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쇠퇴 가속화 시기에 탈자본주의 전략 (좌담회 발표문)

자본주의 쇠퇴 가속화 시기에 탈자본주의 전략

                                                    노동자혁명당(준)

<21세기 한국의 포스트자본주의적 대안을  위한 전략과 쟁점> 좌담회 발표문

차례
 
1. 들어가며: 포스트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가?
2. 자본주의 문명 위협과 인류를 구하는 투쟁
3. 막장에 이른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생존권 투쟁
4. 강대국 패권경쟁의 가속화 -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민족 억압 강화
5.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시기의 이데올로기 투쟁
6. 우익 포퓰리즘의 득세/“민주주의 위기에 맞선 투쟁: 자본가권력 타도 투쟁/권력쟁취 투쟁으로 전화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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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들어가며: 포스트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는가?
 
현 단계 자본주의의 모든 모순이 탈자본주의/사회주의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다.
 
끝없는 재난의 시대다. 경제위기 재앙, 전쟁/핵 재앙, 환경·기후 위기, 팬데믹, 인공지능 등 문명 위협 재앙, 우익 포퓰리즘 득세/“민주주의 위기재앙 .......
 
우리는 재난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더 이상 호황기 없는 불황와 정체가 교대하는 세계경제/ 치솟는 인플레, 전 지구적 파멸을 가져오는 기후 위기, ·중 패권경쟁을 비롯한 동서 강대국 간 신냉전과 핵 아마겟돈 위협,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 전쟁, 팬데믹 등의 위험을 핑계로 한 전면적인 감시·통제 위협, 인공지능이 야기하는 자본주의 문명 위협 등등.
 
학자들, ‘전문가들이 말하는 복합 위기”, “다중 위기는 이 모든 재난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재앙 자본주의 위기다. 오늘 자본주의가 썩어 사멸해가는 위기 (가속되고 있는 자본주의 쇠퇴·부후화) 속에 이 모든 모순이 결합 중첩되어 있다.
 
이 위기, 이 자본주의 쇠퇴 부후화의 가속화 위기가 2008년 대공황 (이른바 글로벌 금융위기또는 대침체”)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현 단계의 성격, 현 역사적 시기의 근본 성격이다. 바로 이 모든 재난, 이 모든 사태는 2008년 대공황 (및 세계화 파탄, ·중 대결을 비롯한 강대국들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등과 함께)으로 그 뚜껑이 열린 현 시기의 심오한 혁명적 성격을 보여주는 모순들이다.
오늘 명백하게도, 자본주의 사회질서가 뒤흔들리고 깨져 혼돈과 재앙, 전쟁으로 점철된 장기 해체기에 접어든 것이다. 자본주의 지배계급은 그들 체제의 최종 위기를 맞아 살아나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모두가 보듯이, 시장과 그에 딸린 정치제도는 세계 주민 대다수에게 인간다운 삶과 민주적 권리를 가능케 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보장해 줄 합리적 경제를 만들어낼 수 없다.
 
외국을 침략하고 선제 핵 공격으로 상대국을 위협하고, 생존권과 사회적 권리를 공격하며 이주자와 여성을 초과착취 · 억압하고, 우리 행성의 자연자원을 마구잡이로 약탈하고, 사회를 빅브라더가 모든 사람 모든 것을 감시하는 유리 집으로 전화시키고 등등, 이것이 현재의 벌거벗은 자본주의다. 자본가, 슈퍼리치들이 어디서든 이윤을 짜내려 하고 강대국들이 군비증강과 상대방의 절멸에 탐닉하여 인류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는 체제, 이것이 지금의 자본주의 체제다.
 
인류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문제는 저들인가 우리인가다. 지배계급이 권력을 유지하고 우리의 행성과 그 거주민들을 파괴하든가, 아니면 노동자계급과 피억압자들이 이 퇴폐 기생충들을 타도하고 운명을 스스로의 손으로 가져가든가 둘 중의 하나다. 우리가 사슬 없이 자유롭게, 전쟁에 대한 두려움 없이 평화롭게, 굶주리거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잠자리에 들 필요가 없는 아이들과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답은 후자일 수밖에 없다!
 
