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가속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쇠퇴 시기
2. 미제 패권의 쇠락과 열강 체제의 도래: 제국주의 세력권 쟁탈전 격화
2.1 “다극 세계질서”; 하나의 강도 대신 한 줌의 강도들이 지배하는 제국주의 세계체제
2. 미제 패권의 쇠락과 열강 체제의 도래: 제국주의 세력권 쟁탈전 격화
2.1 “다극 세계질서”; 하나의 강도 대신 한 줌의 강도들이 지배하는 제국주의 세계체제
3.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민족억압 강화: 피억압인민의 해방투쟁에 대한 일관된 지지
3.1 모순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 빈발하는 세계정세
3.2 사회제국주의와 '중립' 기권주의
3.3. 관련 각 당사자들의 계급적 성격규정
3.1 모순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 빈발하는 세계정세
3.2 사회제국주의와 '중립' 기권주의
3.3. 관련 각 당사자들의 계급적 성격규정
4. 우익 포퓰리스트/ 보수우익 정부에 맞선 투쟁을 자본가권력 타도 투쟁/ 권력쟁취 투쟁으로 전화시킨다
- 자유주의 세력 지지 또는 ‘반파쇼 민주대연합’ 지지에 반대한다. 그와 싸우면서 전화시킨다.
-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 및 개량주의·민중주의 세력들을 향한 통일전선 전술을, 노동자·피억압자의 독자 조직화를 위한 투쟁 및 지배계급의 혁명적 타도/노동자 정부 수립과 결합한다.
* * * *
1. 가속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쇠퇴 시기
2008년 대공황으로 그 뚜껑이 열린 현 시기는 자본주의 쇠퇴·부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다. 그리고 2019년 대공황 이래로 이 가속 페달은 더욱 더 급속히 돌아가고 있다.
- 자유주의 세력 지지 또는 ‘반파쇼 민주대연합’ 지지에 반대한다. 그와 싸우면서 전화시킨다.
-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 및 개량주의·민중주의 세력들을 향한 통일전선 전술을, 노동자·피억압자의 독자 조직화를 위한 투쟁 및 지배계급의 혁명적 타도/노동자 정부 수립과 결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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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속화되고 있는 자본주의 쇠퇴 시기
2008년 대공황으로 그 뚜껑이 열린 현 시기는 자본주의 쇠퇴·부후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시기다. 그리고 2019년 대공황 이래로 이 가속 페달은 더욱 더 급속히 돌아가고 있다.
그에 따라 계급 간, 국가 간 (제국주의 국가 간, 제국주의 국가 대 피억압 민족 간)의 모순 격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폭발성을 띠고 있는 것이 오늘날 세계정세의 주 특징이다.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회적·생태적 재앙, 제국주의 전쟁, 강대국 패권경쟁, 민주적 제 권리에 대한 보나파르트주의적 공격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형해화) 등 이 모든 것도 다 자본주의 붕괴의 가속화와 계급 간, 국가 간 모순 격화를 그 직접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노동자·피억압인민의 대중투쟁도 상승기, 고양기에 들어갔다.
언제나 우리는 줄곧 세계정세 분석에서, 2008년의 자본주의 위기가 새로운 역사 시기를 열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는 이 시기를 자본주의 쇠퇴기로 성격규정 해왔다. 경제적 위기/ 정치적 동요·불안정/ 혁명적·반혁명적 폭발로 점철된 자본주의 붕괴 시기인 것이다. 지난 몇 년 전쟁의 빈발, 강대국 패권경쟁, 생태 위기, 각종 문명 위협, 그리고 혁명적 정세와 함께 이 특징들은 더욱 심화 강화됐다. 한 마디로, 가속 페달이 걸린 자본주의 쇠퇴가 모든 모순, 특히 계급 간, 국가 간의 모순을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은 이 같은 현 시기 도전과제들에 절망과 사기저하로가 아니라 혁명적 낙관주의로 접근한다. 실로, 이러한 자본주의 쇠퇴와 그것이 계급투쟁에 가져올 혁명적 잠재력을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향후 전망과 전술을 올바로 내오는 근본 전제다.
2. 미제 패권의 쇠락과 열강 체제의 도래: 제국주의 세력권 쟁탈전 격화
현 시기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은 기존 서방 제국주의 열강의 쇠락과 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 열강 부상이다. 강대국 패권경쟁 가속화와 함께 일극 세계질서의 종식과 세계화의 종언을 우리가 보고 있는 이유다.
많은 스탈린주의자들과 중남미 볼리바르주의자들은 중국·러시아를 세계정치의 진보적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이들 열강에 지지를 준다.
다수의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 새 열강 중·러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는 중대한 오류로서, 이들을 세계정치의 중요한 사건들에서 정치적 혼란과 방향감 상실로 빠져들게 만든다.
