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자료>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1]

                                       V. I. 레닌, 19149

모든 나라의 정부와 부르주아 당들이 수십 년 동안 준비해 온 유럽전쟁이 발발했다. 선진국들에서 자본주의 발전의 최근 단계 제국주의 단계 에 이르러 군비 증강이 가속화하고 시장 획득을 위한 투쟁이 끝 간 데 없이 격화하였다. 보다 낙후된 동유럽 군주제들의 왕조적 이해와 함께 이러한 요인들이 불가피하게 현 전쟁을 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실제로 야기했다. 영토를 강탈하고 타국을 복속시키고, 경쟁국을 파멸시키고 그 부를 약탈하고, 러시아, 독일, 영국, 그리고 여타 나라들에서 국내의 정치적 위기로부터 노동대중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고, 노동자들의 단결을 깨뜨리고 민족주의로 호도하고,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운동을 약화시키기 위해 프롤레타리아 전위를 말살하려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현 전쟁의 유일한 실제 내용이자 중요성이자 의미이다.

일차적으로 사회민주주의의 의무는 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드러내고 지배계급들인 지주와 부르주아지가 전쟁을 옹호하며 유포시킨 허위와 궤변과 애국주의언사를 가차 없이 폭로하는 것이다.

교전국 양 진영 중 한 쪽의 우두머리는 독일 부르주아지이다. 독일 부르주아지는 이 전쟁이 조국을 수호하는 전쟁이므로 자유와 문명을 수호하는 전쟁이고, 짜리즘에 의해 억압 받는 인민들의 해방을 위한 전쟁이며 반동적인 짜리즘의 파괴를 위한 전쟁이라고 주장하여 노동자계급과 근로대중을 속이고 있다. 그러나 빌헬름 II세를 우두머리로 하는 프로이센 융커에게 굽신 거리는 이 독일 부르주아지는 실은 언제나 짜리즘의 가장 충실한 맹우였으며, 러시아 노동자 · 농민 혁명운동의 적이었다. 전쟁의 결말이 무엇이건 간에 이 부르주아지는 융커와 함께 러시아에서 혁명에 대항하여 짜르 군주제를 지탱하는 데 전력을 경주할 것이다.

독일 부르주아지는 또 세르비아를 복속시키고 남슬라브인의 민족혁명을 압살하기 위해 세르비아에 대한 강도적인 공세에 착수했다. 그와 동시에 군 병력의 대부분을 보다 자유로운 나라인 벨기에와 프랑스 침략에 투입하여 자기보다 부유한 경쟁국들을 약탈하려고 했다. 자신은 방어전을 수행하고 있다며 거짓을 유포시켜 온 독일 부르주아지는 전쟁에 가장 유리하다고 보이는 시점을 선택했고, 자신들의 군사장비의 최신 성과를 이용하여 러시아와 프랑스가 이미 계획하고 결정한 군비증강에 앞서 선수를 쳤다.
교전국 양 진영 중 다른 한쪽의 선두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지가 있다. 그들은 독일의 군국주의와 전제주의에 반대하여 조국을 수호하고, 따라서 자유와 문명을 수호하기 위해 전쟁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여 노동자계급과 근로대중을 속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 부르주아지는 이미 일찍부터 유럽의 가장 반동적이고 야만적인 군주제인 러시아 짜리즘의 군대를 고용하여 독일 공격을 위한 준비를 시키는 데 수백억 루블을 지불했다.

영국과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전쟁 목적은 급속한 경제적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독일의 식민지를 탈취하여 이 경쟁국을 파멸시키는 것이다. ‘선진 민주주의국들이 이 고귀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서 실제 하고 있는 것은 야만적인 짜르 정권이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등을 더욱 억압하고 러시아에서 혁명을 더 철저히 진압하도록 돕고 있는 것이다.

