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불균등 발전에 대하여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불균등 발전에 대하여

- 레닌은 ‘가장 강하고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만 제국주의로 간주했다?

                                             Ⅰ

레닌은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절대적 법칙이다”라고 결론 내렸다. (유럽합중국 슬로건에 관하여). 레닌은 강대국들 간 관계에서의 불균등 발전 법칙의 중요성을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왜 대국들 간의 안정적인 관계라는 것이 불가능한지, 그리고 왜 열강들 간에는 파열과 궁극적으로는 전쟁이 불가피한지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바로 이 법칙임을 설명했다.

“이렇게 물었을 때 그에 대해 부정적인 답변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자본주의하에서 세력권·이익·식민지 등을 분할하는 데 있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 즉 전반적인 경제력·재정력·군사력 등을 고려하는 것 외에 다른 근거는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분할 참가국들의 국력은 불균등하게 변화한다. 자본주의하에서 개개의 기업·트러스트·산업부문·국가 들이 균등하게 발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반세기 전 독일의 자본주의적 국력은 당시 영국과 비교해보면 독일이 비참할 정도로 미미했다. 러시아와 비교할 때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도 10년이나 20년 후 제국주의 열강의 세력관계가 여전히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생각할 수’ 있는 일인가? 결코 가능하지 않다.” (제국주의론)

레닌 시대에 강대국들 간의 그러한 불균등성을 인식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오늘 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성을 부정하는 자칭 맑스레닌주의 조직들이 다음과 같은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맑스주의 고전은 ‘가장 강하고 가장 선진적인’ 자본주의 국가만을 ‘제국주의’로 간주했다”?

레닌이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불균등 발전에 대해 얼마나 되풀이해서 강조했던가. 예를 들어, <제국주의에 관한 노트>에서 레닌은 이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대국들 간의 “위계화”를 제시했다. 레닌이 제국주의 국가들을 다음과 같은 세 범주로 구분한 것을 보라.

“I. 세 주요한 (완전히 독립적인) 나라: 영국, 독일, 미국.
II. 부차적인 (제1급이지만, 완전히 독립적이지는 않은) 나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III. 이탈리아, 오스트리아-헝가리.”

맑스주의 제국주의론은 ‘최강’ 자본주의 국가만을 제국주의로 간주하지 않는다. 레닌은 이들 열강 간의 충돌에서 패전주의 전술을 위 첫 범주 국가들(영 독 미)을 겨냥해서만 내건 것이 아니다. 두 번째, 세 번째 범주 국가들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패전주의 전술을 내걸었다. 이들 나라 모두에서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킬 것을 제창했다. 왜냐하면, 이들 열강 모두, 자신들 간의 리그에서 최강국이냐 아니냐에 관계없이 모두 똑같이 노동자계급 피억압인민의 적인 ‘제국주의’ 자본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 ‘최강국’ 미국 이외에 중국, EU서유럽, 러시아, 일본에 대해서도 (그리고 보다 하위의 제국주의 국가인 호주, 대한민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에 대해서도) 이와 같이 말할 수 있다. 그것이 레닌 제국주의 이론이고, 레닌 패전주의 전술이다.


일관된 패전주의 전술이라면, 모든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반대를 내걸어야 한다. 패전주의 전술은 한 강대국을 상대방 강대국과의 관계에서 지지하고 편드는 것, 또는 ('차악'이라며) 덜 반대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각종 사이비 사회주의 조직들은 최강 제국주의 국가 즉 미국 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모두 지지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중국이나 러시아 등을 지지하고 편 들거나, 또는 덜 반대한다.

그러한 접근법은 맑스주의, 레닌주의와 아무 관계도 없으며, 계급적 독립성/ 독립적인 계급정치를 폐기하는 것이다. 그러한 노선은 부르주아 지정학주의 또는 사회제국주의 국내 수준에서는 개량주의 인민전선 전략에 해당하는 대외정책 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접근법을 부르주아 지정학주의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노동자계급과 피억압 인민의 대의를 촉진하는 국제 계급투쟁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세계질서 재정립의 관점에서 기존 강대국들 (미국, EU, 일본)에 불리하게, 그리고 새로운 강대국들 (중국, 러시아)에 유리하게 질서 재편의 관점에서 세계 정세와 투쟁 과제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더 큰 부르주아 당 후보에 대항하여 보다 작은 부르주아 당 후보에 선거 상의 지지를 보낼 수 없다. 보다 우익적인 당에 대항하여 모종의 자유주의 세력과 인민전선 동맹/ 민주대연합 등을 결성하는 것은 더더욱 허용될 수 없다.