운명을 우리의 손에 가져가야 한다! 권력을 쥐는 것은 지배계급에게서 권력을 박탈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혁명을 의미한다. 자본주의를 폐지하는 혁명은 정의상 사회주의 혁명이다. 이것이 우리가 탈자본주의/사회주의를 이야기하는 이유다.
 
 2. 자본주의 문명 위협과 인류를 구하는 투쟁
 
우리의 사회주의혁명 투쟁은 환경·기후 위기, 펜데믹 등 자본주의 문명 위협에 맞서 인류를 구하는 투쟁이다.
 
자본가계급의 끝없는 이윤 및 권력 추구가 지구를 파괴하고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이를 막지 못하면 지구상의 삶은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지고 지구는 인류의 감옥이 되고 말 것이다.
 
자본주의 산업과 운송수단에서 광범위한 화석연료의 사용, 점점 더 에너지 집약적인 기술의 사용, 무제약의 삼림 파괴, 단작농업의 확대, 초대규모 채굴과 프래킹과 원자력 에너지 등 자연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기술들과 관련된 회사들의 발전 등 이 모든 것에서 비롯하는 기후 변화가 지구 위 인간 삶의 토대를 위험에 빠트리고 있다. 지구 온난화는 물 부족, 사막의 확장, 견딜 수 없는 폭염/열파, 홍수, 동식물의 파괴 등을 유발한다. 그 결과,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죽고 있고 수백만 명이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데, 이 대부분이 남반구에서 일어난다. 이러한 공공보건 훼손과 자연 균형의 파괴가 팬데믹 확산의 한 원인이 된다.
 
악랄하게도, 환경 파괴에 책임이 있는 그 동일한 자본주의 기업들과 자본주의 국가들은 이러한 위협을 이용하여, 감시 기술 및 인간 대체 기술의 급속한 확대 및 무한 개발을 통해 민주적 권리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려고 한다. (배외주의적 국가 보나파르트주의의 확장). 우리는 2020-22년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전 세계 자본가 정부들이 주민을 집에 머무르게 하거나 이동을 제한하는 제도 ("록다운")를 도입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한 사태전개는 팬데믹이 끝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실제로, 인공지능(AI)의 급속한 확대는 자본주의 기업과 국가기구가 인민대중의 가장 기본적인 사회적·민주적 권리를 침해 약화시키는 것을 아주 용이하게 해준다.
 
에너지 및 환경 정책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것만이 우리의 행성과 미래를 구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자본주의 정부와 그들의 '기후정상회담'에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기후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자본주의 정책의 결과로 가장 고통 받는 자들인 노동자계급·민중이 통제 관장하는 국제 비상플랜을 위해 투쟁하는) 전 지구적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필요한 환경 개혁/ 생태 개선을 위한 투쟁은 자본주의 타도 목표와 결합되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그러한 비상플랜이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실행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에너지 및 운송 시스템의 전환과 화석 연료 및 핵에너지 생산의 전 지구적 폐지를 요구한다. 풍력, 조력 그리고 태양열과 같은 대체 형태의 에너지 사용과 전 지구적 재()식림 프로그램에 대한 대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모든 에너지 기업 및 물·농산물과 같은 기본 공급재에 책임 있는 모든 기업들의 노동자통제 하에 국유화! 항공사·해운·철도의 노동자통제 하에 국유화!
 