약탈과 잔학행위, 끝없는 전쟁의 야수성이란 면에서 교전국 양 진영 어느 쪽도 서로에게 뒤지지 않는다. 그러나 각국의 부르주아지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속여서 단 하나의 진정한 해방전쟁으로부터, 국 부르주아지와 국 부르주아지 둘 다에 대항하는 내란으로부터 프롤레타리아트의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는 그 숭고한 목적을 위해 애국주의의 거짓 언사를 빌려 국 전쟁의 의의를 미화하려 애쓰고 있다. 그리고 적을 패퇴시키는 것은 약탈과 영토 강탈이 아니라 다른 모든 인민들의 해방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정부와 부르주아지가 노동자들의 단결을 파괴하고 서로 싸우도록 부추기면 부추길수록, 그리고 이 숭고한 목적을 위해 계엄령과 군 검열 (이 군 검열은 지금 전시에조차도 외부 적보다 오히려 내부의 적을 겨누고 있다)을 더욱 야만적으로 시행하면 할수록 모든 나라의 애국적인부르주아 도당의 고삐 풀린 배외주의에 맞서 자신의 계급적 연대와 자신의 국제주의와 자신의 사회주의 신념을 방어하는 것이 계급적으로 각성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더욱 더 긴박한 의무가 되고 있다.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가 이러한 목표를 포기한다면, 이는 자신의 사회주의적인 지향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지향도 모두 저버리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유럽 주요국들의 사회주의 정당이 이러한 자기 임무를 이행하지 못해 온 것, 나아가 사회주의의 대의에 대한 노골적인 배반이나 다름없는 이들 당 지도자들의 행태 특히 독일에서 를 우리는 가장 쓰디쓴 좌절감을 씹어가며 기록해야 한다. 비할 바 없는 역사적인 중요성을 띠고 있는 이 시점에서 현 사회주의 인터내셔널(2인터내셔널; 1889-1914)의 지도자들 대부분이 사회주의 대신에 민족주의를 그 자리에 앉히려고 하고 있다. 그들 지도자들이 취한 행동의 결과로 이들 나라 노동자당들은 정부의 범죄적인 행위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계급의 입장을 제국주의 정부의 입장에 일치시킬 것을 노동자계급에게 촉구했다. 인터내셔널 지도자들은 전쟁공채에 찬성투표를 했다. ‘국 부르주아지의 배외주의(‘애국주의’) 슬로건들을 따라 외쳤다. 전쟁을 정당화하고 옹호했다. 교전국 부르주아 정부에 입각했다. 이러한 등등의 행위를 통해 사회주의를 배반한 것이다. 오늘날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지도자들과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주의 기관지들은 절대로 사회주의라 할 수 없는 배외주의적이고 부르주아적이며 자유주의적인 견해들을 지니고 있다. 이와 같이 사회주의를 불명예스럽게 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있다. 2인터내셔널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장 영향력 있었던 당인 독일 사회민주당 말이다. 그러나 프랑스 사회주의자들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자기 나라를 배반하고 비스마르크와 합작하여 코뮌을 분쇄한 바로 그 부르주아지의 정부에 들어가 장관 자리를 받은 프랑스 사회당의 지도자들 말이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러시아 짜리즘에 대항하여 투쟁하고자 자신들이 전쟁을 지지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전쟁 지지를 정당화하려 시도하고 있다. 우리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정당화를 완전한 궤변으로 간주한다는 것을 분명히 선언한다. 러시아에서 짜리즘에 대항하는 혁명운동은 지난 몇 년 동안 다시 거대한 규모로 성장했다. 이 운동의 선두에는 언제나 노동자계급이 앞장 서 있다. 수백만 노동자들이 참가한 지난 몇 년의 정치파업은 짜리즘 타도와 민주공화제 수립을 요구하는 슬로건 아래 수행되었다. 전쟁 바로 전야에 니콜라이 II세를 방문한 프랑스공화국의 대통령 포앙카레는 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러시아 노동자들이 설치해 놓은 바리케이드를 몸소 볼 수 있었다.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인류를 짜르 군주제의 치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어떠한 희생도 마다하지 않아 왔다. 그러나 짜리즘의 몰락을 일정한 조건 아래서 지연시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또한 러시아의 민주주의 전체에 대항하는 짜리즘의 투쟁에서 짜리즘을 도와줄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영국 프랑스 러시아 부르주아지의 돈주머니를 짜리즘의 반동적인 목적에 이용할 수 있게 해준 현 전쟁이라고 우리는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한 짜리즘에 대한 러시아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투쟁을 방해할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러시아의 배외주의 언론이 우리에게 하나의 모범이라며 끊임없이 들이밀고 있는 저 독일 ·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의 행동이다.