모든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인식할 때 그로부터 나오는 단 하나의 올바른 결론은 (레닌/볼셰비키에 의해 정립된) 혁명적 패전주의 정책이다. △ 제국주의 상호간의 충돌에서 어느 강대국도, 어느 강대국 진영도 (‘자’국 제국주의 지배계급도, 어느 다른 나라 제국주의 지배계급도) 지지해선 안 된다 △ 제국주의 열강들의 배외주의 정책에 반대한다 △ 제국주의 정부에 대항하여 계급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 각개의 모든 분쟁·전쟁을 활용하고 그것을 내란으로 전화시킨다. 오늘, 이러한 항목들이 바로 나토와 러시아 간의, 또는 미·중 간의 충돌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지도 지침이 되어야 하는 원칙들이다.
2.1 “다극 세계질서”; 하나의 강도 대신 한 줌의 강도들이 지배하는 제국주의 세계체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 시기의 성격/ 현 세계정세의 특징 문제와 관련하여 “다극 세계질서”론에 대해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다극 세계질서’ 구호가 최근 운동진영 일각에서 중요한 노선적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는데, 이 이데올기적 개념의 주창자들에 의하면, 이제까지 미국 (및 그 서방 동맹국들)이 지배해온 기존 ‘일극’ 세계질서가 이 새로운 글로벌 체제로 대체되고 있고, 또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제 스탈린주의 당들 가운데 반제 임무를 반미주의로 축소 왜곡하는 당들이 특히 이 이데올로기를 운동진영과 노동자들 속에서 퍼뜨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남한에서도 NL-자주파 세력이 이 구호를 적극 전파하고 있다.
애초 이 개념의 선도 주창자는 러시아 대통령 푸틴과 중국 정권인데, 푸틴·시진핑을 떠받드는 이들 스탈린주의 당들이 운동노선으로 그 이데올로기를 받아 안은 것이다. 미국 주도의 "일극 세계질서"를 "다극 세계질서"로 대체하는 것, 즉 쇠락해가는 미국을 대신하여 중국·러시아의 글로벌 지위·역할 강화를 촉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전략 노선으로 끌어올려진 것이다.
중·러의 지배 이데올로그들 및 스탈린주의자들과는 달리, 혁명적 노동자계급은 ‘다극 세계질서’ 개념의 의미에 대해 명확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그 계급적 성격을 규명하고 세계프롤레타리아혁명의 관점에서 그러한 ‘질서’가 놀 수밖에 없는 역할과 위상을 위치지어야 한다.
“다극 세계질서”는 미국 주도의 글로벌 질서를 복수의 열강이 주도적 역할을 하는 질서로 대체하는 것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지배권을 놓고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여러 강대국이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이것은 새로운 개념이 아닌 바, 20세기 전반에 세계는 그러한 격렬한 강대국 패권경쟁의 시기를 경험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제국주의 간 패권쟁투는 1914-18년과 1939-45년 두 번의 파괴적인 세계대전으로 결과했다. 미국이 더 이상 유일 절대 패권국이 아닌, 복수의 강대국 중 하나에 불과한 이 다극 세계질서란 더 평화로운 세계질서는 확실히 아니다! 그것은 미국 지배의 “일극” 세계질서와 3차 세계대전 사이의 중간 단계인 강대국들 간 공공연한 제국주의 패권쟁투 단계일 뿐이다! 다극 세계질서란 강대국들 간 “평화공존”의 질서나 평화적 패권 교체의 질서가 아니라 격렬한 전쟁몰이 질서다. 다극 세계질서란 하나의 강도 (일극) 대신 한줌의 강도들 (다극)이 지배하는 세계다. 즉, 2차 세계대전 이후의 미국 일극 제국주의 체제를 대체한 오늘날의 미국/서방 대 중·러의 다극 제국주의 체제가 바로 “다극화 신세계질서”다.
제국주의는 경제적으로 독점체들에 의해, 그리고 정치적으로 강대국들에 의해 지배되는 글로벌 자본주의 체제다. 독점체들 간에는, 그리고 강대국들 간에는 서로에 대한 맹렬한 노획물 다툼과 세력권 쟁탈전에서 피하거나 물러설 수 없으며 경쟁상대방에 대해 우세를 차지하려고 다툴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즉 생산수단 사적소유 체제가 직접적인 노동자계급 민주주의와 국유화된 계획경제에 기초한 사회주의 질서로 대체되기 전까지는 이러한 제국주의 패권경쟁 체제가 세계정치를 계속 지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다극화 신세계질서라는 것은 어떤 새로운 비(非) 또는 탈(脫) 제국주의 질서가 아니라 미·중을 비롯한 한줌의 제국주의 강도들이 노획물 분배를 놓고 패권경쟁을 벌이는 동일한 제국주의 세계체제다. 이러한 ‘다극’ 제국주의 질서 속에서 강대국들 간 패권경쟁이 가속화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가속되고 있는 쇠퇴기 자본주의의 모순으로 파이가 작아지면, 강도들은 노획물을 두고 서로를 상대로 더욱 더 수위를 높여가며 싸운다.