우리는 또한, 사람들을 병 들게 하는 식량을 생산하고 작물 생산지에 가까이 사는 주민에게 회복할 수 없는 피해 (암 같은)를 발생시키는, 대형 농축산물 회사가 사용하는 몇몇 핵심 기술들과 살충제 및 형질전환 종자를 다른 것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한다. 육류 생산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는 시장에 빨리 출시되게 하기 위해 주민 건강을 위협하는 백신들로 접종시키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와 기업에 의한 이동 감시·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모든 조치들에 엄중히 반대한다. 저들은 이것이 사람들의 건강이나 생활조건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빅 브라더"는 인민대중으로부터 지배계급을 보호한다. 오직 지배계급만을! 따라서, 우리는 록다운, "그린패스" 제도, 그리고 인공지능의 확대에 반대한다. 이러한 해악에 맞선 투쟁에서 우리의 지도원칙은 "반대하고 막아내자!"는 슬로건이다. 1917년 권력을 잡자마자 온갖 재앙에 직면했던 볼셰비키가 밝혔듯이, 그러한 문제들에 대처하는 최선의 방법은 고립 정책이 아니라 세계를 혁명적으로 쇄신할 수 있는 계급, 노동자계급이 결집, 조직화하여 행동으로 나서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본가들의 수중에서 인공지능은 노동자의 생존권 박탈, 대중의 감시·통제 등 반동적인 목적에 봉사한다. 인공지능이 미래 사회주의 사회에서 과연 활용될 수 있을지, 활용된다면 어느 정도까지 활용될 수 있을지는 글로벌 사회주의혁명을 통한 자본주의 체제 파괴 이후에 결정될 것이다. 아마도 인류에 득이 되게 작동하도록 사회주의 사회에서 그 적용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3. 막장에 이른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생존권 투쟁
 
우리의 사회주의혁명 투쟁은 막장에 이른 자본주의 세계경제 속에서 인간답게 살기 위한 생존권 투쟁을 포함한다
 
점점 더 강력한 기술 발명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구조적 정체 경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난 수십 년, 생산량 및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하락한 반면, 빈곤율은 더 커지고 사회보장은 축소 해체되고 불완전 고용은 더 늘어났다.
 
1980년대 이래로, 자본가들과 부르주아 정치인들 및 이데올로그들은 자본주의 세계화가 부와 민주주의의 확산을 가져올 것이라고 설교해왔다. 오늘, 이 허풍쟁이들은 침묵하고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2008년 대공황, 코로나19 사태 직전 2019년 말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또 하나의 대공황, 물가폭등, 지독한 사회적 불평등, 세계무역전쟁 및 글로벌 공급망 붕괴, 이러한 자본주의의 현실 앞에서 저들은 입 다물고 고개 돌리고 있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그러더니 이제 세계화의 복음을 보호무역주의 설교로 대체하고 있는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경제학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역사는 이미 자본주의 아우타르키 (보호무역 쇄국 경제)가 성장의 동력이 확실히 아니라는 것을 몇 번이고 보여주었다. (파국적인 1920-30년대를 생각해보라).
 
수요·공급의 균형 법칙 또는 케인스주의 국가 주도 부양 개념을 설파하는 부르주아 경제학자들의 몽상과는 달리, 자본주의 경제는 맑스가 <<자본론>>에서 설명한 자본주의 축적 법칙 및 그에 따른 이윤율 저하 경향 법칙에 종속된다.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쇠퇴·부후화 경향을 유발하는 것이 바로 그러한 법칙들이다.
 
유일한 출구는 생산수단 사적소유의 폐지, 즉 이윤 제도의 폐지다. 그리고 그것을 사람들의 필요에 따른 계획경제 체제로 대체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어두운 과거의 짐을 이와 같이 발본적으로 끊어내는 것만이 만인에게 자유와 물질적 보장이 부여되는 삶을 가능하게 해준다!
 
당연히 이러한 계획경제는 노동자·민중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제되는 경우에만 제대로 작동될 수 있다. 스탈린주의 국가들 (퇴보·타락한 노동자국가들)에서처럼 기생적 관료 엘리트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동자를 비롯한 인민대중에 의해서 통제될 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계급이 사슬을 끊고 자본주의 착취자계급을 전복시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바로 지금, 매일매일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 더 나은 생활 조건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아니 공격에 맞서 현 생활 조건, 현 노동 조건을 지키기 위한 방어 투쟁조차도 우리가 이후의 투쟁에 더 잘 대비할 수 있게 해주며, 집단으로 학습하고 조직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를 비롯한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선진노동자들이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조직하고 투쟁에 앞장 서는 것을 언제나 지지한다. 해고, 임금삭감, 물가상승에 맞서 일자리와 임금을 방어하기 위한 파업에 나서자! 직장 폐쇄에 맞서, 우리는 노동자 통제 하에 국유화를 요구한다! 해고와 실업에 맞서, 우리는 부자들이 지불하는 공공고용 프로그램을 요구한다! 공공보건 및 복지제도 축소·삭감에 맞서 우리는 확대를 요구하며 노동자·민중 통제 하에 사회화된 의료를 요구한다! 소부르주아 영세 소상인과 하층 중간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의 태생적 동맹군이므로, 우리는 위기 시, 공황 때 그들의 경제적 보상 요구를 지지하며, 부자들의 세금으로 이를 지불할 것을 요구한다!
 
