의 시대에 필요한 유일한 사회주의적 활동이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평화를!’이라는 역겹게 경건한 체하는 얼빠진 호소를 타도하라! 내란의 깃발을 치켜들자! 제국주의가 유럽문화의 운명을 도박에 걸고 있다. 이 전쟁은 일련의 성공적인 혁명이 없으면 곧 또 다른 전쟁들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전쟁이라는 이야기는 공허하고 위험한 거짓말이며, 한 편의 속물적인 신화’(<<골로스>>가 적절하게 표현했듯이). 프롤레타리아트의 내란 깃발은 수십만의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수백만의 반()프롤레타리아와 소부르주아를 결집시킬 것이다. 이들 후자는 지금 배외주의에 속고 있지만, 전쟁의 공포는 그들을 위협하고 절망으로 짓누를 뿐만 아니라 또한 계몽하고 가르치고 분기시키고 조직하고 단련시키고 국과 국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전쟁을 준비시킬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일들은 오늘이 아니면 내일, 전쟁 중에가 아니면 전쟁 후에, 이번 전쟁에서가 아니면 다음 전쟁에서 일어날 것이다.

2인터내셔널은 죽었다. 기회주의에 의해 내부로부터 무너졌다. 기회주의 타도! 3인터내셔널 만세! ‘배반자들의 숙정(<<골로스>>가 바라듯이)만이 아니라 기회주의도 숙정하여 정화된 제3인터내셔널 만세!

2인터내셔널은 19세기의 마지막 3/3분기와 20세기의 초에 가장 야수적인 자본주의 노예제와 가장 급속한 자본주의 발전이 결합된 장기간의 평화적인 시기 동안 프롤레타리아 대중을 사전 조직하는 유용한 준비 작업에서 자기 몫을 했다. 이제 제3인터내셔널에게 떨어진 임무는 자본주의 정부들을 겨냥한 혁명적 공격을 위해, 모든 나라 부르주아지에 맞서 정치권력 장악을 향한 내란을 위해, 사회주의의 승리를 위해 프롤레타리아 무력을 조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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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국 사회당은 사회민주주의연맹이 여타 사회주의 그룹들과 통합을 이룬 뒤 1911년에 맨체스터에서 창립되었다. 영국 사회당은 마르크스주의 정신으로 선전을 수행하였고, “기회주의가 아니었으며, 자유주의자들로부터 실제로 독립적이었다.”(레닌). 그러나 당원 수가 작고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다소 종파주의적인 성격을 띠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국제주의 경향(윌리엄 갤러처, 앨버트 잉크핀, 존 맥린, 토마스 로트스테인 등)과 하인드만이 이끄는 사회배외주의 경향 간에 날카로운 투쟁이 불타올랐다. 많은 문제들에서 국제주의 경향 내 일부가 중앙파(중도주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19162월에 당 내 한 그룹이 신문 <<더 콜>> (The Call)을 창간하여, 국제주의적 분자들을 결집시키는 데 큰 기여를 했다. 19164월 샐포드 당 대회에서 하인드만과 그의 지지자들은 자신들의 사회배외주의적 입장이 규탄 받자 당에서 떨어져나갔다.
영국 사회당은 러시아의 10월 사회주의혁명을 환호로 맞이했고, 그 당원들은 소비에트 러시아에 대한 외국의 개입에 반대하는 영국 노동자들의 운동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했다. 1919년에 지방 당 지부들 다수(98 4)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가입을 선언했다.
영국 사회당과 공산주의연합 그룹이 영국 공산당 창립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20년 제1차 통합대회에서 영국 사회당 지부들의 압도적 다수가 새로 창립한 공산당과 통합했다.
 
[2] 독립노동당은 1893년에 파업투쟁이 부활하고, 노동운동이 부르주아 당들로부터 독립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고조되면서 전개된 신 노조운동지도자들이 창건한 개량주의 당이다. 당에는 신 노동조합성원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기존 노동조합과 그리고 페비언 협회의 영향 하에 있던 직종 대표자들 및 소부르주아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제임스 케어 하디가 당의 지도자였다.
그 초기 시절부터 독립노동당은 부르주아 개량주의적 입장을 견지하여, 의회적 투쟁 형태와 자유주의자들과의 의회 거래에 집중했다. 레닌은 이 당의 성격을 부르주아지에 항상 의존해 온 사실상 기회주의 당이라고 규정했다. (V. I. Lenin, On Britain, Moscow, p. 401).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독립노동당은 반전 선언을 발표했지만, 그 뒤 곧 사회배외주의적 입장을 취했다.
 
[3] Golos (목소리)지는 19149월부터 19151월까지 파리에서 발행된 멘셰비키 일간지로서 중도주의 노선을 추종했다.
1914-18년의 전쟁 초기에 <<골로스>>에는 사회배외주의자들을 겨냥한 마르토프의 글 몇 편이 실렸다. 마르토프가 우파로 넘어간 뒤 이 신문은 사회배외주의자들을 옹호하고 나섰고, “사회배외주의에 대해 돌이킬 수 없이 적대적으로 된 사람들에게 좀 더 가까이 가는 것보다 사회배외주의자들과 연합하는 것을 더 선호했다.
19151월에 <<골로스>>는 발행을 중단하고 <<나셰 슬로보>>(우리의 말)가 그 대신 발행되었다.
 
[4] 파리 그룹 또는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지원 그룹은 1908115(18)에 결성되었다. 멘셰비키와 볼셰비키 공동의 파리 그룹으로부터 분리하여 볼셰비키만으로 구성되었다. 나중에 친당(親党) 멘셰비키와 <<브페료드>> 지지자들이 합류했다.
전쟁 동안 파리 그룹은 N. A. 세마시코, M. F. 블라디미르스키, I. F. 아르망, S. I. 고프너, L. N. 스탈, V. K. 타라툴라, A. S. 샤포발로프 등으로 구성되었다. 레닌 주도로 파리 그룹은 국제주의 입장을 취하여 제국주의 전쟁과 기회주의자들에 맞서 정력적인 투쟁을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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