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미안 케베도, 사회주의통합당 (RCIT 아르헨티나 지부), 2026년 7월 16일, https://convergenciadecombate.blogspot.com
편집국 서문: 영국의 말비나스 점령 통치는 줄곧 영국과 아르헨티나 양국 간의 중요한 충돌 요인이었다가 마침내 1982년에는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식민 열강 영국 제국주의의 유산이 가져온 결과다. (영국은 말비나스 제도를 포클랜드 제도라고 부른다). 그 때문에 언제나 RCIT는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인 아르헨티나의 말비나스 영유권 주장을 지지해 왔다.
1982년 전쟁 당시 우리의 영국 지부 동지들은 기관지 1면에 다음과 같이 천명했다. “영국이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벌인 전쟁에 대한 응답은 오직 하나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우리는 아르헨티나가 말비나스를 되찾을 권리를 전적으로 인정한다. 우리는 남대서양에서 영국이 벌이는 제국주의적 침략책동을 규탄하며, 그것의 실패, 즉 영국 제국주의의 패전을 단호히 내건다.” 아르헨티나와 영국 간의 어떠한 충돌에서도, 우리는 이 라틴아메리카 나라의 군사적 승리를 지지한다. 아르헨티나의 부르주아 정부에 정치적 지지를 주지 않고 아르헨티나의 군사적 승리를 내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제국주의 심장부에서 ‘자’국 지배계급의 전쟁에 맞선 혁명가들의 투쟁>,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struggle-of-revolutionaries-in-imperialist-heartlands-against-wars-of-their-own-ruling-class/
* * * * *
축구 경기가 단순한 스포츠 구경거리이기를 멈추고 정치적 사건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정부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를 막으려는 시도가 실패해서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한 것이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밀레이와 트럼프는 그 경기에서 정치적 내용을 걷어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권력은 오로지 통치에만 관한 것이 아니다. 권력은 무엇보다도 금지하고, 규율하며, 허용되는 범위의 한계를 정하는 능력에 있다. 국가는 가장 일상적인 규칙부터 가장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경계를 부과해낼 때 그 힘을 입증한다. 금지가 더 이상 존중받지 않게 되면, 권력은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번 경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 바로 그렇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FIFA와 미국 당국에 말비나스 영유권 주장과 관련된 어떠한 시위도 못하게 막아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정부는 이 요청에 부응하여 보안기구의 전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결국 이 시위 진압 작전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하나의 몸짓에 패배하면서 무산됐다.
경기 종료 뒤,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전 세계 카메라 앞에서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을 직접 펼쳤다. 조반니 로 셀소와 훌리안 알바레스 선수가 현수막을 들고 나머지 팀원들도 축하 시위에 동참했다. 이 장면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단 몇 초 만에 아르헨티나 인민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역사적 주장을 검열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력화시켰다.
이는 단순히 검열에 대한 상징적인 승리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미국의 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자국 내에서조차도 사태를 통제하는 능력이 자신이 과시하고픈 권위의 이미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미국이 글로벌 정책을 유지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월드컵을 힘의 과시 무대로 삼으려 했지만, 단순한 축구 세리머니 하나가 미국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드러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은 밀레이 정부에게도 타격을 입혔다. 말비나스 섬 영유권 주장은 야당 지도자나 정치 단체가 아닌, 나라에서 가장 찬사를 받고 있는 축구 선수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었다. 그 몸짓에 대한 대중의 공감이 이 주장을 침묵시키려는 당국의 시도를 역대급 정치적 패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두 번째 패배도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될 때부터 중앙 정부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정부는 경찰의 시위 진압 작전을 통해 오벨리스크의 전통적인 축하행사를 막으려 했다가 이 역시도 성공하지 못했다.
잉글랜드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일체의 통제 조치를 압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몇 시간 동안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떤 작전으로도 군중이 공적 공간을, 광장을 점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당국이 금지하려 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만 것이다.