  4. 강대국 패권경쟁의 가속화 -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민족 억압 강화
 
자본주의 쇠퇴·붕괴 시기에는 불가피하게 사회적·정치적·군사적 모순이 폭발하고 만다. 현 시기의 또 다른 주요 특징은 기존 서방 제국주의 열강의 쇠락과 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 열강 부상이다. 그에 따라 강대국 패권경쟁 가속화와 함께 일극 세계질서의 종식 및 세계화의 종언을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다.
 
강대국들 (미국, 중국, 러시아, 유럽연합, 일본) 간의 제국주의 패권 경쟁/ 세력권 쟁투는 현 세계정세를 추동하는 핵심 동력이다. 현재 이들 열강은 기본적으로 서방 진영 (미국, 서유럽, 일본 등)과 중·러 진영으로 나뉘어 있다.
 
많은 스탈린주의자들과 중남미 볼리바르주의자들은 중국·러시아를 세계정치의 진보적 요인으로 보고 있으며, 그에 따라 이들 열강에 지지를 준다.
 
다수의 트로츠키주의 조직들은 거기까지 나아가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이 새 열강 중러의 제국주의적 본질을 인식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이는 중대한 오류로서, 이들을 세계정치의 중요한 사건들에서 정치적 혼란과 방향감각 상실로 빠져들게 만든다.
 
모든 강대국들의 제국주의성을 인식할 때 그로부터 나오는 단 하나의 올바른 결론은 (레닌/볼셰비키에 의해 정립된) 혁명적 패전주의 정책이다. 제국주의 상호간의 충돌에서 어느 강대국도, 어느 강대국 진영도 (‘국 제국주의 지배계급도, 어느 다른 나라 제국주의 지배계급도) 지지해선 안 된다 제국주의 열강들의 배외주의 정책에 반대한다 제국주의 정부에 대항하여 계급투쟁을 발전시키기 위해 각개의 모든 분쟁·전쟁을 활용하고 그것을 내란으로 전화시킨다. 오늘, 이러한 항목들이 바로 나토와 러시아 간의, 또는 미·중 간의 충돌에서 사회주의자들의 지도 지침이 되어야 하는 원칙들이다.
 
한편, ·중 대결을 비롯한 이러한 가속화되는 제국주의 패권경쟁은 강대국들 상호간의 긴장 고조뿐만 아니라 반()식민지 이른바 제3세계 글로벌 사우스의 개도국” “신흥국에 대한 공격·침탈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그러한 패권경쟁은 제국주의 열강들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반식민지 세계에서 세력권을 확대하고 더 많은 노획물을 차지하려는 도발·침탈 드라이브 또한 가속화시키기 때문이다. ,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은 강대국들 간의 대결 고조 (또는 그들 대리인들 간의 충돌 증가)뿐만 아니라 피억압 인민들에 대한 공격 증가도 촉발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이 민족해방전쟁들의 증가 또한 촉발하는 이유다.
 