독일 사회민주당의 힘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모든 혁명적 행동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고 가정한다 하더라도 배외주의 진영에 가담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또한 이탈리아 사회주의자들은 독일 사회민주당의 지도자들이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의 깃발을 더럽히고 있다고 성명을 발표했는데, 이러한 정당한 성명의 규탄 대상이 된 그러한 행동을 취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 당,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전쟁으로 인해 이미 큰 희생을 치러 왔고, 앞으로도 계속 치를 것이다. 우리의 노동자계급 합법 출판물 전체가 탄압으로 폐간되었다. 대부분의 노동자계급 결사체들이 폐쇄되고, 우리의 많은 동지들이 체포되어 유형지로 보내졌다. 그러나 우리 당의 의회대표단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두마 의원단 은 전쟁공채에 찬성투표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항의를 보다 정력적으로 표명하기 위해 국회 회의장으로부터 퇴장하는 것을 자신들의 무조건적인 사회주의적 의무라고 생각했다. 또한 유럽 각국 정부의 정책을 제국주의라고 규탄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생각했다. 짜르 정부가 그 폭정을 열 배나 강화시켰지만,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 노동자들은 이미 최초의 비합법 반전 호소문을 발행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인터내셔널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 하고 있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 독일 사회민주당의 소수파와 중립국들의 가장 뛰어난 사회민주주의자들로 대표되는 바의 이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로 쓰디쓴 치욕을 느끼고 있고,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도 대다수 사회민주당들의 배외주의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해 왔다. 한편 예를 들어, 오랜 동안 민족적 자유주의 입장을 지녀 온 독일의 <<월간 사회주의>>로 대표되는 바의 기회주의자들은 매우 당연하게도 유럽 사회주의에 대한 자신들의 승리를 기념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프롤레타리아트한테 최대의 족쇄가 되는 것은 기회주의와 혁명적 사회민주주의 사이에서 동요하면서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에 대해 침묵하거나 혹은 외교적 공문구로 그것을 가리려고 하는 자들 (독일 사회민주당의 중앙파와 같은)이다.

모든 나라 노동자들의 새롭고 보다 지속적인 사회주의적 단결을 세워내기 위해서는 그와는 반대로 이 붕괴를 솔직히 인정하고 그 원인을 규명해내야만 한다.

기회주의자들은 슈투트가르트 대회 · 코펜하겐 대회 · 바젤 대회[2]의 모든 결정을 파탄 내 왔다. 이 대회 결정들은 모든 나라 사회주의자들에게 어떠한 조건에서도 배외주의에 맞서 싸울 것, 부르주아지와 각국 정부들에 의해 시작된 어떠한 전쟁에 대해서도 내란과 사회혁명에 대한 선전을 강화하는 것으로 대응할 것 등을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2인터내셔널의 붕괴는 기회주의의 붕괴이다. 기회주의는 이제는 지나간 (그리고 이른바 평화적인’) 역사의 한 시기를 특징짓던 특수성을 기반으로 발전해 왔다가, 근년에 와서 인터내셔널을 사실상 지배하기에 이르렀다. 기회주의자들은 오랜 동안 이러한 붕괴를 위한 길을 닦아 왔는데, 열거하자면 이렇다. 사회주의혁명을 부정하고 부르주아 개량주의로 그것을 대체했다. 계급투쟁을 부정하고, 계급투쟁이 일정 시점에서 불가피하게 내란으로 전화한다는 것을 부정하며, 계급협조를 설파했다. 노동자에게는 조국이 없다는, 오래 전에 <<공산당 선언>>에서 제시한 사회주의의 기본 진리를 무시 또는 거부하고, 애국주의와 조국방위를 내세워 부르주아 배외주의를 설파했다.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에서 스스로를 감상적인 속물주의 관점으로 가두고, 만국의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만국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적 전쟁에 대한 필요를 인정하길 거부했다. 비합법 형태의 조직 및 선동이 위기의 시기에는 절대적 의무임을 망각하고, 부르주아 의회주의와 부르주아 합법성의 활용에 대한 필요성을 물신화시켰다. 기회주의의 자연스런 보족물인 아나코 생디칼리즘 경향 프롤레타리아 관점(즉 마르크스주의 관점)에 대해 기회주의자들만큼이나 적개심을 갖는 부르주아적 보족물이 이 아나코 생디칼리즘이다 은 기회주의자들 못지않게 파렴치하게 현재의 위기 시기에 배외주의 슬로건을 거드름피우며 받아 외치는 것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기회주의와의 단호한 단절 없이는, 기회주의의 필연적인 파산을 대중에게 설명하지 않고서는 현 시점에서 사회주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으며, 노동자의 국제적 단결을 이룰 수 없다.
모든 나라에서 사회주의자는 해당 나라의 배외주의에 맞서 싸우는 것을 일차적 임무로 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이 배외주의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입헌민주주의자들’)과 나로드니키 일부를 비롯하여 사회주의혁명가당[3]우파사회민주주의자들까지 다 장악했다. (특히 스미르노프, 마슬로프, 플레하노프 같은 사람들의 배외주의적 발언들을 규탄해야 한다. 그들의 발언은 부르주아 애국주의언론에 실려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교전국 양대 진영 중 어느 쪽의 패배가 사회주의에 해를 적게 끼칠 것인가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서 결정하는 문제는 현 정세 하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러시아 내 모든 민족들의 노동자계급과 근로대중의 입장에서 볼 때 짜르 군주제 유럽과 아시아의 가장 많은 수의 민족들과 가장 큰 규모의 주민 대중을 억압하고 있는 가장 반동적이고 야만적인 정부인 짜르 군주제 의 패배 쪽이 해가 가장 적을 것이라는 점은 우리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조금도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다.

