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플렛] 맑스주의와 전쟁: 혁명적 패전주의의 기원과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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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스주의와 전쟁:  혁명적 패전주의의 기원과 역사


제국주의전쟁 타도 - 레닌주의 전략·전술을 학습하자!

    
            미하엘 프뢰브스팅, 혁명적 공산주의인터내셔널 동맹 (RCIT), 2026년 6월, www.thecommunists.net


  차례
 
들어가며
 
1. 맑스 · 엥겔스: 패전주의 개념의 기원
 


2. 정통 맑스주의자들과 제2인터내셔널: 반동적 전쟁에서의 패전주의에 대한 입장
 
  1907년 대회와 1912년 대회

 
3. 1904-1914년 레닌의 패전주의 노선 정립 과정
 
  러일 전쟁
  

  슈투트가르트 대회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

 

4. 혁명적 패전주의의 세 기둥
 
  주적은 국내에 있다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5. 각종 반론에 대한 응답
 
  경쟁국의 승리를 지지한다?
  

  전도된 사회제국주의자들
  

  사보타주를 통해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패전을 촉진한다?  

  

  혁명적 방어주의는 “진영주의”로 이어지는가?

 
  레닌은 나중에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을 폐기했는가?
 
  평화주의 대 내란 노선
 
  할 드레이퍼가 만들어낸 “레닌의 혼란”이라는 신화


 
6. 보론: 1914-16년 레닌의 패전주의 노선에 대한 트로츠키의 잘못된 비판
 
  패전주의 –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양보인가?
 
  “평화” 슬로건
 
 
7. “패전주의” 용어의 기원과 볼셰비키의 수용
 
 
8. 제3인터내셔널과 제4인터내셔널 강령문서 상의 혁명적 패전주의 전략·전술
 
  1926-27년의 좌익반대파
 
  1920년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
 
 
9. 혁명적 패전주의와 오늘날의 적용
 
  제국주의 간 충돌
 
  반식민지 나라와 피억압 인민을 적으로 한 제국주의 전쟁
 
  민족 억압과 독재에 맞선 해방 전쟁
 
  복합적 또는 이중적 성격의 전쟁
 
 반식민지 국가 간의 충돌
 

10. 결어

 

                                           * * * * *
 
 
 
들어가며
 
혁명적 패전주의는 제국주의전쟁에 맞선 투쟁 프로그램 (강령)을 지칭하는 용어다. 즉 제국주의전쟁에 대항하는 투쟁 슬로건, 투쟁 방향과 목표, 투쟁 전술인 것이다. 혁명적 패전주의 전략·전술은 제국주의적 전쟁들뿐만 아니라, 보다 일반적으로 반동적 전쟁들에도 적용된다. 그 기본 내용은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에 레닌과 볼셰비키가 제시한 다음 세 가지 슬로건으로 요약될 수 있다:
 
* 주적은 국내에 있다
 
*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이 슬로건들은 기본적으로 노동자·피억압자가 제국주의 간 충돌에서 ‘자’국 제국주의의 편에 서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국 정부 편을, ‘자’국 지배계급 편을, ‘자’국 자본가국가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출발점으로 하는 슬로건들인 것이다. 노동자·피억압자는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를 (또는 그 어느 나라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도) 지지해서는 안 되며, 반대로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패배를 바라야 한다. 그것이 부르주아지를 타도하는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가능성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동자계급이 전쟁에서 ‘자’국 제국주의 정부가,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패배하도록 투쟁할 때 이 ‘자’국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혁명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폭력의 시간이므로, 사회주의자들은 전쟁에 평화주의적 설교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인민 무장을 활용해 총구를 지배계급을 향해 돌리는 방식으로 대응한다.[1]

볼셰비키 반전 강령의 3대 기둥이 된 이 슬로건들은 처음에는 전쟁 지지 사회배외주의자들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반전 사회주의자들로부터도 노골적 적대를 받았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이 슬로건들을 주축으로 한 반전 강령을 중심으로 1919년에 제3인터내셔널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창설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스탈린주의 관료에 맞선 트로츠키의 좌익반대파와 제4인터내셔널은 이 강령을 바탕으로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투쟁을 이어갔다.
 
기본적으로 혁명적 패전주의에는 두 가지 형태가 존재한다.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돌 (예를 들어 1, 2차 세계대전과 오늘날의 세계 무역전쟁 등)에서 맑스주의자는 이중 패전주의 입장을 취한다. 즉, 양 진영 모두에 똑같이 반대한다.

제국주의 국가 대 반식민지 나라 또는 피억압 인민 간의 충돌 (예를 들어 1937~45년 일본의 중국에 대한 전쟁 [중일전쟁], 1982년 영국의 아르헨티나에 대한 전쟁, 2001년 이래 미국의 중동 전쟁들, 1948년 건국 이래 이스라엘의 전쟁들, 러시아의 체첸에 대한 두 차례 전쟁 및 2022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쟁)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러한 충돌에서 맑스주의자는 전자 진영에 대해서만 패전주의 입장을 취할 뿐, 후자 진영에 대해서는 지지 입장 (혁명적 방어주의)을 취한다.
 
이러한 구분은 전술 분야에서 중요한 결과를 낳는다. 이중 패전주의 입장을 취해야 하는 제국주의 간 충돌에서 맑스주의자는 반동 전쟁을 지지하는 어떠한 실제적 조치에도 반대하지만, 적을 돕는, 전쟁 수행을 사보타지 하는 등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반식민지 나라나 피억압 민족이 정당한 민족방어 전쟁을 수행하는 충돌에서는, 맑스주의자는 필요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의 전쟁 수행을 지지할 의무가 있다.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용어는 1차 세계대전과 같은 제국주의 간 충돌의 맥락에서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그 원칙은 반식민지 국가 간의 전쟁이나 내전과 같은 다른 유형의 충돌에도 적용된다. 자본주의 반식민지 나라 간의 충돌인데 이 충돌이 양측 모두에서 반동적인 충돌인 경우, 맑스주의자는 이중 패전주의 입장을 취한다. (예를 들어, 최근 인도 대 파키스탄, 또는 1981-88년 이라크와 이란 간의 전쟁). 그러나 반식민지 나라 간의 충돌 중에는 한 측이 정당한 전쟁을 수행하는 그런 충돌도 있을 수 있으며, 이 경우 맑스주의자는 이를 지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RCIT는 2015년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의 침공에 맞서 예멘을 방어했으며, 2025/26년에는 파키스탄에 맞서 아프가니스탄을 방어했다. 또 내전도, 양측 모두가 반동적인 내전 (예를 들어 현 수단 분쟁이나 티그라이/에티오피아 전쟁)이 있는가 하면 한 측이 진보적인 내전 (예를 들어 1936-39년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 진영이나 2011-24년 시리아에서 아사드 독재에 맞선 반군)도 있다.
 
이하에서는 패전주의 노선의 역사적 기원과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 볼셰비키에 의한 그 노선의 전면적 정립, 그리고 그 세 가지 주요 요소의 의미를 개괄할 것이다. 또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용어 자체의 기원과 정착 과정을 추적할 것이다. 나아가 레닌의 개념에 제기된 각종 반론들을 다루고, 현 시기 전쟁에서 이 노선의 현실적 의미를 제시할 것이다. 이미 이 주제에 대해 여러 편의 글을 발표한 바 있으므로, 일부 논점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관련 RCIT 문서를 참조할 것을 독자들께 권한다.
 

1. 맑스 · 엥겔스: 패전주의 개념의 기원

 
‘혁명적 패전주의’ 또는 ‘패전주의’라는 용어는 1차 세계대전 중에야 비로소 등장했지만, 그 주요 사상은 이미 그 이전부터 존재했다. 로마 제국 시대에 노예와 가난한 농민이 “야만족”의 침입에 맞서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 나서길 거부하고 중립으로 있거나 심지어는 “야만” 침입자들에 동조하기도 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역사가들은 피억압자가 자신의 지배자들을 깊이 증오하여, 침입해 온 튜튼족, 반달족 등을 환영했던 전쟁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7~8세기에 최초의 두 무슬림 칼리프국 (라시둔과 우마이야드)이 중동, 유럽, 아시아로 급속히 확장했을 때도 비슷한 과정이 일어났다. 또 봉건제 역사 전반에 걸쳐 지배계급이 신민들에게 ‘우리’나라를 방어하자고 동원령을 내렸지만 비슷한 이유로 실패한 사례가 허다했다.
 
맑스와 엥겔스는 전쟁에 관한 저작에서 ‘패전주의’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여러 차례 그 논리를 적용했다. 1866년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간의 전쟁이 시작될 무렵, 과학적 사회주의의 두 창시자는 독일 민족의 혁명적 통일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본 프로이센 반동 비스마르크 정권의 패배를 바랐기 때문에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었다. 엥겔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이 전쟁에 어떤 책임이든 책임 있는 자들 모두가 교수형에 처해져 마땅하더라도, 그리고 나는 오스트리아인들에게도 똑같이 공정하게 그 처분을 기꺼이 적용하겠지만, 그럼에도 나는 무엇보다도 프로이센인들이 철저히 패배하는 것을 보고 싶다. 그렇다면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 번째는, 두 주 안에 오스트리아인들이 승리하여 베를린의 평화조건을 강요하고, 그에 의해 외국의 직접 개입을 피하게 되지만, 동시에 베를린의 현 정권은 존속할 수 없게 되며, 그리고 처음부터 프로이센 정권의 특수한 성격을 부정하는 또 다른 운동이 일어나는 경우다. 두 번째 경우는 오스트리아군이 도착하기 전에 베를린에 갑작스러운 변화가 일어나는 경우인데, 이 경우에도 새로운 운동이 시작될 것이다.”[2]

맑스와 엥겔스는 러시아 제국에 대항하는 전쟁들에서도 비슷한 접근방식을 취했는데, 이는 맑스 · 엥겔스가 차르 전제정을 러시아뿐 아니라 전 유럽의 노동자운동과 민주주의의 주된 적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차르의 패배가 러시아의 혁명 운동을 고무할 것이라고 그들이 기대한 이유다. 러시아-터키 전쟁 (1877-78년) 동안, 맑스는 당시 독일 사회주의자들의 핵심 지도자였던 빌헬름 리프크네히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우리는 두 가지 이유로 터키의 대의를 가장 단호하게 지지한다.... 2. 러시아의 패배는 러시아의 사회혁명을 크게 촉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에는 그 혁명의 모든 요소가 풍부하게 존재하며, 따라서 유럽 전역에 걸쳐 급진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3]

 패전주의 전략을 실제 확인시켜 준 한 사례는 1870년 독일이 프랑스를 상대로 거둔 압도적인 승리와 그로 인한 루이 보나파르트 3세 정권의 붕괴다. 이 붕괴가 1871년 3월 파리 코뮌 ㅡ 역사상 최초의 노동계급 혁명 ㅡ 의 창설로 이어진 혁명적 과정을 열었다. 그 전쟁의 초기 단계에 맑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엥겔스는 이미 프랑스의 패배가 프랑스 노동자들에게 가져올 긍정적인 결과를 지적했다.


“독일이 승리한다면, 프랑스 보나파르트주의는 어떻게든 분쇄될 것이고, 독일 통일 수립을 둘러싼 끝없는 논쟁은 마침내 끝날 것이며, 독일 노동자들은 지금까지의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전국적 규모로 조직될 수 있을 것이고, 프랑스 노동자들은 이 정부를 계승할 정부가 어떤 정부이든 간에 보나파르트주의 치하보다 더 자유로운 활동의 장을 확보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4]

 요컨대, 맑스 · 엥겔스는 전쟁과 혁명 간의 상관관계를 인식했으며, 그에 따라 반동 국가의 패배를 ㅡ 이 나라에서 인민대중의 해방투쟁을 진전시키기 위해 ㅡ 제창했다.


 2. 정통 맑스주의자들과 제2인터내셔널: 반동적 전쟁에서의 패전주의에 대한 입장


맑스 · 엥겔스를 이어 반동적 전쟁에서의 패전주의 전략을 제창해 간 것은 제2인터내셔널 내 정통 맑스주의자들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맑스와 엥겔스는 독일 민족통일 문제에 대한 반동적 해결책을 추구한 호엔촐레른 군주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1866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프로이센의 패배를 요구했다. 독일 내 맑스 · 엥겔스의 협력자들은 민족 문제에 대한 혁명적-민주주의적 해결을 위한 투쟁의 일환으로 그러한 정책을 전적으로 지지했다. 1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인 지도자였던 아우구스트 베벨은 자서전에서 1866년 전쟁에 대한 당의 입장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후년에 리프크네히트와 나는 오스트리아가 승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자주 질문을 받아왔다. 오직 그 대안, 즉 한 세력을 지지하는 것이 다른 세력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했다는 사실 자체가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개인적인 견해로는, 자유롭지 않은 민족에게는 패배가 오히려 그 내적 발전에 더 유리하다. 승리는 민주주의와는 정반대 유형의 정부, 오만하고 가혹한 성격의 정부를 낳는 반면, 패배는 정부가 인민에게 다가가 인민의 호의를 얻도록 강제한다. 1806~1807년 이후의 프로이센에서도, 1860년 이후의 오스트리아에서도, 1870년 이후의 프랑스에서도, 1904년 일본 승리 이후의 러시아에서도 그러했다. 러시아의 패배가 아니었다면 러시아 혁명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차르 군대가 몇 번만 승리했다면 수년간은 혁명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혁명이 실패했음에도, 구 러시아는 1847~1849년 이후 구 프로이센이 사라졌던 것처럼 영원히 사라졌다.”[5]

 이와 같이, 베벨은 1866년에 이 경험을 일반화하여 다른 분쟁들에도 적용하며, 반동적 전쟁에서 지배계급의 패배는 지배계급을 약화시키고 노동자계급과 피억압대중의 해방투쟁을 위한 조건을 고양시킨다는 점을 인식했다.
 
1885년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영국과 러시아 간의 분쟁이 절정에 달했을 때, 프랑스의 맑스주의 지도자 쥘 게드는 이중 패전주의 입장을 취했다. 즉, 분쟁 양측 모두의 패배를 제창한 것이다. “전쟁 만세”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게드는 영국과 러시아를 “방식은 다르지만 똑같이 억압적”이라고 규정했다. 게드는 전쟁이 “진보의 비료”이며, 이를 통해 “노동계급의 1789년”, 즉 프랑스 대혁명의 프롤레타리아 버전을 가져올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두 정부 중 어느 측이 패배하든 “우리에게는”, 즉 사회주의에게는 좋은 일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러시아의 패배는 차리즘의 종식, 즉 러시아의 정치적 해방을 의미할 것이다.... 그리고 첫 번째 결과, 즉 페테르부르크에서 일어날 정치 혁명의 불가피한 결과는 독일 노동자들의 해방이 될 것이다.... 영국의 패배 역시 그에 못지않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영국의 패배는 아일랜드를 계엄 상태에서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며... 수단도 — 그리고 그 결과로 이집트도 — 스스로를 해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영국의 첫 불운 직후, 가장 크고 가장 착취당하는 식민지들의 분리 독립이 시작될 것이다...”[6]
 
볼셰비키 주요 리더 지노비예프는 나중에 게드의 접근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영국과 러시아 간의 전쟁은 부르주아 사회 질서의 종말을 가속화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의 승리와 누구의 패배가 바람직한가? 영국인가, 러시아인가? 나는 양측 모두의 패배를 바란다.”[7]
 
  1907년 대회와 1912년 대회
 
1914년 이전 몇 년 동안 제국주의 간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사회주의 노동자운동에, 강대국들 간의 대규모 전쟁 위험에 대한 경보가 울렸다. 이에 제2인터내셔널은 1907년 슈투트가르트와 1912년 바젤에서 열린 대회에서 반군국주의 전략을 논의했다. 당시 기회주의 진영은 이미 인터내셔널 내에서 주요 세력이 되어 있었다.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을 가장 저명한 이론가로 하고 있던 수정주의 파는 자본주의의 점진적이고 평화적인 변혁을 목표로 하는 개량주의 전략을 제창했는데, 이 전략에는 부르주아 정부에 참여하고 전쟁에서 (제국주의) 조국을 방어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나아가 이 기회주의 파는 “사회주의 식민 정책”을 제창했는데, 사실상 이는 피억압 인민에 대한 “문명화된” 형태의 제국주의적 통제와 지배를 옹호하는 것이었다.[8]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프롤레타리아 평당원들은 지배계급의 제국주의전쟁 추진에 강력히 반대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있는 가운데, 정통 맑스주의자들은 군국주의와 전쟁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취하는, 그리고 그뿐만 아니라 반동적 분쟁에서 정부가 패배할 경우의 혁명적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결의안의 채택을 아직은 관철해 낼 수 있었다.
 
“실제로, 브뤼셀 국제대회 이래로 프롤레타리아트는 해군 및 육군 군비 증강을 위한 모든 조치를 거부하고 군사 조직을 민주화시키기 위해 노력함으로써 지칠 줄 모르고 군국주의에 맞서 투쟁해 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전쟁의 발발을 막거나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 활용하기 위해 더욱 더 강렬하게 더욱 더 성공적으로 가장 다양한 형태의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는 러시아와 폴란드의 사회주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차리즘이 일으킨 전쟁에 맞서 벌인, 그리고 그 전쟁의 조기 종식을 위해, 나아가 국가적 위기를 노동자계급의 해방을 위해 활용하기 위해 벌인 영웅적이고 자기희생적인 투쟁으로 입증되었다.... 전쟁이 발발할 조짐이 보이면, 관련 국가의 노동자계급과 그 의회 대표자들은 국제 [사회주의] 사무국의 결속 작업을 통한 지원을 받아, 그들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기는 수단을 통해 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는 당연히 계급투쟁 및 전반적인 정치 상황의 격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이 발발할 경우, 그들은 전쟁의 조속한 종식을 위해 개입하고, 전쟁으로 인한 경제적·정치적 위기를 활용하여 민중을 분기시키고 그렇게 하여 자본주의 계급 지배의 철폐를 앞당기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야 할 의무가 있다.”[9]

바젤 대회는 제국주의전쟁의 결과로 혁명적 격변이 일어날 수 있다는 위 언급된 조항들을 재확인하였으며, 구체적으로 1871년 파리 코뮌과 1905-07년 러시아 혁명을 그러한 결과의 예로 들었다.
 
“대회는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전체가 이 대외정책의 원칙을 만장일치로 승인한다는 것을 기록한다. 대회는 모든 국가의 노동자계급에게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 연대의 힘으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항할 것을 호소한다. 대회는 호전적인 행위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가져온 대중의 비참함을 증대시키지 말 것을 모든 국가의 지배계급에게 경고한다. 대회는 단호히 평화를 요구한다. 정부들로 하여금 유럽의 현재 조건과 노동자계급의 분위를 볼 때 그들이 자기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으면서 전쟁을 폭발시킬 수는 없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자. 그들로 하여금 프랑스-독일 전쟁 이후 코뮌의 혁명적 발생이 뒤따랐다는 것을, 러일전쟁이 러시아 제국 인민의 혁명적 에너지를 움직이게 만들었다는 것을, 육군 및 해군의 군비경쟁이 영국과 대륙에서의 계급 갈등을 전례 없이 첨예하게 만들었고 거대한 파업 물결을 폭발시켰다는 것을 기억하게 만들자. 세계대전의 극악함이라는 생각 자체가 필연적으로 노동자계급의 분노와 반란을 불러일으킬 것임을 정부들이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미친 짓일 것이다.”[10]
 
물론, 1914년 제국주의 전쟁이 발발했을 때 사회민주주의 당들 대다수 지도부는 이 말에 맞서지 않았다.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무시하고 사회배외주의자가 되어 반동적인 자국 정부를 지지했다. 제국주의의 패배를 위해 투쟁하기는커녕, 오히려 노동자들을 지배계급의 반동적 전쟁 목표를 지지하도록 동원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1907년 대회 및 1912년 대회 결의문들이 보여주듯, 제2인터내셔널의 공식 노선을 배반하고, 전쟁을 이용해 부르주아지에 대한 계급투쟁을 전진시키고자 한 대중의 열망을 배신한 것은 바로 그들 자신이었다. 사회주의 노동자들의 반군국주의 · 반제국주의 정서를 반영한 이 결의문들은 레닌과 볼셰비키가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에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을 정립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되어주었다.
 