서방 대 중·러 간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맥락 속에서 벌어진 러시아의 제국주의 침략전쟁과 우크라이나 인민의 민족방위전쟁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서방 제국주의가 지지하는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의 민족억압 학살 전쟁과 이에 맞선 팔레스타인 인민의 민족해방 항전이 진행되고 있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페르시아 만에서 미 해군과 해병대가 이란에 근접 주둔하며 병력을 증강하고 있다. 프랑스·EU 제국주의의 지지를 받는 ECOWAS (서아프리카경제연합)가 러시아와 동맹을 모색하는 니제르에 대한 침공을 계기로 터져 나올 서아프리카 전쟁도 잠복해 있다. 남중국해에서는 제국주의 중국과 (미 제국주의가 지지하는) 반식민지 필리핀 간에 긴장이 고조되고 있고, ·미 간에 계속되고 있는 대만 분쟁이 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제국주의 미··한 군사동맹 완성으로 촉발된 전쟁 위협의 북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이것이 바로 진보진영 일각에서 내걸고 있는 다극화 신세계질서의 현실 모습이다. (제국주의 상호 패권경쟁 격화와 반식민지 피억압 인민에 대한 공격·침탈 증가/민족해방전쟁 증가 = “다극 세계질서”)
 
평화주의자와는 달리, 모든 전쟁에 다 반대할 수 없는 맑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정의전과 부정의전, 억압 전쟁과 해방 전쟁을 엄격하게 구분한다. 정의전은 노동자계급·민중이 지배계급에 대항하여 벌이는 무장봉기와 내전, 피억압 민족이 그들의 억압자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쟁, 국내에서 반동, 파시스트 적들에 대항하여 벌이는 전쟁 등이다.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항하는 반식민지 나라들의 민족방위 전쟁도 정의전이다. 반동 전쟁은 지배계급의 전쟁, 제국주의 열강의 피억압 민족에 대한 전쟁이다. 지배계급 분파들 간의 군사적 충돌이나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군사적 충돌도 반동 전쟁이다.
 
우리를 비롯한 모든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은 언제나 해방 전쟁에서 피억압자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왔다. 그 해방 전쟁의 비혁명적 지도부에 어떠한 지지도 주지 않고서 말이다. (예를 들어, 1982년 말비나스/포클랜드 전쟁에서 영국에 대항하여 아르헨티나를, 2001/03년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 대항하여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그리고 1994-96년과 1999-2009년 러시아에 대항하여 체첸을, 2022/23년 우크라이나를, 현재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팔레스타인 저항군을, 그리고 그밖에 1992-95년 보스니아를, 1998-99년 코소보를, 아사드와 러시아 군대에 대항하여 시리아 반군을, 2021년 이래로 미얀마에서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반군을, 소말리아에서 아프리카연합평화유지군(ATMIS)/ 서방 군대에 대항하여 소말리아 저항투쟁을).
 
  5. 제국주의 패권경쟁 격화 시기의 이데올로기 투쟁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
 
현재, 서방 열강 정부들과 노동운동 내 이들 정부의 사민주의자 시종들은 서방 대 중·러 간의 신냉전"민주주의 대 독재" (또는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충돌로 그려내고 있다. 이것은 위선의 극치다. 러시아가 (2014년 이전에) 미국 및 EU와 지금과는 달리 친밀한 관계에 있었을 때, 이들 서방 국가 지도자들은 옐친과, 이어서 푸틴을 G7 회의에 초대했다. 러시아 점령군에 의해 학살된 수십만 명의 체첸인들은, 서방 "민주주의자들"과 크렘린 보스 간에 웃는 사진을 촬영하는 데 전혀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그러면 중국은? 의심할 여지없이, 스탈린주의-자본가 정권은 반동 독재다. 그러나 서방 정부들이 중국에서 수많은 소비재가 값싸게 생산되도록 하기 위해, 중국 정부에 의해 바로 그 동일한 조건의 잔혹한 억압 조치가 실시돼도 그것을 즐긴 것을 볼 때 서방 정부들은 중국 정부와 반동 독재에서 얼마나 다른가?! 19896월 톈안먼 광장에서 피비린내 나는 진압 학살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서유럽이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중국과 수없는 호혜조약을 체결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다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현재 벗들은 얼마나 민주주의인가? 팔레스타인인들을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날마다 살육하는 이스라엘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절대주의 왕정들은? 이집트 시시 군사독재나 튀니지 카이스 사이드 정권은? 등등. 현실 세계에서는 "민주주의 대 독재"가 아니라, "독재와 손잡고 가는 민주주의". 그들은 모두 노동자·피억압자의 적이다!
 