이러한 원칙을 국제 수준에서 적용한 것이 패전주의 전술이다. 사회주의자는 한 강대국이 지금까지 정복한 세력권이 다른 한 강대국보다 단지 작다는 이유로 후자에 대항하여 전자를 편들 수는 없다.

부르주아 민족해방운동의 시대에 두 나라가 교전 중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우리는 어느 나라의 승리를 바라야 하는가? 답은 명백하다. 해당 나라가 승리할 경우, 부르주아지의 해방운동에 더 큰 추진력을 주고, 그 운동의 발전을 더욱 빠르게 진전시키고, 봉건제를 더 단호하게 무너뜨리는, 그런 나라의 승리를 바라야 한다. 한 걸음 나아가, 객관적인 역사적 상황의 규정적 특징이 변화하여, 민족해방을 지향하는 자본을 대신해 그 자리를 국제적인 반동적 제국주의 금융자본이 들어섰다고 가정해 보자. 위의 교전 중인 두 나라 중 A국이 아프리카의 4분의 3, B국이 4분의 1을 영유하고 있다고 치자. 아프리카의 재분할이 그들 양국 간 전쟁의 객관적 내용이다. 우리는 어느 편의 승리를 바라야 하는가? 이렇게 종래대로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은 불합리한데, 왜냐하면 우리한테 있는 것은 이전의 평가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십 년에 걸친 부르주아 해방운동도 없고, 장기간의 봉건제 붕괴 과정도 없기 때문이다. A국이 아프리카의 4분의 3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도록 돕는 것도, B국이 (비록 B국이 A국보다 경제적으로 더 급속히 발전하고 있을지라도) 4분의 3을 탈취하도록 돕는 것도, 어느 것도 현대 민주주의의 업무는 아니다.” (레닌 <남의 깃발을 내걸고>)


부르주아적 정의와 민족적 자유 (또는 민족의 생존권)라는 관점에서 보면 독일이 영국·프랑스와 대비하여 절대적으로 옳다고 생각될 것이다. 왜냐하면 독일은 식민지에 대한 접근이 차단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독일의 적들은 독일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민족들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에, 또한 독일의 동맹국 오스트리아에게 억압받고 있는 슬라브인들은 그야말로 민족들의 감옥이라 할 수 있는 차르 치하 러시아의 슬라브인들보다 의심할 바 없이 훨씬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나 독일은 민족들의 해방이 아니라 민족들의 억압을 위해 싸우고 있다. 보다 젊고 보다 강한 강도(독일)가 늙고 너무 처먹어서 비만한 강도를 강탈하도록 돕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할 일은 아니다. 사회주의자는 이들 강도 모두를 타도하기 위해 이들 간의 싸움을 이용해야 한다.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사회주의자는 우선 사람들에게 진실, 즉 이 전쟁이 세 가지 점에서 임금노예제 강화를 목표로 하는 노예주들 간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폭로해야 한다. 첫째, 이 전쟁은 식민지에 대한 보다 공평한분할과 후속되는 보다 일사불란한 착취를 통해 예속화를 강화시키기 위한 전쟁이다. 둘째, ‘강대국 내 소수민족들에 대한 억압을 강화하기 위한 전쟁이다. 왜냐하면 오스트리아와 러시아는 (러시아가 오스트리아보다 더 심하고 더 악랄하지만) 그 같은 억압을 통해서만 그들의 지배를 유지할 수 있고, 또 전쟁을 통해 이 억압의 강도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임금노예제를 확대하고 연장하기 위한 전쟁이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으로 분열되어 있고 탄압 당하고 있는 반면, 자본가들은 전쟁으로 부를 모으고, 민족적 편견에 불을 붙여 반동을 강화시킴으로써 이득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모든 나라에서, 가장 자유롭고 가장 공화제적인 나라에서조차 반동이 득세하고 있다.”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제국주의자들을 패전/패퇴 시키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임무다. 그러한 임무는 또 다른 강대국에 위임될 수 없고 또 위임되어서도 안 된다. 트로츠키가 다음과 같이 지적했듯이 말이다.

자신이 이끄는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숙적인 제국주의 정부가 이끄는 전쟁을 통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위대한 역사적 임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이들은 생각한다. 이 점에서 이들은 절대적으로 틀렸다.” (<사회애국주의로 가는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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