3. 1904-1914년 레닌의 패전주의 노선 정립 과정

볼셰비키가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을 완결적으로 정립한 것은 1914~15년이지만, 이미 1904~05년 러일전쟁 당시 이 전략의 핵심 요소들을 발전시켜 놓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레닌은 패전주의 노선을 세 단계에 걸쳐 체계화했다고 할 수 있다.
 
  러일 전쟁

첫 번째 단계는 레닌이 러일 전쟁에서 차르 러시아의 패배를 제창한 것이었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패배로 끝났고, 1차 러시아 혁명을 촉발시켰다. 이 1905년 혁명은 볼셰비키의 패전주의 노선의 옳음을 완전히 확인해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미 1905년 1월 혁명 봉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레닌은 전쟁과 혁명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러시아 노동자가 비자발적 참가자인 이 역사적인 전쟁의 위대한 혁명적 역할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11]
 
“군사적 재앙은 불가피하며, 그와 함께 불만과 불안, 분노도 필연적으로 열 배로 커질 것이다. 우리는 그 순간을 최대한의 에너지로 준비해야 한다. 그 순간, 지금 여기저기서 점점 더 빈번하게 반복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는 폭발 중 하나가 거대한 대중적 운동으로 발전할 것이다. 그 순간 프롤레타리아트는 일어나 봉기의 선두에 서서 전체 인민의 자유를 쟁취하고, 사회주의를 위한 공공연하고 광범위한 투쟁 ㅡ 유럽 전체의 경험으로 더욱 풍성해질 투쟁 ㅡ 을 노동자계급이 벌일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할 것이다.”[12]
 
그에 따라 볼셰비키는 패전주의 입장을 제창했다. 즉, ‘자’국 정부의 패배를 위한 투쟁에 앞장섰다.[13]
 
“러시아의 자유와 러시아 (그리고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이라는 대의는 매우 큰 정도로 전제정의 군사적 패배에 달려 있다. 이 대의는 유럽의 모든 기존 질서 수호자들의 마음에 공포를 안겨준 군사적 참패에 의해 크게 전진했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쟁에 맞서 끊임없는 반대 선동을 이어가야 하지만, 계급 지배가 존속하는 한 전쟁은 불가피하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조레스 식 평화에 관한 진부한 언사들은 억압받는 계급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 두 부르주아 민족 간의 전쟁, 부르주아적 전쟁에 책임이 없는 이 피억압 계급에게는, 양측 부르주아지 모두를 타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는 이 피억압 계급에게는, ‘평화로운’ 자본주의 착취 시기에도 인민의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이 피억압 계급에게는 말이다.... 이 식민 전쟁, 구 부르주아 세계와 신 부르주아 세계 간의 전쟁으로 전화된 이 식민 전쟁을 시작한 것은 러시아 전제정이지 러시아 인민이 아니다. 비참한 패배를 당한 것은 전제 정권이지 러시아 인민이 아니다. 러시아 인민은 전제정의 패배로 이득을 얻었다. 뤼순(旅順) 항복은 차리즘의 항복을 예고하는 서막이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한참 멀었지만, 전쟁을 지속하려는 매 조치는 러시아 인민 속에서의 불안과 불만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증폭시키고, 새로운 대 전쟁의 시간, 즉 전제정에 맞서는 인민의 전쟁, 자유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쟁의 시간을 앞당기고 있다.”[14]
 
  슈투트가르트 대회
 
1907년 제2인터내셔널 슈투트가르트 대회와 레닌이 이 대회의 교훈을 정리한 과정이 패전주의 노선 정립의 두 번째 단계를 이룬다. 이 대회에서 레닌은 러시아의 장에서 실험을 거친 패전주의 노선을 ㅡ 로자 룩셈부르크와 함께 ㅡ 국제화했다. 전쟁과 혁명의 연관성에 관한 앞서 인용한 문단들을 군국주의와 전쟁에 관한 결의안 초안의 수정안으로 작성한 것이 바로 이 두 정통 맑스주의자였다. 레닌은 대회 평가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바로 그 때문에 로자 룩셈부르크와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대표단은 베벨의 결의안에 대한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 수정안들은 (1) 군국주의가 계급 억압의 주된 무기라고 명시했고, (2) 청년층을 대상으로 한 선전의 필요성을 지적했으며, (3)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전쟁 발발을 막거나 이미 시작된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종식시키려 노력할 뿐만 아니라, 전쟁이 초래한 위기를 부르주아지의 타도를 앞당기는 데 이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5]
 
슈투트가르트 대회는 레닌에게도 중요한 경험이었는데, 왜냐하면 기회주의 파가 독일 (및 프랑스) 당 내에서 이미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이 대회가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다. 이는 식민주의에 대한 토론에서 드러났는데, 서유럽 대표단 대다수가 “사회주의적” 식민주의를 지지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쟁에 대한 토론에서도 드러났는데, 독일 사회민주주의의 역사적인 지도자 아우구스트 베벨을 포함한 주요 대표자들이 외국의 침략에 맞서 ‘우리나라’를, ‘조국’을, 즉 ‘자’국 제국주의 정부를 방어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대회 1년 후, 레닌은 군국주의에 관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적어놓았다.
 
“전쟁이 선포될 경우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대해, 베벨과 폴마르가 이끄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 대다수는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침략에 맞서 나라를 방어해야 하며, ‘방어적’ 전쟁에 참가할 의무가 있다는 견해를 완고하게 고수하고 있다. 이 입장에 근거하여 폴마르는 슈투트가르트 대회에서 "인류에 대한 우리의 모든 사랑이 우리가 훌륭한 독일인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고 선언했고, 사회민주당 의원 노스케는 제국의회에서 독일에 대한 전쟁 시에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정당들에 뒤처져있지 않을 것이며 어깨에 소총을 메고 나설 것”이라고 선포했다. 이로부터 노스케가 “우리는 독일이 가능한 한 많이 무장하기를 원한다”고 선언하기까지는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되었다.... 이 문제에서는 (‘애국주의’에 대해 논의할 때와 마찬가지로), 사회민주주의자들이 국제관계의 특정 사건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지 판단하고 결정하는 유일한 기준이 되는 것은 전쟁이 방어적 성격이냐 공격적 성격이냐 가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이익, 또는 — 더 정확히 말하자면 —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운동의 이익이다. 이는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다.”[16]
 
그리하여 볼셰비키에게 슈투트가르트 대회는 패전주의의 기본 원칙이 국제화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와 함께 볼셰비키는 또 이 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어느 측이 전쟁을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전쟁에 관련된 국가들의 계급적 성격이 무엇이며 그들의 전쟁 목표가 무엇이냐가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을 인식했다.

  1차 세계대전 개전 당초

레닌이 패전주의 노선을 정립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 번째 단계이자 최종 단계가 된 것이 1차 세계대전의 시작이다. 1914년 8월 강대국들 간의 전쟁 첫 며칠에 이미 레닌은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에 대항하는 혁명적 강령을 심화, 총화했다. 볼셰비키 G. L. 슈클로프스키의 회고록에 따르면, 레닌은 9월 초 스위스에 도착한 순간 (레닌은 전쟁 발발 직후 오스트리아 당국에 의해 체포되었으나, 2주 뒤에 석방되어 추방됐다)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제국주의 전쟁 때에 자국의 패배를 바라지 않는 자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17]
 
이 언명은 이미 레닌 접근법의 핵심 사상을 보여준다. 즉, 혁명가들은 계급투쟁 방법을 통해 제국주의전쟁에 맞선 투쟁을 진전시키고, 전쟁이 초래한 위기를 자국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타도를 위해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에 대한 명확한 입장이 여기서 나온다.
 
“현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승리를 주창하는 자들과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불승불패)’ 슬로건을 주창하는 자들 모두 똑같이 사회배외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혁명적 계급은 반동적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군사적 패배는 반드시 정부의 타도를 용이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정부에 의해 시작된 전쟁은 반드시 정부 간의 전쟁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고, 또한 그처럼 끝나기를 바라는 부르주아만이, 모든 교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모든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하고 이 바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엉뚱한’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생각이야말로 모든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평소의 생각과 일치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한 우리의 활동과 합치한다."[18]
 
사회주의자는 스스로를 제국주의 국가에 (‘자’국 제국주의 국가든 타국 제국주의 국가든) 결부시키거나 감정이입을 하거나 등의 어떤 식으로든 스스로를 제국주의 국가와 일체화/동일시해서는 안 되며, 제국주의 국가의 패배를 노동자계급의 패배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레닌은 분명히 했다. 전쟁 중에 쓴 초기 글 중 하나에서, 레닌은 1차 세계대전 개전 시에 패전주의 입장을 선언한 이탈리아 맑스주의자들을 긍정적으로 인용하며, 유일하게 정당한 전쟁은 피억압자들이 권력을 잡기 위한 전쟁이라고 천명했다. “‘모든 피억압자의 성스런 전쟁, 자기 조국 정복을 위한 성전!’을 우리는 언제나 찬성한다.”[19]
 
이 접근법은 사회주의혁명 투쟁과 결합되었다. 따라서 볼셰비키의 핵심 슬로건은 “내란”이었다.
 
“현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단 하나의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슬로건이다. 코뮌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고 바젤 결의(1912년)에서 그 윤곽이 제시된 바, 이 슬로건은 고도로 발달한 부르주아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제국주의 전쟁의 모든 조건들이 지시하는 결론이다. 내란으로의 그러한 전화가 주어진 시점에서 아무리 어려워 보일지라도 사회주의자는 전쟁이 사실로 된 이상, 이러한 방향으로의 체계적이고 집요하고 흔들림 없는 준비작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20]
 
레닌은 러시아뿐만 아니라 제국주의전쟁에 들어간 모든 교전국에 대해 이 전략을 제창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끓어오르는 지점에까지 끌어올려진 국내 투쟁’이 바로 내란이다. 콜프가 좌파의 전술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 것은 옳다. 또 그가 좌파의 전술은 독일의 ‘군사적 약화’를 의미한다고, 즉 독일의 패전을 바라고 이 패전에 일조하겠다는 뜻이라고, 다시 말해 좌파의 전술은 패전주의 전술이라고 말한 것도 옳다. 콜프가 틀린 점은 단지 — 단지! — 이 좌파 전술의 국제적 성격을 보길 거부한다는 점뿐이다. 왜 그가 틀렸냐 하면, “국내 투쟁을 끓어오르는 지점에까지 끌어올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이와 관련하여, 이를 수단으로 하여) 모든 교전국에서 제국주의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 전체의 핵심이다.”[21]
 
“우리가 대중에게 ‘해당 나라의 군사적 입지와 상관없이’ 정부에 맞서 싸울 것을 호소한다면, 우리는 이를 통해 현 전쟁에서 ‘조국을 방어하는 것’을 원칙으로 받아들이길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르주아 정부들 각각의 패배를 혁명으로 전화시키기 위해 부르주아 정부들 모두가 패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22]
 
볼셰비키는 이러한 전략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구체화했다.
 
“다음 사항들은 현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첫 단계 방침들이다. 1) 전쟁공채에 대한 찬성투표를 절대 거부하고, 부르주아 정부에서 사임한다. 2) 계급 휴전 (국내평화 ; bloc national, Burgfrieden) 정책과 완전히 단절한다. 3) 정부와 부르주아지가 계엄령을 도입하여 헌법상의 자유를 폐지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 비합법 조직을 만든다. 4) 참호에서, 그리고 전장 일반에서 교전국 병사 간의 우애를 지지한다. 5) 프롤레타리아트 일반에 의한 모든 종류의 혁명적 대중행동을 지지한다.”[23]
 
볼셰비키는 필연적으로 제국주의전쟁이 계급투쟁 전진을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객관적으로 폭발적인 정세를 촉발한다는 사실을 십분 인식하고 있었다.
 
“전쟁은 의심할 바 없이 가장 첨예한 위기를 낳았으며, 믿기 힘들 정도로 대중의 고통을 증대시켰다. 이 전쟁의 반동적 성격, 그리고 모든 나라 부르주아지가 그들의 약탈적 목표를 ‘민족’ 이데올로기로써 은폐하기 위해 쏟아낸 파렴치한 거짓말들은 객관적으로 혁명적인 상황의 토대 위에서 필연적으로 대중들 사이에 혁명적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대중들로 하여금 이러한 분위기를 의식케 하고, 이 분위기를 심화시키고 구체적 표현으로 정식화시키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이 임무는 제국주의 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라는 슬로건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표현된다. 그리고 전쟁 중에 모든 일관되게 수행되는 계급투쟁과 모든 진지하게 행해지는 '대중행동' 전술은 필연적으로 이 슬로건에 이르게 된다. 강력한 혁명운동이 강대국들의 첫 번째 전쟁 중에 불타오를지, 아니면 두 번째 전쟁 중에 불타오를지, 전쟁 중일지 아니면 후일지 예언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어느 경우든, 바로 이러한 방향으로 체계적이고 확고하게 작업하는 것이 우리의 본연의 임무다.”[24]
 
 

4. 혁명적 패전주의의 세 기둥

 
이제 레닌 패전주의의 3대 슬로건, 즉 ‘주적은 국내에 있다’/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의 의미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제부터 보겠지만, 제국주의 전쟁 (및 반동적 전쟁)에서 혁명적 강령을 압축 표현하는 이 세 슬로건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유기적 전체를 이룬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애초, 이 슬로건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볼셰비키가 만든 것이 아니라, 1915년 5월 독일 혁명가 칼 리프크네히트가 이탈리아의 전쟁 참전에 대해 쓴 유인물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다.[25] 그러나 이 슬로건은 곧 볼셰비키를 비롯한 치머발트 좌파 ㅡ 반전운동에서 볼셰비키의 국제 동맹 세력들인 제2인터내셔널 각국 당의 좌파들로 구성된 ㅡ 에 의해 채택됐다. 이 슬로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 이 슬로건은 제국주의적 배외주의 (쇼비니즘)에 철두철미 반대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부르주아지와 공통의 조국을 가진다는 관념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표하는 슬로건이다. 노동자는 타 민족의 노동자 형제자매보다 자국의 지배계급과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 민족주의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은 이와 같이 노동자를 혼란으로 몰아가는 배외주의를 정면으로 돌파하여 노동자의 시선을 자국 지배계급한테로 돌리며, 프롤레타리아트의 국경을 넘는 연대의 토대를 마련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슬로건은 계급을 초월한 조국의 존재라는 근본 사상을 공격하며, 피억압자의 조국과 억압자의 조국, 말하자면 ‘두 개의 조국’이 존재함을 지적한다. 조국이 현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저들의 것’, 즉 부르주아지의 조국인 이유다. 노동자는 먼저 지배계급을 타도하고 권력을 잡아야 한다. 그 때 비로소, 방어할 가치가 있는 노동자의 조국이 될 것이다.[26] 그러나 오늘 “조국”은 제국주의 국가를 뜻한다. 노동자계급의 적인 제국주의 국가 말이다.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첫 번째 슬로건에서 두 번째 슬로건이 나온다.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슬로건이다. 주적이 국내에 있다면, 그 주적의 패전은 매우 환영할 만한 일이다. 왜인가? 패전은 지배계급을 약화시키고, 그 대열을 혼란에 빠뜨리고 분열을 일으키며, 대중의 눈앞에서 그들의 위신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노동자계급 해방투쟁의 조건을 향상시켜주는 이유다. 역사가 반복해서 보여주었듯이, 전쟁에서 지배계급의 패배는 혁명적 정세와 정부 전복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나아가 이 슬로건이 제국주의적 배외주의와의 근본적인 단절인 이유는 “외국 적”에 맞서 제국주의 조국을 방어하길 거부하기 때문이다. “외국”에 맞서 제국주의 조국을 방어하려는 어떠한 바람도, 그 어떤 조국방어 욕망도 사회배외주의에 기회주의적으로 영합하는 것이다.
 
또한 이 슬로건은 제국주의 조국이 “위험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사회주의자는 계급적 적에게 어떠한 보호도 제공하길 거부한다는 발본적 성명을 담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슬로건은 노동자계급의 정치적 교육을 위한 중요한 도구다.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엥겔스와 레닌은 19세기 초의 프로이센 군사 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를 높이 평가했는데, 그는 전쟁이 정치와 별개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의 일부임을 강조한 <<전쟁론>>의 저자다. 그는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일 뿐이다”라는 유명한 말로 모든 군사적 충돌의 본질을 요약했다.[27]
 
그리하여 전쟁의 본질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며, 주어진 전쟁의 성격은 주도적 행위자들 및 그 뒤에 있는 계급들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분석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전쟁이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정책의 계속이라면, 제국주의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제국주의 정치/정책의 계속이다. 따라서 제국주의 국가의 부르주아지가 주도하는 전쟁은 언제나 제국주의 전쟁이다. 즉 노동자계급이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으로 단호히 반대해야 하는 전쟁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평화, 즉 경쟁하는 제국주의 열강의 지배자들 간에 체결된 평화도 다른 수단에 의한 제국주의 정치/정책의 계속이다. 노동자계급은 결코 그러한 제국주의 평화를 제창하거나 지지해서는 안 된다.
 
전쟁은 정치/정책의 군사화를 의미한다. 전쟁이 부르주아지의 정치의 군사화라면, 노동자계급도 자신의 정치/정책을 군사화해야 한다. 이는 계급투쟁이 군사적 형태를 취해야 함을 의미한다.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슬로건은 바로 이 사실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이 슬로건은 “프롤레타리아 군사주의”(트로츠키)의 정신을 표현한다. 지배계급이 결코 자발적으로 권력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노동자계급은 평화를 갈망하는 것이 아니라 내란을 뜻하는 혁명을 갈망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5. 각종 반론에 대한 응답


앞서 언급했듯이, 1차 세계대전 당시 볼셰비키의 패전주의 정책은 치머발트 운동 내에서 작은 소수에 불과했고, 심지어는 치머발트 운동 내 좌파적 흐름 속에서도 처음에는 다수자가 아니었다. (‘치머발트’는 제2인터내셔널 내 반전파 사회주의자들이 1915년 가을 첫 회의를 개최한 스위스 베른 주의 마을 이름이다). 제국주의전쟁에 반대하는 대부분의 좌파개량주의자들 및 중도주의자들에게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슬로건과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슬로건은 지나치게 급진적이고 “종파주의적”으로 들렸다. 볼셰비키는 반전 사회주의자들 속에서 한 동안 소수파로 남아 있었으나, 마침내 자신의 강령을 중심으로 국제적 결집을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치머발트 좌파였다.[28]
 
  경쟁국의 승리를 지지한다?
 