다극화 신세계질서”?
 
서방 제국주의에 대항하기 위해 푸틴과 시진핑은 다극 세계질서개념을 설파한다. 노동자·민중 운동 내에서 중·러 제국주의의 시종으로 복무하는 스탈린주의자들과 포퓰리스트들도 푸틴과 시진핑을 좇아 이 다극 세계질서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 그들은 이것이 미국 패권 하의 세계화에 대한 보다 민주적인 대안이이라고 주장한다. 이 이데올로기는 논리도 안 되는 데다 사악하기까지 하다. 정말 푸틴과 시진핑이 더 민주적인 세계질서를 원한다면, 그들은 국내에서부터 인민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해야 한다! 그리고 다극 세계질서가 일극 세계질서에 비해 나을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인가? 20세기 전반부와 양차 세계대전을 생각해보라! 푸틴주의자들과 준푸틴주의자들이 감추려고 하는 진실은 이렇다. 일극 세계질서는 한 명의 강도 (미국)가 지배하는 질서인 데 비해 다극 세계질서는 한줌밖에 안 되는 복수의 강도들이 세력권과 노획물을 놓고 서로에 대해 패권쟁투를 벌이는 질서라는 것! 그래도 어느 질서가 더 낫냐고? 사회주의자들은 일극 질서도, 다극 질서도 똑같이 거부한다. 질서모두 반동이고 해악이기 때문이다. 둘 다 노동자·피억압자를 초과착취하고 억압하는 것을 보장하기 위한 질서, 똑같은 제국주의 질서이기 때문이다.
 
이주자 · 난민에 대한 제국주의 이데올로기:
 
얼마 전부터, 백인 우월주의 운동의 극 반동 광신자들이 "거대한 교체"라는 기괴한 사상을 퍼뜨리고 있다. 이 망상에 따르면, 북미와 유럽의 정부들이 내국 주민들을 갈아치우기 위해 이주자들을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이 정부들이 멕시코 국경이나 지중해에서 수천 명의 난민들을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 두고 있다는 "사소한 세부 사실들"은 차치한다 하더라도, "이론", 오랜 기존 제국주의 열강들을 떠받쳐온 핵심 유권자들인 백인 인구가 고령화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 체체 내에서 미래의 전망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단순한 사실을 은폐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출산율이 낮다면, 그것이 남반구 유색인종의 잘못인가! 실제로는, 이들 부유한 세계의 고령화 사회들은 이주자들과 그들의 노동력 없이는, 그리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이주자들의 재정적 기여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이 모든 것을 제쳐두더라도, 오랜 기존 제국주의 열강들은 수세기 동안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의 인민들을 약탈해왔다. 오늘, 이들 열강의 탄소 배출은 남반구의 생활 조건을 파괴한다. 이 나라들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러한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그들의 고향을 떠나는 것은 놀랄 게 없다. 이주자들은 내국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형제자매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요구한다. 노동자·피억압자의 국제적 단결을! 이주자에게 평등을 (행정과 교육에서 모어[母語]를 사용할 권리와 투표할 권리를 포함하여)! 난민에게 국경 개방을!

  6. 우익 포퓰리즘의 득세/“민주주의 위기에 맞선 투쟁: 자본가권력 타도 투쟁/권력쟁취 투쟁으로 전화시킨다
 
- 자유주의 세력 또는 (“반파쇼”) 인민전선 지지에 반대한다. 그와 싸우면서 전화시킨다.
-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 및 개량주의·민중주의 세력들을 향한 통일전선 전술을, 노동자·피억압자의 독자 조직화를 위한 투쟁 및 지배계급의 혁명적 타도/노동자 정부 수립과 결합한다.
 
현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부르주아지는 기본적으로 그들의 지배 기반을, 중간계급과 노동귀족층을 통합해내서 일종의 지배 블록을 구성하는 데 두고 있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구조가 그러한 지배계급 제 진영 간의 협력과 경쟁이 이루어지는 틀을 이룬다.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내외) 독점 부르주아지를 최상위에 두고, 그 밖의 부르주아지 부문들과 그 다음으로 중간계급/소부르주아지/노동귀족층 부문들을 갖는 피라미드 형 체계로 표현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와 같은 계급지배 사회구성체는 자본주의 장기호황기에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정치·경제 위기로 점철되는 시기에 들어가면 곧 이와 같은 정치·사회 시스템은 불안정해진다. 남한에서는 이 과정이 서유럽·북미나 일본에 비해 매우 압축적으로 진행되었다.
 
