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와 연속혁명 전략
요시 슈바르츠, 국제주의사회주의동맹 (RCIT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 지부), 2024년 7월 23일, https://the-isleague.com/하마스와 파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집권당)가 베이징에서 3일간의 팔레스타인 내부 화해회담을 마쳤다. 무사 아부 마르주크 하마스 정치국 위원은 다음과 같이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오늘 우리는 민족 단결을 위한 협정에 서명하며 이 여정을 완성하는 길이 민족단결이라고 본다. 우리는 민족단결에 전념하며 이를 촉구한다.”[1]
이는 해방투쟁에 매우 해악적인데, 왜냐하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는 시온주의 국가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썩은 몸체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마스에 정치적 지지를 주지 않는 이유다. 제국주의 중국이 이러한 통합을 추진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닌데, 왜냐하면 제국주의 국가로서 중국은 아랍혁명을 미리 차단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RCIT의 일원으로 우리 국제주의사회주의동맹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 지부)은 연속혁명 이론과 전략에 대한 확고한 주창자다. 이 연속혁명 전략은 노동자계급만이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 (요단강에서 지중해까지 자유로운 팔레스타인)을 완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일단 권력을 쥐면 노동자계급은 사회주의 사회의 과제들에 착수할 것이며, 이 과제들의 진도는 세계혁명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나는 그날의 일정에 올라 있던 혁명의 부르주아적 성격을 부정하지 않았고, 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뒤섞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우리나라에서 부르주아 혁명의 계급적 변증법이 프롤레타리아트를 권력에 올려놓을 것이며,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없이는 민주주의 과제조차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2]
이 문장은 <<연속혁명>>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어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고 강해진다. 이런 의미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향한 프롤레타리아트의 발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권력이 노동자계급의 손에 넘어갈 날짜 시간은 생산력 도달 수준이 아니라 계급투쟁에, 국제 정세에,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 주체적 요소들, 즉 노동자들의 전통과 주도성, 싸울 태세 같은 요인에 달려 있다."[3]
트로츠키는 마지막 장에서 연속혁명 이론과 전략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놓고 있다.
“1. 연속혁명 이론이 지금 모든 맑스주의자들에게 최대의 주의를 요하게 된 이유는, 계급투쟁과 이데올로기 투쟁을 거치면서 이 문제가 과거 러시아 맑스주의자들 사이에 있었던 의견 차이에 대한 회상의 영역에서 끌어올려져 국제 혁명의 성격과 내적 연관, 방법의 일반적 문제로 전화됐기 때문이다.
2. 부르주아적 발전이 뒤늦은 나라들, 특히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과 관련하여 연속혁명론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민주주의와 민족해방의 실현이라는 이 나라들의 과제에 대한 완전하고 진정한 해결책은 예속된 민족 ㅡ 무엇보다도 이 예속된 민족의 농민 대중 ㅡ 의 리더로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를 통해서만 현실 가능하다.
3. 농업 문제뿐만 아니라 민족 문제도 농민층 ㅡ 후진국 주민의 압도적 다수 ㅡ 에게 민주주의혁명 상의 특별한 지위를 부여한다.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동맹 없이는, 민주주의혁명의 과제가 해결될 수 없을 뿐더러 진지하게 제기될 수조차 없다. 그러나 이 두 계급의 동맹은 민족-자유주의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에 대한 비타협적 투쟁을 통해서면 실현될 수 있다.