볼셰비키의 반전 강령에 대한 가장 초기의 비판 중 하나는, 사회주의자가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라고 규정한다면, 이는 자동으로 경쟁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를 지지한다는 뜻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에서 볼셰비키의 패전주의 강령은 결코 러시아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참전 모든 국가에 적용된 것이었다. 아주 일찍이 1914년 11월 1일에 이미 발표된 볼셰비키의 첫 번째 선언문에서는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가 모든 참전국에 적용되는 전략·전술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현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단 하나의 올바른 프롤레타리아 슬로건이다. 코뮌의 경험으로부터 도출되고 바젤 결의(1912년)에서 그 윤곽이 제시된 바, 이 슬로건은 고도로 발달한 부르주아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제국주의전쟁의 모든 조건들이 지시하는 결론이다. 내란으로의 그러한 전화가 주어진 시점에서 아무리 어려워 보일지라도 사회주의자는 전쟁이 사실로 된 이상, 이러한 방향으로의 체계적이고 집요하고 흔들림 없는 준비 작업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29]
 
1차 세계대전에서 볼셰비키가 러시아의 패배를 제창한 것이 러시아가 패배하는 편이 상대방 독일이 패배하는 것에 비해 더 낫다고 여겨서인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의미였다.
 
a) 러시아의 혁명가들에게 러시아의 패배는 러시아의 승리나 교착상태보다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패전은 러시아 혁명가들의 국내의 주적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b) 반동적 전쟁에 참전하고 있는 모든 제국주의 나라들의 혁명가들은 ‘자’국 지배계급의 패배를 제창해야 한다.
 
c) 혁명가들은 ‘자’국 제국주의 국가와 근본적인 계급적 대립관계에 서 있으며, 전쟁에서 ‘자’국 제국주의 국가가 패배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할 정도로 ‘자’국 제국주의 국가를 단호하게 배격한다. 이는 제국주의 조국의 전쟁 수행을 지지 지원할 가능성이 있는 그 어떤 조치에 대해서도 패전주의적 입장에서 반대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패전주의 전술은 참전 중인 모든 제국주의 나라의 맑스주의자가 적용해야 하는 전술이었던 것이다. 패전주의 전술은 어느 제국주의 국가가 승리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에 대한 맑스주의자의 글로벌 판단 같은 것이 아니다. 반대로 패전주의 전술은 맑스주의자들이 각각의 모든 제국주의 나라의 지배계급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타도하기 위해서 투쟁하며, 그러한 과정을 진전시키기 위해 ‘자기’ 조국의 패배를 환영한다는 방침인 것이다. 볼셰비키는 전쟁 중 발표한 일련의 성명에서 이를 분명히 했다.
 
“현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승리를 주창하는 자들과 ‘승리도 아니고, 패배도 아니다 (불승불패)’ 슬로건을 주창하는 자들 모두 똑같이 사회배외주의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혁명적 계급은 반동적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랄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군사적 패배는 반드시 정부의 타도를 용이하게 하리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 정부에 의해 시작된 전쟁은 반드시 정부 간의 전쟁으로 끝나야 한다고 믿고, 또한 그처럼 끝나기를 바라는 부르주아만이, 모든 교전국의 사회주의자들이 모든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하고 이 바람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을 ‘엉뚱한’ ‘터무니없는’ 짓이라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이런 생각이야말로 모든 계급적으로 각성한 노동자들이 품고 있는 평소의 생각과 일치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한 우리의 활동과 합치한다.“[30]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핵심이다. ‘끓어오르는 지점에까지 끌어올려진 국내 투쟁’이 바로 내란이다. 콜프가 좌파의 전술이 이런 결과를 낳는다고 말한 것은 옳다. 또 그가 좌파의 전술은 독일의 ‘군사적 약화’를 의미한다고, 즉 독일의 패전을 바라고 이 패전에 일조하겠다는 뜻이라고, 다시 말해 좌파의 전술은 패전주의 전술이라고 말한 것도 옳다. 콜프가 틀린 점은 단지 — 단지! — 이 좌파 전술의 국제적 성격을 보길 거부한다는 점뿐이다. 왜 그가 틀렸냐 하면, “국내 투쟁을 끓어오르는 지점에까지 끌어올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이를 통해, 이와 관련하여, 이를 수단으로 하여) 모든 교전국에서 제국주의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것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문제 전체의 핵심이다.”[31]
 
1915/16년 패전주의를 문제 삼아 레닌을 비판한 자들 가운데는 트로츠키도 있었는데, 그는 당시 아직 중도주의적 혼란의 모든 요소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트로츠키는 자기 말에 도취되어 단순한 문제에서 완전히 방향을 잃었다. 러시아의 패배를 바란다는 것이 그에게는 독일의 승리를 바란다는 의미로 보이는가 보다. (부크보예드와 셈코프스키는 트로츠키와 공유하고 있는 ‘생각’ — 아니, 생각의 짧음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 을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했다). 트로츠키는 이를 ‘사회애국주의의 방법론’이라고 간주한다! 자신의 머리로 사고할 수 없는 사람을 돕기 위해 베른 결의(<<사회민주주의자>> 40호)가 명확히 천명한 명제를 환기해 보자.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지금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야 한다. 부크보예드와 트로츠키는 이 진실을 회피하고자 했지만, 셈코프스키 (부르주아적 지혜를 순진하리만치 솔직하게 그대로 옮기는 덕분에 노동자계급에게 어느 누구보다도 더 유용한 기회주의자)는 다음과 같이 말해버렸다. ‘이것은 바보 같은 이야기다. 왜냐하면 독일이든 러시아든 둘 중에 하나는 승리할 것이기 때문이다.’”[32]
 
그 시기 레닌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였던 지노비예프가 볼셰비키의 이론지를 통해 이들의 비판에 답한 것이 있는데, 그는 “볼셰비키는 ‘범패전주의자’다, 즉 한 제국주의 나라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서 패전주의자다”라고 반박한 것이다!
 
“그러나 모든 나라의 사회주의자가 자국 정부의 패전을 바란다면, 누가 승리할까? 그것은 일종의 ‘범패전주의’로 이어질 뿐일 것이다! 이 주장이 우리를 향해 조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1914~1916년의 약탈적 전쟁에서 악랄한 제국주의 괴수들 중 어느 측이 거꾸러지든,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이 진입하는 파열구가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의 혁명적 사회주의자가 주장해야 할 바다. 따라서 그는 어떻게 해서도 ‘범패전주의자’가 되지 않을 수가 없다.”[33]
 
  전도된 사회제국주의자들

레닌의 패전주의 개념은 다른 제국주의 국가를 지지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지만, 반동적 변종의 ‘패전주의’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기본적으로 애국주의는 계급적 이익과 관련이 있다. 제국주의 나라의 노동자계급은 ‘자신의’ 조국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채로 있는 한 애국주의적일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권력을 잃고 나면 그 때는, 지배계급은 애국주의적이기를 멈추고 민족의 적들을 지지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외국 군주국 연합 진영 편에 서서 이 군주국들이 자신을 다시 권력과 특권으로 되돌려주기를 바랐던 귀족들을 떠올려보라. 또 1917년 10월 혁명 이후 제국주의 열강들이 신생 소련을 파괴하기 위해 침공했을 때 이 제국주의 열강들을 지지한 ㅡ 개량주의 멘셰비키와 “사회주의혁명가당”(SR; 전 나로드니키)을 거느리고서 ㅡ 러시아 부르주아지도 떠올려보라.
 
1930년대에 프랑스 부르주아지 (및 중간계급)의 파시스트 분파들은 히틀러가 자국을 침공하기를 바랐고, 실제로 나치 독일이 침공하자 1940-44년 나치 점령 통치를 지지했다. 반면, 독일·이탈리아의 사민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은 파시스트들에게 축출당하고 나서 패전주의자가 되었는데. 이들은 영국·프랑스 제국주의의 지지자로 변신하여 자국 독일·이탈리아가 영국 프랑스에게 패배하기를 바란 것이다. 제4인터내셔널은 이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망명한 독일 스탈린주의자들은 전도된 사회애국주의자가 되어 베르사유 조약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수호자에서 이 조약이 만들어낸 현상 유지의 방어자로 변신했다. 독일 스탈린주의자들의 현재 입장으로 미루어 볼 때, 독일에서 파시스트 독재가 다른 유형의 부르주아 정권으로 대체되는 즉시 그들은 진짜배기 사회애국주의자로 변신할 것이다.”[34]
 
오늘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목격한다. 미국과 유럽의 초(超)우익 세력은 러시아를 “보수적 가치”의 요람으로 여기며, 조국을 상대로 요람 러시아를 지지한다. 마찬가지로 서방 나라들에는 중국·러시아를 “사회주의” 국가, “반제” 국가로 보는 각종 스탈린주의 세력 및 좌파포퓰리즘 세력이 존재한다. 이들은 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 본질을 부인하며 ‘주적은 국내에 있다’ 슬로건을 내세워 제국주의 세계 재분할 투쟁에서 중국·러시아를 지지하는 것을 정당화한다.[35] 그들 중 좀 더 시니컬한 자들은 중국·러시아의 제국주의 성격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나의 적의 적은 나의 친구”라는 논리를 들어 중·러 지지를 정당화한다.
 
어떤 면에서 이런 “사회주의” 세력들은 패전주의자다. 그러나 그들은 반제국주의적 패전주의자는 아니다. 그들은 ‘자’국 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 다른 제국주의 국가에 동조한다. 이것은 조금도 나을 게 없다! 이 사람들은 혁명적 패전주의자가 아니라 친제국주의적 ‘패전주의자’ 또는 전도된 사회제국주의자다. 진정한 맑스주의자들은 ‘통상적인’ 사회배외주의자들 못지않게 이러한 세력들과도 정력적으로 싸워야 한다.
 
  사보타주를 통해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패전을 촉진한다?

패전주의 전술에 대한 또 다른 비판에 대해서 살펴보자. 볼셰비키가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전을 촉진하기 위해 사보타주 수단을 제창한다는 비판이다. 이 글 서론에서 설명했듯이, 두 가지 형태의 혁명적 패전주의가 존재한다. 양측 모두에서 제국주의적 전쟁인 경우의 전술과, 한 진영이 진보적 전쟁, 정당한 민족방어 전쟁을 벌이는 전쟁인 경우의 전술이다.
 
첫 번째 경우, 즉 양측 모두에서 반동적인 전쟁인 경우, 맑스주의자는 ‘자’국 부르주아지에게 미칠 부정적인 결과와 상관없이 계급투쟁 노선을 밀고 나가며, 양 진영 병사들 간의 친교, 형제적 유대를 제창한다. 그러나 사보타주 등과 같이 상대방 반동 진영을 위한 직접적인 실제적 원조 조치를 취하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다. 레닌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명시적으로 말했다.
 
“전시에 자국 정부에 대한 혁명적 행동을 한다는 것은 단지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는 것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러한 패배를 촉진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당연하지 않은가. (‘통찰력 있는 독자’는 알겠지만, 이것은 ‘다리를 폭파 한다’든가, 전쟁 산업에서 불발 파업을 조직한다든가 하여 일반적으로 정부가 혁명가들을 패퇴시키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36]
 
한 진영이 반동적인 적에 맞서 진보적인 해방전쟁을 벌이는 분쟁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이러한 경우, 반동 진영에서 활동하는 맑스주의자는 진보 진영을 실제적으로 원조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할 의무가 있다.[37]

  혁명적 방어주의는 “진영주의”로 이어지는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설을 최근 발표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이 문제를 간략히만 다루겠다.[38] 그 논설에서 언급했듯이, 최근 들어 유행하게 된 “진영주의”라는 범주는 충돌에서 한 진영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처럼 암시한다는 점에서 다소 불행한 용어다. 당연히 이는 당치 않은 얘기인데, 맑스주의자는 진보적 전쟁을 벌이는 진영을 지지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사회주의자는 나치 독일에 맞서 소련을,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중국을 방어했다. 최근 시점으로 이야기하면, 미국-시온주의의 침략에 맞서 중동의 피억압 인민 편을 드는 것, 또는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 체첸과 우크라이나 편을 드는 것이 사회주의자의 의무다.
 
“진영주의” 배격이 유일하게 옳은 경우는 1, 2차 세계대전 당시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돌에서나, 현재 미국과 중국 간의 충돌, 유럽연합과 러시아 간의 충돌처럼 양측 모두 반동적인 성격을 가진 충돌에서다. 양측 모두 반동적인 자본주의 반식민지들 간의 충돌도 같은 경우다.
 
동시에, 군사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언제나 맑스주의자는 주어진 분쟁에서 진보 진영 (즉 반제 진영, 해방투쟁 진영)의 편을 들어야 하며, 적을 패퇴시키기 위한 이 진보 진영의 실제적·군사적 노력을 지지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러한 분쟁에서 팔레스타인 저항군, 이란, 우크라이나 등을 방어하는, 또는 이들의 군사적 승리를 지지하는 슬로건을 내거는 이유다. 동시에 언제나 우리는 그러한 투쟁들의 지도부 ㅡ 그 지도부가 하마스든, 물라 성직자 정권이든, 젤렌스키든 ㅡ 에 정치적 지지를 주길 거부한다.
 
종종 반대론자들은 RCIT가 군사적 지지와 정치적 지지 사이에 그와 같은 구분을 둔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이는 아주 간단명료한 문제다. 혁명적 지도력 위기를 고려할 때, 오늘날 노동자계급 · 피억압인민의 거의 모든 투쟁은 비혁명적 세력에 의해 이끌리고 있다. 규모가 큰 파업들은 보통 개량주의 노조관료가, 무장 해방투쟁은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 · 이슬람주의자가, 반식민지 나라의 군사적 방어는 부르주아 정권이 각각 투쟁의 통제권을 쥐고 있다. 사회주의자는 이 세력 어디도 신뢰해서는 안 되며, 그들의 잘못된 전략, 그들의 편협한 이해관계 등에 대해 대중에게 경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이 노동자 대중의/ 피억압 인민의/ 반식민지 나라의 승리로 끝나든, 패배로 끝나든 상관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눈 먼 종파주의자뿐일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직장 폐쇄를 막아내거나 정부를 강제하여 세금 인상을 철회하도록 해낼 수 있다면, 대중이 독재자를 타도하거나 적어도 일부 민주개혁을 관철해낼 수 있다면, 반식민지 나라가 제국주의 점령을 피하거나 제재를 해제하도록 강제해낼 수 있다면, 이 모든 개량/개혁의 쟁취는 사회주의자가 강력히 환영하는 중요한 승리들이다. 따라서 비록 비혁명적 지도부 하에서라 할지라도 이러한 투쟁에 대한 지지는 정당할 뿐만 아니라 의무다. 트로츠키는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창립 문서인 <이행 강령>에서 이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나 세계의 모든 나라가 제국주의 나라인 것은 아니다. 이와 반대로 대다수 나라들은 제국주의의 피해자다. 식민지 또는 반(半)식민지 나라들의 일부는 틀림없이 전쟁을 노예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삼을 것이다. 이들의 전쟁은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라 해방 전쟁이다. 억압국에 대항하는 피억압국의 전쟁에서 피억압국을 돕는 것이 국제 프롤레타리아아트의 의무다. 같은 의무가 소련에도 적용된다. 그밖에도 전쟁 전이나 전쟁 중에 노동자 정부가 등장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노동자 국가나 식민지 나라와의 분쟁에서 제국주의 정부의 패배가 [국내 계급휴전에 힘입은 승리보다] 해악이 덜하다.
 
제국주의 나라의 노동자들은 반제국주의 나라를 도울 때 자국 정부를 통할 수는 없다. 해당 시점에 두 나라 간의 외교·군사 관계가 어떻든 간에 말이다. 만약 그 정부들이 서로 간에 일시적인, 그리고 상황의 성격상 신뢰할 수 없는 동맹관계에 있다면, 제국주의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계속해서 자국 정부에 대한 계급적 반대를 이어나가며 자신의 방법을 통해 그 비제국주의 "동맹국"을 지지한다. 자신의 방법, 즉 국제 계급투쟁의 방법을 통해. (그들의 [노동자 국가와 식민지 나라의] 적국뿐만 아니라 불성실한 동맹국 둘 다를 타격하고 그 둘 다에 맞서 노동자 국가와 식민지 나라를 지지하는 선동 행동을 통해). [이 마지막 단락의 번역 문제에 대해 아래 각주에 있는 우리의 설명을 참조하시오.]
 
전쟁에서 식민지 나라나 소련을 지지할 경우에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식민지 나라의 부르주아 정부나, 소련의 테르미도르 관료와는 조금도 연대하지 않는다.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들로부터 완전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정의의 전쟁과 진보적 전쟁에서 원조를 제공함으로써,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식민지와 소련의 노동자들의 동조를 얻고, 거기서 제4인터내셔널의 권위와 영향력을 강화하며, 식민지 나라의 부르주아 정부와 소련의 반동 관료집단을 타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을 높인다.”[39]
 
  레닌은 나중에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을 폐기했는가?
 
할 드레이퍼부터 테드 그란트, 앨런 우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수정주의자들은 레닌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을 폐기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답변 문서들 속에서 여러 차례 반박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아주 간략하게만 다루겠다.[40]
 
우리가 그 문서들에서 보여주었듯이, 수정주의자들의 이러한 주장은 완전한 헛소리로, 자국 내 기회주의적 사회애국주의 세력들과 화해하고픈 바람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할 드레이퍼와 같은 인물들이 1950년대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온주의와 제3진영 개량주의에 기회주의적으로 영합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드레이퍼는 제국주의에 맞서 소련을 방어하길 거부하며 1940년 제4인터내셔널에서 분리해 나간 막스 샤흐트만이 이끄는 그룹의 일원이었다. 또한 그란트와 우즈의 조직 (CWI/IMT)이 한 세기 이상 사민주의 정당과 부르주아 포퓰리즘 정당 내에서 시간을 보낸 것도 우연이 아니다.[41]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레닌은 1917년 이후에도 패전주의 노선을 견지했으며, 10월 혁명을 (그리고 그밖에 1차 세계대전 말 유럽의 혁명적 정세들을) 패전주의 전술과 제국주의전쟁의 내란 전화 슬로건의 옳음을 확인해주는 사례로 들었다. <<‘좌’익 공산주의, 소아병>>에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에 서명하여 독일 제국주의자들과의 타협에 들어간 당은 1914년 말 이래 줄곧 실천 속에서 자신의 국제주의를 발전시켜 왔다. 당은 차르 군주제의 패배를 요구하고, 두 제국주의 강도 간의 전쟁에서 ‘조국 방어’를 비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42]
 
브레스트-리토프스크 평화협상 당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전쟁에 반대하는 독일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이제 ‘패전주의자’가 되어 우리에게 독일 제국주의에 굴복하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패전주의를 오직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대해서만 인정해 왔으며, 타국 제국주의에 대한 승리, ‘우방’ 제국주의와의 공식적 또는 실제적 동맹을 통해 이룬 승리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그리고 일반적으로 잘못된 방법이라고 언제나 반대해 왔다.”[43]
 
그리고 1922년 12월 국제 반전 대회에 나가는 공산당 대표단에게 지침을 제시한, 그의 마지막 글 중 하나에서는 다음과 같이 제안했다.
 
