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전주의 對 ‘닥치고 평화!’주의

 패전주의 닥치고 평화!’주의

                         노동자혁명당(준), 2020년 12월 9일

 1차 세계대전 중에도 트로츠키는 배외주의 멘셰비키와의 통일단결을 주장하며, 이에 반대하는 레닌과 볼셰비키를 좌익 종파주의라고 몰아붙였다. 말로는 배외주의에 반대한다면서 실제로는 이들 노동운동 우파 사회배외주의자들과 혁명적 맑스주의자들을 화해시키고자 한 (후자가 전자에 무릎 꿇는 것을 전제로 해서) 카우츠키의 중도주의와 다를 바 없는 태도를 취g한 것이다.
 
이 시기에 트로츠키가 레닌의 혁명적 패배주의 (및 내란 전화) 슬로건에 완강하게 반대한 것도 이러한 태도의 연장선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트로츠키는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고 (불승불패) 우선 평화!” 슬로건을 옹호했다. 말하자면 닥치고 평화주의다. 조만간 대중이 유혈 참상을 중지시켜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사회주의자들의 평화!’ 슬로건 아래로 결집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사회주의자들은 전 국민적 반전투쟁의 선두에 서서 이 운동에다 혁명적인 성격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러한 속물적인 논리에서 볼 때 레닌의 내란/국내전 전화와 혁명적 패전주의 슬로건은 또 다른 전쟁을 전제하는 것이므로 전쟁에 대항하는 평화 강령으로 인정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레닌이 비판했듯이,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고 우선 평화!” 슬로건은 “‘조국방어슬로건을 말만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 슬로건을 좀 더 깊이 살펴보면, ‘계급휴전’, 즉 모든 교전국의 피억압 계급들은 계급투쟁을 중지하자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국 부르주아지와 국 정부에 타격을 가하지 않는 계급투쟁이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시에 자국 정부에 타격을 가하는 것은 국가반역죄에 해당하며, 자국의 패배를 촉진하는 것을 의미한다.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슬로건을 받아들이는 자들은 계급투쟁에, ‘계급휴전의 파기에 단지 위선적으로만 찬성하는 것일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는 독립적인 프롤레타리아 정치 (및 정책)를 방기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제국주의 정부를 패배로부터 보호한다는 완전히 부르주아적인 임무에 모든 교전국의 프롤레타리아트를 종속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계급휴전을 거부하고 계급투쟁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정책은 자국 정부와 자국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해 프롤레타리아트가 저들이 겪는 곤란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지 않고서는, 그리고 그 패배를 촉진하지 않고서는 그것을 실현하거나 지향할 도리가 없다.”
 
“‘승리도, 패배도 아닌 우선 평화슬로건을 지지하는 자들은 실제로 부르주아지와 기회주의자의 편에 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국 정부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국제적인 혁명적 행동의 가능성을 믿지 않으며’, 그러한 행동을 발전시키는 것 의심할 바 없이 어려운 일이지만,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걸맞은 유일한 임무, 유일한 사회주의적 임무인 을 돕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
 
나중에, 19172월 혁명 이후에 트로츠키는 이러한 비판을 모두 인정하고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에 완전히 동의하여 물론 이 노선뿐만 아니라 <4월 테제>를 비롯하여 볼셰비키 당의 전체 노선에 동의하여 볼셰비키 당에 합류한다. 그리고 레닌 사후에는 혁명적 패배주의 강령을 기각한 스탈린주의적 수정주의에 맞서 좌익반대파로부터 제4인터내셔널에 이르기까지 줄곧 이 강령을 옹호하고 발전시킨다. 그런데 일부 트로츠키주의자들은 반대로 트로츠키가 우선 평화!” 노선을 계속 견지했고, 오히려 레닌이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을 철회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혁명적 패배주의 노선이 틀렸고, “우선 평화!” 노선이 옳았다며. (이러한 주장으로는, 대표적으로 정성진 <1차 세계대전과 트로츠키의 대안>).
 
이러한 주장은 우리가 직전 글 (<남한 해방전쟁인가, 억압전쟁인가?>)에서 인용한 1927년 트로츠키의 패전주의 규정 (<패전주의와 클레망소>)을 보더라도 터무니없는 견강부회다. 또 함께 인용한 트로츠키의 비서 루돌프 클레멘트의 글에서도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은 우리 시대에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다”(<전쟁에서 원칙과 전술>, 1938)라고 천명하고 있는데, 트로츠키는 이 글을 상찬하는 코멘트를 달기도 했다.

또 트로츠키는 1934년에 발표한 테제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패전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이라는 소제목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문제가 자본주의 나라들 간의 충돌인 경우, 그 중 어느 나라든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군사적 승리를 위해 자신의 역사적인 이익 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이익은 최종적으로는 국민과 인류의 이익과 일치한다 을 희생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패배가 해악이 덜하다라는 레닌의 정식은 적국의 패배에 비하여 자국의 패배가 해악이 덜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혁명적 운동의 성장으로 인한 결과물로서의 군사적 패배는 국내평화’ [계급휴전]로 확보된 군사적 승리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체 인민에게 수천 배는 더 이롭다는 의미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전쟁 시의 프롤레타리아 정책을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정식화했다. ‘인민의 주적은 자국에 있다.’ 승리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패전으로 야기된 해악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전쟁과 패배를 막을 최종적 보장책도 만들어낼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변증법적 태도는 혁명적 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따라서 전쟁에 맞선 투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전쟁 동안에 프롤레타리아 당의 모든 사업이 거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총괄적인 전략적 임무다.” (Leon Trotsky: War and the Fourth International (June 10, 1934),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3-34, p. 320).


무엇보다도 제4인터내셔널 창립 강령인 <자본주의의 단말마적 고통과 제4 인터내셔널의 임무 (이행강령)>에서 트로츠키는 혁명적 패전주의 원칙의 결정적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국제 프롤레타리아트 정치의 근본 내용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는 투쟁이다. 이 투쟁에서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주적은 국 내에 있다" 또는 "‘(제국주의) 정부가 패배하는 것이 가장 해악이 작다." ... 억압국에 대항하는 피억압국의 전쟁에서 피억압국을 원조하는 것이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임무다. 소련을 원조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또는 전쟁 전에나 전쟁 중에 등장할 수 있는 그 어떤 다른 노동자정부를 원조하는 것과 관련해서도 그 동일한 의무가 적용된다. 노동자국가나 식민지 나라와의 투쟁에서는 언제나 제국주의 정부가 패배하는 것이 가장 해악이 작다.” (트로츠키 <이행기 강령>,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 강령>>, 김성훈 옮김, 풀무질, 2003, 87)
 
 오늘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은 현 시기 도전과제들에 대한 대응으로서 그 어느 때보다도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이 강령 없이는 그 어느 사회주의 조직도 현 시기 격화하고 있는 강대국 패권쟁투와 노동자·피억압인민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끊임없는 공격·침탈에 맞서 올바른 투쟁방향을 찾을 수 없다. 전 세계 제국주의 타도와 억압·착취 없는 사회주의 사회 쟁취를 위해 일관되게 투쟁하는 데서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은 가장 강력한 전술 지렛대로 사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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