이는 우리가 20세기 전반기에 또는 2008년 대공황 이래로 본 바와 같은 새로운 파국과 혁명적 위기 정세를 여는 자본주의 쇠퇴의 가속화 시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러한 시기는 지배 블록 내 계급들 및 계급 분파들 간의 관계가 매우 불안정하고 위기로 점철되는 시기다. 그 결과,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점점 더 불안정해지며, 형해화되고 썩어 들어가며, 권력을 움켜쥔 부르주아 파벌들의 빈껍데기 외피가 된다.
 
지배 블록이 위기에 휩싸이면서, (독점) 부르주아지는 점점 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침해 훼손하고 민주적 권리를 공격하며, 보다 권위주의적·보나파르트주의적인 지배 형태로 통치 대형을 전환하도록 강요받는다. 이것은 일반 추세로서, 지배 계급의 한 특정 부문으로 국한되지 않는다. 우익/극우 포퓰리즘의 득세는 이러한 일반 추세의 한 형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대한 맑스주의자들의 근본적인 거부를, 민주주의 일반 또는 구체적인 민주적 권리들에 대한 무관심과 동일한 것으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와는 정반대로 민주적 권리를 위한 혁명적 투쟁을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간주한다. 우리는 민주적 제 권리를 단호히 방어한다. 우리는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자본주의 독재에 맞서 방어하며, 보다 민주적인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덜 민주적인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맞서 방어한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은 모종의 개혁된 형태의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완전한 민주주의로 될 수 있다거나, 노동자계급과 인민대중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거나 하는 환상을 유포하지 않는다. 우리가 썩고 부패한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보나파르트주의적 공격에 맞서 방어하는 것은, 그것을 무슨 생명력을 가진 제도로 보아서가 아니라 가장 사소한 민주적 권리조차도 선진 노동자들에 의해 계급투쟁의 도약대로 활용될 수 있어서다.
 
우리는 개량주의 세력이나 민중주의 세력에 대한 어떠한 정치적 지지에도 반대한다. 이러한 지지와, 반민주적 공격에 맞선 투쟁에서 그러한 세력을 실천적으로 편 드는 것은 서로 완전히 다른 것으로, 우리는 이 두 가지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전자는 맑스주의자들에게 절대적으로 가당치 않으며 일종의 인민전선 투항에 다름 아니다. 후자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필요한데, 왜냐하면 진정한 사회주의자들이 종종 대중 가운데 작은 소수만을 대표하는 동안 개량주의 세력이나 민중주의 세력이 대중을 이끄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사회주의자들이 떨어져 거리를 두는 것이 아니라 대중투쟁에 개입하고 반민주적 공격에 맞서고 있는 진영과 힘을 합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한 통일전선적 접근방식은 지도부의 부르주아-개량주의적 한계와 함께 대안적, 혁명적 리더십을 구축할 필요를 설명하는 명확한 선전과 결합되어야 한다.
 
민주적 제 권리를 위한 투쟁 및 개량주의·민중주의 세력들을 향한 통일전선 전술을, 노동자·피억압자의 독자 조직화 (평의회, 민병)를 위한 투쟁 및 지배계급의 혁명적 타도/노동자 정부 수립과 결합하는 것이 우리의 전략적 임무다.
 
민주적 제 권리 투쟁과 생존권 투쟁 등, 모든 부분적 투쟁은 궁극적으로 노동자 정부 또는 노동자·민중 정부 수립을 목표로 해야 한다. 그러한 정부는 노동자·농민·빈민의 행동평의회와 민병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그러한 정부는 부르주아지의 무장 국가기구를 프롤레타리아 민병으로 대체하고 자본가계급을 수탈하는 결정적 임무에 즉각 착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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