공화제 유럽합중국 수립이 유럽 사회민주주의자들의 당면 정치 슬로건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 경우, 프롤레타리아트를 배외주의의 본류로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약속할 준비가 되어 있는 부르주아지와는 달리, 사회민주주의자는 이 슬로건이 독일 · 오스트리아 · 러시아 군주제의 혁명적 타도 없이는 완전히 허위이자 무의미한 것이 되어버린다는 점을 설명할 것이다.

러시아가 가장 낙후되어 있고 아직 부르주아 혁명을 완성하지 못했으므로 철저한 민주개혁을 위한 세 가지 근본 조건, 즉 민주공화제 (모든 민족의 완전한 평등 및 자결과 함께), 지주토지의 몰수, 8시간 노동제를 실현하는 것이 여전히 이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자의 임무이다. 그러나 모든 선진국에서는 전쟁이 사회주의혁명 슬로건을 일정에 올려놓았다. 전쟁의 부담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면 짓누를수록, 그리고 대규모 자본주의가 거대한 기술 진보를 이루고 있는 조건 속에서 현재의 애국주의적야만의 공포가 지나가고 난 뒤에 유럽 재건에서 필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 그럴수록 사회주의혁명 슬로건은 더 긴급하게 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위해 부르주아지가 전시입법을 이용하고 있으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비합법 형태의 선동과 조직을 창안해내야 할 무조건적인 임무에 직면해 있다. 기회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신념을 배반하면서까지 합법 조직을 보존하려 하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라. 그러나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는 노동자계급의 조직 경험과 연결망을 활용하여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의 비합법 형태들(위기의 시기에 적합한 형태들)을 창안해내고 노동자들이 그들 각자의 국 배외주의적 부르주아지와의 단결이 아니라 모든 나라의 노동자들과의 단결을 이루어내도록 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은 실패하지 않았고, 장래에도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노동자 대중은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창건할 것이다. 기회주의가 현재 거두고 있는 승리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전쟁이 강요한 희생이 커질수록 기회주의자들이 노동자의 대의를 배반했다는 것, 그리고 무기를 각국 정부와 부르주아지에게로 겨눠야 한다는 것이 노동자 대중에게 점점 더 분명해질 것이다.

현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단 하나의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슬로건이다. 코뮌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고 바젤 결의(1912)에서 그 윤곽이 제시된 바, 이 슬로건은 고도로 발달한 부르주아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제국주의 전쟁의 모든 조건들이 지시하는 결론이다. 그러한 내란 전화가, 주어진 시점에서 아무리 어려워 보일지라도 사회주의자는 전쟁이 사실로 된 이상, 이러한 방향으로의 체계적이고 집요하고 흔들림 없는 준비작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오직 이 길을 따라서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배외주의적 부르주아지에 대한 의존을 떨쳐버릴 수 있게 되고, 형태와 속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민족들의 진정한 자유를 향해, 그리고 사회주의를 향해 확고한 발걸음을 옮길 수 있게 될 것이다.
 
모든 나라 부르주아지의 배외주의와 애국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자의 국제적 우애 만세!

기회주의로부터 자유로워진 프롤레타리아 인터내셔널 만세!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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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막 발발한 세계 제국주의 전쟁에 대한 볼셰비키 당의 입장을 표명한 최초의 공식문서이다. 레닌은 이에 앞서 1914824-26일에 베른에서 열린 볼셰비키 그룹의 회합에서 행한 자신의 보고를 기초로 하여 전쟁에 관한 테제’ (<유럽 전쟁에서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의 임무>)를 작성한 바 있다. <전쟁테제>는 러시아 국내로 반입되어 볼셰비키 당 중앙위원회와 두마 의원단을 비롯해 각지의 당 조직에서 토의되었다. 레닌은 이 테제가 승인되었다는 통지를 받은 후, 테제를 기초로 중앙위원회 선언을 집필했는데, 선언이 바로 이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111일자 중앙기관지 <<사회민주주의자>> 33호에 처음 발표된 것이다.
 
