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평화’ 슬로건 평가에 부쳐

<자료>   ‘평화슬로건 평가에 부쳐

                                   V. I. 레닌, 19157-8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 중앙기관지인 <<비엔나노동자신문>> 1915627일 호는 독일 정부신문 <<노르트도이체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실린 매우 교훈적인 성명을 인용하고 있다.

성명은 크바르크(Quarck)라고 하는 독일 사회민주당의 가장 저명한 (그리고 가장 비열한) 기회주의자의 글을 취급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 크바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독일 사회민주주의자와 우리의 오스트리아 동지들은 강화교섭을 시작하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의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접촉을 수립할 용의가 있다고 거듭 밝혀 왔다. 독일 제국정부는 이에 대해 알고 있고, 우리를 조금도 방해하지 않는다.
 
독일의 민족적 자유주의 신문인 <<나치오날리베랄레 코레스폰덴츠 (Nationalliberale Korrespondenz)>>는 위 인용문의 맺음말은 이중의 해석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첫째 해석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국제적 정치행동이 법질서의 틀을 넘지 않고, ‘국가에 위험이 되지 않는, 정부는 그러한 국제적 정치행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 자유의 견지에서 볼 때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그 신문은 말한다.
두 번째 해석은, 독일 정부가 사회민주주의자들의 국제주의적 평화 선전을 적어도 묵인하고 있고, 그러한 선전을 심지어는 강화 가능성을 탐색하기 위한 첫 기초를 놓는 적당한 수단으로 바라보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이 민족적 자유주의 신문은 당연히 이 두 번째 해석을 가당치 않은 것으로 여긴다. 정부신문도 공식적으로 이 신문에 동조하여, 다음과 같은 성명으로 보충해 주고 있다. “정부는 국제주의적 평화 선전과 어떠한 관계도 없을 뿐만 아니라, 사회민주주의자들이든 그 밖의 다른 조정자든 누구에게도 이러한 선전을 수행하는 것을 허가한 바 없다.”

교훈적인 희극이군. 그렇지 않은가? <<포어배르츠>>에 계급투쟁에 대해 쓰는 것을 금지한 독일 정부, 가혹한 군법으로 인민의 집회를 탄압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진짜 군사적 노예제를 들씌우는 정부, 이러한 정부가 크바르크 씨와 쥐데쿰 씨를 방해하지 않는것이 순수한 자유주의의 발로라는 말을, 또는 이들 신사양반과 부단한 접촉 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말을 어느 누가 믿겠는가?

크바르크 씨가 무심코 진실(말하자면,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평화 선전을 시작한 것은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그들의 정부와 협정을 맺었을 때였다는 그 진실)을 발설했고, 그의 말이 공식적으로 부인 당한것은 단지 그 진실을 은폐하기 위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 천 배는 더 그럴듯하지 않은가.

이것은, 트로츠키처럼(<<나셰 슬로보>>105호를 보라) 평화 슬로건을 우리에 대해 반대하여 옹호하면서, 그 이유로 무엇보다도 좌파 전체가 바로 이 슬로건 하에서 행동하기 위해 단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공문구 애호가들에게 꼭 필요한 교훈이다! 이제 융커 정부가 우리의 베른 결의(<<사회민주주의자>> 40)의 올바름을 증명한 것이다. 베른 결의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혁명적 대중행동에 대한 호소가 동반되지 않은평화의 선전은 오직 환상을 심는것일 수밖에 없으며, ‘프롤레타리아트를 교전국의 비밀외교에 놀아나게 만드는것일 수밖에 없다.

이 선언은 문자 그대로 확증되었다!

수년 안에 외교사는 평화 잡담을 둘러싼 기회주의자와 정부 간의 (직간접의) 협정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이것은 독일 일국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 외교가 이 같은 일들을 숨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나쁜 짓은 탄로 나는 법!

좌파가 평화 슬로건 하에서 단결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이 배외주의자들에 대한 항의의 첫 걸음이었던 가퐁 운동이 짜르에 대한 러시아 노동자들의 첫 번째 수줍은 항의였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한에서는 고무 장려 받을 가치가 있었다. 그러나 좌파가 지금도 이 슬로건(슬로건은 자각한 정치 지도자의 일이다)에 머물고 있는 한, 그들은 부정직한 좌파이며, 따라서 그들의 결의에는 손톱만큼의 행동 없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쥐데쿰들과 크바르크들과 상바들과 하인드만들과 조프레들과 힌덴부르크들의 수중에 있는 노리개인 것이다.

이것을 현 시점에도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즉 평화 슬로건(혁명적 대중행동에의 요구가 동반되지 않은)이 베른슈타인과 카우츠키 및 그 일파가 샤이데만 무리들(포어슈탄트, 즉 독일 당의 집행부)과 함께 한 비엔나회의[1]에서 타락, 오염되어버린 오늘에도 이것을 모르는 자는 그가 누구든 인민을 사회배외주의적으로 기만하는 짓거리에 무의식적으로 참가하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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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것은 19154월에 비엔나에서 열린 독일 및 오스트리아-헝가리 사회주의자들의 회의를 말한다. 회의는 독일 및 오스트리아 사회주의 당의 지도부가 취한 사회배외주의적 입장을 승인하여 전쟁을 정당화했다. 그리고 회의 결의를 통해 이러한 입장이 프롤레타리아의 단결에 배치되지 않으며, 평화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자들의 국제적 연대와도 충돌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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