4. 개개의 나라들에서 혁명의 첫 일시적 단계가 무엇이든 간에,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혁명적 동맹은 공산주의 당으로 조직된 프롤레타리아트 전위의 정치적 지도하에서만 가능하다. 한편 이것은 다음을 의미한다. 민주주의혁명의 승리는, 농민과의 동맹에 토대를 두고 일차적으로 민주주의혁명 과제들을 해결하는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5. 역사적으로 평가해볼 때, 볼셰비즘의 옛 슬로건 ㅡ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 ㅡ 은 다름 아닌, 위에서 성격규정 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과 자유주의 부르주아지 사이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10월의 경험을 통해서 확인된 바다. 그러나 레닌의 옛 정식은, 혁명적 블록 내에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상호 관계는 어떠한 것일지의 문제를 미리 정리해 주지는 않았다. 즉, 그 정식은 의도적으로 일정한 대수적 질을 계속 지니고 있었는데, 이 대수적 질은 역사적 경험을 거치면서 보다 정확한 산술적 양에게 길을 열어주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역사적 경험은 어떠한 오해의 여지도 없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보여 주었다. 농민의 혁명적 역할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독자적 역할일 수 없을 뿐더러 하물며 지도적 역할일 수는 더더욱 없다. 농민은 노동자를 따르거나 부르주아지를 따르거나 이다. 이것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는 농민 대중을 이끄는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서만 오직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6. 계급적 내용으로 볼 때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구별되는 지배체제로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는 독립적 혁명당 ㅡ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어떤 정도로든 도움을 받아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그리고 자신의 혁명적 강령을 결정할 수 있는 당 ㅡ 이 창건되어 농민의 이익을, 일반으로는 소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이익을 표현할 수 있는 경우에만 실현될 수 있다. 모든 나라 현대사가 ㅡ 특히 지난 25년 러시아의 경험이 ㅡ 증언하듯이, 농민정당 건설 도상에 놓인 극복할 수 없는 장애물들 중 하나는 소부르주아지의 정치적ㆍ경제적 독자성 결여 및 그 내부의 깊은 분화 상태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소부르주아지 (농민)의 상층은 모든 결정적 계기마다, 특히 전쟁이나 혁명에서 대 부르주아지와 보조를 같이한다. 하층은 프롤레타리아트와 보조를 같이한다. 따라서 중간층은 양극단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케렌스키 체제와 볼셰비키 권력 사이에, 국민당과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사이에는 어떠한 중간 단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할 수도 없다. 즉,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7. 이미 오래 전에 역사에 의해 폐기된 프롤레타리아트와 농민의 민주주의 독재 슬로건을 동양 나라들에게 속여서 팔아넘기려는 스탈린 코민테른의 노력은 반동적 효과만을 낳을 수밖에 없다. 이 슬로건을 프롤레타리아트 독재 슬로건에 대한 대항마로 세우는 한, 그것은 정치적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소부르주아 대중 속에 용해되는 상황을 초래하며 그리하여 민족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에, 따라서 민주주의혁명 붕괴에 가장 유리한 조건들을 창출해준다. 이 슬로건을 코민테른의 강령에 도입하는 것은 맑스주의와 볼셰비즘 10월혁명 전통에 대한 직접적 배반이다.
8. 민주주의혁명의 리더로서 권력에 오른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는 불가피하게, 그리고 매우 급속하게 부르주아 소유권을 깊이 침해하는 것과 결부될 수밖에 없는 임무들에 직면하게 된다. 민주주의혁명은 곧바로 사회주의혁명으로 성장 전화하며 그럼으로써 연속혁명이 된다.
9.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쟁취는 혁명의 완성이 아니라 그 개시일 뿐이다. 사회주의 건설은 일국적ㆍ국제적 차원의 계급투쟁을 토대로 해서만 현실 가능하다. 세계무대에서 자본주의적 관계들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조건에서 이 투쟁은 불가피하게 폭발로, 즉 대내적으로는 내전으로, 대외적으로는 혁명전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바로 여기에 사회주의혁명 일반의 연속적 성격이 있다. 최근에야 비로소 민주주의혁명을 이룩한 후진국이든, 이미 장시간의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시대를 거친 오랜 자본주의 나라든 상관없이 말이다.
10. 일국 경계 내에서 사회주의혁명의 완성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부르주아 사회에서 위기를 발생시키는 근본 이유들 가운데 하나는, 그 부르주아 사회에 의해 창조된 생산력이 더는 민족국가 틀과 조화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로부터 한편에서는 제국주의 전쟁이, 다른 한편에서는 부르주아 유럽합중국이라는 공상이 나온다. 사회주의혁명은 일국 무대에서 시작되고, 국제 무대에서 전개되어 세계 무대에서 완성된다. 따라서 사회주의혁명은 더 새롭고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연속혁명이 된다. 지구 전체에서 새로운 사회가 최종 승리할 때 비로소 혁명은 완성에 이른다.
11. 위에서 서술한 세계혁명 발전 개요에서는 코민테른 현 강령에서와 같은 현학적이고 생명 없는 분류학의 정신으로 나라들을 나누고 있는, 즉 한 나라가 사회주의에 “성숙”한지 “미성숙”한지 하는 문제 같은 것은 처음부터 배제했다. 세계 시장과 세계 분업, 그리고 세계 생산력을 창출해놓았듯이 자본주의는 전체 세계경제도 사회주의 전환에 맞게 준비시켜 놓았다.