한편, 미·중 대결을 비롯한 이러한 가속화되는 제국주의 패권경쟁은 강대국들 상호간의 긴장 고조뿐만 아니라 반(半)식민지 – 이른바 제3세계 글로벌 사우스의 “개도국” “신흥국” 등 ㅡ 에 대한 공격·침탈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그러한 패권경쟁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식민지 세계에서 세력권을 확대하고 더 많은 노획물을 차지하려는 도발·침탈 드라이브 또한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즉,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은 강대국들 간의 대결 고조 (또는 그들 대리인들 간의 충돌 증가)뿐만 아니라 피억압 인민들에 대한 공격 증가도 촉발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이 민족해방전쟁들의 증가 또한 촉발하는 이유다.
서방 대 중·러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맥락 속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서방 제국주의가 지지하는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의 민족억압 학살 전쟁과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 인민의 민족해방 항전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페르시아 만에서 미 해군과 해병대가 이란에 근접 주둔하며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 프랑스·EU 제국주의의 지지를 받는 ECOWAS (서아프리카경제연합)가 러시아와 동맹을 모색하는 니제르에 대한 침공을 계기로 터져 나올 서아프리카 전쟁도 잠복해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제국주의 중국과 (미 제국주의가 지지하는) 반식민지 필리핀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중·미 간에 계속되고 있는 대만 분쟁이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제국주의 미·일·한 군사동맹 완성으로 촉발된 전쟁 위협의 북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다극화 신세계질서”의 현실 모습이다.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 격화와 반식민지 피억압 인민에 대한 공격·침탈 증가/민족해방전쟁 증가 = “다극 세계질서”)
3.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민족억압 강화: 피억압인민의 해방투쟁에 대한 일관된 지지
위에서 본 현 “다극화 신세계질서”의 실상에서 보듯이, 현 시기의 또 다른 특징은 제국주의 열강들 (및 그들의 대리인)에 의한 민족 억압의 강화다. 가장 중요한 예들만 거론하자면, 현재 가자에서 이스라엘의 제노사이드 학살 전쟁 ㅡ 팔레스타인 인민에 대한 75년간의 억압의 절정인 ㅡ 이 있고, 러시아의 우크라/체첸/시리아 인민들을 적으로 한 전쟁, 미국의 이라크/아프간/동부시리아 점령 및 소말리아 군사 개입, 프랑스의 서아프리카 개입 등이 있다. 이 모든 분쟁에서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 민족의 해방투쟁을 ㅡ 그들의 (소)부르주아 지도부에 정치적 지지를 주지 않고 ㅡ 편 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
동시에 사회주의자들은 병렬 프로세스, 즉 <피억압 민족들에 대한 제국주의 공격·침탈 증가>와 <강대국 패권경쟁 가속화>가 병행하며 진행되는 과정이 <이중적 성격을 갖는 전쟁들>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병렬적 과정 → 이중적 성격을 갖는 전쟁). 이런 모순적 분쟁들은 진보적 해방전쟁과 제국주의 상호간 패권경쟁의 요소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한 분쟁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두 요소 중 어느 것이 지배적인지를 결정하는 것이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기서는 미국과 서유럽이 러시아의 대항자를 지지한다), 미국의 북한 공격·침탈 또는 미국·이스라엘 대 이란 간의 충돌 (여기서는 중국·러시아가 미국의 대항자를 지지한다) 등, 이 모든 분쟁들이 그러한 모순적 성격을 가진 분쟁의 예들이다. (이 분쟁들에서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강대국의 희생자들을 ㅡ 강대국 어느 측도 지지함이 없이 ㅡ 편 든다).
많은 자칭 사회주의자들이 제국주의 침략자에 대항하여 피억압 민족을 일관되게 지지하는 데 실패한다. 각종 스탈린주의자들, 사민주의자들, (좌익)포퓰리스트들은 이 또는 저 강대국을 편 들고, 그에 따라 제국주의 침략자를 돕는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에 반대하여 러시아를 편 드는, 또는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방어하는 식으로). 한편, 서방뿐만 아니라 중·러의 제국주의성도 인정하지만, 피억압민족의 투쟁 (예를 들어 푸틴의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 인민의 항전)을 제국주의 강대국에 봉사하는 “대리전”에 불과하다며 격하시키는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결론적으로 그들은 정당한 해방투쟁을 지지하길 거부하고, 반동적 기권주의 ‘중립’ 입장을 취한다.