[2] 2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는 1907818-24일에 열렸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은 37명의 대의원을 파견했다. 볼셰비키를 대표하여 레닌, 루나차르스키, 리트비노프 등이 참가했다.
대회의 업무 대부분은 본 회의에 제출할 결의안 초안을 담당한 위원회들이 수행했다. 레닌은 군국주의와 국제분쟁에 관한 결의안을 기초한 위원회의 위원이었다. 로자 룩셈부르크와 공동으로 레닌은 베벨의 결의안에 대한 그의 역사적인 수정안을 냈다. 수정안은 전쟁이 야기한 위기를 이용하여 자본주의 타도를 향해 대중을 분기시키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의무라고 선언했다. 대회는 이 수정안을 통과시켰다. (대회에 대해서는 레닌의 다음 글을 보시오. “The 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 in Stuttgart”, Lenin, Collected Works Vol.13).
2인터내셔널 코펜하겐 대회는 1910828일부터 93일 사이에 열렸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을 대표하여 레닌, 플레하노프, 루나차르스키, 콜론타이, 포크로프스키 등이 참가했다. 대회가 임명한 5개 위원회에서 주요 의제에 관한 예비 심의와 결의안 기초를 담당했다. 레닌은 협동조합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대회의 결의안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한 투쟁은 슈투트가르트 대회의 결의 군국주의와 국제분쟁을 확인했다. 또 결의안에는 각국 사회주의 의원단들이 제출할 요구안이 열거되었다. a) 국가 간 모든 분쟁은 국제중재재판소가 내린 판결에 어김없이 따르도록 할 것. b) 전면적 군비철폐. c) 비밀외교의 폐지. d) 모든 민족의 자치와 군사 침략 및 억압으로부터의 보호.
2인터내셔널 바젤 대회는 19121124-25일에 열렸다. 바젤 대회는 발칸 전쟁 및 임박한 유럽 전쟁과 관련하여 소집한 임시 대회였다. 대회가 채택한 선언문은 다가오는 세계전쟁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강조하며 모든 나라 사회주의자들에게 전쟁에 반대하여 단호한 투쟁을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
 
[3] 러시아에서 농민에 기반한 당으로서 1901년 말에서 1902년 초 사이에 각종 나로드니키 그룹들과 써클들 (사회주의혁명가연합, 사회주의혁명당[Socialist-Revolutionary Party] 등등)이 연합하여 창당했다. 신문 <<혁명 러시아>> (1900-05)와 잡지 <<러시아혁명 헤럴드>> (1901-05)가 이 당의 공식 기관지가 되었다. 사회주의혁명가 당은 프롤레타리아트와 소 소유자 사이의 계급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농민층 내의 계급적 모순에 대해서도 무시했으며 혁명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지도적 역할을 부정했다. 사회주의혁명가 당의 견해는 나로드니키주의와 수정주의 사상들의 절충적 혼합이었다. 레닌이 말했듯이, 그들은 나로드니키 사상에서 헤진 틈을 기회주의자들 사이에 유행하는 마르크스주의 비판의 담론 조각들로기워 맞추려고 했다.
볼셰비키 당은 사회주의자로 가장하려는 사회주의혁명가 당의 시도를 폭로하고, 농민층에 대한 영향력을 놓고 그들에 대한 단호한 투쟁을 수행했다. 그리고 그들의 개인 테러리즘 전술이 노동계급운동에 얼마나 위험한지 밝혀내주었다. 동시에 일정 조건에서 볼셰비키는 짜리즘에 맞선 투쟁에서 사회주의혁명가 당과의 임시협정을 맺을 태세도 있었다. 일찍이 제1차 러시아혁명(1905-07) 당시 사회주의혁명당(Socialist-Revolutionary Party)은 당내 우파가 떨어져 나와 합법적인 인민사회당을 결성했는데, 이 인민사회당의 노선은 카데츠의 노선과 가까웠다. 반면 당내 좌파는 준 아나키즘적인 최대강령주의자동맹을 결성했다. 1907년에서 1910년 간 반동의 시기에 사회주의혁명당은 완전한 이념적 · 조직적 붕괴를 맞았다. 1차 세계전쟁 동안에는 당원들 대부분이 사회배외주의 입장을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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