“무엇보다도, ‘조국 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와 관련하여 ‘패전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전쟁에 참가하는 모든 혁명가들이 장기적인 반전 활동을 이어갈 기존 비합법 조직을 보존하고 새로운 비합법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 전쟁에 맞서 싸우는 단 하나 가능한 방법임을 설명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을 전면에 내세워야 합니다.”[44]
 
나아가, 아래에서 보겠지만, 1920년대에 스탈린주의 반혁명에 맞선 좌익반대파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을 이끈 레닌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들은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패전주의 전략전술을 명시적으로 옹호했다. 1930년대와 1940년대에 트로츠키의 제4인터내셔널도 그와 같이 하면서 패전주의 노선을 이어갔다.

  평화주의 대 내란 노선
 
패전주의 노선에 대해 제기된 또 다른 비판은, 이 노선이 대중의 소망에 훨씬 더 잘 부합할 슬로건인 평화라는 사상을 제기하기보다는 제국주의전쟁에 맞선 “군사주의” 전략을 제창한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완전히 공상적이다. 평화를 원하는가? 좋다, 어느 평화인가? 반동 정부나 외국 점령 하의 평화인가? 아니, 정의롭고 민주적인 평화를 원하는가? 그러나 이는 대중이 혁명적 계급투쟁을 통해 전쟁몰이꾼들을 끌어내릴 때에만 가능하지 않은가. 이는 대중이 총구를 지배계급을 향해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달리 말해서 전쟁 시기에 제국주의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레닌과 지노비예프는 이 문제에 대해 소책자 <<사회주의와 전쟁>>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평화를 애호하는 대중의 감정은 전쟁의 반동적 성격에 대한 초보적 항의와 분노를 종종 표현한다. 이러한 감정을 활용하는 것이 모든 사회민주주의자들의 의무이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이러한 지반 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운동과 모든 시위에 가장 열심히 참여할 것이지만, 혁명적 운동이 부재한 상태에서 병합 없는 평화가, 민족들에 대한 억압 없는 평화가, 약탈 없는 평화가, 현 정부들과 지배계급들 사이에 새로운 전쟁의 조짐 없는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용인함으로써 인민을 기만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식의 인민 기만은 교전국 정부들의 비밀외교에 놀아나는 것일 뿐이며, 그들의 반혁명적 계획을 용이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항구적이고 민주적인 평화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든 정부와 부르주아지에 대한 내란을 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45]
 
평화를 제창하면서 그 평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수단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평화 요구는 공상적일 뿐만 아니라 지배계급에 봉사하는 것이다. 정부들은 자신들도 평화 찬성이라고 말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자신들의 조건 하에서의 평화, 자신들의 지배가 계속되는 상태에서의 평화 말이다. 병사들에게 총구를 돌리라고 요구하지 않는 평화 선동, 대중에게 봉기하여 정부를 타도하라고 촉구하지 않는 평화 선동은, 지배계급이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려는 시도에 응원부대로 봉사하는 것에 불과하다.
 
평화를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봉기와 연결 짓지 않고 평화를 요구하는 것은 객관적으로 지배계급에게 전쟁을 끝내고 그들의 지배를 계속하라는 호소다. 즉 이 모든 참혹한 전쟁과 파괴의 원인인 그 동일한 체제, 자본주의 지배 체제를 계속 유지해 달라고 호소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러한 평화주의적 선전은 체제 지속에 복무한다. 그 본성상 평화로울 수 없는, 필연적으로 더 많은 전쟁을 낳는 체제, 그러한 체제의 계속을 위해 봉사하는 선전인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평화에 대한 그러한 개량주의적 선전은 객관적으로 노동자계급을 부르주아지 내 ‘평화주의’적 분파 및 (적어도 일시적으로는) ‘평화주의’적 강대국과의 동맹으로 유도한다. 목표가 "어떤 조건 하에서든 평화”, “우선 평화”라면, 그러한 바람을 공유하는 지배계급 내 세력을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혁명가들은 투쟁 없이는 노동자계급이 결코 목표를 이룰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할 책임이 있다. 전쟁 시기에는, 계급투쟁은 궁극적으로 군사적 형태를 취해야 한다. 즉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한 내란의 형태를 취해야 된다. 지노비예프는 한때 이 사상을 아주 명확하게 다음과 같이 정식화 한 바 있다.
 
“‘우리 슬로건의 핵심에 위치해 있는 평화 사상’?! 이것이 이제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제국주의 전쟁이 터진 뒤에 말이다! 이게 당신들이 사건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평화 사상이 아니라 내란 사상’, 이것이 우리가 그런 보잘 것 없는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이들 위대한 유토피아 공상가들에게 외치고 싶은 유혹이다. 시민 아들러여! 평화 사상이 아니라 내란 사상, 이것이 우리 강령의 중심 포인트다.
  문제는 우리가 전쟁 전에 평화 사상을 충분히 전도하는 데 실패했다는 데 있지 않다. 문제는 우리가 계급투쟁 사상, 내란 사상을 충분히 또는 진실로 충분히 전도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왜냐하면 전시에 내란을 인정하지 않고서 계급투쟁을 인정한다는 것은 공허한 수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위선이다. 그것은 노동자들을 속이는 것이다.”[46]
 
  할 드레이퍼가 만들어낸 “레닌의 혼란”이라는 신화

앞서 언급한 할 드레이퍼는 볼셰비키가 1916년 이후 패전주의 전략을 버렸다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 중 하나다. 나아가 드레이퍼는 그 전략 자체가 혼란과 착각에 기초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1953/54년에 발표한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 신화”라는 제목의 긴 논문에서 그는 레닌의 전략이 서로 모순되는 네 가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1915년 3월 이 시점에 오면, 해결할 수 없는 모순을 해결하지 않은 채 그 모순에 대처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네 가지 ‘패전주의’ 문구들을 만나게 된다.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 문구들을 정리해 보자.
 
1번: 특수한 러시아 상황: 독일에 의한 러시아 패전이 “해악이 가장 작다”.
2번: “패전은 혁명을 촉진한다”는 객관적 언명.
3번: 슬로건: 모든 나라의 패전을 바란다.
4번: 패전의 위험 앞에서 멈추지 말라.”[47]
 
사실 혼란과 착각을 겪은 것은 레닌이 아니라 드레이퍼였다. 몇몇 사실 오류나 왜곡, 무의미한 말장난은 차치하더라도, 드레이퍼는 앞서 설명했듯이 패전주의에는 항상 두 가지 유형이 존재한다는 점을 무시했다. 첫 번째는 사회주의자가 충돌에서 한쪽 편을 들고, 그 결과 한 나라에서는 패전주의자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방어주의자인 경우다. 두 번째는 사회주의자가 충돌에서 어느 진영도 지지하지 않는 경우다 (이중 패전주의). 두 경우 모두에서 사회주의자는 ‘자’국을 방어하길 거부하지만, 그 실제 결과는 동일하지 않다.
 
나아가 드레이퍼는 레닌이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한 ‘해악이 가장 작다’ 슬로건이 특수하게 러시아만을 위한 슬로건이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나라에 적용된 국제적 전략의 한 요소였다는 점을 무시했다. 이에 더해 그는 이 슬로건이 각 제국주의 나라에서 배외주의와의 단절을 선언하는 정치 성명이지, 경쟁 제국주의 국가를 지지하는 성명이 아니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드레이퍼는 레닌의 패전주의에 소위 내재됐다고 하는 모순들이 실제로는 전체 전략의 서로 다른, 상호 보완적인 요소들이라는 점을 무시한다.
 
물론 이런 혼란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1948년에 드레이퍼가 팔레스타인 인민 대학살과 집단 추방 (“나크바”)으로 이어진 이스라엘 억압전쟁의 지지자였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말이다. 1948년 당시 드레이퍼는 “이스라엘을 어떻게 방어할 것인가”라는 글을 발표했다.[48] 또 그는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을 나치 독일에 맞서, 이후 냉전기에는 나토에 맞서 방어하길 거부하는 등, 일관되게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기를 거부한 미국의 ‘제3진영’ 이론가가 되었다. 일관된 패전주의에 대한 반대론자들은 사실 레닌의 노선을 이해할 능력과 의지 모두 없는 것이다!


6. 보론: 1914-16년 레닌의 패전주의 노선에 대한 트로츠키의 잘못된 비판


트로츠키는 1917년 이전 시기부터 이미 뛰어난 맑스주의자 노동운동 지도자였다. 1905-07년 1차 러시아 혁명 당시에는 페테르부르크 노동자 소비에트 의장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또 연속혁명 이론을 체계화하고 발전시켰는데, 이 이론은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 혁명 (농민혁명, 민족해방, 일관된 민주주의)을 완성하기 위해 권력을 잡고 부르주아지의 수탈을 향해 나아가야 함을 설명하는 이론이다.[49]
 
그러나 1917년 2월 혁명 이전에 트로츠키는 혁명당을 건설하는 것의 결정적 중요성을 몰각했다. 공통의 전략·전술과 온갖 형태의 개량주의·중도주의에 대한 투쟁을 바탕으로 단결된 철의 규율을 가진 혁명적 프롤레티리아트 전위당을 만드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한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트로츠키는 이를 “종파주의”로 간주했는데, 이러한 비판은 일종의 기회주의적 숙명론 경향을 띠고 있는 비판이다. 즉 명확한 전략·전술을 위해 타협 없이 싸우며, 수정주의적 일탈과 분리선을 긋고 그로부터 분별 정립해야 할 임무를 계급투쟁의 객관적 과정이 대신해줄 것이라는 생각에 바탕한 비판인 것이다. 그 결과, 트로츠키는 때때로 볼셰비키와 협력하기도 했지만, 자주 대립했으며, 볼셰비키를 겨냥한 기회주의 파벌들의 각종 블록에 가담하기도 했다.[50]
 
이 차이점들로 인해 트로츠키와 볼셰비키 간에는 1차 세계대전 초기 2년을 포함해 반복적으로 충돌이 일어났다. 그 시기에 볼셰비키의 정책에 대한 트로츠키의 대립 지점은 다음 두 가지였다. 첫째, 트로츠키는 제국주의 조국 방어를 제창하는 사회배외주의자들에 단호히 반대했지만, 사회평화주의자들 (즉 조국 방어를 공공연하게 제창하지는 않으면서도 패전주의 정책에 반대하는, 나아가 사회배외주의자들과의 결별에 반대하는 자들, 예를 들어 카우츠키, 반전파 멘셰비키 같은 자들)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지 못했으며, 단호히 단절하지 못하고 동요했다. 결국 이는 앞서 언급한 트로츠키의 기존 화해 정책의 연장선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현실의 압력 (사회평화주의의 실패가 점점 더 명백해진 현실) 속에서, 그리고 볼셰비키의 끊임없는 비판의 압력 속에서 트로츠키는 점차 좌 쪽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1917년 봄까지는, 이 약점을 극복하고 볼셰비키에 합류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51]
 
이 논문의 주제를 고려할 때, 우리는 트로츠키가 사회평화주의에 맞서 싸우지 못한 약점보다는 그의 두 번째 주요 약점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하지만 이 약점은 첫 번째 약점과 관련이 있다). 다름 아닌 볼셰비키 패전주의 강령에 대한 그의 비판에 내재된 약점이다.

  패전주의 –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양보인가?
 
트로츠키의 잘못된 비판 내용에 대해서는 두 영역으로 나누어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트로츠키는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라는 볼셰비키의 슬로건을 배격하며, 이를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원칙상의 양보”라고 비난했다.
 
“러시아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라는, 이제 결의안으로 구체화된 동지들의 견해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이 부적절하고 정당화될 수 없는 입장은 사회애국주의의 정치적 방법론에 대한 원칙상의 양보에 다름 아닌 바, 이는 전쟁과 그 전쟁을 야기한 조건에 대한 혁명적 투쟁을, 현 정세로 볼 때 극히 자의적인 방향인, ‘해악이 가장 작은’ 쪽을 지향하는 투쟁으로 대체하는 것이다.”[52]
 
다른 하나의 논설에서 트로츠키는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를 ‘해악이 가장 작다’라고 칭하는 것은 경쟁 관계에 있는 타 제국주의 국가의 강화를 제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우리 당은 변경불가의 전쟁 반대 입장이었다. 혁명적 희망이든 개량주의적 희망이든 우리의 정치적 희망을 차리즘의 군사적 불운과 연결 짓는다는 생각은 우리 머릿속에 결코 있어 본 적이 없다.... 우리가 전쟁과 그것이 가져올 수 있는 패배에 대해 추측하기를 거부한 것은 민족적 또는 인도주의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혁명적인 정치적 고려 ㅡ 국제적 고려와 국내적 고려 둘 다 ㅡ 때문이었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한 국가 구조를 산산조각 내는 패배는 그에 상응하여 상대방 국가 구조가 강화됨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는 유럽 프롤레타리아트의 이익을 위해 강화할 만한 유럽의 사회·국가 구조라고는 단 하나도 알지 못한다. 동시에, 우리는 러시아가 다른 유럽 국 인민들의 발전이라는 이익에 자신의 이익을 종속시켜야 할 운명을 지닌 국가 역할을 부여 받았다고 보지 않는다. 문제의 이 측면에 대해서는 우리 신문의 지면을 통해 이미 충분히 명확히 다뤄졌으므로 굳이 길게 논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민족적 발전에 대한 전망이라는 협소한 틀 내에서조차도 러시아 사회민주주의가 자신의 정치적 계획을, 군사적 참사가 가져올 혁명적 효과와 연결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53]
 
나아가 트로츠키는 패전이 지배계급만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계급과 그 전투력도 와해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자신의 발밑에 확고한 계급 기반을 느끼고 미래를 확신하는 혁명당은 패전의 길을 정치적 성공의 길로 볼 수 없다. 패전이 지배계급의 대응을 와해시키고 사기를 꺾지만, 그러나 동시에 전쟁은 사회생활 전체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을 와해시킨다.... 결국, 패전에서 비롯된 혁명은 전쟁으로 완전히 와해된 경제 생활과 고갈된 국가 재정, 그리고 극도로 긴장된 국제 관계를 물려받는다....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 탈진이 너무 심해져서 에너지를 억누르고 의지를 마비시킬 수 있다. 절망과 수동성, 도덕적 붕괴가 시작된다. 패전과 혁명 사이의 연관성은 기계적인 것이 아니라 변증법적인 성격을 띤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경험’을 잘못 해석한 것에 근거해 군사적 패배가 자동으로 대중에게 혁명적 효과를 미친다고 결론 짓는 것은 유치한 착각일 것이다. 현 전쟁의 거대한 규모와 무기한으로 장기화되는 성격은 오랫동안 모든 사회적 발전의 날개를 꺾을 수 있으며, 그 결과 무엇보다도 프롤레타리아트의 혁명 운동의 날개를 꺾을 수 있다. 이는 전쟁을 가능한 한 빨리 종식시키기 위해 투쟁해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혁명은 패배가 더 쌓이는 데 관심이 없다. 반대로 혁명적 자기보존은 우리에게 평화를 위한 투쟁을 지시한다.”[54]
 
트로츠키는 또 ‘해악이 가장 작다’ 슬로건이 사회배외주의 데마고그들을 위한 핑계를 제공해준다고도 주장했다.
 
“‘러시아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라는 역설적이고 내적으로 모순된 정식(定式)은 우리 독일 동지들에게 어려움을 초래하며, 우리의 선동을 풍요롭게 하기보다는 오히려 방해한다. 그 정식은 사회애국주의 선동가들에게 중요한 무기가 되어주었다. 우리의 공통 기치에 대한 저들의 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무기가 되어준 것이다. 혁명적 슬로건의 이와 같은 과장은 《소치알 데모크라트》 [당시 볼셰비키 중앙기관지]가 급속히 이 정식들을 국제주의의 절대적 시금석으로 격상시켜놓고 있다는 점에서 더더욱 위험하다.”[55]
 
물론 사회배외주의자들은 그러한 슬로건을 악용하고 왜곡하려 할 것이다. 그러나 수시로 사회배외주의자들은 온갖 슬로건으로 그렇게 한다. 그러나 자국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맞서 비타협적 국제주의 입장을 취하도록 프롤레타리아 전위대를 교육해야 할 맑스주의자의 임무가 이 때문에 방해받아서는 안 된다. 나아가 역사는 광기 어린 제국주의전쟁의 잔혹한 경험이 몰계급적 애국주의 결속을 무너뜨리고 대중을 혁명적 슬로건에 열리게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트로츠키의 비판은 여러 면에서 틀렸다. 첫째, 앞서 설명했듯이, “‘우리나라’의 패전이 해악이 가장 작다” 슬로건은 제국주의 간 충돌에서 어느 한 제국주의 국가가 경쟁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보다 더 나쁘다는 평가에 근거해 한 나라로 국한해서 한정 배치된 슬로건이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제국주의전쟁에 참전한 모든 나라에 적용되어야 하는 국제주의적 전술, (지노비에프가 말한) “범패전주의” 전술이었다. 하나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만을 겨냥한 전술이 아니라 모든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를 겨냥한 전술,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의 전략·전술이었던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의 패전이 해악이 가장 작다” 슬로건은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에 도움을 주는 전술이 아니라, 자국 지배계급에 대한 비타협적인 정치적 반대 전술이었다. 그러한 전쟁에서 자국 지배계급이 패배할 “위험”에 제약받지 않는 그러한 비타협성에 입각한 반대 전술이었던 것이다. 사실상 트로츠키는 사회평화주의 불승불패 (“승리도 패배도 다 아닌”) 전술에 부적절한 양보를 했다.
 
레닌의 패전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의 비판은 다음 사항을 무시하고 있다. 반동적 전쟁에 참가하는 모든 제국주의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이 계급전쟁을 제창하며 자국 지배계급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그 주적의 패전을 위해 투쟁한다면, 이것이 부르주아지를 강화시킬까, 아니면 약화시킬까? 이것이 전쟁을 더 빨리 끝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더 늦춰지게 할 것인가? 이러한 국제주의적 전술이 모든 나라에서 자본가계급에 대한 계급투쟁을 진전시키고, 제국주의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는 계기를, 즉 진정한 평화를 위한 전제조건을 창출하는 순간을 앞당길 것이라는 점이 분명하지 않은가?! 반면, 모든 제국주의 나라의 사회주의자가 ‘자’국을, ‘자’국 정부를 지지하거나, “승리도 패배도 다 아니다 (불승불패)”식의 중립 입장을 취한다면 결과는 무엇일까? 모든 제국주의 나라의 지배계급을 강화시키는 결과이지 않을까?!
 
패전은 지배계급뿐만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도 약화시킬 것이라는 트로츠키의 논거는 더 이상 타당하지 않다. 누구도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의 패전이 노동자계급의 혁명적 봉기를 보장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역사는 그러한 패전이 프롤레타리아 봉기의 조건을 향상시킨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보여줘 왔다. 1871년 프랑스의 패전과 파리 코뮌, 1905~07년 러시아의 러일전쟁 패전과 혁명, 1차 세계대전에서 러시아의 패전의 결과물로서 1917년 10월 혁명, 1918~19년 독일·헝가리·오스트리아의 혁명적 위기, 1943~45년 이탈리아의 혁명적 위기 등등.

  “평화” 슬로건

트로츠키가 볼셰비키의 반전 노선과 관련해 가졌던 두 번째 주요 차이점은 평화 슬로건이었다. 1915년 볼셰비키에게 보낸 공개서한에서 트로츠키는 다음과 같이 썼다.