3.1 모순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 빈발하는 세계정세
그 성격이 아주 단순 명백한 전쟁 (러시아의 체첸 전쟁,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만이 아니라, 현 시기에는 그러한 전쟁과 나란히 복잡한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 벌어지고 있다. 위에서 말한, 우크라이나 전쟁과 같은 모순적, 이중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다. 현 시기는 모순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정세다.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는 반식민지 나라의 전쟁, 피억압 민족의 민족해방전쟁과 같은 그러한 전쟁들이 모순적 성격을 가지는 경우들이 많은데, 이는 해당 반식민지 나라, 해당 피억압 민족이 동시에 다른 제국주의 국가와 ㅡ 직간접적으로 ㅡ 동맹관계에 있는 데서 비롯하는 경우들이다. (즉, 우크라이나가 서방 제국주의와, 북한이 중·러 제국주의와, 니제르가 러시아 제국주의와, 필리핀이나 대만이 미 제국주의와, 이란이 러·중 제국주의와 동맹관계에 있는 것과 같은).
이 분쟁들은 해방 전쟁의 성격과 제국주의 상호 패권쟁투의 성격을 모두 포함한다는 점에서 이중적 모순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이다. 분쟁·충돌의 변증법적 성격을, 서로 부단한 투쟁 속에 있는 "대립물의 통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발전의 일반적 방향”을 정하는 것이 맑스주의자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즉, 이러한 충돌의 주된 성격을 식별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에 대한 그러한 구체적 분석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그러한 복합적 성격 또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 분쟁·충돌이 증가하고 있는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 서방 열강들이 군사 원조로 우크라이나를 지지한다. 그러나 이것이 ㅡ 적어도 지금까지는 ㅡ 전쟁의 성격을 질적으로 바꾸지는 않았다. 즉, 그 본질에서, 그 본질의 주된 특징에서 이 충돌은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우크라이나의 민족방위 정의전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
니제르에서는 치아니 장군의 군사정권이 러시아 바그너 용병을 끌어들이려 하고 친러시아 국가들 (말리와 부르키나파소 등)과 동맹관계에 있다. 그럼에도 ECOWAS 군대의 침공 (프랑스와 EU의 지지를 받는)에 대한 니제르의 저항은 진보적 성격을 가진다. 이스라엘 (및 미국)과 이란 간의, 또는 미국/남한과 북한 간의 전쟁이 시작될 경우에도 사정은 같다. 즉 이란 또는 북한의 저항은 진보적 성격을 가진다. 그러한 충돌들에서 우리는 제국주의 침략자 (및 그 대리인)에 대항하여 니제르나 이란, 북한 같은 반식민지 나라의 방어를 제창한다. 당연히, 이러한 방어에는 이 나라들의 꼭지점에 있는 부르주아 정권, 독재 정권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포함되지 않는다. 이들 자본가 정권에 어떠한 정치적 지지도 주어선 안 된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 적에 맞서 피억압민족을 편 들지만, 이 제국주의 적뿐만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에 엄격히 반대한다. (우크라 전쟁의 경우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나토 열강에도 반대, 북한에 대한 전쟁의 경우에 미국/남한뿐만 아니라 중·러에도 반대한다). 따라서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서로에 대한 제재나 보호무역주의, 서로를 겨냥한 군비증강에 대해 어떠한 지지도 거부한다.
반면, 우크라나 북한 경우와는 달리,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의 요소가 충돌의 핵심 본질인 경우, 우리는 한 진영을 편 드는 것이 아니라 양 진영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 ("이중 패전주의")을 제창한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양 진영 모두에 대한 엄격한 반대를 내걸고 각각의 정부에 대항하여 계급투쟁을 밀어가기 위해 전쟁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대만 분쟁이나 스프래틀리 군도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의 분쟁이 그러한 경우다. 양 진영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우리가 중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만이나 필리핀의 민족자결권 요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쟁의 구체적 양상과 세력 관계 때문에 그러한 민족적 요소가 적어도 현재로서는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에 종속된 부차적 요소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제국주의 적에 맞서 피억압민족을 편 들지만, 이 제국주의 적뿐만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에 엄격히 반대한다. (우크라 전쟁의 경우에 러시아뿐만 아니라 나토 열강에도 반대, 북한에 대한 전쟁의 경우에 미국/남한뿐만 아니라 중·러에도 반대한다). 따라서 우리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서로에 대한 제재나 보호무역주의, 서로를 겨냥한 군비증강에 대해 어떠한 지지도 거부한다.
