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1915년 8월 우리는 <<사회민주주의자>> 40호에서, 우리 당 재외지부 회의가 ‘유럽합중국’ 슬로건 문제를, 이 문제의 경제적 측면이 출판물 상에서 토의될 때까지 연기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를 보라>]
우리의 협의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토의는 순전히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다. 아마도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중앙위원회 선언 속에서 이 슬로건이 다른 수식 없이 오직 정치적인 슬로건으로서 (“당면의 정치적 슬로건……”이라고 거기에 기술되어 있다) 정식화 된 데 기인했을 것이다. 중앙위원회 선언은 공화제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제출했을 뿐 아니라, “독일 · 오스트리아 · 러시아 군주제의 혁명적 타도 없이는” 이 슬로건이 무의미하며 허위임을 명시적으로 강조했다.
이 슬로건의 정치적 평가의 범위 내에서 문제를 이와 같이 제기하는 데 반대하는 것 — 예를 들어, 그 슬로건이 사회주의혁명 슬로건을 흐린다거나 약화시킨다고 주장하는 것 — 은 아주 오류일 것이다. 진정으로 민주적인 성격의 정치적 변화들, 특히 정치혁명은 어떤 경우에도 결코 사회주의혁명 슬로건을 흐리거나 약화시킬 수 없다. 반대로 그러한 정치혁명은 언제나 사회주의혁명을 보다 근접시키고, 그 기반을 넓히며, 소부르주아지와 반(半)프롤레타리아 대중의 새로운 층들을 사회주의 투쟁으로 끌어들인다. 다른 한편으로, 정치혁명은 사회주의혁명으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한데, 왜냐하면 사회주의혁명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폭풍 같은 정치적 · 경제적 격변, 가장 격렬한 계급투쟁, 내란, 혁명과 반혁명의 일 시대로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화제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러시아 군주제를 선두로 한 유럽의 가장 반동적인 3개 군주제의 혁명적 타도와 결부되어 제기될 경우에, 그것은 정치적 슬로건으로서 전혀 비난의 여지가 없지만, 그 슬로건의 경제적 내용과 의의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 제국주의의 경제적 조건들 一 즉 ‘선진적’, ‘문명적’인 식민지 영유국에 의한 자본수출과 세계분할 — 이라는 견지에서 볼 때, 유럽합중국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불가능하거나, 아니면 반동적이다.
자본은 국제적으로 되었고, 독점적으로 되었다. 세계는 한줌의 강대국들 간에, 즉 민족들에 대한 대 약탈 · 억압에 대 성공을 거두고 있는 강대국들 간에 분할이 완료되었다. 유럽의 4대국 一 인구 합계가 2억 5천만에서 3억에 이르고, 면적이 약 7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영국, 프랑스, 러시아, 독일 — 이 거의 5억(4억 9,450만)에 이르는 인구와 6,460만 평방킬로미터의 면적, 즉 지구 표면(남북 극지를 제외하고 1억 3,300만 평방킬로미터)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의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아시아 3개국, 중국, 터키, 페르시아가 추가된다. 이 3개국은 지금 ‘해방’ 전쟁을 벌이고 있는 강도들, 즉 일본, 영국, 러시아, 프랑스에 의해 갈가리 찢겨지고 있다. 현재 반(半)식민지(실제로 이 나라들은 지금 90% 식민지이다)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아시아 3개국은 총 3억 6천만의 인구와 1,450만 평방킬로미터(거의 전 유럽의 1.5배에 이르는)의 면적을 갖고 있다.
더욱이 영국, 프랑스, 독일은 7백억 루블에 달하는 자본을 국외에 투자하고 있다. 이 상당한 금액으로부터 ‘적법한’ 수익 — 매년 30억 루블이 넘는 수익 — 을 확보해 주는 비즈니스를 위해 정부라고 알려진 억만장자들의 전국위원회가 육해군을 갖추고 있고, 그들 억만장자들의 자식과 형제에게 총독, 영사, 대사를 비롯해 온갖 종류의 관리, 성직자 등, 식민지, 반식민지의 피를 빠는 거머리의 지위를 제공해주고 있다.
자본주의가 최고의 발전을 이룬 시대에 한줌의 강대국에 의한 약 10억 지구 인구의 약탈이 이렇게 조직되고 있다. 이 이외의 조직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가능하지 않다. 식민지와 ‘세력권’과 자본수출을 포기하라?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매주 일요일 부자들에게 고상한 기독교 정신을 설교하고, 해마다 빈자들에게 수백만 루블은 아닐지라도 최소한 수백 루블을 베풀라고 충고하며 칭얼거리는 목사들의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 하에서의 유럽합중국은 식민지 분할 협정과 동의어다. 그러나 자본주의 하에서 힘 외에는 분할의 다른 기초나 원칙은 가능하지 않다. 억만장자는 오직 ‘투자된 자본에 비례해서만’(거대 자본은 자신이 당연히 취득하는 몫 이상으로 받을 수 있도록 할증분을 덤으로 첨가해서) 자본주의 나라의 ‘국민소득’을 누군가와 나누어 가질 수 있다. 자본주의는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이며 생산의 무정부성이다. 이와 같은 기초 위에서 소득의 ‘공평한’ 분배를 주장하는 것은 다름 아닌 프루동주의이자, 우매한 속물주의다. 어떠한 분배도 오직 ‘힘에 비례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힘은 경제적 발전의 추이에 따라 변화한다. 1871년 이후에 독일의 힘의 증강 속도는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3배, 또는 4배 빨라졌고, 일본의 경우는 러시아에 비해 10배 정도 빨라졌다. 전쟁 말고 자본주의 나라의 실력을 확인하는 방법은 없으며, 있을 수도 없다. 전쟁은 사적소유의 기초와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전쟁은 그러한 기초에서 자라나온 직접적이고도 불가피한 결과물이다. 자본주의 하에서 개별 기업이나 개별 국가의 경제적 발전이 균등하게 성장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본주의 하에서는 산업에서의 공황과 정치에서의 전쟁 말고는 주기적으로 교란되는 균형을 회복할 다른 수단은 없다.