“따라서 나는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슬로건 아래 프롤레타리아트를 나서게 하는 문제에 대한 동지들 입장의 모호함과 회피적인 태도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슬로건 아래 이제 실제로 노동대중은 정치적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으며, 그리고 모든 나라에서 사회주의 혁명 세력이 결집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슬로건 아래에서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유대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지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56]
 
1년 뒤, 이미 볼셰비키에게 더 가까이 다가왔을 때에도 여전히 트로츠키는 볼셰비키가 평화 슬로건을 충분히 제창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러시아 국제주의자 진영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소치알 데모크라트 그룹을 발견할 수 있다. 현재 위기 상황에서 막중한 혁명적 요인으로서의 그 역할을 떨어뜨리지 않도록 거듭 거듭 우리는 이 조직의 특성을 지적하는 것을 의무로 했다. 운동의 모든 혁명적 분자들을 포괄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그 특유의 성향을 말이다. 개전 당초부터 소치알 데모크라트는 평화를 위한 투쟁이라는 슬로건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현실 경험은 어디에서나 프롤레타리아 반전운동의 결집이 바로 이 슬로건 아래에서 이루어졌고 지금도 그렇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 혁명적 국제주의자들이 성공적으로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이 기반 위에서만 가능하다. ‘내란’이라는 표어는 다가오는 시기에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이 필연적으로 격화될 것임을 본질적으로 올바르게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소치알 데모크라트 그룹은 ‘내란’을 ‘평화를 위한 투쟁’과 대립시켜 놓는다. 그래서 ‘내란’이 허공에 매달려 현 시기에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잃게 만들고 있다.”[57]
 
앞서 보았듯이, 볼셰비키는 원칙적으로 평화 슬로건에 반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슬로건이 고립된 채로 제기되어서는 안 되며, 혁명적 대중행동과 연계되어 제기되어야 한다고 볼셰비키는 주장했다. 1915년 봄 베른에서 열린 회의의 결의문에서 볼셰비키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현 시기에 혁명적 대중행동에 대한 요구를 수반하지 않는 평화 선전은 단지 환상을 유포하고 프롤레타리아트를 혼란과 사기저하로 몰아넣을 수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평화 선전은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부르주아지가 인도적이라고 믿게 만들고, 교전국의 비밀외교의 수중에서 놀아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특히, 일련의 혁명이 없이도 이른바 민주주의적 평화가 가능하다는 생각은 철두철미 오류다.”[58]
 
평화 슬로건 그 자체로는 혁명적이지 않고, 심지어 진보적이지도 않다. 단지 싸움을 멈추고, 제국주의 강도들 간의 세계 분할 현 상태를 ‘평화적’ 조건 하에 동결시키자는 뜻일 뿐이다. 따라서 그 슬로건은 부르주아지에 의한 대중 억압이라는 전전(戰前) 조건을 재확립하는 것을 의미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일 뿐이다”라는 말은 “평화는 다른 수단에 의한 전쟁의 계속일 뿐이다”로 확장될 수 있다.
 
맑스주의자는 지배계급의 손에 놀아나는 슬로건을 내걸어서는 안 된다. 지배계급에게 싸움을 멈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노동자계급의 입지를 전혀 강화하지 못하며, 부르주아지가 계속해서 정치적 사태전개를 좌우하도록 허용한다.
 
나아가 평화 슬로건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무장 해법/ 군사적 해결책, 즉 총구를 돌려 지배계급을 타도하는 해결방식을 찾는 것으로부터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게 만든다. 이런 식으로 평화 슬로건을 배치하는 것은 평화주의에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 슬로건이 전쟁에 대항하는 혁명적 강령에서 자리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대중을 나서게 하는 데 있어 평화 슬로건의 잠재적 역할을 트로츠키가 강조한 것은 옳았다. 그러나 부르주아 평화주의자들에 의해 악용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슬로건을, 대중을 결집, 무장시키는 슬로건과 결합해야 한다. 그래서 총구를 돌려 제국주의전쟁을 내란으로 전화시키기 위한 슬로건과 결합해야 한다.
 
 

7. “패전주의” 용어의 기원과 볼셰비키의 수용

 
“패전주의” 또는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용어의 기원과 그것이 이후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패전주의 전략의 3대 기둥, 즉 ‘주적은 국내에 있다’/ ‘자국 부르주아지의 패배가 해악이 가장 작다’/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1차 세계대전 초기 몇 달 사이에 레닌이 정립한 것이다. 그러나 패전주의라는 용어는 볼셰비키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플레하노프와 알렉신스키가 이끄는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가장 우익적인 세력은 독일 등 중부 유럽 열강에 대항하여 앙탕트 (프랑스, 영국, 러시아 등 연합국)를 지지하는 공공연하게 사회애국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 그들은 독일 제국주의의 승리가 해악이 더 크다고 주장했다.[59]
 
“독일의 승리에 대한 절박한 바람을 (러시아 혁명의 이름으로) 공유하지 않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친근한 비평가들로부터 차리즘 앞에서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인다는 비난을 종종 받는다.... 우리는 악을 또 다른, 더 큰 악으로 치유할 수 있다고 믿지 않으며, 차리즘이 입힌 상처가 독일 제국주의의 가격으로 치유될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60]

 
“레닌은 러시아가 패배할 것이라는 희망을 표현한다”고 그들은 비난했다. 그들은 볼셰비키의 전쟁에 관한 테제에서 인용한 내용 ㅡ “현 전쟁에서 차르 군주제와 차르 군대의 패배가 러시아 프롤레타리아트의 관점에 볼 때 해악이 가장 작다” ㅡ 을 두고 그것을 “사악한 사상”이라고 규정하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다행히도, 이 무책임한 자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러시아 노동자들은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지 않다. 반대로 러시아 노동자계급은 러시아의 방어와 승리를 확고히 지지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61]
 
볼셰비키의 전략에 대해 “패배주의”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것은 플레하노프와 알렉신스키였다.
 
“러시아의 사건들은 사회애국주의 멍청이들 (알렉신스키부터 치헤이제까지)이 패배주의라고 명명한 우리의 입장을 완전히 입증해 주었다.”[62]
 
“그들 둘 다 혁명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을 ‘패배주의’라고 비난하는데, 이는 플레하노프 추종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이다.”[63]
 
볼셰비키는 그러한 용어에 불쾌감을 받지 않았으며, “그렇다, 우리는 패배주의자다”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레닌의 글 <빌헬름 콜프와 게오르기 플레하노프>로부터 인용한 구절을 보라. 볼셰비키는 1916년 이론지 <<소치알 데모크라트 글 모음집>>을 내면서 거기에 <‘패전주의’ 과거와 현재>라는 제목의 긴 논문을 발표했다. (위 인용문도 이 논문에서 인용한 것이다). 저자 지노비예프는 1904~05년 러일전쟁과 1차 세계대전 모두에서 혁명적 패전주의가 러시아 혁명가들에게 유일한 올바른 접근법이었음을 밝혀준다. 그는 이 글의 결론을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정리했다.
 
“1914-16년의 제국주의전쟁에서 ‘패전주의자’이지 않고서는 일관된 국제주의자일 수가 없다.”[64]
 
 

8. 제3인터내셔널과 제4인터내셔널 강령문서 상의 혁명적 패전주의 전략·전술

 
혁명적 패전주의가 1916년 이후 볼셰비키가 폐기한 “혼란된 강령”이라는 각종 수정주의자들의 주장은 이와 같이 한 조각의 진실성도 없는 허위다. “폐기”는커녕 공산주의자들은 제3인터내셔널과 이후 제4인터내셔널의 수많은 문서 속에서 이 노선을 받들고 고수했다. 이미 1919년 3월 창립 대회에서 공산주의 인터내셔널은 결의안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이 경향 [공산주의 인터내셔널로 집결한 조류]은 노동자계급의 이익에 끝까지 충실했으며, 개전 당초부터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슬로건을 내걸었다. 이 조류는 스스로를 이제 제3인터내셔널로 세워냈다.”[65]
 
그러나 “패전주의”라는 용어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보다 체계적으로 사용된 것은 1920년대에 들어서였다. 이는 트로츠키와 좌익반대파뿐만 아니라, 코민테른 (점차 스탈린주의 관료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 코민테른)의 공식 문서들에도 해당되는 사실이었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앞서 언급했듯이 “패전주의”라는 용어는 볼셰비키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니라 반대자들이 만든 것이다. 둘째, 1918년 직후 몇 년 간은 또 다른 제국주의 세계대전의 위험이 아직 첨예하지 않았기 때문에, 코민테른이 이 문제를 더 상세히 다루게 된 것은 그 이후의 일이었다.

  1926-27년의 좌익반대파
 
1926년, 트로츠키와 다른 두 좌익반대파 지도자 (지노비예프와 예브도키모프)는 한 성명서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패전주의’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당의 과거 역사 전체에서 패전주의는 외부 적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를 바라는 것, 그리고 내부의 혁명적 투쟁에 의해 그러한 패배에 기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것은 물론 자본가 국가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태도를 표현하는 것이었다.”[66]
 
또 다른 문서에서 좌익반대파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자본주의 국가의 모든 정직한 노동자들은 능동적으로 '자'국 정부의 패배에 기여해야 한다.”[67]
 
스탈린주의 관료에 의해 분쇄되기 전 좌익반대파의 가장 중요한 강령적 문서였던 <1927년 플랫폼>에서 진정한 공산주의자들은 패전주의 전략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모든 활동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 아래 진행되어야 한다. (1) 프롤레타리아독재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전쟁 타도 (2) 소련을 공격하는 모든 국가에서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 (3) 소련에 전쟁을 벌이는 모든 부르주아 국가에 패배를 안기자. 자본주의 나라의 모든 정직한 프롤레타리아는 능동적으로 ‘자’국 정부의 패배를 위해 활동해야 한다 (4) ‘자’국의 노예주들을 돕기를 원하지 않는 모든 외국 병사들은 적군(赤軍)에게로 넘어가야 한다. 소련은 모든 노동자의 조국이다 (5) “조국 방어” 슬로건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민족혁명 전쟁을 벌이고 있는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부르주아 나라에서 제국주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거짓 위장이다. 소련에서 “조국 방어” 슬로건은 옳다. 우리가 방어하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 조국과 세계 노동계급 운동의 거점이기 때문이다.”[68]
 
  1920년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좌익반대파의 비판 압박과 함께 새로운 제국주의 전쟁 위험이 고조되는 데서 오는 압박 하에서 공식 코민테른도 이 문제에 대해 레닌주의 강령을 형식상 따르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다음은 그 몇 가지 예다. 1927년 5월에 채택된 주요 테제에서 코민테른 집행위원회는 다음과 같이 썼다.
 
“전쟁에 대한 레닌의 태도는 제국주의전쟁이라는 하나의 역사적 시대 전체에 대한 공산당의 전술을 결정한다. ‘전쟁과의 전쟁’, ‘제국주의전쟁을 내란으로 전화하라’,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부르주아 정부의 패배를 위해’와 같은 슬로건들은 오늘날에도 진정한 혁명적 국제주의의 고전적인 사례들이다. 레닌주의의 장점 중 하나는 전쟁 문제를 그것이 놓여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 면에서 다룬다는 점이다. 레닌주의는 전쟁을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한다. (a) 제국주의 국가들 간에 벌어진 전쟁 (b) 민족혁명 전쟁 및 제국주의에 대한 식민지 인민의 전쟁 (중국) (c)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상대로 한, 그리고 사회주의가 건설되고 있는 나라를 상대로 한 자본주의 반혁명 전쟁.
 
따라서 지금은 1914-18년 당시보다 전쟁에 맞선 싸움에 더 나은 가능성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공산당에게는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요구된다.
 
(a) 중국을 상대로, 그리고 (향후) 소련을 상대로 벌어지는 전형적인 제국주의전쟁에서, 이 전쟁을 벌이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들은 모든 제국주의전쟁에서와 마찬가지로 자국의 자본주의 정부에 대해 패전주의자여야 한다.
 
(b) 일반적인 제국주의전쟁에서는 노동자들은 자국 정부의 패배를 지지해야 하며, 더 나아가 중국 혁명 (현재 우한[武漢]으로 대표되는)에 대한 또는 소련에 대한 제국주의 전쟁 및 반혁명 전쟁에서는 중국과 소련의 노동대중의 승리를 위해 능동적으로 싸워야 한다.”[69]
 
1928년 코민테른 6차 대회에서 채택된 제국주의전쟁에 관한 특별 결의안에서도 동일한 전술 기조가 이어졌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맑스주의적 분석은 프롤레타리아트가 원칙과 전술 면에서 이 다양한 유형의 전쟁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는 근거가 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에 맞서 패전주의 및 제국주의전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한 내란으로 전화하는 강령으로 싸운다. 제국주의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자들이 민족혁명 운동을 상대로, 특히 식민지 인민을 상대로 벌이는 억압 전쟁 시에도, 그리고 프롤레타리아독재 나라를 상대로 벌이는 공공연한 반혁명 전쟁 시에도 원칙적으로 위와 동일한 입장을 취한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에 맞선 민족혁명 전쟁과 사회주의 전쟁을 지지, 수행하며, 민족혁명과 프롤레타리아독재 나라의 방어를 위해 조직한다.”[70]
 
결의안은 그러한 전략·전술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국주의전쟁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정치 강령은 지난 제국주의전쟁에서 레닌의 지도하에 볼셰비키 당이 그에 맞서 영웅적으로 투쟁하는 가운데 정립하고 적용한 강령이다. 이 강령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a) 이 전쟁에서 제국주의적 “민족 방어”를 거부한다. 그 반동적 성격에 대해 노동자·농민을 일깨운다. 이 전쟁을 공공연하게든 은밀하게든 정당화하는 노동운동 내 모든 경향들에 강력히 맞서 싸운다.
 
b) 패전주의, 즉 이 전쟁에서 자국 제국주의 정부의 패배를 위해 활동한다.
 
c) 진정한 국제주의, 즉 “국제적” 언사나 형식적 “협정”이 아니라, 모든 교전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자국 부르주아지를 타도하기 위해 수행해야 할 혁명적 패전주의 활동.
 
d) 제국주의 국가 간의 전쟁을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프롤레타리아 내란으로 전화해내기 ㅡ 프롤레타리아트 독재와 사회주의를 수립하기 위해. 이 전화는 후방에서의 혁명적 대중행동과 전선에서의 병사들 간 친교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
 
e) 가장 중요한 교전국들에서 부르주아지 타도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장악이 없는 한, 제국주의전쟁으로부터 “민주적” 평화나 “정의로운” 평화가 나올 수는 없다. 따라서 “평화”가 제국주의전쟁 동안에 중심 슬로건일 수 없으며, 중심 슬로건은 “프롤레타리아혁명”이어야 한다.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평화 미사여구 선동에 강력히 맞서야 할 의무가 있다. 전쟁 어느 시점에 가면, 이 평화 미사여구 선동이 제국주의전쟁이 내란으로 전화하는 것을 막는 극히 중요한 이데올로기적 무기로 부르주아지에 의해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71]
 
코민테른이 1930년대 중반에 완전히 퇴보하고 타락하여 개량주의 세력이 되었을 때 (인민전선 전술, 스탈린-라발 협정), 코민테른은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도 폐기하고 사회배외주의 정책을 채택했다. 스탈린주의 관료는 프랑스 제국주의와 동맹을 맺었고, 프랑스 공산주의자들은 ‘자’국 부르주아지에 대한 반대 노선을 폐기했다. 제국주의전쟁에 대한 타협 없는 반대 선언은 사라졌고, 스탈린주의자들은 부르주아 정부를 지지하며 의회에서 제국주의 군사예산에 찬성표를 던지고 프랑스의 식민지 보유를 옹호했다.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

반면, 반제국주의와 혁명적 패전주의 원칙에 대한 옹호를 이어간 것은 트로츠키와 제4인터내셔널이었다. 참고로, 우리가 알기로는 이 정책이 단순히 '패전주의'라고 불리던 시기에 '혁명적 패전주의'라는 용어를 확립한 것은 트로츠키주의자들이었다. 그 이유는 개량주의적 왜곡과 구별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1933년 이후 독일의 사민주의자들과 스탈린주의자들도 패전주의자가 되어 나치 독일에 맞서 프랑스 · 영국 제국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이다.
 
1934년에 발표된 강령 문서 <<전쟁과 제4인터내셔널>>에서 트로츠키주의자들은 “‘패전주의’와 제국주의전쟁”이라는 제목의 장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문제가 자본주의 나라들 간의 충돌인 경우, 그 중 어느 나라든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의 군사적 승리를 위해 자신의 역사적인 이익 ㅡ 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인 이익은 최종적으로는 국민과 인류의 이익과 일치한다 ㅡ 을 희생하는 것을 단호히 거부한다. ‘패배가 해악이 덜하다’라는 레닌의 정식은 적국의 패배에 비하여 자국의 패배가 해악이 덜 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혁명적 운동의 성장으로 인한 결과물로서의 군사적 패배는 ‘국내평화’ [계급휴전]로 확보된 군사적 승리보다 프롤레타리아트와 전체 인민에게 수천 배는 더 이롭다는 의미다. 칼 리프크네히트는 전쟁 시의 프롤레타리아 정책을 다음과 같이 탁월하게 정식화했다. ‘인민의 주적은 자국에 있다.’ 승리한 프롤레타리아혁명은 패전으로 야기된 해악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 미래의 전쟁과 패배를 막을 최종적 보장책도 만들어낼 것이다. 전쟁에 대한 이러한 변증법적 태도는 혁명적 훈련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따라서 전쟁에 맞선 투쟁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는, 전쟁 동안에 프롤레타리아 당의 모든 사업이 거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총괄적인 전략적 임무다.”[72]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창립 대회에서 채택된 유명한 <이행강령>은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의 옳음을 확인했다.
 
“제국주의전쟁은 부르주아지의 약탈적 정치의 계속이자 격화다. 전쟁에 맞선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계속이자 격화다. 전쟁의 시작은 상황을 바꾸고 계급 간 투쟁의 수단을 부분적으로 바꾸지만, 목표와 기본 방향은 바꾸지 않는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따라서 다가오는 전쟁은 그 기본 성격상 제국주의적 전쟁이 될 것이다. 그 결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의 근본 내용은 제국주의와 제국주의전쟁에 맞선 투쟁이 될 것이다. 이 투쟁에서 기본 원칙은 다음과 같다. ‘주적은 국내에 있다’ 또는 ‘자국 (제국주의) 정부의 패전이 해악이 가장 작다’.”[73]
 
2차 세계대전 시작 몇 달 전, 트로츠키는 몇몇 비판자들과의 논쟁에서 패전주의 원칙을 다음과 같이 옹호했다.
 