반면, 우크라나 북한 경우와는 달리,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의 요소가 충돌의 핵심 본질인 경우, 우리는 한 진영을 편 드는 것이 아니라 양 진영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 ("이중 패전주의")을 제창한다. 이는 사회주의자들이 양 진영 모두에 대한 엄격한 반대를 내걸고 각각의 정부에 대항하여 계급투쟁을 밀어가기 위해 전쟁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지금의 대만 분쟁이나 스프래틀리 군도를 둘러싼 중국과 필리핀 간의 분쟁이 그러한 경우다. 양 진영 모두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우리가 중국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대만이나 필리핀의 민족자결권 요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쟁의 구체적 양상과 세력 관계 때문에 그러한 민족적 요소가 적어도 현재로서는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에 종속된 부차적 요소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현 가자전쟁의 경우를 보면, 팔레스타인 저항세력과 헤즈볼라/ 예멘 후티족 반군/ 이라크·시리아의 친이란 민병대/ 그리고 이란까지도 대이스라엘 전쟁에 참전하는 중동 지역전쟁으로 될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존재한다. (이 경우에는 미국이 해군, 공군, 나아가 지상군으로 이스라엘을 지지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여기에는 타 현장에서 반동적인 역할을 하는 세력들이 포함될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 정권은 (쿠르드 및 아랍 민족 소수자들을 포함하여) 자국 인민을 억압하고 헤즈볼라 등 친 이란 민병대는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 유지를 돕고 있다.
현 가자 전쟁이 이와 같은 중동 지역전쟁으로 전화될 경우 또 하나의 모순적 성격을 갖는 분쟁이 추가되는 것인데, 맑스주의자들은 그러한 분쟁에서의 상황전개를 구체적으로 평가분석하고 그에 상응하는 전술을 제창해야 한다. 그러한 중동 지역전쟁의 일차적 성격은 팔레스타인 대중뿐만 아니라 아랍 및 이란 세력들의, 제국주의 식민 정착자 국가에 대항하는 정의전 성격이 될 것이다. 그러한 분쟁에서 우리는 친 팔레스타인 세력들의 군사적 승리와 이스라엘의 패배를 내걸 것이다.
만약 이 중동 지역전쟁에서 미국 승리/ 이란 패배를 막기 위해 러시아와 중국이 개입한다면, 분쟁의 성격이 바뀔 수 있다. (반식민지 나라의 대리전을 포함하는) 제국주의 간 전쟁으로 전화되는 경우다. 이와 같이 분쟁의 성격이 시간 경과 속에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쟁의 성격이, (보다 정확히는) 그 성격의 주 특징이 바뀔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바로 그러한 분쟁의 이중적 성격 때문이다. 그러한 중동 지역전쟁은 우크라이나 전쟁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모순적 이중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맑스주의자들은 해당 분쟁의 구체적 전개를 분석하고, 그것의 초기 지배적 요소 ㅡ 예를 들어 해방전쟁으로서의 그 일차적 성격 ㅡ 가 약화되고 다른 요소 (초기에 종속적이었던 요소, 즉 제국주의 상호 패권쟁투 요소)가 강해지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그러한 전화 과정이 루비콘 강을 건너면, 해당 분쟁의 성격이 바뀐다. 그러한 경우에 맑스주의자들은 변화된 정세에 맞춰 전술 조정을 기하여 반식민지 나라 방어를 이중 패전주의 입장으로 대체해야 한다.
3.2 사회제국주의와 '중립' 기권주의
사회주의를 자임하는 많은 조직들이 이 분쟁들의 그러한 복합적 성격을 인정하길 거부하거나, 인정하는 데 실패한다. 온갖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 실패다. 많은 조직들이 사실상 제국주의 열강 어느 하나를 편 든다. 그러한 사회제국주의자들의 예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서 러시아에 만세를 외치거나, 중국의 편을 드는 스탈린주의자-푸틴주의자들이 있다. 반면, 한 강대국에 맞서 피억압국의 편을 들지만 다른 강대국의 개입에 눈을 감거나 이 강대국의 배외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사회제국주의자들이 있다. 나토의 대러 제재 정책에 반대하지 않거나, 우크라이나 또는 핀란드·스웨덴 같은 다른 유럽 나라들의 나토·EU 가입에 단호하게 반대하지 않는 일부 우크라이나 지지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사회제국주의에 영합하는 또 다른 예로는 서방 침략자에 맞서 니제르나 이란을 지지하지만 러시아의 개입에 반대하는 데 실패하는 ㅡ 심지어는 환영하는 ㅡ "반제국주의자"들이 있다.
사회제국주의에 대한 그러한 영합은 거부하지만, 이 분쟁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도그마틱한 “대리전” 교리로 대체하는 사회주의 조직들이 있다. 분쟁의 양측 모두에 제국주의 열강들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 있는 전쟁들은 모두 자동으로 강대국들의 “대리인”들 간의 분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에 따라 이들 사회주의 조직들은 피억압 민족들을 방어하길 거부하고 반동적 기권주의 입장을 제창한다. 이러한 보이콧주의 정책은 피억압인민 주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제국주의 지배에 대항하는 이 피억압인민의 현실 투쟁도 따라서 부정한다. 이는 정리해고 공격에 맞서 생존권 사수를 걸고 파업 중인 한 기업의 노동자들을, 다른 기업의 경쟁 자본가를 도와줄 뿐이라며 방어하길 거부하는 “사회주의자들”보다 나을 게 없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이러한 접근태도 뒤에는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접근방법이 있다.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쓰지만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모순을 부정하고, 따라서 사실상 제국주의의 현존 자체를 부정하는 정세인식 방법이다. 레닌이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라고 비판한 유파의 경향을 이어받은 방법(론)이다.