물론, 자본가들 사이 및 국가들 사이에 일시적인 협정은 가능하다. 이러한 의미에서는 유럽 자본가들의 협정으로서의 유럽합중국도 가능하다... 그러나 무슨 목적의 협정인가? 오로지 유럽에서 사회주의를 공동으로 진압하고, 식민지의 전리품을 일본과 미국으로부터 공동으로 보호하기 위한 목적에서이다. 일본과 미국은 현 식민지 분할 구도에서 그 몫이 부당하게 작고, 이제 노년에 접어든, 뒤쳐진 군주제적 유럽에 비해 지난 50년간 훨씬 빠르게 힘을 증강해왔다. 미국과 비교해 볼 때 전체적으로 유럽은 경제적 정체를 보이고 있다. 현재의 경제적 토대 위에서, 즉 자본주의 하에서 유럽합중국이란 미국의 더욱 급속한 발전을 억누르기 위한 반동의 조직을 의미할 것이다. 민주주의와 사회주의의 대의가 유럽하고만 연결되었던 시대는 영원히 가버렸다.
세계합중국(유럽만의 합중국이 아니라)은 一 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가 민주주의 국가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를 최종적으로 소멸시킬 때까지는 一 우리가 사회주의와 연결시키는 국가 형태, 즉 민족들의 연합과 자유의 국가 형태이다. 그러나 독립된 슬로건으로서는, 세계합중국 슬로건은 올바른 슬로건이라고 하기 힘든데, 첫째는 그것이 사회주의와 합치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일국에서의 사회주의의 승리가 불가능하다는 의미로 잘못 해석될 수 있으며, 또한 그러한 일국과 타국들과의 관계에 대한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적 • 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 이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 개의 자본주의 국에서, 심지어는 하나의 자본주의 국에서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 나라의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가들을 수탈하고 그들 자신의 사회주의적 생산을 조직하고 나서는 세계의 나머지 — 즉 자본주의 세계 — 에 대항하여 떨쳐 일어나 타국의 피억압 계급을 자신의 대의로 끌어들이고, 그 나라들에서 자본가들에 대항하는 봉기를 선동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착취 계급과 그들의 국가에 대하여 무력 사용도 불사할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를 타도하여 승리를 획득한 경우의 사회의 정치 형태는 민주적 공화제일 것이지만, 이 민주적 공화제는 아직 사회주의로 넘어오지 않은 국가들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해당 민족, 또는 민족들의 프롤레타리아트의 힘을 더욱 더 집중 시킬 것이다. 계급의 폐지는 피억압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 없이는 불가능하다. 사회주의에서 민족들의 자유로운 연합은, 뒤떨어진 국가들에 대한 사회주의공화국들의 다소간에 장기적이고 완강한 투쟁 없이는 불가능하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에서, 그리고 이 회의 이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 문제를 심의한 결과, 중앙기관지 편집국은 위와 같은 고려를 바탕으로 유럽합중국 슬로건은 잘못된 슬로건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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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합중국 슬로건에 관하여 (편집국의 주)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중앙위원회의 전쟁에 관한 선언에 부친
<<사회민주주의자>> 편집국의 주
중앙위원회 선언이 제출한 바, 러시아 · 오스트리아 · 독일의 군주제 타도에 대한 호소를 동반한 유럽합중국이라는 요구는, 카우츠키 등에 의한 이 슬로건의 평화주의적 해석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 당의 중앙기관지인 <<사회민주주의자>> 44호는,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경제적으로 옳지 않음을 논증하는 편집국 논설을 싣고 있다. 이것은 자본주의 하에서는 실현 불가능한 요구이거나, 아니면 반동적인 슬로건이다. 즉, 한편으로 식민지, 세력권 등이 개별 나라들 사이에 분할되어 있는 조건에서 그 슬로건이 세계경제의 계획성 확립을 전제로 하고 있으므로 자본주의 하에서는 실행될 수 없는 요구라는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억압을 강화하고 일본과 미국 같은 더 급속히 발전하고 있는 나라들을 약탈하는 것을 목표로 한 유럽 강대국들의 일시적인 연합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동적인 슬로건이라는 것이다.
1915년 8월 말에 집필
1915년에 소책자 <<사회주의와 전쟁>>(제네바)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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