“패전주의는 전쟁 중에도 국내에서 주적을, 제국주의 ‘우리’나라 내에서 주적을 식별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 정치다. 반면에 애국주의는 자국 밖에서 주적을 찾는 정치다. 패전주의 사상은 현실에서 다음을 의미한다. 자국 부르주아지를 주적으로 하여 화해할 수 없는 혁명적 투쟁을 수행한다. 이 투쟁이 자국 정부의 패배로 결과할 수 있다는 사실에 제지 받지 않고서 혁명적 투쟁을 수행한다. 혁명적 운동을 고려할 때, 자국 정부가 패배하는 것이 해악이 덜하다. 레닌은 그 외의 어떤 말도 하지 않았으며, 하고자 하지도 않았다. 패배에 대한 그 어떤 다른 종류의 ‘지원’이든 그것에 대해서는 운운하는 것조차 있을 수 없다. 비 파시스트 국가들과 관련해서 혁명적 패전주의는 철회돼야 하는가?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이 문제에 따라 혁명적 국제주의의 성패가 결정된다.”[74]
 
이러한 접근방식에 대해서는, 1938년 제4인터내셔널 서기 루돌프 클레멘트가 스탈린주의 비밀경찰 게페우(GPU)에 의해 암살되기 전 한 논설에서 더 자세히 설명했다. 트로츠키는 이 논설을 “패전주의에 관한 뛰어난 글”이라고 칭찬했다.[75]
 
“전쟁은 다른 수단에 의한 정치의 계속일 따름이다. 따라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전시에 자신의 계급투쟁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 무엇보다도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건넨 새로운 수단을 가지고 계속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제국주의 나라에서 전쟁에 의해 초래된 군사적 패배와 연결하여 가차 없이 자신의 사회혁명을 준비, 실행해서 권력을 잡을 수 있도록 ‘자’국 부르주아지의 약화를 활용할 수 있고, 또 활용해야만 한다. 혁명적 패전주의로 알려진 이 전술은 우리 시대에 프롤레타리아 세계혁명의, 그리고 그와 함께 역사 진보의 가장 강력한 지렛대 중 하나다.”[76]
 
"한 측에서만 제국주의적 전쟁이고 다른 측에서는 현 제국주의적 억압 또는 그러한 억압 위협에 대항하는 비제국주의 민족들의 해방 전쟁이나 사회주의 나라의 해방 전쟁인 경우, 그리고 계급 간 내전이나 민주주의와 파시즘 간 내전인 경우,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양 측에 동일한 전술을 적용할 수 없으며 적용해서도 안 된다. 이 해방 전쟁의 진보적 성격을 인식하여 주적인 반동 제국주의에 맞서 (또는 내전의 경우 반동 진영에 맞서) 단호하게 싸워야 한다. 즉, 국제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적으로 (또는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자들 또는 억압 위협에 처한 자들 (소련, 아비시니아나 중국 같은 식민지·반식민지 나라들, 공화주의 스페인 등)의 승리를 위해 단호히 싸워야 한다."[77]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및 그 국가)를 겨냥한 혁명적 패전주의의 적용에서 근본적 차이는 있을 수 없다.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지지하는 대의에 ‘우호적’이든 적대적이든 상관없이, 제국주의 부르주아지가 프롤레타리아트의 동맹군들 (스탈린, 반식민지 나라의 부르주아지, 식민지 인민, 반파쇼 자유주의)과 동맹 관계 ㅡ 배신적인 동맹 관계 ㅡ 에 있든 전쟁을 벌이고 있든 상관없이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에 대한 혁명적 패전주의 적용은 동일하다. 혁명적 선전, 체제에 대한 화해할 수 없는 반대, 순 경제적 형태의 계급투쟁에서 최고의 정치적 형태 (무장봉기)의 계급투쟁까지 모든 계급투쟁, 군대들의 친교, 전쟁의 내란 전화 등의 혁명적 패전주의 방법들은 변함없이 그대로다.”[78]
 
“진보적 대의를 적(敵)으로 하는 전쟁에 참가한 제국주의 나라들의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사정이 ㅡ 그 투쟁의 외형적 형태에 관한 한 ㅡ 다르다. 제국주의 나라의 프롤레타리아트로서 ‘나’는 혁명을 위한 투쟁 외에도, ‘적’군 ㅡ ‘우리’나라 부르주아지의 ‘적’군이지만 ‘나’의 동맹군인 ‘적’군 ㅡ 에 득이 되도록 군사적 사보타지에 참여하는 것이 ‘나’의 의무다. 그러나 제국주의 나라들 간 충돌에서 혁명적 패전주의의 수단으로서는, 군사적 사보타지는 개인적 테러처럼 전혀 가치가 없다. 군사적 사보타지는 사회혁명을 대신하지 못하면서, 심지어는 사회혁명을 한 치도 진전시키지 못하면서 오직 다른 진영을 도울 뿐이고, 선봉대를 잘못 이끌며 대중 속에 환상을 심어 제국주의자들의 게임을 용이하게 할 뿐이다. 반면, 제국주의와 싸우고 있는, 따라서 진보적인 진영을 방어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로서의 군사적 사보타지는 절대적으로 가치 있다. 그와 같은 군사적 사보타지는 대중이 이해하고 환영하며 격려 고무한다. 여기서 ‘우리’나라의 패배는 경중을 따져 수용하는 차악 (국내평화/계급휴전과 혁명 포기의 대가로 주어진 "승리"에 비해서는 해악이 덜 한 차악)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즉각적인 목표가 된다. 프롤레타리아 투쟁 임무가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패배는 이 경우 전혀 해악이 아니거나, 또는 훨씬 더 쉽게 수용할 수 있는 해악이거나 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의 패배는 현 제국주의 굴레에서 또는 그 위협에서 해방된 인민의 승리이자, ‘적’군 프롤레타리아트의 승리를 의미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공통의 지배자 ㅡ 제국주의 자본 ㅡ 에 대한 피억압인민과 ‘적’군 프롤레타리아트의 공통의 승리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승리는 국제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강력한 출발점이, 특히 "우방" 제국주의 나라들에서 강력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79]
 
요약하자면, 패전주의가 혁명적 공산주의 전략·전술의 핵심 요소가 되었고, 강령적 문서로도 공식적으로 승인되었음을 알 수 있다.
 

9. 혁명적 패전주의와 오늘날의 적용

 
우리가 현재 세계대전의 시기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혁명적 패전주의 노선의 적실성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a) 우리가 제국주의 간 경쟁이 가속화되는 역사적인 시기 (무역전쟁, 제재 등)에 처해 있고, 만약 노동자계급이 제때에 제국주의 강대국들의 지배계급을 타도하지 못하면 우리는 3차 세계대전을 향해 치닫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b) 우리는 반식민지 나라들과 피억압 인민들을 적으로 한 일련의 제국주의전쟁들을 보고 있다. c) 반식민지 나라들 간에도 각종 충돌이 존재한다. 여기서는 간략한 개요만 다루고, 독자들에게는 이 문제들을 보다 상세히 다룬 우리의 관련 문서들을 참조할 것을 권한다.
 
  제국주의 간 충돌

2008년 대침체로 시작된 현 역사적 시기에, 미국의 쇠퇴와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 — 특히 중국[80]과 러시아[81] — 의 부상을 특징으로 하는 현 역사적 시기에 강대국들 간의 경쟁이 대대적으로 가속화되었다. 그 결과, 세계화 시대는 막을 내리고 세계 무역전쟁, 보호주의, 제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82] 이와 동시에 우리는 강대국들의 대규모 군비증강과 군국주의 위협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예로는 미국이 부상하는 적대국들을 상대로 일으킨 무역전쟁 (그리고 이에 대한 경쟁국들의 대응 조치), 미국·일본 대 중국 간의 긴장 고조[83], 그리고 서유럽 (및 트럼프 정부 이전의 미국) 대 러시아 간의 분쟁이다.
 
이러한 충돌에서 혁명가들은 이중 패전주의, 즉 모든 제국주의 열강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우리가 2018년 RCIT 특별 결의안에서 다음과 같이 밝힌 바와 같다.
 
“제국주의 국가 간의 충돌 시에 RCIT는 전 세계의 노동자·민중 조직들에게 단호히 국제 노동자계급 연대의 원칙에 입각해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노동자·민중 조직들이 양쪽 어느 진영도 지지해선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자·민중 조직들은 상대방 제국주의 진영뿐만 아니라 ‘자’국 지배계급의 편에 서는 것 또한 거부해야 한다. 모든 제국주의 강대국들을 타도하라 ㅡ 그것이 미국이든 EU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러시아든! (나아가 강대국이 아닌, 호주, 남한 같은 그 보다 하위의 제국주의 국가도 마찬가지다). 사회주의자는 지배계급의 그 어떤 배외주의 프로파간다도 전면 거부한다. 사회주의자는 ‘자’구 지배계급을 지지하지 않으며, 비타협적인 계급투쟁을 제창한다.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혁명가 칼 리프크네히트가 제창한 ‘주적은 국내에 있다’는 유명한 구호를 받아 안아). 전쟁 시에 이 전략은, 1914년에 레닌과 볼셰비키당이 정식화한 바, 혁명가들은 “제국주의전쟁의 내란으로의 전화”를 위해 투쟁한다는 것을 뜻한다. 즉 전쟁 조건 하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권력 쟁취 투쟁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같은 정신으로 우리는 세계 무역전쟁을 국내의 지배계급에 대항하는 정치적 계급투쟁으로 전화할 것을 제창한다. 이 같은 강령이야말로 세계의 노동자계급을 국제주의적 기초 위에서 통일 단결시키는 단 하나의 길이다. 또 ‘애국주의적’ 단결로 노동자들을 ‘자’국의 제국주의 부르주아지 및 노동자운동 내 이들 부르주아지의 시녀들과 한 데 묶어놓고 있는 사슬을 깨는 단 하나의 길이다.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은 단지 전쟁이 발발해야만 유효성을 가지기 시작하는 강령이 아니라 (그 때에야 비로소 그 강령을 위해 투쟁하기 시작한다면, 이미 늦을 것이다), 지금부터 실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령이다....
 
i) 사회주의자들은 한 나라 인민의 다른 나라 인민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모든 형태의 제국주의적 배외주의에 단호히 반대한다. 이 같은 배외주의는 노동 인민의 의식을 타락 오염시키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강대국에 대한 그 어떤 형태의 정치적 · 이데올로기적 지지에 대해서도 단호한 반대 투쟁을 펼쳐야 한다. 그 강대국이 ‘자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든, 외국 제국주의 부르주아지든.
ii)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모든 종류의 경제제재 및 무역전쟁 조치에 반대하는 것은 사회주의자들의 의무다.
iii)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은 모든 형태의 강대국 간 군사주의와 군비경쟁과 전쟁에 반대하여 투쟁해야 한다.
iv) 노동계급 조직들이 의회 기구에 대표자를 두고 있는 나라에서는 이 같은 일체의 배외주의적 조치들에 반대투표 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다. 그러나 결정적 계급투쟁 영역은 의회가 아니라 공장·직장을 비롯하여 지역, 학교·대학, 병영이다. 사회주의자들이 자신의 선전물을 배포하고 계급투쟁적 행동 (시위, 총파업으로 나아가는 파업, 항쟁·봉기 등)을 선동해야 하는 곳은 여기다.
v) 분쟁에 있는 제국주의 나라들 각각에서 혁명가들은 국경을 가로질러 사회주의자들, 노동조합, 그리고 그 밖의 노동자·민중 대중조직들의 공동 성명과 공동 활동을 제창해야 한다. 이 같은 조치들은 구체적인 국제적 노동자계급 연대의 강력한 신호가 될 수 있다.”[84]
 
  반식민지 나라와 피억압 인민에 대한 제국주의전쟁
 
이번 세기의 첫 25년 동안 반식민지 나라와 피억압 인민을 적으로 한 제국주의전쟁의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예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85], 이라크 전쟁[86], 이란 전쟁[87], 러시아의 체첸 전쟁[88], 우크라이나 전쟁, 시리아 군사 개입, 그리고 이스라엘의 중동 전쟁 등을 들 수 있다.[89]
 
2018년 우리의 테제를 다시 인용하자면,
 
“제국주의 부르주아지와 피억압 인민 간의 충돌 시에 RCIT는 전 세계 노동자·인민 조직들에게 단호히 혁명적 반제국주의와 노동계급 국제주의의 정신으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자·인민 조직들은 제국주의 침략자에 반대하여 피억압 인민을 무조건 지지하고 제국주의 침략자의 패배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그들은 반제국주의 통일전선 전술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는 피억압 인민을 대표하는 세력을 편드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세력의 지도부 (보통 소부르주아 민족주의자나 이슬람주의자, 때로는 심지어 식민지 부르주아 국가)에게 정치적 지지를 보내지 않으면서 말이다. 제국주의 나라의 사회주의자들은 대국 특권을 지지하는 사회배외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그리고 또한 피억압자의 투쟁을 적극 지지하기를 기피하고 기권하는 비겁한 중도주의자들에 대항하여 가차 없이 투쟁해야 할 의무가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피억압자들의 반제국주의적 애국주의를 지지하여 그들이 사회주의적, 국제주의적 의식을 발전시키도록 돕는다. 오직 이 같은 강령의 기초 위에서만 사회주의자들이 피억압 민족의 노동자·빈농과 제국주의 나라의 진보적 노동자 간의 신뢰와 통일 단결을 위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오직 이 같은 토대 위에서만 국제 노동자계급을 국제주의적 기초 위에서 통일 단결시키는 것이 가능해질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에 대해 RCIT는 다음과 같은 전술을 제창한다.
 
i)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의 비군사적 공격 시에 (예를 들어 북한, 이란, 짐바브웨, 베네수엘라 등에 대한 경제제재) 사회주의자들은 그러한 공격에 무조건 반대하여, 그것을 타격, 저지하고 중단시킬 조치들을 지지해야 한다. 우리는 핵무기 없는 세계를 위해 투쟁하지만,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또는 보유하려고 하는)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그 어떤 제국주의적 공격에 대해서도 강력히 반대한다.
 
ii) 반식민지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 전쟁 및 점령 (예를 들어 2001년 아프간, 2003년 이라크에서 미국, 2013년 이래 말리에서 프랑스, 2015년 이래 시리아에서 러시아,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정착민 국가) 시에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침략자의 패배와 피억압 인민을 대표하는 세력의 군사적 승리를 요구한다. 강대국을 대신하여 그 대리인 군대가 침략할 시에도 동일한 전술이 요구된다. (소말리아에서 아프리카연합군 [AU forces], 서아프리카에서 사헬 지대 G5 연합군).
 
iii)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소수자에 대한 억압에 무조건 반대하며, 피억압 인민의 민족자결권을 (예를 들어 러시아의 체첸 인을 비롯한 그 밖의 카프카즈 인, 중국의 위구르인과 티베트인, 스페인의 카탈루냐) 완전히 지지한다. 이는 그들의 모든 민족적, 민주적, 문화적 권리들을 (그들이 원할 경우 독자 국가를 가질 권리를 포함하여) 지지하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로마 족, 미국의 아메리카 원주민 등과 같은 인종 소수자의 지방자치정부를 지지한다.
 
iv) 같은 정신으로 사회주의자들은 민족 억압과 인종 차별에 반대하여 이주민과 난민을 방어한다. 이 같은 방어에는 이주민의 완전한 평등권 (모어[母語] 사용, 시민권, 동일임금, 이슬람 혐오 인종주의에 맞서 무슬림 이주민과의 완전한 연대 등등)이 포함된다. 또 우리는 인종주의적 공격에 맞서 이주민과 난민을 물리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통일전선(정당방위대 등)을 요구한다. 이는 또한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인종주의적 이민 통제에 반대하여 투쟁하는 것과 난민에 대한 “국경 개방”을 방어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실제 사례가 트럼프의 이민자 집단 추방과 “무슬림 입국 금지”, EU의 국경관리기구 '프론텍스'(Frontex), 러시아의 카프카즈 및 중앙아시아 이주민에 대한 차별이다.
 
v) 피억압 인민의 노동자계급이 부르주아 · 소부르주아 세력의 지배로부터 벗어나서 자신의 독자적 조직화를 촉진토록 하는 것, 여기에 전략적 목표를 두어야 한다. 오직 이 같은 정치적 · 조직적 독자화의 기초 위에서만 노동자계급은 피억압 인민의 여타 계급·계층들을 제국주의와 자본주의 굴레로부터의 해방으로 이끌 수 있다.
 
vi) 이러한 목표를 위한 투쟁을 밀어가기 위해 사회주의자들은 작업장·직장, 지역, 학교·대학, 참호에서 선동해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세국주의 침략자를 패퇴시키기 위한 피억압자의 투쟁을 촉진하는 것을 도울 일체의 실천 행동을 지지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에는 모든 형태의 계급투쟁이 포함된다.(예를 들어 시위, 총파업에 이르는 파업, 항쟁·봉기, 참전 등등). 또 ‘자국’ 지배계급의 제국주의 침략에 반대하는 사보타지 행동 (제국주의 전쟁기구를 겨냥한 선별 파업, 억압에 봉사하는 노동을 집단 거부하기, 난민이 제국주의 요새의 야만적 장벽을 넘도록 돕기 등등)도 포함된다. 나아가 사회주의자들은 제국주의 군대의 일반 사병들 속에서, 군 장성들의 반동적 통제를 와해시키고 대량 탈영 및 “적군”과의 친교를 촉진하기 위한 정치선동을 수행해야 한다. 우리는 피억압 인민이 다른 국가들 (제국주의 국가들을 포함하여)로부터 군사적 원조를 비롯한 그 밖의 물질적 원조를 받을 권리를 방어한다. 그 원조가 이들 국가에 대한 정치적 종속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닌 한에서 말이다. 이에 대한 네거티브 사례가 미 제국주의의 대리인이 된 시리아의 소부르주아 쿠르드 ‘인민수비대'(YPG)다. 해방투쟁에 대한 이 같은 물질적 원조에 대해 이들 국가의 노동자들은 마땅히 지지해야 하며, 그것을 막아서는 안 된다.
 
vii) 최근 역사에는 UN (또는 개별 국가)이 특히 반동적인 국가에 대해 정식으로 제제 (예를 들어 1994년 이전의 남아공 아파르트헤이트 국가에 대한 경제제재)를 가한 ㅡ 진보적 대중운동의 압력 하에 ㅡ 드문 경우들이 있었다. 현재 많은 무슬림 국가들이 제국주의 이스라엘 국가에 대해 제재를 가하고 있다. 우리는 반식민지 나라들이 가하는 그 같은 제재에 대해 그 한계를 지적하면서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제국주의 국가가 그러한 제재를 가하는 경우에 우리는 이것이 경쟁 상대방 제국주의 국가나 또는 순종하지 않는 반식민지 나라에 가하는 반동적인 제재와는 같은 것이 아님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로서 우리는 시온주의 국가 같은 반동 세력에 대한 노동자·인민 제제를 제창한다. 이는 이스라엘에 대한 무역 및 군사 원조를 저지하는 노동자 행동, 소비자 보이콧 등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BDS 캠페인(이스라엘 제품에 대한 불매[Boycott], 투자 철회[Divestment], 경제제재[Sanction]를 뜻하는 약자)을 비판적으로 지지한다.
 
viii) 마찬가지로 혁명가들은 제국주의 나라와 반식민지 나라 각각의 사회주의자들, 노동조합, 그리고 그 밖의 노동자·인민 대중조직의, 국경을 가로지르는 공동 성명과 공동 활동을 제창한다.”
 
  민족 억압과 독재에 맞선 해방 전쟁
 
기본적으로 우리는 한 국가 내의 해방전쟁, 즉 민족억압이나 독재에 맞선 투쟁에서도 동일한 접근방식을 취한다. 물론 양측 모두 반동적인 내전이 있을 수 있는데, 2023년부터 이어진 수단 분쟁[90]이나 2020~22년 티그라이 지역의 에티오피아 분쟁[91]이 그런 경우다. 그러나 2021년 쿠데타 이후 미얀마[92]나 2011~24년 시리아[93]에서와 같은 해방전쟁도 다수 존재한다.
 
후자 유형의 충돌에서는, 혁명가들은 앞서 설명한 원칙에 입각해 피억압 인민의 편을 들며, 억압자에 대한 패전주의 입장을 취한다.