그러한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방법론에는 오늘날 민족-식민지 문제를 ‘철 지난 낡은’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배외주의적 (사회쇼비니즘적) 오만이 깔려 있다. 또 계급투쟁에 백해무익한 종파주의도 깔려 있다. “순수”하지 않은, 반동적인 심지어는 제국주의적인 세력의 영향을 받는 각개의 모든 투쟁에 추상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제국주의를 약화시키지 못한다. 구체적 투쟁들을, 그 모든 내적 모순들을 가진 채로 그대로 받아야 한다. 반동적 또는 제국주의적 영향에 맞서기 위해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투쟁에 참가하여, 박식한 체 하는 논평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적과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3.3. 관련 각 당사자들의 계급적 성격규정에 입각한 방법(론)
맑스주의 나침반 없이는, 모순적 이중적 성격을 가진 분쟁들이 증가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정세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길을 잃는다. 분쟁의 성격을 (시간 경과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격의 변화를 포함하여) 판정하기 위해서는, 전쟁 관련 모든 당사자들의 계급적 성격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들의 이해관계가 전쟁 전과 전쟁 진행 중에 진화 발전하는 부분들까지 포함하여 그 총체성을 검토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법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관련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써두었다. "노동자들이 국가의 계급적 성격 ㅡ 제국주의 국가인지, 식민지 국가인지, 노동자 국가인지 ㅡ 과, 그리고 이와 함께 그 국가들 상호 간의 관계 및 각각의 내적 모순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세 속에서 올바른 실천적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오늘, 노동자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1991/92년 이전의 소련이나 중국처럼 관료적으로 퇴보·타락한 노동자 국가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이 두 범주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종차[種差] 또는 색조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로부터, 오늘날 분쟁의 성격을 인식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새로운 강대국의 계급적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거듭 지적해왔듯이,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국가의 제국주의 성격을 인식하길 거부하고 있다. 정치적 혼란과 잘못된 전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중국·러시아가 제국주의 열강으로 떠오른 결과로 기존 동맹이 약화되고 새로운 동맹이 부상하고 있으며, 향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미국을 대체해 중·러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모순적 성격을 가진 분쟁들이 빈발하는 세계정세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더 많은 혼란과 분열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많은 사회주의 자임 조직들이 바리케이드의 저 편에 서 있을 것이다. 전쟁에 대한 변증법적, 계급적 접근법에 동의하고 현 세계정세의 주요 분쟁들에 대해 공통의 입장을 가진 진정한 혁명가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더더욱 시급하다. 혁명가들의 당을, 일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사회주의를 자임하는 많은 조직들이 이 분쟁들의 그러한 복합적 성격을 인정하길 거부하거나, 인정하는 데 실패한다. 온갖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는 실패다. 많은 조직들이 사실상 제국주의 열강 어느 하나를 편 든다. 그러한 사회제국주의자들의 예로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략 전쟁에서 러시아에 만세를 외치거나, 중국의 편을 드는 스탈린주의자-푸틴주의자들이 있다. 반면, 한 강대국에 맞서 피억압국의 편을 들지만 다른 강대국의 개입에 눈을 감거나 이 강대국의 배외주의 정책에 반대하지 않는 사회제국주의자들이 있다. 나토의 대러 제재 정책에 반대하지 않거나, 우크라이나 또는 핀란드·스웨덴 같은 다른 유럽 나라들의 나토·EU 가입에 단호하게 반대하지 않는 일부 우크라이나 지지 “사회주의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사회제국주의에 영합하는 또 다른 예로는 서방 침략자에 맞서 니제르나 이란을 지지하지만 러시아의 개입에 반대하는 데 실패하는 ㅡ 심지어는 환영하는 ㅡ "반제국주의자"들이 있다.