나라마다 서로 다른 속도로 이 과정을 거칠 것이다. 특정 조건에서는 후진국이 선진국보다 먼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이를 수 있지만, 사회주의에 도달하는 것은 선진국보다 늦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농민과 연합하여 권력을 잡기에는 아직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은 후진 식민지 또는 반식민지 나라는 따라서 민주주의혁명을 완성지점으로까지 가져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와는 반대로, 민주주의혁명의 결과로 프롤레타리아트가 권력을 손에 쥔 나라에서는 그에 뒤이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사회주의의 운명은 최종적으로는, 일국 생산력보다는 국제 사회주의혁명 발전에 달려 있다.
12. 10월 혁명에 대한 반동을 효모(酵母) 삼아 등장한 일국사회주의론은 연속혁명론에 모든 면에서 끝까지 대립하는 유일한 이론이다.
우리의 비판에 휘청거린 속물 아류들은 일국사회주의론의 적용을 러시아로만 국한하고자 ㅡ 그 특수성 (광대함과 자연자원)을 이유로 ㅡ 시도했지만, 이는 사태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키고 있을 뿐이다. 국제주의 입장과 단절하면 필연적으로 민족 메시아주의로 언제나 빠질 수밖에 없다. 즉, 자국은 타국이 미칠 수 없는 역할을 능히 해낼 수 있는 특별한 우월성과 자질이 있다는 생각 말이다.
세계 분업, 소련 공업의 외국 기술 의존, 유럽 선진국 생산력의 아시아 원료 의존 등으로 인해 독립적인 사회주의 사회의 건설은 어느 일국에서도 불가능하다.
13. 러시아 혁명의 경험 전체와 정면 충돌하는 스탈린, 부하린의 이론은 민주주의혁명을 사회주의혁명에 기계적으로 대립시켜 놓을 뿐 아니라 일국 혁명과 국제 혁명 사이를 끊어 놓는다.
이 이론은 후진국 혁명에, 민주주의 독재라는 실현 불가능한 지배체제를 수립하는 임무를 들씌운다. 이 이론이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에 대립시켜 놓고 있는 그 민주주의 독재를 말이다. 그럼으로써 이 이론은 정치에 환상과 허구를 끌어들이고, 동양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쟁취 투쟁을 마비시키며 식민지 혁명의 승리를 가로막는다.
속물 아류들의 이론으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 자체가 혁명의 (스탈린의 정식에 따르면 ‘10분의 9 정도의’) 완성이자 일국적 개혁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쿨락 [러시아의 부농]이 사회주의로 성장한다는 이론 및 세계 부르주아지의 ‘중립화’ 이론은 따라서 일국사회주의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들은 함께 일어서거나 함께 무너진다.
일국사회주의론에 의해,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군사 개입에 대항하는 투쟁에나 유용한 보조적 무기로 강등되어버렸다. 코민테른 현 정책과 지도체제, 지도부 선발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독자적 임무 해결을 담당할 수 없도록 주어진 보조 단위 역할로 격하된 것과 완전히 조응한다.
14. 부하린에 의해 만들어진 코민테른 강령은 속속들이 절충주의다. 이 강령은 일국사회주의론과 맑스주의적 국제주의를 조화시키려는 가망 없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혁명의 연속적 성격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맑스주의적 국제주의다. 공산주의인터내셔널에서 올바른 정책과 건강한 지도체제를 위한 공산주의 좌익반대파의 투쟁은 맑스주의 강령을 위한 투쟁과 분리할 수 없이 결부되어 있다. 한편 강령의 문제는 서로 배타적인 두 이론, 즉 연속혁명론 대 일국사회주의론의 문제와 불가분의 관계다. 연속혁명의 문제는, 역사에 의해 완전하게 소진된 레닌과 트로츠키 사이의 일시적 의견 차이를 오래 전에 뛰어넘었다. 투쟁의 전선은 한편에서 맑스ㆍ레닌의 기본 사상과 다른 한편에서 중도주의자들의 절충주의 사이에 놓여 있다.”[4]
강에서 바다까지 붉은 해방 팔레스타인 쟁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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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ttps://www.aljazeera.com/news/liveblog/2024/7/23/israel-war-on-gaza-live-scores-killed-in-new-israeli-blitz-on-khan-younis?update=3064481
[2] Leon Trotsky, The Permanent Revolution (1931)
[3] 같은 책
[4] 같은 책https://www.marxists.org/archive/trotsky/1931/tpr/pr1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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