  복합적 또는 이중적 성격의 전쟁

복합적 또는 이중적 성격을 가진 전쟁들도 존재한다. 이 전쟁들은 해방투쟁의 요소와 반동적 전쟁의 요소를 모두 포함하는 충돌이다. 맑스주의자의 임무는 이러한 충돌을 구체적으로 조사연구하고, 해당 전쟁에서 지배적 요소와 종속적 요소를, 그리고 그 둘 간의 관계를 규명하는 것이다.[94]
 
그러한 전쟁의 최근 예로 2022년에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을 들 수 있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 측에서는 정당한 민족방어 전쟁이자, 러시아 측에서는 제국주의 침략 전쟁이다. 따라서 RCIT를 비롯한 진정한 혁명가들은 이 충돌에서 우크라이나의 편을 들었다.[95] 그러나 우리는 우크라이나가 어디로부터든 무기를 확보할 권리를 지지하지만, 서방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반대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돌에서 우리는 이중 패전주의 입장을 취한다. 2011년 리비아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있었는데, 우리는 카다피 독재에 맞선 민중봉기를 지지했으나 나토 공군의 (제한적인) 군사 개입에 반대했다.[96]
 
이러한 복합적 또는 이중적 전술은 레닌이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옹호자들과의 논쟁에서 이미 내다본 바 있다. 이들은 제국주의시대 민족해방 전쟁의 진보적 성격을 부정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를 둘러싸고 7년 전쟁을 벌였다. 즉, 제국주의 전쟁을 벌인 것이다.(제국주의 전쟁은 고도로 발달한 현대 자본주의를 토대로 해서만큼이나 노예제 또는 시초 단계의 자본주의를 토대로 해서도 가능하다.) 프랑스는 패배하여 식민지 일부를 잃었다. 몇 년 뒤 북아메리카의 여러 주들이 영국 혼자를 상대로 민족해방 전쟁을 시작했다. 그러자 지금의 미국의 일부를 당시 식민지로 보유하고 있던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 주들과 우호조약을 맺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영국에 대한 적개심에서, 즉 자신의 제국주의적 이해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다. 프랑스 군대는 아메리카 인들의 편에 서서 영국과 싸웠다. 이 경우는 제국주의적 상호경쟁이 별로 중요성을 가지지 못하는 보조적 요소로서 작용한 민족해방 전쟁으로서, 1914-16년의 전쟁에서 우리가 보는 것 (오스트리아-세르비아 전쟁에서 민족적 요소는 제국주의적 상호경쟁이라는 결정적인 요소에 비해 큰 중요성을 가지지 못한다)과는 매우 상반된다. 이것은 제국주의 개념을 판에 박힌 방식으로 적용하여 그로부터 민족전쟁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것이 얼마나 불합리한지를 보여준다. 민족해방 전쟁, 예를 들어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제국주의 강대국에 대항하여 페르시아와 인도와 중국이 동맹하여 벌이는 민족해방 전쟁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민족해방 전쟁이 일어날 경우 그것은 이들 나라에서 지금 진행되고 있는 민족해방 운동으로부터 나오는 논리적 귀결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전쟁이 현 제국주의 강대국들 간의 제국주의 전쟁으로 전화될 것인가 여부는 대단히 많은 구체적인 요인들에 달려있으며, 이러한 요인들이 틀림없이 등장할 것이라고 장담하는 것은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97]

  반식민지 국가 간의 충돌
 
지난 100년 제국주의가 진화하면서 식민지들은 대체로 반식민지로 바뀌었다. 즉, 형식상으로는 독립했으나 제국주의 세계질서 내에서 종속된 상태로 남아 있으며, 제국주의 독점자본에 의해 초과착취당하는 국가들인 것이다. 자본주의체제의 쇠퇴를 배경으로, 이러한 반식민지 국가들의 지배계급 간 충돌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것을 지금 우리는 보고 있다.
 
다른 모든 조건이 동일하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두 반식민지 자본주의 국가 간의 이러한 충돌에서 어느 한쪽도 지지할 수 없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한 특별 팸플릿에서 설명했듯이, 맑스주의자는 제국주의 조종, 민족억압 등 다른 요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으므로 그러한 충돌의 본질을 구체적으로 조사 연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군사적 충돌의 성격을 이해하려면 어떤 계급이 전쟁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목표가 무엇인지 분석해야 한다. 반식민지 나라들이 연루된 충돌의 경우, 제국주의 세계질서 사슬 내에서 그 나라가 차지하는 지위를 살펴봐야 한다. 이 나라가 제국주의 세계질서를 강화하고 타 민족을 억압하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하는지, 또 어느 정도까지 이 또는 저 강대국의 이익에 걸림돌이 되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반식민지 국가 간의 충돌은 이 또는 저 제국주의 국가와의 충돌로 혼동될 수 있으며, 동시에 민족 소수자의 해방투쟁, 민주주의운동 등과 뒤섞일 수도 있다.
 
제국주의 열강 간의 충돌은 양측 모두에서 언제나 반동적 성격을 띠는 반면, 반식민지 나라들 간의 충돌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 이유는 반식민지 부르주아지가 위 (제국주의 독점자본과 제국주의 국가)로부터 뿐만 아니라 아래 (인민대중)로부터도 심대한 압력을 받고 있는 그 모순적 지위 때문이다.
 
따라서 반식민지 나라의 지배계급은 반동적 전쟁과 진보적 전쟁 모두 벌일 수 있다. 진보적 전쟁을 벌이는 경우는 반식민지 나라가 제국주의 국가와 충돌할 때다. 그러나 반식민지 나라 간의 충돌이 종종 제국주의 열강의 이익이나 민주·민족 해방투쟁과 얽혀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한 반식민지 나라가 다른 반식민지를 상대로 진보적 전쟁을 벌이는 겄도 가능하다.”[98]
 
해당 분쟁에서 양측이 모두 반동적인, 그러한 반식민지 국가 간 충돌의 예로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전쟁, 2025년 태국과 캄보디아 간의 국경 분쟁[99], 2025년 이란과 파키스탄 간의 단기간 군사 충돌[100], 동아프리카의 임박해 있는 전쟁들[101] 등이 있다. 한쪽 진영이 객관적으로 진보적인 투쟁을 추구하는, 그러한 반식민지 국가 간 충돌의 예로는 2015년부터 이어진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의 침공에 맞선 예멘의 저항[102], 또는 파키스탄의 침략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방어전[103] 등이 있다.

해당 분쟁이 양측 모두에서의 반동적인 경우의 충돌인지, 아니면 한 측에서의 해방전쟁인 경우의 충돌인지에 따라, 맑스주의자는 이중 패전주의 입장을 취하거나, 아니면 진보적 투쟁을 벌이는 진영에서 방어주의 입장을 취한다.
 
 
 10. 결어
 
자본주의의 쇠퇴와 계급 간, 국가 간 모순의 가속화를 고려할 때, 전쟁이 현 시기 규정적 특징이 되어가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실제로, 우리는 더 많은 그리고 더 큰 전쟁들, 궁극적으로는 또 하나의 세계대전으로 치닫고 있다. 노동자계급이 제 때에 지배계급을 멈춰놓지 않는다면 말이다.
 
따라서 맑스주의자는 서로 다른 유형의 전쟁들에 대한 그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 분석 도구와 함께, 그러한 전쟁에 대한 입장을 반제국주의/ 사회주의혁명의 관점·전망과 결합하는 강령을 갖추지 않고서는 이처럼 격동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올바른 방향성을 찾을 수 없다. 트로츠키는 한때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해당 조직의 경향을 판단하는 가장 좋은 기준은 민족 방어에 대한, 그리고 식민지에 대한 그 조직의 실천 상의, 행동 상의 태도다.”[104] 그리고 실로, 전쟁과 혁명이 자본주의 계급사회 적대의 가장 폭발적인 표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사건들 또한 모든 사회주의 조직에게 가장 결정적인 시험대다.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 및 서로 다른 유형의 전쟁에 대한 그 강령의 각이한 적용은 제국주의 전쟁 및 반동적 전쟁과 관련하여 여전히 유일하게 올바른 강령이다. 우리는 이 전략·전술이 틀렸다거나, 시대에 뒤떨어졌다거나, 자기모순적이라거나 등등 주장하는 모든 수정주의적 논리를 단호히 배격한다. 트로츠키가 1920년대 및 30년대에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을 채택한 것은, 레닌의 가르침을 방어하고 적용할 능력과 의지를 갖춘 뛰어난 볼셰비키 지도자로 거듭났던 그의 정치적 변모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물론, 이것이 레닌의 공식을 암기하고 모든 종류의 전쟁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아니, 맑스주의자는 이 전략의 배후에 있는 방법을 이해하고, 주어진 전쟁의 구체적 성격에 따라 이를 적용해야 한다. 한편 이는 각각의 전쟁에 대한 구체적 분석을 요구한다. 전쟁에 참가해 있는 세력들 각각의 계급적 성격을 고려하는 그러한 구체적 전쟁 분석 말이다. 나아가 이는 지난 수십 년 간에 일어난 변화 발전 (대부분의 식민지가 반식민지로 변모한 것, 중국과 러시아 같은 새로운 제국주의 열강의 등장 등)을 인식하는 올바른 현대 제국주의 분석을 필요로 한다.[105]
 
창립 이래, RCIT는 이와 같이 제국주의 세계체제와 21세기의 그 변화에 대한 평가 분석을 수행해 왔다. 또 지난 수십 년 간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을 구체화하고 이를 각이한 전쟁들에 적용해 왔다. 우리는 계급 간, 국가 간 폭발적 투쟁으로 점철될 다가오는 수년, 수십 년에 노동자 전위대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사회주의혁명 세계당을 건설하기 위해 이러한 기여가 필수불가결하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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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혁명적 패전주의 강령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으로는 다음을 보라. RCIT,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혁명적 패전주의에 관한 테제>, 2018년 9월 8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9.html/; 또 우리의 다음 책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2019년,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2] Friedrich Engels: Letter to Karl Marx (2 April 1866), in: Marx-Engles Collected Works (MECW) Vol. 42, p. 255
 
[3] Karl Marx: Letter to Wilhelm Liebknecht (4 February 1878), in: MECW Vol. 45, p. 296
 
[4] Friedrich Engels: Letter to Karl Marx (15 August 1870), in: MECW Vol. 44, p. 46
 
[5] August Bebel: My Life, T. Fisher Unwin, London 1912, p. 89
 
[6] 다음에서 인용. Gregorij Sinowjew: Der Krieg und die Krise des Sozialismus, Verlag für Literatur und Kritik, Wien 1924, p. 475 (영역은 필자).
 
[7] 같은 글
 
[8]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Hans-Christoph Schröder: Sozialismus und Imperialismus. Die Auseinandersetzung der deutschen Sozialdemokratie mit dem Imperialismusproblem und der "Weltpolitik" vor 1914. Teil 1, Verlag Neue Gesellschaft GmbH, Bonn-Bad Godesberg 1975
 
[9] On Militarism and International Conflict, Resolution of the 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 at Stuttgart, 18-24 August 1907, in: O.H. Gankin and H.H. Fisher: The Bolsheviks and the World War, Stanford University Press, Stanford 1940, pp. 58-59
 
[10] Manifesto of the Extraordinary 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 Basel, November 24-25, 1912, in: Gankin and Fisher: The Bolsheviks and the World War, p. 84. [<바젤 국제사회주의 대회 선언>, 레닌, <<제국주의, 자본주의의 최고 단계 대중적 개설>>, 황정규 옮김, 두번째테제, 77-8쪽].
 
[11] V. I. Lenin: The Fall of Port Arthur (1905); in: Lenin Collected Works (LCW) Vol. 8, p. 53
 
[12] V. I. Lenin: The Autocracy and the Proletariat (1904), in: LCW Vol. 8, p. 28
 
[13] V. I. Lenin: The Fall of Port Arthur (1905); in: Lenin Collected Works (LCW) Vol. 8, p. 53
 
[14] 같은 글
 
[15] V. I. Lenin: International Socialist Congress in Stuttgart (1907); in: LCW Vol. 13, p. 80
 
[16] V. I. Lenin: Bellicose Militarism and the Anti-Militarist Tactics of Social-Democracy (1908); in: LCW Vol. 15, p. 199
 
[17] 다음에서 인용. Alfred Erich Senn: The Russian Revolution in Switzerland, 1914-1917,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London 1971, p. 33
 
[18] V.I. Lenin: Socialism and War (1915); in: LCW Vol. 21, p. 315.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양효식 옮김, 아고라, 55-6쪽].
 
[19] V. I. Lenin: The European War and International Socialism (1914); in: LCW Vol. 21, p. 20. [레닌, <유럽 전쟁과 국제 사회주의>, <<마르크스>>, 양효식 옮김, 아고라, 19쪽].
 
[20] V.I. Lenin: The War and Russian Social-Democracy (1914); in: LCW Vol. 21, p.34[. [레닌,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마르크스>>, 41-2쪽].
 
[21] V. I. Lenin: Wilhelm Kolb and Georgi Plechanow (1916) ; in: LCW Vol. 22, p. 142
 
[22] V. I. Lenin: Initial Variant Of The Proposals Submitted By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R.S.D.L.P To The Second Socialist Conference (1916), in: LCW Vol. 41, p. 375
 
[23] V.I. Lenin: The Conference of the R.S.D.L.P. Groups Abroad (1915); in: LCW Vol. 21, p.161.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양효식 옮김, 아고라, 113].
 
[24] V.I. Lenin and G. Zinoviev: Socialism and War (1915), in: LCW Vol. 21, p.313.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52쪽].
 
[25] Karl Liebknecht: Der Hauptfeind steht im eigenen Land! (Mai 1915), in: Karl Liebknecht: Gesammelte Reden und Schriften, Vol. VIII, Dietz Verlag, Berlin 1974, pp. 221-230
 
[2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Political Psychology of Social-Chauvinism and How to Combat It, 6 June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political-psychology-of-social-chauvinism/
 
[27] Carl von Clausewitz: Vom Kriege (1832), Hamburg 1963, p. 22; 영역본 On War, http://www.gutenberg.org/files/1946/1946-h/1946-h.htm
 
[28] 치머발트 운동과, 특히 레닌이 이끈 치머발트 좌파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John Riddell,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New York: Pathfinder, 1984; R. Craig Nation, War on War, Duke University Press, Durham 1989; Olga Hess Fisher, H.H. Gankin: The Bolsheviks and the World War; the Origin of the Third International, Stanford University Press, Stanford 1940; Ian D. Thatcher: Leon Trotsky and World War One August 1914–February 1917, Macmillan Press Ltd, London 2000 (Chapter 4); Alfred Erich Senn: The Russian Revolution in Switzerland, 1914-1917, University of Wisconsin Press, London 1971; Akito Yamanouchi: “Internationalized Bolshevism”: The Bolsheviks and the International, 1914-1917, in: Acta Slavica Iaponica Vol.7 (1989), pp. 17-32; Horst Lademacher: Die Zimmerwalder Bewegung. Vol. 1 and 2, Den Haag 1967; Jules Humbert-Droz: Der Krieg und die Internationale. Die Konferenzen von Zimmerwald und Kienthal, Wien 1964; Angelica Balabanova: Die Zimmerwalder Bewegung 1914– 1919. Hirschfeld, Leipzig 1928; Arnold Reisberg: Lenin und die Zimmerwalder Bewegung. Berlin 1966.
 
[29] V.I. Lenin: The War and Russian Social-Democracy (1914); in: LCW Vol. 21, p.34. [레닌, <전쟁과 러시아 사회민주주의>, <<마르크스>>, 41-2쪽].
 
[30] V.I. Lenin: Socialism and War (1915); in: LCW Vol. 21, p. 315.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55-6쪽].
 
[31] V. I. Lenin: Wilhelm Kolb and Georgy Plekhanov (1916); in: LCW Vol. 22, p. 142
 
[32] V.I. Lenin: The Defeat of One’s Own Government in the Imperialist War (1915); in: LCW Vol. 21, pp. 275-276. [레닌,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336-7쪽].
 
[33] Gregorij Sinowjew: Der ‚Defaitismus‘ früher und heute (1916); in: G. Sinowjew / V. I. Lenin: Gegen den Strom, Verlag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Hamburg 1921, pp. 440-441 (영역은 필자).
 
[34] The Evolution of the Comintern. Resolution of the First Conference for the Fourth International in July 1936,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New York 1973, p. 127
 
[3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주적은 국내에 있다!”: 맑스주의 슬로건과 그것의 희화 -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 사태의 맥락 속에서 이 슬로건의 사회제국주의적 왜곡에 대하여>, 2022년 8월 17일, https://blog.wrpkorea.org/2022/08/blog-post_29.html
 
[36] V.I. Lenin: The Defeat Of One’s Own Government In The Imperialist War (1915); in: LCW Vol. 21, pp. 275. [레닌, <제국주의 전쟁에서 자국 정부의 패배>,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336쪽].
 
[37] 이 문제에 대한 더 상세한 설명으로는, 우리의 다음 책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강대국 패권쟁투 시대에 반제국주의>> (2019년),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9.html
 
[38] 미하엘 프뢰브스팅, <반식민지 나라를 편 드는 것이 “진영주의”인가? - 미국-이스라엘 침략에 맞선 이란의 정당한 민족방위 전쟁을 편 들길 거부하는 비평가들에 대한 답변>, 2026년 3월 24일, https://blog.wrpkorea.org/2026/04/blog-post.html
 
[39] Leon Trotsky: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Mobilization of the Masses around Transitional Demands to Prepare the Conquest of Power (The Transitional Program) [국역: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 강령>>, 김성훈 옮김, 풀무질, 2003년];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Formative Years (1933-40), New York 1973, pp. 199-200. 이 인용문의 괄호 안 정식화는 영어본 원문을 약간 바꾼 것이다. 영어본 원문의 정식화는 이렇다. "(그들의 불성실한 동맹국을 타격하는 선동 행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식민지 나라의 노동자국가를 지지하는 선동 행동을 통해서도. 전자의 경우에는 보이콧, 파업 등의 방법으로, 후자의 경우에는 보이콧 거부, 파업 거부 등의 방법으로)." 그러나 이는 잘못된 번역이며, 우리의 정식화는 이 문서의 (원본인 러시아어본을 포함하여) 각국어본 거의 모두와 일치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제국주의 나라 노동자계급의 "식민지 나라를 지지하는 선동"과 관련하여 - 제국주의전쟁 관련 트로츠키 이행강령의 의미를 왜곡하고 있는 영역본의 오역에 관한 노트>, 2023년 4월 8일, https://blog.wrpkorea.org/2023/04/blog-post.html
 
[4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Did Lenin Really Abandon the Strategy of “Revolutionary Defeatism” against Imperialist War? A critique of the IMT/RCI and its so-called “orthodox Marxism”, 24 September 2024,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did-lenin-really-abandon-the-strategy-of-revolutionary-defeatism-against-imperialist-war/;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 방법론을 왜곡 호도하는 IMT의 신화에 대해서는 우리의 다음 책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Great Robbery of the South. Continuity and Changes in the Super-Exploitation of the Semi-Colonial World by Monopoly Capital Consequences for the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RCIT Books, 2013,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great-robbery-of-the-south/, pp. 357-365
 
[4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Poverty of Neo-Imperialist Economism. Imperialism and the national question - a critique of Ted Grant and his school (CWI, ISA, IMT) 제4장, January 2023,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grantism-imperialism-and-national-question/
 
[42] V. I. Lenin: ‘Left-Wing’ Communism – An Infantile Disorder, in: LCW Vol. 31, p. 38
 
[43] V.I. Lenin: Theses on the Question of the Immediate Conclusion of a Separate and Annexationist Peace (1918); in: LCW Vol. 26, p. 446
 
[44] V.I. Lenin: Notes on the Tasks of our Delegation at The Hague (1922); in: LCW Vol. 33, pp. 447-448
 
[45] V.I. Lenin: Socialism and War (1915); in: LCW Vol. 21, pp. 315-316. [레닌, <<사회주의와 전쟁>>, 56-7쪽].
 