사회제국주의에 대한 그러한 영합은 거부하지만, 이 분쟁들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도그마틱한 “대리전” 교리로 대체하는 사회주의 조직들이 있다. 분쟁의 양측 모두에 제국주의 열강들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 있는 전쟁들은 모두 자동으로 강대국들의 “대리인”들 간의 분쟁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그에 따라 이들 사회주의 조직들은 피억압 민족들을 방어하길 거부하고 반동적 기권주의 입장을 제창한다. 이러한 보이콧주의 정책은 피억압인민 주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제국주의 지배에 대항하는 이 피억압인민의 현실 투쟁도 따라서 부정한다. 이는 정리해고 공격에 맞서 생존권 사수를 걸고 파업 중인 한 기업의 노동자들을, 다른 기업의 경쟁 자본가를 도와줄 뿐이라며 방어하길 거부하는 “사회주의자들”보다 나을 게 없다. 우리가 다른 곳에서 상세히 설명했듯이, 이러한 접근태도 뒤에는 제국주의에 순응하는 접근방법이 있다. “제국주의”라는 용어는 쓰지만 제국주의 열강 대 반식민지 모순을 부정하고, 따라서 사실상 제국주의의 현존 자체를 부정하는 정세인식 방법이다. 레닌이 "제국주의적 경제주의"라고 비판한 유파의 경향을 이어받은 방법(론)이다.
그러한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방법론에는 오늘날 민족-식민지 문제를 ‘철 지난 낡은’ 문제로 치부하는 사회배외주의적 (사회쇼비니즘적) 오만이 깔려 있다. 또 계급투쟁에 백해무익한 종파주의도 깔려 있다. “순수”하지 않은, 반동적인 심지어는 제국주의적인 세력의 영향을 받는 각개의 모든 투쟁에 추상적으로 반대하는 것으로 제국주의를 약화시키지 못한다. 구체적 투쟁들을, 그 모든 내적 모순들을 가진 채로 그대로 받아야 한다. 반동적 또는 제국주의적 영향에 맞서기 위해서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투쟁에 참가하여, 박식한 체 하는 논평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 적과 싸우는 것이 필요하다.
3.3. 관련 각 당사자들의 계급적 성격규정에 입각한 방법(론)
맑스주의 나침반 없이는, 모순적 이중적 성격을 가진 분쟁들이 증가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세계정세에서 사회주의자들은 길을 잃는다. 분쟁의 성격을 (시간 경과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성격의 변화를 포함하여) 판정하기 위해서는, 전쟁 관련 모든 당사자들의 계급적 성격을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들의 이해관계가 전쟁 전과 전쟁 진행 중에 진화 발전하는 부분들까지 포함하여 그 총체성을 검토하는 것이 또한 필요하다.
이러한 접근법은 무엇보다도 일차적으로, 관련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을 이해할 것을 요구한다.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써두었다. "노동자들이 국가의 계급적 성격 ㅡ 제국주의 국가인지, 식민지 국가인지, 노동자 국가인지 ㅡ 과, 그리고 이와 함께 그 국가들 상호 간의 관계 및 각각의 내적 모순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노동자들이 정세 속에서 올바른 실천적 결론을 내릴 수 있게 해준다." 오늘, 노동자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1991/92년 이전의 소련이나 중국처럼 관료적으로 퇴보·타락한 노동자 국가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전 세계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 국가와 반식민지로 나눌 수 있다. (물론 이 두 범주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종차[種差] 또는 색조 차이를 무시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로부터, 오늘날 분쟁의 성격을 인식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무엇보다도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새로운 강대국의 계급적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다. 거듭 지적해왔듯이, 많은 사회주의자들이 이들 국가의 제국주의 성격을 인식하길 거부하고 있다. 정치적 혼란과 잘못된 전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중국·러시아가 제국주의 열강으로 떠오른 결과로 기존 동맹이 약화되고 새로운 동맹이 부상하고 있으며, 향후 더욱 발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미국을 대체해 중·러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을 생각해 보라.)
모순적 성격을 가진 분쟁들이 빈발하는 세계정세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 더 많은 혼란과 분열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본다. 많은 사회주의 자임 조직들이 바리케이드의 저 편에 서 있을 것이다. 전쟁에 대한 변증법적, 계급적 접근법에 동의하고 현 세계정세의 주요 분쟁들에 대해 공통의 입장을 가진 진정한 혁명가들이 힘을 모으는 것이 더더욱 시급하다. 혁명가들의 당을, 일국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 건설하는 것이 절실한 과제다.
4. 우익 포퓰리스트/ 보수우익 정부에 맞선 투쟁을 자본가권력 타도 투쟁/ 권력쟁취 투쟁으로 전화시킨다
- 자유주의 세력 지지 또는 ‘반파쇼 민주대연합’ 지지에 반대한다. 그와 싸우면서 전화시킨다.
-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 및 개량주의·민중주의 세력들을 향한 통일전선 전술을, 노동자·피억압자의 독자 조직화를 위한 투쟁 및 지배계급의 혁명적 타도/노동자 정부 수립과 결합한다.