대중의 축하 행사 그 자체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들이 근본적인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어떤 권력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진실 말이다. 민족적 대의가 대대적인 민중항쟁과 결합할 때, 금지는 효력을 멈추고 권위는 한계에 마주친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거대한 정치적 변혁은 종종 정부가 바뀌기 훨씬 전에 그 예고장을 보낸다는 것을. 혁명은 권력을 쥔 자들이 더 이상 자신의 명령을 따르게 할 수 없게 될 때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대표팀이 펼친 말비나스 깃발과 거리에서 축하하는 군중은 하나의 같은 현상을 표현한다. 규율을 시도하는 권력과,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심한 민중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쁨이 더 이상 사적 감정이기를 멈추고 정치적 행위가 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 축하하는 행위도 권력에 도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축구 경기가 단순한 스포츠 구경거리이기를 멈추고 정치적 사건이 되어버리는 순간들이 있다. 정부가 그렇게 되기를 원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이를 막으려는 시도가 실패해서다.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이 잉글랜드를 상대로 승리한 것이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였다. 아르헨티나 대통령 밀레이와 트럼프는 그 경기에서 정치적 내용을 걷어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권력은 오로지 통치에만 관한 것이 아니다. 권력은 무엇보다도 금지하고, 규율하며, 허용되는 범위의 한계를 정하는 능력에 있다. 국가는 가장 일상적인 규칙부터 가장 중대한 결정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경계를 부과해낼 때 그 힘을 입증한다. 금지가 더 이상 존중받지 않게 되면, 권력은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이번 경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이 바로 그렇다. 아르헨티나 정부는 FIFA와 미국 당국에 말비나스 영유권 주장과 관련된 어떠한 시위도 못하게 막아줄 것을 요청했다. 미국 정부는 이 요청에 부응하여 보안기구의 전력을 동원했다. 그러나 결국 이 시위 진압 작전은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하나의 몸짓에 패배하면서 무산됐다.
경기 종료 뒤,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들은 전 세계 카메라 앞에서 “말비나스는 아르헨티나다”라는 메시지가 적힌 현수막을 직접 펼쳤다. 조반니 로 셀소와 훌리안 알바레스 선수가 현수막을 들고 나머지 팀원들도 축하 시위에 동참했다. 이 장면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단 몇 초 만에 아르헨티나 인민의 의식에 깊이 뿌리내린 역사적 주장을 검열하려는 모든 시도를 무력화시켰다.
이는 단순히 검열에 대한 상징적인 승리만이 아니었다. 동시에 미국의 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것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자국 내에서조차도 사태를 통제하는 능력이 자신이 과시하고픈 권위의 이미지에 훨씬 못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미국이 글로벌 정책을 유지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월드컵을 힘의 과시 무대로 삼으려 했지만, 단순한 축구 세리머니 하나가 미국이 감추려 했던 진실을 드러내 버린 것이다.
이 장면은 밀레이 정부에게도 타격을 입혔다. 말비나스 섬 영유권 주장은 야당 지도자나 정치 단체가 아닌, 나라에서 가장 찬사를 받고 있는 축구 선수들에 의해 제기된 것이었다. 그 몸짓에 대한 대중의 공감이 이 주장을 침묵시키려는 당국의 시도를 역대급 정치적 패착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게는 두 번째 패배도 있었다. 월드컵이 시작될 때부터 중앙 정부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 정부는 경찰의 시위 진압 작전을 통해 오벨리스크의 전통적인 축하행사를 막으려 했다가 이 역시도 성공하지 못했다.
잉글랜드를 상대로 거둔 승리는 일체의 통제 조치를 압도했다. 전국 각지에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거리로 나섰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는 완전히 마비되었다. 몇 시간 동안 이동 자체가 불가능했다. 어떤 작전으로도 군중이 공적 공간을, 광장을 점령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당국이 금지하려 했던 일이 결국 벌어지고 만 것이다.
대중의 축하 행사 그 자체가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순간들이 근본적인 진실을 드러낸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어떤 권력도 절대적이지 않다는 진실 말이다. 민족적 대의가 대대적인 민중항쟁과 결합할 때, 금지는 효력을 멈추고 권위는 한계에 마주친다.
역사는 우리에게 가르친다. 거대한 정치적 변혁은 종종 정부가 바뀌기 훨씬 전에 그 예고장을 보낸다는 것을. 혁명은 권력을 쥔 자들이 더 이상 자신의 명령을 따르게 할 수 없게 될 때 시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국가대표팀이 펼친 말비나스 깃발과 거리에서 축하하는 군중은 하나의 같은 현상을 표현한다. 규율을 시도하는 권력과,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심한 민중 사이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기쁨이 더 이상 사적 감정이기를 멈추고 정치적 행위가 되는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럴 때 축하하는 행위도 권력에 도전하는 방식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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