[46] Gregory Zinoviev: Pazifismus oder Marxismus (Böse Folgen einer Losung.), in: G. Sinowjew / V. I. Lenin: Gegen den Strom, Verlag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Hamburg 1921, p. 116 (영어본: Pacifism or Marxism (The Misadventures of a Slogan), in: Spartacist, No. 64, Summer 2014, http://www.icl-fi.org/english/esp/64/zinoviev.html
 
[47] Hal Draper: The Myth of Lenin’s “Revolutionary Defeatism”, (1953/1954), in: The New International. A Marxist Review, Vol. XIX. No. 6, (November-December 1953), p. 323, 온라인 본으로는 다음을 보라. fhttp://www.marxists.org/archive/draper/1953/defeat/index.htm
 
[48] Hal Draper: How to Defend Israel. A Political Program for Israeli Socialists (July 1948), https://www.marxists.org/archive/draper/1948/07/israel.htm
 
[49] 다음을 보라. Leon Trotsky: The Permanent Revolution and Results and Prospects, Pathfinder Press, New York 1969; Michael Pröbsting: The Struggle for Democracy in the Imperialist Countries Today. The Marxist Theory of Permanent Revolution and its Relevance for the Imperialist Metropolises, August 2015,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democracy-vs-imperialism/
 
[50] 트로츠키의 자기비판으로는 다음을 보라. “나의 당내 입장은 화해주의적인 것이었고, 어느 순간들에서 내가 당내 모임 결성을 추진했을 때는 바로 이 입장에 기초해서 한 것이었다. 나의 화해주의는 일종의 혁명 숙명론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나는 계급투쟁의 논리가 양 파벌 모두를 같은 혁명 노선을 걷도록 강제할 것이라고 믿었다. 당시 나에게는 레닌의 정책, 즉 진정으로 혁명적인 당의 중핵을 단단히 묶어세우고 단련하기 위해서는, 화해할 수 없는 이데올로기적 분별 정립 및 (필요한 경우) 분립을 마다치 않는 그의 정책이 지닌 거대한 역사적 의미가 아직 명확하지 않았다.” (Leon Trotsky: The Permanent Revolution and Results and Prospects, Pathfinder Press, New York 1969, p. 173)
 
[51] 이 문제에 관해 트로츠키가 볼셰비키를 비판한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Leon Trotsky: Letter to Roland-Holst on ‘Vorbote’ (1915), in: John Riddell (Ed.):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Documents: 1907-1916. The Preparatory Years, Monad Press, New York 1986, pp. 345-348; 트로츠키의 다음 서한도 보라. Letter of the Editorial Board of ‘Nashe Slovo’ to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RSDLP' (1915), 같은 책 172쪽.
 
[52] Leon Trotsky: Open Letter to the Editorial Board of ‘Kommunist’ (1915), in: John Riddell (Ed.):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Documents, p. 235
 
[53] Leon Trotsky: Defeat and Revolution (1915), in: John Riddell (Ed.):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Documents, pp. 170-171
 
[54] 같은 글
 
[55] Leon Trotsky: Groupings in Russian Social Democracy (1916), in: John Riddell (Ed.): Lenin’s Struggle For A Revolutionary International, pp. 404-405
 
[56] Leon Trotsky: Open Letter to the Editorial Board of ‘Kommunist’ (1915), p. 235
 
[57] Leon Trotsky: Groupings in Russian Social Democracy, pp. 404-405
 
[58] V. I. Lenin: The Conference of the R.S.D.L.P. Groups Abroad (1915); in LCW Vol. 21, p. 163. [레닌,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 재외지부 회의>, <<제2인터내셔널의 붕괴>. 116쪽].
 
[59]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Samuel H. Baron: Plekhanov in War and Revolution, 1914-17, in: International Review of Social History, Vol. 26, No. 3 (1981), pp. 325-376
 
[60] Grigori Plekhanov: Letter to British Socialists (published in the organ of British social democratic journal “Justice”, 15 October 1914; 다음에서 인용. Grigori Alexinsky: Russia and the Great War, T. Fisher Unwin, London 1915, pp. 240-241
 
[61] Grigori Alexinsky: Russia and the Great War, T. Fisher Unwin, London 1915, p. 231
 
[62] V. I. Lenin: Letter to A. G. Shlyapnikov (23.08.1915), in: LCW Vol. 35, p. 204
 
[63] V. I. Lenin: Wilhelm Kolb and Georgy Plekhanov (1916); in: LCW Vol. 22, p. 141
 
[64] Gregorij Sinowjew: Der ‚Defaitismus‘ früher und heute (1916); in: G. Sinowjew / V. I. Lenin: Gegen den Strom, Verlag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Hamburg 1921, p. 442 (영역은 필자)
 
[65] Communist International: Our attitude toward the socialist currents and the Bern conference, Resolution of Founding Congres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in March 1919, in: John Riddell (Ed.): Founding the Communist International. Proceedings and Documents of the First Congress, March 1919, Pathfinder, New York 1987, p. 284
 
[66] Leon Trotsky: Resolution of the All-Russia Metal Workers Union (1927); in: Leon Trotsky: The Challenge of the Left Opposition (1926-1927), Pathfinder, New York 1980, pp. 249-250
 
[67] Left Opposition: Statement of the Thirteen (1926), in: Leon Trotsky: The Challenge of the Left Opposition (1926-1927), p. 292
 
[68] The Platform of the Opposition (1927), in: Leon Trotsky: The Challenge of the Left Opposition (1926-1927), pp. 367-368
 
[69] Thesen des Exekutivkomitees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über den Krieg und die Kriegsgefahr, Mai 1927, in: Die Komintern und der Krieg. Dokumente über den Kampf der Komintern gegen den imperialistischen Krieg und für die Verteidigung der Sowjet Union, Verlag Carl Hoym Nachfolger, Hamburg 1928, p. 96 and 102; 영어본: Extracts from the Theses of the Eighth ECCI Plenum on War and the Danger of War, in: Jane Degras: The Communist International 1919-1943. Documents Volume II 1923-1928, pp. 378 and 380
 
[70] Der Kampf gegen den imperialistischen Krieg und die Aufgaben der Kommunisten, Resolution des VI. Kongresses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1928), in: Protokoll des VI. Weltkongresses der Kommunistischen Internationale (1928), Band II, Reprint Karl Liebknecht Verlag, Erlangen 1972, p. 113; 영어본: 1928, Theses and Resolutions of the VI. World Congress of the Communist International, https://www.directdemocracy4u.uk/war-and-peace/1928-theses-and-resolutions-of-the-vi-world-congress-of-the-communist-international
 
[71] 같은 책, 119-120쪽
 
[72] Leon Trotsky: War and the Fourth International (June 10, 1934),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3-34], p. 320
 
[73] Leon Trotsky: The Death Agony of Capitalism and the Task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Mobilization of the Masses around Transitional Demands to Prepare the Conquest of Power (The Transitional Program); in: Documents of the Fourth International. The Formative Years (1933-40), New York 1973, p. 199. [트로츠키, <<사회혁명을 위한 이행기강령>>, 김성훈 옮김, 풀무질, 86-7쪽].
 
[74] Leon Trotsky: A Step Towards Social Patriotism (1939),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8-39], p. 209
 
[75] Leon Trotsky: An Excellent Article on Defeatism (1938), in: Writings of Leon Trotsky [1937-38], p. 153
 
[76] Rudolf Klement: Principles and Tactics in War (1938), in: Trotskyist International No. 5, Autumn 1990,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klement-war/
 
[77] 같은 글
 
[78] 같은 글
 
[79] 같은 글
 
[80] 우리는 중국 자본주의와 중국의 제국주의 강대국 부상에 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가장 중요한 문서들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Chinese Imperialism and the World Economy, an essay published in the second edition of “The Palgrave Encyclopedia of Imperialism and Anti-Imperialism” (edited by Immanuel Ness and Zak Cope), Palgrave Macmillan, Cham, 2020, https://link.springer.com/referenceworkentry/10.1007%2F978-3-319-91206-6_179-1; 노동자혁명당(준) 소책자,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중국 제국주의>>, 2021년 3월, https://blog.wrpkorea.org/2022/06/blog-post_27.html; 미하엘 프뢰브스팅, China’s Rise as a Great Power and the Marxist Theory of Imperialism, Critique: Journal of Socialist Theory, March 2025, http://critiquejournal.net/free-articles/chinas-rise-theory-imperialism.html; One Should Not Camouflage Capitalist and Imperialist China as “Socialist”. A Reply to Immanuel Ness and John Bellamy Foster, Spectre, April 2025, https://spectrejournal.com/one-should-not-camouflage-capitalist-and-imperialist-china-as-socialist/; China: O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Communist” Party and the Capitalists. Notes on the specific class character of China’s ruling bureaucracy and its transformation in the past decades, 8 September 2024,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on-the-relationship-between-communist-party-and-capitalists/; China: On Stalinism, Capitalist Restoration and the Marxist State Theory. Notes on the transformation of social property relations under one and the same party regime, 15 September 2024,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on-stalinism-capitalist-restoration-and-marxist-state-theory/; China: An Imperialist Power … Or Not Yet? 22 January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imperialist-power-or-not-yet/; China‘s transformation into an imperialist power. A study of the economic, political and military aspects of China as a Great Power (2012), in: Revolutionary Communism No. 4, http://www.thecommunists.net/publications/revcom-number-4; How is it possible that some Marxists still Doubt that China has Become Capitalist? (A Critique of the PTS/FT), An analysis of the capitalist character of China’s State-Owned Enterprises and its political consequences, 18 September 2020,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pts-ft-and-chinese-imperialism-2/;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PTS/FT와 중국 사회성격 논쟁>, https://blog.wrpkorea.org/2022/05/ptsft.html; China’s Emergence as an Imperialist Power (Article in the US journal 'New Politics'), in: “New Politics”, Summer 2014 (Vol:XV-1, Whole #: 57). 다음 RCIT 웹사이트 특별 하위 페이지에 더 많은 관련 문서가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81] 우리는 러시아 자본주의와 러시아의 제국주의 강대국 부상에 대한 많은 문서를 발표했다.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Peculiar Features of Russian Imperialism. A Study of Russia’s Monopolies, Capital Export and Super-Exploitation in the Light of Marxist Theory, 10 August 2021,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peculiar-features-of-russian-imperialism/; 노동자혁명당(준), <레닌 제국주의론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의 특색>, 2021년 10월,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1.html; <지정학주의 관점 말고 레닌주의 관점에서 본 러시아 제국주의 - 자본 집적/ 독점 고도화, 불균등 발전으로 인한 제국주의 경쟁 격화와 침략전쟁>, https://blog.wrpkorea.org/2025/02/blog-post_25.html; Michael Pröbsting: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d the Rise of Russia as a Great Power. On the Understanding and Misunderstanding of Today’s Inter-Imperialist Rivalry in the Light of Lenin’s Theory of Imperialism. Another Reply to Our Critics Who Deny Russia’s Imperialist Character, August 2014,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m-theory-and-russia/; Russia as a Great Imperialist Power. The formation of Russian Monopoly Capital and its Empire – A Reply to our Critics, 18 March 2014 (이 팜플렛에는 우리의 러시아 제국주의 성격규정을 처음으로 정립한 2001년 문서가 포함되어 있다), http://www.thecommunists.net/theory/imperialist-russia/; 같은 저자의 다음 논문들도 보라. 'Empire-ism' vs a Marxist analysis of imperialism: Continuing the debate with Argentinian economist Claudio Katz on Great Power rivalry, Russian imperialism and the Ukraine War, 3 March 2023, https://links.org.au/empire-ism-vs-marxist-analysis-imperialism-continuing-debate-argentinian-economist-claudio-katz; <러시아: 제국주의 열강인가, 반주변부 국가인가? - 아르헨티나 경제학자 카츠 클라우디오 논문에 대한 답변>, 2022년 8월 11일, https://blog.wrpkorea.org/2022/12/blog-post_11.html; Russian Imperialism and Its Monopolies, in: New Politics Vol. XVIII No. 4, Whole Number 72, Winter 2022, https://newpol.org/issue_post/russian-imperialism-and-its-monopolies/; Once Again on Russian Imperialism (Reply to Critics). A rebuttal of a theory which claims that Russia is not an imperialist state but would be rather “comparable to Brazil and Iran”, 30 March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once-again-on-russian-imperialism-reply-to-critics/. 이 문제에 관한 여러 다른 RCIT 문서들이 다음의 RCIT 웹사이트 상의 별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china-russia-as-imperialist-powers/.
 
[82] 세계 무역전쟁에 관한 RCIT의 문서들이 우리의 웹사이트 특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collection-of-articles-on-the-global-trade-war/; 다음 강령적 성명에 우리의 기본 입장이 요약 정리되어 있다. “Global Trade War: No to Great Power Jingoism in West and East!”, https://www.thecommunists.net/rcit/joint-statement-on-the-looming-global-trade-war/.
 
[83]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Inter-Imperialist Tensions Rise between Japan and China, 18 November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inter-imperialist-tensions-rise-between-japan-and-china/
 
[84] RCIT, <제국주의 국가에서의 혁명적 패전주의에 관한 테제>, 2018년 9월 8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9.html/
 
[8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아프가니스탄: 쥐떼들이 탈출하고 있다! - 카불 함락은 서방 제국주의의 역사적인 패배이자 피억압 인민의 승리다!>, 2021년 8월 17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192.html; <탈레반 승리: 의미와 전망>, 2021년 8월 24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725.html; 다음 두 팜플렛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탈레반: 이해와 오해 - 아프간에서 계급 모순 · 여성 억압 · 반제 저항>, 2021년 9월 10일, https://blog.wrpkorea.org/2022/05/blog-post_68.html; Michael Pröbsting: Afghanistan and the Left: Closet Social-Imperialism. A critique of reformist and centrist forces which are outraged about the Taliban’s victory against the U.S. occupation in Afghanistan, 24 September 2021,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afghanistan-and-the-left-closet-social-imperialism/; 2001년 서방 열강이 아프간을 공격했을 때 발표한 우리의 다음 기사들도 보라.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archive-documents-from-the-lrci-and-lfi/afghanistan-invasion-2001/
 
[8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Struggle of Revolutionaries in Imperialist Heartlands against Wars of their “Own” Ruling Class. Examples from the history of the RCIT and its predecessor organisation in the last four decades, 2 September 2022,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he-struggle-of-revolutionaries-in-imperialist-heartlands-against-wars-of-their-own-ruling-class/
 
[87] 2026년 이란 전쟁에 관한 RCIT 문서들이 다음의 우리 웹사이트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mpilation-of-articles-on-the-iran-war-2026/
 
[88] 이에 대해서는 위에서 언급한 다음 글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Struggle of Revolutionaries in Imperialist Heartlands against Wars of their “Own” Ruling Class
 
[89] For the RCIT’s analysis of the 2023-25년 가자 전쟁에 관한 RCIT 문서들이 다음의 우리 웹사이트 특별 하위 페이지들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mpilation-of-articles-on-the-gaza-uprising-2023/,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mpilation-of-articles-on-the-gaza-uprising-2023-24-part-2/ 및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mpilation-of-articles-on-the-gaza-uprising-2023-25-part-3/
 
[9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Sudan: Neither al-Burhan nor Hemedti! All Power to the People! Dissolve all Armed Forces! Arm the Masses! For a Revolutionary Constituent Assembly! 17 April 2023,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sudan-neither-al-burhan-nor-hemedti/
 
[91]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Ethiopia: Down with the Reactionary Civil War! 9 November 2020,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ethiopia-down-with-the-reactionary-civil-war/
 
[92] 미얀마 내전에 관한 우리의 문서들을 다음에서 보라.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sia/collection-of-articles-on-the-military-coup-in-myanmar/
 
[93] 시리아 혁명에 관한 우리의 문서들을 다음에서 보라.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collection-of-articles-on-the-syrian-revolution/
 
[94]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모순적 성격을 가진 전쟁에서 맑스주의 전술 - 우크라이나 전쟁과 서아프리카/ 중동/ 동아시아의 전쟁 위협은 분쟁의 이중적 성격을 인식해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2023년 8월 23일, https://blog.wrpkorea.org/2023/08/blog-post_29.html
 
[95] 우크라이나 전쟁과 나토-러시아 충돌에 관한 모든 RCIT 문서들이 우리 웹사이트의 다음 특별 하위 페이지에 있다.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global/compilation-of-documents-on-nato-russia-conflict/
 
[9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Michael Pröbsting: The Intervention of the imperialist powers in Libya. The struggle of the masses against Gaddafi’s dictatorship and the tactics of revolutionary communists, August 2011, https://rcitarchive.wordpress.com/worldwide/africa-and-middle-east/libya-revolutionary-tactics/
 
[97] V. I. Lenin: The Junius Pamphlet (1916); in: LCW Vol. 22, p. 310-11. [레닌, <유니우스 팸플릿에 대하여>, <<맑시즘의 희화와 제국주의적 경제주의>>, 양효식 옮김, 아고라, 19-20쪽].
 
[98] Michael Pröbsting: Tactics in Wars between Capitalist Semi-Colonies, 24 Oktober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theory/tactics-in-wars-between-capitalist-semi-colonies/
 
[99]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Thailand-Cambodia: A Reactionary Conflict with Possibly Explosive Consequences. No to chauvinism on both sides – the main enemy is at home! Utilise the war to bring down the bonapartist regimes! 26 July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sia/thailand-cambodia-a-reactionary-conflict-with-possibly-explosive-consequences/
 
[100]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No to the Reactionary Warmongering between India and Pakistan! Solidarity with the national liberation struggle of the Kashmiri people! 24 April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sia/no-to-the-reactionary-warmongering-between-india-and-pakistan/
 
[101] Michael Pröbsting: The Looming Great War in East Africa. A Marxist approach to civil wars, inter-state tensions, and regional power interference at the Horn of Africa, 25 October 2024,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frica-and-middle-east/the-looming-great-war-in-east-africa/
 
[102]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After the Death of Saleh: Continue the Defense of Yemen against the Al-Saud Gang of Aggressors! 12 October 2017, https://rcitarchive.wordpress.com/worldwide/africa-and-middle-east/after-the-death-of-saleh-continue-the-defense-of-yemen-against-the-al-saud-gang-of-aggressors/
 
[103]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RCIT: Down with Pakistan’s Aggression against Afghanistan! Support the right of national self-determination for all peoples oppressed by the Pakistani state! 13 October 2025, https://www.thecommunists.net/worldwide/asia/down-with-pakistan-s-aggression-against-afghanistan/
 
[104] Leon Trotsky: War and the Fourth International, p. 328
 
[105] 이에 대해서는 다음을 보라. 미하엘 프뢰브스팅, <반제국주의, 그때와 지금 - 세계자본주의 변화에 따른 반제 원칙들의 적용 문제에 대하여>, 2024년 6월 4일, https://blog.wrpkorea.org/2024/07/blog-post_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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