현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부르주아지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지배 기반을, 중간계급과 노동귀족층을 통합해내서 일종의 지배 블록을 구성하는 데 두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구조가 그러한 지배계급 제 진영 간의 협력과 경쟁이 이루어지는 틀을 이룬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내외) 독점 부르주아지를 최상위에 두고, 그 밖의 부르주아지 부문들과 그 다음으로 중간계급/소부르주아지/노동귀족층 부문들을 갖는 피라미드 형 체계로 표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계급지배 사회구성체는 자본주의 장기호황기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정치·경제 위기로 점철되는 시기에 들어가면 곧 이와 같은 정치·사회 시스템은 불안정해진다. 남한에서는 이 과정이 서유럽·북미나 일본에 비해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우리가 20세기 전반기에 또는 2008년 대공황 이래로 본 바와 같은 새로운 파국과 혁명적 위기 정세를 여는 자본주의 쇠퇴의 가속화 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시기는 첨예한 위기와 경제적·생태적 재앙과 정치적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시기다. 이러한 시기는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지배계급 내 제 진영 간의 경쟁이 가속화하고, 부르주아지와 피억압 계급 간의 투쟁이 격화하는 시기다. 따라서 이러한 쇠퇴·부후화의 시기, 혁명적·반혁명적 위기의 시기에는 지배 블록 내 계급들 및 계급 분파들 간의 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위기로 점철되는 정세로 들어간다. 그 결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며, 형해화되고 썩어 들어가며, 권력을 움켜쥔 부르주아 파벌들의 빈껍데기가 된다.
이는 우리가 20세기 전반기에 또는 2008년 대공황 이래로 본 바와 같은 새로운 파국과 혁명적 위기 정세를 여는 자본주의 쇠퇴의 가속화 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시기는 첨예한 위기와 경제적·생태적 재앙과 정치적 폭발을 특징으로 하는 시기다. 이러한 시기는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지배계급 내 제 진영 간의 경쟁이 가속화하고, 부르주아지와 피억압 계급 간의 투쟁이 격화하는 시기다. 따라서 이러한 쇠퇴·부후화의 시기, 혁명적·반혁명적 위기의 시기에는 지배 블록 내 계급들 및 계급 분파들 간의 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위기로 점철되는 정세로 들어간다. 그 결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며, 형해화되고 썩어 들어가며, 권력을 움켜쥔 부르주아 파벌들의 빈껍데기가 된다.
지배 블록이 위기에 휩싸이면서, (독점) 부르주아지는 점점 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침해 훼손하고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며, 보다 권위주의적·보나파르트주의적인 지배 형태로 통치 대형을 전환하도록 강요받는다. 이것은 일반 추세로서, 지배 계급의 한 특정 부문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근본적인 거부를, 민주주의 일반 또는 구체적인 민주적 권리들에 대한 무관심과 동일한 것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로 민주적 권리를 위한 혁명적 투쟁을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민주적 제 권리를 단호히 방어한다. 우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독재에 맞서 방어하며, 보다 민주적인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덜 민주적인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방어한다.
그러나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모종의 개혁된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될 수 있다거나,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거나 하는 환상을 유포하지 않는다. 우리가 썩고 부패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보나파르트주의적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것은, 그것을 무슨 생명력을 가진 제도로 보아서가 아니라 가장 사소한 민주적 권리조차도 선진 노동자들에 의해 계급투쟁의 도약대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정부의 모든 반민주적 공격 하나하나를 어떻게 하면 계급적 적을 약화시키고 노동자·피억압자의 의식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데 활용할 수 있을까의 시각에서 보도록 고무 장려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인식이다. 사회주의자들이 민주적 권리에 대한 가장 사소한 공격에도, 보나파르트주의로의 전환을 가능케 하려는 반동세력의 그 어떤 시도에도 극히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소)부르주아적 개량주의 세력이나 민중주의 세력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에도 반대한다. 이러한 지지와, 반민주적 공격에 맞선 투쟁에서 그러한 세력을 실천적으로 편 드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전자는 혁명적 공산주의자에게 절대적으로 가당치 않으며 일종의 인민전선 투항에 다름 아니다. 후자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데, 왜냐하면 혁명적 공산주의자가 종종 대중 가운데 작은 소수만을 대표하는 동안 (소)부르주아 개량주의 세력이나 민중주의 세력이 대중을 이끄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혁명적 공산주의자들이 떨어져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에 관여하고 반민주적 공격에 맞서고 있는 진영과 힘을 합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통일전선적 접근방식은 지도부의 부르주아-개량주의적 한계와 함께 대안적, 혁명적 리더십을 구축할 필요를 설명하는 명확한 선전과 결합되어야 한다.
전략적 임무: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 및 개량주의·민중주의 세력들을 향한 통일전선 전술을, 노동자·피억압자의 독자 조직화를 위한 투쟁 및 지배계급의 혁명적 타도/노동자 정부 수립과 결합하는 것! 이것이 연속혁명 전략의 핵심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사회주의적 수탈이라는 목표와 결합시키는 연속혁명 전략의 핵심 정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한 전략을 위한 투쟁은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 전위분자들이 제때에 혁명당을 창건할 때만이 성공할 수 있다는 점도 명확히 해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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